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준공영제가 만들어낸 약속대련(約束對練)

이통원 사회부 기자

이통원 기자
이통원 기자

16년 만의 버스 파업이 예고됐던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고용노동청 경북지방노동위원회.

이날 오후 6시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조연맹과 대구시 버스운송사업조합 간에 2차 쟁의 조정회의가 시작됐다.

파업 예고 시한까지 불과 이틀도 남지 않았지만 회의장 안팎에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양측은 20여 분간 현황 보고회를 가진 직후 오후 8시까지 정회했다. 노사는 각자 1시간 40분 동안 저녁 식사를 하거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 후에야 돌아왔다.

오후 8시에 조정회의가 속개됐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노사 양측은 1시간 30분가량 차례로 조정위원들과 만나 의견을 제시한 뒤 또다시 멈춰 섰다. 조정 마감 시한을 불과 2시간 30분 남긴 시점이었다.

회의 시간보다 긴 정회 시간 동안 노사는 물밑 협상(?)을 이어 갔지만 눈앞에 닥친 파업에 대한 위기감이나 치열한 논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타 도시의 협상 진행 상황이었다. 타 도시에서 타결한 수준에 맞춰 대구에서도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노사 양측은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한 채 조정 시한만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연장했다.

이튿날 오후 3시부터 열린 제3차 쟁의 조정회의. 파업 돌입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취재진이 몰렸고, 긴장감도 다소 높아졌다. 그러나 예상보다 밋밋한 협상 끝에 이날 오후 5시쯤 양측은 서울, 부산과 비슷한 5% 임금 인상에 합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합의안에 서명하기 직전, 대구시가 제동을 걸었다. 임금 인상 폭이 너무 높고 버스 운행 시간 연장의 확약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대구시는 오후 11시 20~30분이 되면 종점 도착 전에도 버스 운행을 종료하는 상황을 개선하려고 했다. 근로시간을 50분 연장해야 종점까지 막차를 운행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날 임금 협상은 4.5% 인상으로만 귀결됐다. 근로시간 연장에 대한 노조의 반대 때문이었다.

대구시는 매년 버스 기사 임금을 포함한 막대한 재정지원금을 내면서도 최소한의 요구조차 관철하지 못했다. 버스 노사의 약속대련(約束對鍊) 와중에 전주(錢主)인 대구시는 빈손으로 돌아선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은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대구시는 노선권을 갖고 운송수입금을 모두 관리하는 대신, 버스 업체에 적정 이윤과 버스 기사 인건비 등이 포함된 표준운송원가를 지급한다.

임단협은 버스 노사가 하지만, 정작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은 대구시가 짊어지는 구조다.

시민 불편 해소가 최우선 과제인 지자체 입장에선 노조가 '파업'을 내세우고, 버스 업체가 방관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요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2006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투입된 재정지원금은 1조6천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승객 수는 해마다 줄고, 서비스 질은 제자리걸음이다.

준공영제는 대중교통 사각지대를 줄이고 안전·정시 운행을 유도하는 등 시내버스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분명한 기여를 했다. 버스 기사들의 임금 수준과 고용 안정성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준공영제의 한계도 뚜렷하다. 급증하는 재정 적자와 방만한 경영, 더딘 서비스 질 개선, 거듭되는 파업 위기 등은 준공영제 틀을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하는 요인이다.

이제는 완전공영제나 노선입찰제 등 준공영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준공영제를 그대로 방치했을 때 돌아오는 모든 피해는 결국 시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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