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영의 풍수 이야기]<1>청도 계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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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울어 대며 갖은 액운 쫓고, 암탉이 알 낳듯 많은 인재 배출

수탉 형상의 현무봉과 절효 김극일 선생 선영
수탉 형상의 현무봉과 절효 김극일 선생 선영

풍수란 바람(風)과 물(水), 땅의 이치를 깨달아 우리 인간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실생활에 적용하는 학문이다. 우리의 문화유산(특히 지명) 속에는 풍수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문화유산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풍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근래에는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전염병, 생각지도 못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결과물이라 본다. 자연이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풍수사상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본고는 잊혀 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재조명해 보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도모하는 생태주의적 사고를 더욱 확장하는데 기여하였으면 한다.

수탉 형상과 모암재
수탉 형상과 모암재

◆계명(鷄明) 마을은 청도 8대 명당 중 하나

대구의 남쪽에 위치한 경북 청도는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기를 받아 훌륭한 인물이 많이 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자연과 잘 어울리는 전원주택이 골골이 들어서 있다. 대구와 인접해 있어 스트레스에 찌든 대구 시민들이 힐링 차 많이 찾는 곳이다.

가창댐을 따라 남서쪽으로 가다 보면 S자 코스의 경사진 도로가 시작된다. 이 꼬불꼬불한 도로 최상단이 헐티재이다. '재가 높아서 노루가 헐떡이면서 다녔다'고 해서 헐티재라고 한다. 헐티재를 지나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우산리(각실 角室)란 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km 정도 가면 명대리의 모암재가 있다. 모암재는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난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 선생을 배향하는 재실이다.

현재의 명대리는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때 계명의 '명(明)'과 미대의 '대(大)'를 따와서 지어진 행정지명이다. 계명(鷄明) 마을은 청도 8대 명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이 계명이란 지명은 모암재 뒤편 산의 형상에서 유래한다.

김해 김씨 계명재가 있는 야트막한 산이 대표적 암탉의 모습이다.
김해 김씨 계명재가 있는 야트막한 산이 대표적 암탉의 모습이다.

◆닭이 우니 새벽을 알리는 형상

계명의 한자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닭이 울 때를 표현하면 닭 '계(鷄)' 자에 울 '명(鳴)'자를 많이 쓰지만 이곳에서는 닭 '계(鷄)' 자에 밝을 '명(明)' 자를 쓰고 있다. 이는 닭이 우니 새벽(날이 밝아오다)이 왔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모암재 뒤편 산이 바로 크고 아름다운 수탉이 횃대에 앉아 날개를 탁탁 치면서 '꼬끼오'하고 새벽을 알리는 형상이다.

물형이 형성되려면 상생이 되는 안산(案山 ·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이 받쳐주어야 한다. 이곳 안산은 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횃대이다.
물형이 형성되려면 상생이 되는 안산(案山 ·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이 받쳐주어야 한다. 이곳 안산은 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횃대이다.

이 지역 내의 진산(鎭山 · 한 마을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이와 같이 개별적 산세와 산형들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을 풍수 용어로 물형(또는 형국)이라 한다. 물형이 형성되려면 상생이 되는 안산(案山 ·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이 받쳐주어야 한다. 이곳 안산은 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횃대이다. 명당답게 선영 앞쪽의 전경이 정말 아름다워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산이 수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산천의 정기가 응결된 곳(풍수 용어로 혈(穴)이라 함)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형상에서의 혈처는 횃대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기 위해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는 곳인 닭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 우묵한 곳이다. 이곳에 김해 김씨 절효 김극일 부부의 묘소가 있고 상단에 윗대 선영이 있다.

홍두깨산(뒷편)과 대밭골산(중앙)
홍두깨산(뒷편)과 대밭골산(중앙)

이 수탉 형상의 산 좌측 편에는 홍두깨산과 대밭골산이 있다. 홍두깨는 옛날 시골 아낙네들이 국수를 만들기 위하여 밀가루 반죽을 미는 홍두깨인가? 대밭골은 대나무가 많아 지은 지명인가? 아니다. 결론은 모두가 이 자리에서 파생된 것이다. 홍두깨는 다름 아닌 홍두깨 도깨비 즉, 귀신을 지칭하는 지명이다. 대밭골은 닭이 먹이를 주워 먹고 노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새벽에 닭이 우니 귀신이 어둠 속으로 물러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산 이름이 홍두깨이다. 산의 형상도 이름에 걸맞다. 귀신이 물러가는 방위도 어둠을 뜻하는 북쪽 방향이다. 또 수탉이 있으니 주변에 암탉도 있어야 음양의 이치에 맞다. 인근에 있는 김해 김씨 계명재가 있는 야트막한 산이 대표적 암탉의 모습이다. 이러한 지형은 인물도 많이 나오지만 후손도 번성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혜안에 감탄할 따름이다.

절효 김극일 선생 부부 묘소
절효 김극일 선생 부부 묘소

◆충효의 고장,계명마을

이 마을은 김해 김씨 집성촌으로 대표적인 인물인 김극일 선생은 1382년에 태어났다. 야은(治隱) 길재(吉再) 선생의 문인이다.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다. 장성한 뒤에는 벼슬에 오를 길이 있었으나 봉양을 이유로 거절하고 성심을 다하는 등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점점 퇴색되어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김극일 선생은 벼슬이 통덕랑(通德郎),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을 지냈다. 향리에서 아들 육형제의 교육은 물론 손자들의 훈회(訓誨)에도 정성을 기울여 학식과 절행으로 명성을 떨치는 토대를 이루었다. 선생은 1456년(세조 2년) 향년 75세로 돌아가셨다. 향리 유림과 제자들이 생전의 출전지효를 칭송하고 후세의 귀감을 삼고자 시호를 절효(節孝)라 하였다.

후세에 충절(忠節)로 이름을 빛낸 선생의 손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은 1464년(세조 10년) 사헌부 집의 맹(孟)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탁영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1486년(성종 17년) 7월에 진사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식년문과 갑과에 제2인으로 급제하였다. 처음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조선 시대에, 승문원이나 교서관에 속하여 문서의 교정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홍문관 교리 등 여러 주요 관직을 거쳤다.

그는 주로 언관으로 있으면서 훈구파 학자들의 부패와 비행을 앞장서서 비판했다.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을 때는 세조찬위의 부당성을 풍자하여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에 수록한 것이 빌미가 되어 무오사화 때 참변을 당한 후 중종반정 이후 복원되었다. 이러한 현실 대응 자세는 매우 과감하고 진취적이라 할 수 있다.

횃대 위에서 울고 있는 숫탉
횃대 위에서 울고 있는 숫탉

이러한 개혁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 준 것은 수탉 형상의 선대 선영의 영향이 아닐까. 수탉은 힘이 좋아 싸움을 할 때는 끝까지 싸우고 둘 다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절효 선생은 손자인 탁영 김일손, 현손인 삼족당 김대유와 함께 청도 삼현(淸道三賢)으로 불린다. 김해 김씨 삼현공파(三賢公派)의 파조이기도 하다.

닭이 먹이를 주워 먹고 노는 장소를 뜻하는 대밭골산, 그 뒤편에는 새벽이 되어 닭이 우니 귀신이 물러간다는 의미의 홍두깨산이 가까이 있고, 주변에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된 와우산(臥牛山), 소뿔과 관련된 각실(角室), 말을 타고 노는 승마산(乘馬山), 넓은 들판인 대전리(大田里)가 인근에 있다. 멀리 낙수물(낙수산)이 떨어지는 곳에는 붕어(붕어산)가 놀고 있으니 이곳 계명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풍수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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