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피해자를 가장한 가해자

  • 0

선과 악 맞물린 우리의 내면…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더 많이 아는 것

얼마전 <남자 배우, 구토하고 휘청 마약 투약 의혹> 이란 신문 기사를 보았다. 그가 누군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마약범을 다룬 드라마 <수리남> 탓에 마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와 맞물린 탓도 있고, 특히 연예인은 마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하고 냉담과 조롱으로 결국 한 남자를 지목했고 그의 신상 털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짜 뉴스 였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배우의 고단한 인생이 알려졌고 정신과치료를 받던 그가 항불안제를 많이 복용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이후 비난은 멈췄지만, 이미 그는 마약 배우라는 오점을 안게 되었다. 다수의 반사적이고 무자비한 반응은 한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요즘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온갖 가짜 뉴스를 대량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 <마약 배우>처럼 <욕설 대통령>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우리 본성의 타나토스적 파괴성과 풍토병 같은 우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리스 신화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죄책감 때문에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 왕이 있다. 만약 <어머니와 동침한 오이디푸스> 라고 신문 기사가 났다면, 천하의 패륜아,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이야기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이디푸스는 연약한 인간 운명에 대한 겸허함을 가르쳐주는 인물로 사랑받고 있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아들이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차지하려는 무의식적 성적 애착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이름붙이고 학문적 용어로 사용했다.

고대 작가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이란 희곡을 썼다. 예언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랐고, 장성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왕좌에 올라 안정을 찾은 위대한 왕, 후일 어머니와 동침한 사실을 알고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운명 앞에 겸허해지고, 나 또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임에 공감하며, 세상을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소설 희곡 등 문학 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우리의 내면은 선과 악이 맞물려있고, 알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나 또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더 많이 아는 것은 더 많이 이해하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이다. 단순한 결과와 일부만 가지고 적의에 찬 태도를 보인다면 오류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동호회부터 정치적 정당까지 여러 형태의 집단에 속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대화를 하지만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정보 전달에 관심이 더 많다. 오해가 생기고, 조직은 분열되어 편이 갈라지고 무섭게 서로를 비난한다. 지성인이고 전문가이며 품위 있는 사람들의 모임조차도 다르지 않다.

집단을 위협하는 두 부류가 있다.

첫째는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다.(under-controlled). 이런 사람은 누가 봐도 드러난 나쁜 사람이어서 공공의 적이고, 이 사람만 피하면 문제 해결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두 번째는 자기감정을 심하게 억제하는 사람이다. (over-controlled). 이들은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순순하게 동의해주고 헌신적인 행동을 한다. 평소에는 착하고 여려서 법 없이도 살 사람, 순수 천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연히 누군가 약점을 건드리거나 본인이 무시당했다고 판단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소한 말도 항의나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곱씹으며 적개심을 쌓아간다. 이들은 대놓고 공격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남을 이용해서 응징한다.

잘못을 하고도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양 적반하장의 행동을 하는 것을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한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피해자인 척해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조직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린 아이가 잘못을 해놓고 선생님이 야단치기도 전에 미리 울거나 기절하는 경우이다. 그러면 선생님은 잘잘못을 떠나 쓰러진 아이를 걱정하느라고 판단력이 마비된다. 강력한 권위자가 주변을 꾸짖고 우는 아이를 달래면, 관심을 받은 아이는 안전하게 넘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어려움을 피해가는 방어 기제로 자리 잡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너무 과하게 표현한다면 실제 보다도 지나치게 부풀려 표현한 것이므로, 그들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은 남의 심리를 조종해서 자기 복수를 하려는 피해자를 가장한 가해자이다. 가짜 뉴스를 만드는 가해자들과 피해자 코스프레가 넘쳐나는 조악한 현실에 지칠 때 소포클레스의 연극 <안티고네>가 보고 싶다.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