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혜석 선생에게 혜초와 괴석을 그려준 이도영의 기명절지화

미술사 연구자

이도영(1884-1933), '혜복석정(蕙馥石貞)', 1925년(42세), 종이에 담채, 지름 51.5㎝, 개인 소장.
이도영(1884-1933), '혜복석정(蕙馥石貞)', 1925년(42세), 종이에 담채, 지름 51.5㎝, 개인 소장.

'혜복석정'으로 제목을 쓰고 '을축(乙丑) 말경(末庚) 위(爲) 혜석(蕙石) 인형(仁兄) 아정(疋正)'으로 낙관한 기명절지화이다. 1925년 무더위가 한창이었을 말복에, 혜석이라는 이에게 그려줬다는 것이다.

난초는 세심하게 한 잎 한 잎 윤곽선으로 그리고 잎은 녹색으로, 꽃대와 꽃은 연녹색으로, 화심은 빨간 색으로 채색한 채란(彩蘭)이다. 이 부채 주인의 호 '혜석'을 그림으로 풀어 혜(蕙)를 꽃대 하나에 꽃이 여럿 피는 혜란(蕙蘭)으로, 석(石)은 기괴하게 멋진 괴석(怪石)으로 그렸다. 맨 오른쪽에 복을 뜻하는 열대과일 불수감(佛手柑)을 그려 "복 많이 받으십시오. 혜석 선생"으로 풀이되는 그림이다. 불수감은 불(佛)자가 복(福)자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 복을 의미한다.

제목도 혜석 두 자를 네글자로 풀어 혜복으로 '혜란의 향기로움'을, 석정으로 '돌의 견정(堅貞)함'을 나타냈다. 혜란은 빙렬이 있는 귀한 도자기 화분에 담겨 받침대 위에 놓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괴석도 돌 모양에 맞춰 조각한 좌대로 받쳤다. 좌대엔 붉은색 테두리까지 둘러 최대의 공경을 표시했다.

'혜복석정'은 근대기 동양화가들 중 기명절지화에 가장 열심이었고, 부채그림에 자신만만했던 이도영의 부채그림 기명절지화다. 기명절지화는 서재를 상상의 배경으로 해 고동기(古銅器)와 도자기, 문방구와 청공품(淸供品), 길상적인 꽃과 과일 등을 그린다. 기명절지화의 화의(畵意)는 문방의 고상한 아취와 부귀장수의 기원 두 가지로 요약된다. '혜복석정'이 길상의 소재로만 그려진 것을 보면 혜석이 지식인은 아니었을 것 같다.

20세기 동양화가들은 부채그림을 많이 그렸다. 합죽선이 대중적으로 유행해 부채그림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한 사건이 화백 이도영 씨의 선면휘호를 소개한 신문 기사다. 1910년 7월 12, 13일자 '대한민보'를 보면 부채는 자비(自費)이며, 그림은 원하는 대로 그려주고, 기한은 3일 이내, 윤필료(그림 값)는 선면의 대소와 화체(畵體)의 소밀(疏密)에 따라 오십전에서 일원까지라고 했다. 부채가 크거나, 세밀하고 정교한 화풍이 요구될 경우 그림 값이 두 배까지 차이 났다. 신문광고로 부채그림이 필요한 사람을 모집한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화가와 수요자를 매개하는 여러 경로가 생겨 그림의 매매와 유통이 활발해지는데 신문광고도 그 중 하나다. 부채그림 만으로 신문이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수요자를 모집한 예는 이도영이 전무후무할 것 같다. '혜복석정'은 이 광고로부터 15년 후의 그림이다. 부채 크기는 보통이지만 필치는 '소(疏)'보다 '밀(密)'에 가깝고 부채 주인의 호를 활용한 맞춤형의 세심한 구상이 들어 있는 정성 어린 작품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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