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주영 작가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감동·추억 되길"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책을 더 가까이 할 수 있어
창작은 고통이지만 완성은 최고의 카타르시스
감동을 주는 집필 계속 이어갈 것

24일 오후 경북 청송군 진보면 한 식당에서 기자는 김주영 작가를 만났다. 소탈한 그의 성격과 어울리는 김치찌개에 술잔을 기울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종훈 기자
24일 오후 경북 청송군 진보면 한 식당에서 기자는 김주영 작가를 만났다. 소탈한 그의 성격과 어울리는 김치찌개에 술잔을 기울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종훈 기자

비가 오락가락하던 오후 경북 청송군 진보면 한 식당에서 소설 객주를 쓴 김주영(82) 작가를 만났다.

"나는 막걸리, 전 기자님은 소주로."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우린 자연스럽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김 작가는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어느 날 은행에 강도가 들었고 그 강도는 은행원에게 현금을 요구해 미화 5천 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돈을 받은 강도가 은행을 나가지 않고 고객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 앉았다고 한다. 은행원은 경찰에 신고했고 그는 경찰이 올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그가 은행을 떠나지 않는 것에 관해 물으니 부인이 있는 집에 가기 싫어서 그랬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강도는 법정에 섰고 판사는 그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가택연금 6개월'. 판사는 그에게 감옥과도 같은 집에서 죗값을 치르는 동시에 가족과 관계 개선을 할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놓고 한바탕 웃은 김 작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살짝 보이는 것 같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코로나 19 핑계로 고향을 가지 않거나 부모를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여행을 가거나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모순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화제를 약간 돌려 그는 지금이 '문학계의 부흥기'라고 했다.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서로의 만남을 줄이고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휴대전화를 가장 가까이하기도 하지만 한동안 잊었던 책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김 작가는 "주변에 제 책을 다시 읽고 있다고 전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책을 권하는 사람도 있다"며 "멈춰버린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글쟁이들도 글을 쓰는 재미가 더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객주'는 토속어와 방언, 한자어 등이 많이 들어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만큼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국어사전이나 포털사이트 등에 도움을 얻어 단어를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그의 작품에 가치를 올려주고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설이 들어가야 하고 그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야 하므로 읽는 사람들이 다소 어려워할 수도 있다"라며 "경상도나 전라도, 강원도 사람들이 현재 표준어가 된 서울말을 쓴다면 그게 더 비현실이 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꾸며낸 이야기'가 소설이지만 사실과 다르게 표현된다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1974년 객주를 쓰기 위해 5년 동안 전국 200여 개의 시골 장터를 수차례 다니며 소설의 소재를 모으고 또 모았다. 1979년 서울신문에 소설이 연재되고 그가 준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게 되는데 1983년까지 근 5년 동안 1천465회에 걸쳐 소설을 연재했다.

그는 "한 달에 열흘 이상은 집에 머물러 보지 못하고 카메라와 망원경, 수첩을 들고 전국 장터를 떠돌았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2013년 30년 만에 늘 가슴 한구석에 미련이 남아있던 객주 10편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작가 활동에 가장 큰 업적으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도 큰 업적이라 평가되고 있다.

김 작가는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책을 완성하게 되면 최고의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느끼는 것도 이때"라고 말했다.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김 작가는 여전히 글을 쓰고 글을 위해 조사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준비하며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힘이 들어 이제 장편은 못 씁니다."

김 작가는 자신 스스로를 알기 때문에 장편소설을 시작하면 그만큼 시간과 고통, 노력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도 세월의 화살을 비켜내지 못했고 어느새 머리가 새하얀 노(老) 작가로 됐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을 '글쟁이'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팬을 들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의 나이나 건강을 우려해 가족이나 주변의 만류도 있지만 작품에 대한 열망은 그가 처음 팬을 잡았을 때도 똑같다고 한다.

김 작가는 "거창한 꿈은 없지만 내가 풀어낼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됐으면 한다"며 "난 그게 내가 할 역할이고 그 일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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