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 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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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전 정치부장
박상전 정치부장

직접 투표하는 국가 가운데 유권자가 가장 많은 곳은 인도다. 인구 14억 명에 유권자는 9억 명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유권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5년마다 돌아오는 인도의 하원(총 543명 선출) 선거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하다.

10조 원 이상을 투입해 전국에 100만 개의 투표소를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800명에 불과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할 권한을 갖는다.

지난 하원 선거 기준으로 군인과 경찰 등 공무원 1천만 명이 차출됐고, 600대의 열차와 20만 대 이상의 버스와 승용차가 동원됐다. 50여 대의 비행기와 헬리콥터도 투입됐다.

'유권자가 있는 곳이라면 반경 2㎞ 내에 투표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친절한(?) 선거법 때문에 선관위원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기도 하고 정글에서 벵골 호랑이와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 북부 타시강 마을은 해발 4,650m에 위치해 있는데, 선관위 직원들은 산소통을 메고 나흘에 걸쳐 등반했다. 35명에 불과한 해당 마을 주민을 위해서였다.

야생 호랑이와 반군의 위협이 있는 중서부 벵골 지역은 5명씩 중화기로 무장한 채 간이 투표소를 짊어지고 가야 했다. 남부 밀림 지역은 코끼리와 낙타를 활용했다.

노고에도 투표는 순조롭지 않다. 선거일 지정부터 문제다. 진흙탕이 되는 도로 사정상 몬순 기간을 피해야 하고 40℃를 넘는 한여름도 무리다. 학교 시험 기간과 농사철, 지역마다 다른 종교 행사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일은 유불리를 따지는 정당들의 정쟁 대상이 되기 일쑤다.

2억5천만 명에 달하는 문맹인과 공용어만 22개나 되는 언어도 난제다. 이를 위해 정당 대신 기호나 그림을 표기한 투표용지를 만드는 한편 최소 4개 이상의 다른 언어로 같은 투표용지를 인쇄한다.

이 정도라면 한국의 선거는 아주 편리한 셈이다. 사전투표일까지 고려하면 이틀 정도면 깔끔하게 마칠 수 있다.

다만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선거 비용 인플레이션이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기준으로 한국 유권자 한 표의 가치는 무려 6천787만 원이다. 새 정부가 향후 5년간 집행할 국가 예산 약 3천조 원을 전체 유권자 수(4천419만7천692명)로 나눈 값이다. 19대 대선에는 약 4천248만 원에 불과했다. 5년 사이 59% 정도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 1.36%와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이들은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으며 '국회의원+보좌진'이 받는 급여만 한 해에 7억 원(2018년 기준)가량이다. 자금과 인력 면에서 따져 보면 순전히 세금으로만 돌아가는 중소기업 300개가 여의도의 한 건물에 몰려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선진 6개국 가운데 입법기구 효율성이 낙제점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곱씹어 볼 일이다. 세계경제포럼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7점 만점 기준 한국은 3.2점에 불과했다. 영국 5.7점, 일본 5.4점. 독일 5점, 프랑스 4.8점, 미국 4점 순으로 한국은 꼴찌였다.

내년도 예산안과 대구경북(TK) 통합신공항 특별법 등 국회가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논쟁만 벌이다 세월을 허비한다면 국회 활동의 비용 대비 편익(B/C) 분석은 절대 1을 넘기지 못해 보인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여의도에 도입된다면, 올해의 국회 활동은 애석하게도 '불합격'(탈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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