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농촌의 ‘맥가이버 효자’

배성훈 경북본사장
배성훈 경북본사장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1990년대 유명 보일러 회사의 CF는 농촌 노인들의 소외된 모습을 잘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홀로 남겨진 시아버지를 걱정하는 며느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청자들의 뭉클한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 보일러 매출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청년이 떠난 농촌은 사실상 노인이 지탱하고 있다. 2020년 통계청 농업조사에 의하면 농가 인구의 고령화율은 전체 인구 고령화율 15.7%보다 2.7배 높은 42.5%로 10명 중 4명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 농업인이다. 농촌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촌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농촌사회는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다. 전문가 전망에 따르면 2024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43.8%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도시화·산업화로 도시의 인구는 늘어났고 농촌사회는 구조적으로 해체돼 노인들만 남겨졌다. 농촌에서 마을을 지키고 농업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촌 노인들의 삶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 무감각했고 그들을 배려하지 못했다.

농촌 노인들의 일상은 고달프기만 하다. 오랜 세월 노동으로 얻게 된 질병과 가난으로 삶이 팍팍한 게 현실이다. 농촌 노인들의 가구 형태는 대부분 노인 부부가구(56.2%)와 노인 단독가구(32.9%)이다. 자녀와 함께 사는 가구는 10.9%뿐이다. 돌봐줄 자식들이 대부분 도시에 나가 있는 상황 속에 농촌 노인들의 일상을 챙기는 방안은 마을 주민들의 돌봄과 사회보장제도뿐이다.

영양군 영양읍에 사는 80대 부부는 형광등이 고장 났지만 거동이 불편해 제대로 수리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청송군 파천면에서 혼자 사는 80대 할머니는 미닫이문이 몇 달째 열리지 않아 고생했다. 농촌 노인들은 그동안 거리가 멀어서, 몸이 불편해서,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몰라서 불편을 참고 견디는 가구가 많았다. 영양군과 청송군에 사는 노인들은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전화 한 통만 하면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해 조명기구를 교체하고, 보일러를 점검하고, 막힌 배관을 뚫어 준다. 척척박사 맥가이버처럼, 때로는 장성한 아들처럼 어르신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드린다.

청송군 8282민원처리팀이 열리지 않았던 미닫이문을 분리해 바닥을 확인하고 있다. 전종훈 기자
청송군 8282민원처리팀이 열리지 않았던 미닫이문을 분리해 바닥을 확인하고 있다. 전종훈 기자
영양군이 운영하고 있는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취약계층의 전동차(스쿠터)를 수리하고 있다. 영양군 제공
영양군이 운영하고 있는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취약계층의 전동차(스쿠터)를 수리하고 있다. 영양군 제공

청송군 '8282민원처리팀'은 올해 1월 개설된 뒤 벌써 1천여 건의 지역 민원을 해결했다. 이용자의 80%가 고령자였고 나머지 10%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장애인 등으로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지역민들에게 나누고 있다. 5년 차에 접어든 영양군 '생활민원 바로처리반'이 처리한 민원은 1년에 2천여 건이 넘는다. 전기 배선 수리와 취약계층의 전동차(스쿠터) 수리, 보일러·수도·방충망 수리 등 처리한 민원도 다양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영양군은 '2022년 민원서비스 종합평가'에서 전국 82개 군 단위 기초 지자체 중 1위인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한국 농촌 인구는 '인구 절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하다. 해당 지자체마다 지역별 인구 변화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인구 감소 대책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이 듦이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려면 온 나라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 오지 중 가장 오지인 영양과 청송 두 군수(오도창, 윤경희)의 차별화된 정책이 사라져 가는 농촌을 살리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