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88서울올림픽 주제곡 ‘축제교향곡’ 작곡가 김병곤

한국계 작곡가로 윤이상과 함께 소개
한국 작곡가들의 세계 무대 진출 도와

작곡가 김병곤
작곡가 김병곤

최근 지역에서 작곡가들의 발표 무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명한 작곡가의 잘 알려진 곡을 연주하는 것과 지역 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창작은 그 도시 음악의 토대를 탄탄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대구는 훌륭한 작곡가를 많이 배출한 도시이다. 특히 올해는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을 작곡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박태준은 우리나라 대표 작곡가이자, 대구 서양음악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그리고 박태준이 남긴 씨앗에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키워낸 음악가들이 있다. 하대응(1914~1983), 김진균(1925~1986), 우종억(1931~), 임우상(1935~) 등 대구 음악의 오늘을 일군 분들이다.

여기에 한 사람 더, 대구 출신으로 해외에서 이름을 빛낸 사람, 고향의 음악과 음악인을 사랑한 사람, 작곡가 김병곤(1927~2009)이 있다. 원로 음악인들이 입을 모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라고 손꼽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업적에 비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기에, 오늘은 작곡가 김병곤에 대해 소개한다.

대구시가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에서 찾아본 김병곤에 대한 첫 기록은 1952년, 대구 음악인들이 모여 만든 '대구음악연구회'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대구음악연구회는 테너 이장환, 바리톤 이점희를 비롯해 당대 음악가들이 순수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김병곤이라는 이름은 당시 기념사진과 공연 팸플릿에 남아있다. 그 외에는 자료를 찾기 힘들었는데, 최근 작곡가 임우상 선생님이 악보와 팸플릿, 신문자료 등을 기증해 주셔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됐다.

1952년 문창서점에 모인 대구음악연구회 회원들(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병곤, 맨 오른쪽이 김진균)
1952년 문창서점에 모인 대구음악연구회 회원들(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병곤, 맨 오른쪽이 김진균)

작곡가 김병곤은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출신으로 1950년대 대구에서 남산초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계성학교와 대륜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196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8년 인디애나대학에서 작곡과 지휘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에 정착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LA)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활동했다. 그는 특히 위촉작품을 많이 썼고 지휘자로도 활약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뒤, KBS교향악단으로부터 '축제교향곡'을 위촉받아 작곡했고, 그가 직접 지휘해서 1984년 올림픽 주경기장 개장기념 특별연주회에서 초연했다. 그가 인디애나대학 재학 시절 작곡한 교향시곡 '낙동강'(1964)은 고향에 대한 총체적인 감회를 엮은 곡으로, 1970년 서울시립교향악단 162회 정기연주회 때 한국에서 초연됐다.

1986년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미국 순회 연주를 위해 위촉해 '초엽(初葉)'을 작곡했다. 서울시향은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같은 해, 중국 정부가 초청한 첫 외국 작곡가로 베이징, 상하이 등에 음악을 소개하고 현지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그 외 '하프를 위한 소리', '비명', '음유교향곡', 일본에서 음반으로 출시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솔' 등 70여 곡을 남겼다.

김병곤은 1986년 태평양 연안 지역 40여 나라 작곡가들의 모임인 태평양 현대음악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 주최로 1989년 6월 제1회 태평양 현대음악제(Pacific Contemporary Music Center, 이하 PCMA)를 LA에서 열었을 때, 한국계 작곡가로는 윤이상과 김병곤의 작품이 발표됐다. 김병곤은 2회 음악제 행사를 대한민국에서 열 수 있도록 앞장섰다. 그는 PCMA의 회장을 맡아 제2회 음악제를 1990년 6월 대구와 서울에서 개최했다. 한국 작곡가들이 세계 작곡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 행사에는 미국, 소련(현 러시아), 한국, 일본, 멕시코, 중국 등의 작곡가 30여 명이 참여했다. 대구에서는 대구시향(강수일 지휘), 서울에서는 서울시향(박은성 지휘)이 연주를 맡았다. 당시 신문 기사를 확인해보면 '대규모 현대음악제가 정부 주도가 아닌 음악가들의 힘으로 성사됐다.'(1990년 6월 19일 매일신문) 는 점을 높이 평가 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임우상 선생은 "세계 여러 나라의 작곡가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고, 또 알릴 기회였다. 김병곤 선생은 작품뿐만 아니라 인품도 아주 훌륭하셔서 여러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대구가 반드시 기억하고 현창해야 할 분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구예술발전소 3층 열린수장고에서는 김병곤의 작품 '퍼쿠션을 위한 콘체르티노', '비명(Epitaph)', '하프를 위한 소리' 악보를 만나볼 수 있다.

임언미
임언미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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