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될까, 탱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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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장수 황씨 종택 마당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
경북 문경시 장수 황씨 종택 마당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나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보면 산이슬이 부른 「이사 가던 날」이 생각난다. 시골에서 중학교에 다닐 적에 과수원과 과수원의 사이 길로 등하교한 덕에 탱자나무 울타리는 익숙하다.

◆가성비 좋은 산울타리

가을에 탱자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채 노란 탱자를 초록색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있다. 탁구공만한 황금색으로 잘 익은 탱자는 억센 가시와는 달리 탐스럽다. 감귤나무와 사촌뻘인 탱자나무는 운향과 식물답게 열매의 향기가 좋다. 방향제가 귀하던 시절에는 방, 자동차 안에 놔두면 천연방향제 구실을 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의 어린아이들은 먹음직하게 생긴 탱자에 군침을 삼켰지만 막상 입에 넣어보면 두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신맛이 강해 바로 내뱉기 일쑤다.

약간 모지게 생긴 탱자나무 가지는 길고 튼튼하며, 험상궂은 가시로 무장돼 있어 함부로 접근을 못한다. 가지의 색깔이 사시사철 초록색이라서 낙엽수임에도 겨울에도 상록수처럼 느껴진다. 잎은 세 개씩 붙어 있는 겹잎으로 잎자루는 날개처럼 생겼다. 4, 5월 쯤 잎이 나올 무렵 하얀색의 탱자나무 꽃도 몽글몽글 가지에 맺힌다. 5장의 꽃잎이 서로 떨어져 있어 성글지만 향기가 일품이다.

탱자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상류라고 알려졌으나 우리나라 낙동강 하구 섬에서도 자생지가 발견됐다. 키는 2~4m 정도로 덩치가 비교적 자그마한 나무다.

탱자나무 산울타리
탱자나무 산울타리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탱자나무는 대부분 산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굵은 가시가 삐쭉삐쭉한 탱자나무는 동물이나 외부 침입자들을 막아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가시는 식물이 자신을 지키는 대표적 수단이다. 끝이 날카로운 가시를 동물들은 감히 먹지 못한다. 탱자나무의 가시는 경침(莖針)으로 주엽나무, 갈매나무, 당매자나무처럼 가지나 줄기가 변한 것이다. 잘 부러지지 않고 튼튼하다. 그래서 산울타리로 심었다.

옛날 과수원 울타리로 가꾸던 탱자나무는 사람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키웠다. 과일 서리나 야생 동물들의 습격을 막을 요량이었다. 구하기 쉽고 울타리를 유지하는데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아서 요즘 말로 '가성비 짱'이었다. 오늘날 농촌에서 탱자나무 보기가 힘들다. 과수원 철조망이나 전기 울타리가 탱자나무를 대신한다.

겨울철 탱자나무 울타리는 체구가 작은 새들의 놀이터이자 천적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요새다. 상위 포식자인 매나 수리가 하늘을 맴돌아도 참새들은 탱자나무 가시에 앉아 눈치 볼 필요 없이 한가롭게 지저귄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날카로운 가시는 덩치가 약간 큰 동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가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탱자나무의 가시가 억세기 때문에 울타리뿐만 아니라 외적 침입을 막는 지성(枳城), 죄인을 가두는 안치(安置)의 다양한 용도로도 쓰였다. 하얀 꽃향기나 노란 열매 덕에 정원수로도 길렀다.

대구 북구 국우동에 있는 대구시보호수 탱자나무.
대구 북구 국우동에 있는 대구시보호수 탱자나무.

◆지성(枳城)과 위리안치

탱자나무는 흔한 쓰임의 울타리 이외에 국토방위의 최전선에서 나라를 지키던 나무다. 옛날에는 성을 쌓고 주위에 쉽게 접근 할 수 없도록 해자(垓字)를 만들었다. 성 외부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면서 물 웅덩이를 깊게 파거나 탱자나무를 심었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탱자나무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 탱자나무로 만들어진 성을 '지성'(枳城)이라 했다. 국내 대표적인 지성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이다. 인천시 강화군 갑곳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탱자나무 역시 외적을 막기 위해 심었다.

탱자나무가 외침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도 하지만 외부와 접촉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조선시대 죄인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귀양 보내고, 죄가 더 무거우면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가둬 주거를 제한하는 형벌로 안치가 있다. 일반적인 유배형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다. 역모, 모반 등 중죄를 지은 죄인에게 내린다. 주로 왕족이나 높은 지위의 벼슬아치에게 적용됐다. 안치에 처해진 죄인에 따라 위리안치(圍籬安置)·천극안치(栫棘安置)·가극안치(加棘安置) 등을 적용했다.

