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후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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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장안대 총장

김태일 장안대 총장(전 영남대 교수)
김태일 장안대 총장(전 영남대 교수)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0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한 시민이 전동차에 불을 질렀다. 이 일로 192명이 목숨을 잃었고 150명 이상이 몸을 다쳤다. 대구는 도시 전체가 충격과 공포, 절망과 비통에 빠졌다. 1995년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로 101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가 나온 사회 재난을 불과 8년 만에 다시 겪게 된 지역사회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슬픔이었다.

이 일은 우리가 자랑해 온 자본주의 압축성장의 부끄러운 뒷모습이었다. 물질적 성장을 향해 빨리빨리 대충대충 줄달음쳐 오면서 생명 존중을 외면한 결과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되짚어 보면 '예방-대비-대응-회복' 어느 대목에도 생명 존중에 대한 성찰을 찾을 수 없다. 땅 밑을 달리는 전동차 내부는 불에 타기 쉬운 값싼 재질로 이루어졌고, 불이 났을 때 그것은 불쏘시개가 되어 삽시간에 지하철 공간을 화염의 지옥으로 만들었다. 대구시 지하철 종사자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위기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최초 불이 난 전동차가 아니라 이미 불가마가 된 중앙로역으로 맞은편에서 진입한 전동차 안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긴급 상황 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회복'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고 현장 처리는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 시신 일부가 포함된 화재 현장의 잔해를 물로 씻어 내고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는 경악할 일도 일어났다. 부끄럽게도 재난 피해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줄을 이었다.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의 울부짖음을 매도하는 말이 지도층 인사의 입에서도 나왔다. 대형 재난으로 인해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우선 재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음해는 정말 안타깝다. 그들이 지금까지 울부짖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재난 피해자가 호소하고 있는 것은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슷한 재난의 고통이 거듭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통탄에 색깔을 입히고 매도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안전한 사회를 위한 노력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는 것이다. 불쏘시개였던 지하철 내장재는 불연재로 교체가 되었고 국가 운영 시스템에 안전이라는 가치를 체계화하여 안전 관련 기본법이 만들어졌고 소방청과 같은 안전관리 기관의 위상이 강화되었다.

대구에서도 재난 피해자, 대구시,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추모사업추진위원회를 바탕으로 중앙로역 기억공간 조성, 안전문화재단 설립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진전은 12주기 추모행사에서 대구시장이 250만 시민을 대표하여 재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기점으로 가능하였다. 팔공산 시민안전테마파크에 '218추모공원' 명칭을 병기하는 과제도 대구시의회에 제출한 청원을 계기로 대구시와 팔공산 동화지구 상인연합회 사이에 단계적 이행 합의가 이루어져 실행 로드맵이 서 있는 상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런 일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완의 상황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 분명하다. 우리 지역사회 전체가 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 아픔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당당하게 대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

여러 도시가 아픈 기억과 당당하게 마주 서고 그것을 넘어서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미래 비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로시마는 원폭의 고통을 넘어 평화의 도시로 자신을 세계에 알리고 있고, 제주는 4·3의 힘든 기억을 마주하여 평화의 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광주는 5월의 슬픔을 딛고 자유와 인권의 도시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대구는 1995년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 2003년 중앙로역 화재 참사를 겪으면서 '사고의 도시'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런 이미지를 불식하는 출발은 '기억 마주 서기'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도시의 아픔을 '안전과 생명의 도시'라는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후 20년이 되는 계묘년 아침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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