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사랑은 다리절기

김영필 철학박사
김영필 철학박사

고통을 이겨내고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낸 에로스와 프시케이다. 아프로디테의 신전으로 몰리던 뭇 사내들이 갑자기 프시케로 방향을 바꾸었다. 프시케의 뛰어난 미모 때문이다. 아프로디테 역시 파리스가 헤라와 아테나를 물리치고 '미스 그리스'로 뽑아준 역대급 팜므 파탈이다.

프시케에 대한 아프로디테의 질투가 하늘을 찌른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시켜 프시케를 찾아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남자의 품에 안길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고 오라고 한다. 에로스는 저주의 뜻으로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도록 곤히 잠든 프시케의 입술에 쓴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갑자기 깨어난 프시케에 놀란 에로스는 엉겁결에 실수로(?) 자신이 매고 다니던 금화살로 자기 손을 찌르고 말았다.

금화살에 찔리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에로스는 저주의 뜻으로 입술에 부은 쓴 물 때문에 아무 사내도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는 프시케와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어머니의 명을 어긴 위험한 사랑의 모험이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숱한 고난을 겪는다. 에로스는 밤마다 살짝 와 사랑을 나누고 가는 자신을 의심하고 그 얼굴을 확인하려 한 프시케를 떠난다. 이 둘은 아프로디테가 낸 세 가지 과제를 다 풀고서야 하나가 된다. 마지막 과제인 죽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지하세계에 가서 페르세포네가 건네준 화장품 상자를 열지 말고 가져오라는 명령을 어기고 예뻐지고 싶은 마음으로 열자, 프시케는 깊은 죽음의 잠에 빠졌다. 에로스의 간절한 사랑으로 잠에서 깨어나 둘이 힘을 합해 마지막 과제까지 다 풀고 제우스의 도움으로 결혼한다.

윌리엄 부게로는 그의 그림 '프시케의 납치'(1895)에서 프시케는 고난을 이겨내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황홀한 모습으로 그렸다. 고난을 이겨내고 영혼으로 이루어낸 사랑이다. 프시케(psyche)가 '영혼'과 '나비'인 이유이다.

위험 제로의 보험을 넣듯이, 안전을 담보받고 하는 사랑은 이미 계산된 사랑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위험 제로의 사랑은 사랑에 대한 위협이고, 위험을 껴안지 않은 사랑은 쾌락의 변형일 뿐이라고 말한다.

바디우는 사랑을 다리절기에 비유한다. 둘이 다리를 절면서 함께 걷는 것은 힘들다. 온갖 장애물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사랑이다. 힘들다는 것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동력이다.

좋아할 만한 조건이 있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안개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사랑은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도 그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다. 사랑은 불타 없어질 수도, 홍수에 휩쓸려 갈 수도 없다. 아름다운 꽃들은 시들어도 아름다움 자체는 사라지지 않듯이. 비가 우산의 존재를 불러오듯, 잠시의 고통은 더 절박한 사랑을 소환한다. 사랑을 위한 잠시의 고통이라면, 차라리 그 잠시의 고통마저도 사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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