위리안치는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촘촘하게 심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했다. 길게는 수십 년을 탱자나무가 둘러쳐진 집안에서 갇혀 지냈으니 죄인들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세한도」라는 걸작을 낳은 추사 김정희, 쫓겨난 조선의 임금 연산군과 광해군도 위리안치 신세를 지냈다.

◆문경 장수 황씨 종택 천연기념물

대구경북에도 수 백 년 묵은 탱자나무가 있다. 문경 장수 황씨 종택의 탱자나무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종택 안마당에 터를 잡은 탱자나무는 여러 그루가 한 그루처럼 자라고 있다. 높이 6.3m, 가슴높이 둘레 2.6m, 수관폭(樹冠幅)은 동서 9.2m, 남북 10.3m, 수령(樹齡)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큰 탱자나무임에도 고유의 수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2000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에 천연기념물로 승격됐다. 종택에서 탱자를 약으로 쓰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대구 달성군 삼가헌 앞의 탱자나무
대구 달성군 삼가헌 앞의 탱자나무

대구 북구 국우동 일반 가정집 뒤란에 있는 탱자나무는 옛날 울타리로 심었던 것으로 보이며,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세 그루 중 서쪽 언덕의 탱자나무는 지면 가까이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둥치 둘레가 1.7m에 이른다. 대구시가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대구 달성군 삼가헌 담에도 수백년 묵은 탱자나무가 집 앞을 지킨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박성수 선생이 1769년 삼가헌 초가를 짓고 굴참나무와 함께 심었다고 한다.

경북 상주시 이안리 탱자나무는 200년 넘는 세월 동안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살아왔다. 보호수로 지정된 2005년의 기록을 보면 나무 높이가 7m로 나타나 있는 거목이다.

포항시 보경사에도 400년 된 탱자나무가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됐으나 2005년 태풍 '나비'의 피해를 입어 기념물에서 해제됐고 후계목만 남아있다.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교리댁 탱자나무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교리댁 탱자나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된다'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교리댁 집안에 '남쪽의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뜻의 남귤북지(南橘北枳)를 상징하는 탱자나무 한그루가 있다. 150여 년 전 응와 이원조 선생이 제주목사직을 마치고 돌아올 때 제주도 백성들로부터 감사의 뜻으로 받은 귤나무 세 그루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다. 당시에도 귤나무를 탱자나무 대목에 접붙였는데 성주의 추위에 귤나무 접수(椄穗)는 죽고 탱자나무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경북 포항시 보경사 탱자나무
경북 포항시 보경사 탱자나무

중국 고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된다'는 말의 유래가 나온다.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의 왕을 만나러갔을 때 안영의 기를 꺾기 위해 제나라 출신 도둑을 잡아놓고 "당신 나라 사람들은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안영은 "귤나무가 회수(황하의 지류)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북쪽에서 자라면 탱자가 열린다[橘生淮南則爲橘 生淮北則爲枳]고 합니다. 저 사람도 초나라에 살았기 때문에 도둑이 됐을 것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생활 환경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이 변함을 빗대서 말했다.

귤이 기후나 풍토가 바뀐다고 탱자가 되지는 않는다. 조선 초기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에는 명절에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귤 씨앗을 심어 키운 이야기가 나온다. "봄이 되자 가지가 돋아나 남국에서 나서 자란 것과 차이가 없고 비록 서리와 눈을 만나더라도 한결 푸르고 바람이 잔잔하게 스치면 향기 또한 흐뭇하였다. (중략)강북에선 탱자가 된다는 말이 어찌 이치에 맞는다 하겠는가? 대개 남방과 북방의 풍토가 다름을 말했을 것이다." 조선 선비는 남귤북지의 진정한 의미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탱자
탱자

"글쎄…귤이 어디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면서? 마침 그 말이 생각나서 몇 개 따왔다." 작가 윤대녕의 중단편선 『반달』에 실려 있는 소설 「탱자」의 한 구절이다. 남성 가부장적 시대에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살아온 늙고 병든 고모가 죽기 전에 제주도에 사는 조카를 만나서 자신의 박복한 인생유전(人生流轉)을 들려준다. 골칫거리로 여겨서 가족들조차 사람대접을 하지 않던 시대를 헤치며 살아온 고모의 말에 귤화위지에 대한 회한이 묻어난다.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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