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지리산’…김은희표 스릴러의 진화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 아픈 역사와 환경까지 품은 스릴러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김은희 작가가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시그널'의 범죄스릴러에서 '킹덤'의 역사를 담은 좀비물을 거쳐 김은희 작가는 왜 '지리산'이라는 산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선택한 걸까. '지리산'에 담긴 김은희 작가표 스릴러는 무엇이 다른 걸까.

◆뻔한 산악 드라마의 틀 깨다

산에서 조난을 당해 1분 1초로 생사가 오가는 절박한 상황과 그 조난자를 구하기 위해 산을 수색하는 레인저들….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은 1회 40여 분간을 익숙한 장르적 문법으로 담아냈다. 가출해 산으로 들어간 한 중학생을 찾기 위해 지리산 국립공원 해동분소로 막 발령받은 신입레인저 강현조(주지훈)와 베테랑 서이강(전지현)이 다른 레인저들과 함께 폭풍우가 몰아치는 산 속에서 조난자를 찾는 내용이다.

김은희 작가, 이응복 감독 작품인데다 전지현, 주지훈이 캐스팅된 제작비 300억원 대작드라마에 기대감을 잔뜩 가졌던 시청자들은 어째 뻔해 보이는 상황에 다소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2018년 강현조와 서이강이 만났던 그때의 일을 슬쩍 보여준 후 시간을 2년 후인 2020년으로 뛰어 넘어간다. 휠체어를 탄 채 해동분소로 돌아오는 서이강과 코마 상태가 돼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병실에 누워있는 강현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따라서 드라마는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내가면서, 동시에 2020년 현재 해동분소로 돌아온 서이강이 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는다.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지리산'의 이런 구성은 전형적인 범죄스릴러의 틀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 김은희 작가는 생령이나 환시 같은 판타지적 요소를 집어넣는다. 즉 강현조는 코마 상태에서도 생령(살아있는 영혼)이 되어 지리산을 떠돌며 조난자들을 구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오컬트 장르에서 종종 등장하는 생령은 유체이탈을 하거나 식물인간 상태에서 영혼이 몸 밖으로 나온 존재를 일컫는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에 맞서, 코마 상태의 생령 강현조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어 산을 탈 수 없는 서이강의 기묘한 공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의문의 사건은 '조난사고로 위장된 연쇄살인'이다. 누군가 산 속에 의도적으로 놓아둔, 독이 든 야쿠르트를 마신 이들이 환각증세를 일으키다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김은희 작가는 이처럼 기존의 범죄 스릴러를 지리산이라는 공간으로 옮겨오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추가해 이야기의 차별점들을 만들었다. 산이라는 공간에 맞게 '조난을 위장한 연쇄 살인'이라는 아이디어를 넣었고, 신비한 자연 속에서 생령이나 환시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더했다. 또한 산은 그대로지만, 그 산을 오르는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얼굴의 산을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로 담아내려 했다. 뻔할 수 있었던 산악 드라마의 틀을 깸으로써 색다른 이야기들을 구사해낸 것.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시그널'도, '킹덤'도 있다

결국 이야기에서 판타지는 인물의 갈증이나 갈망을 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산'에 등장하는 생령이라는 판타지는 심지어 코마 상태가 되어서도 강현조가 강렬한 갈망을 갖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 갈망은 자신과 서이강을 그렇게 만든 범인을 잡으려는 갈망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을 구하려는 간절함이다.

'지리산'의 이런 생령 설정은 그래서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이 설정했던 무전기 판타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간절한 갈망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결되는 무전기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허용하게 해준 바 있다. '시그널'에서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이재한(조진웅)과 박해영(이제훈)의 공조는 그래서, '지리산'에서 생령이 되어 산을 떠도는 강현조와 휠체어 신세가 되어 돌아온 서이강의 공조를 닮았다.

'시그널'에서 보여준 무전기를 통한 소통은 그래서 '지리산'에서는 빨치산 표식(돌과 나무로 과거 빨치산들이 서로의 위치를 알렸던 방식)을 통한 소통방식과 유사하다. 생령인 강현조는 빨치산 표식으로 조난자의 위치를 서이강에게 알려주고, 그걸 읽어낸 서이강은 해동분소 레인저들을 통해 조난자들을 구하는 과정을 그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지리산'이라는 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 또한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강현조와 서이강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빨치산 표식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는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학,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빨치산전투에 담긴 비극을 이야기한다. 환각을 일으키는 독이 든 야쿠르트를 마신 할머니가 죽기 직전 보는 환각 속에 양민학살의 끔찍한 비극이 담긴 건 그래서다.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품은 공간에 대한 서사는 '킹덤 : 아신전'에서 조선인들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버림받고 학살당했던 성저야인들의 비극을 품은 북방 경계지역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킹덤 : 아신전'이나 '지리산'이나 모두, 비극을 담은 산이 품고 있는 음습한 기운과 거기서 피어나는 판타지들은 그곳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원과 한이 만들어낸 괴물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코로나19 시국의 '지리산'

물론 첫 회의 어설픈 CG와 연출로 인해 '지리산'의 이응복 감독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등장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도 '지리산'은 그 촘촘하고 놀랍기까지 한 김은희 작가의 대본에 비해 다소 밋밋한 연출이 옥의 티로 보이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산이라는 자연 공간 자체가 주는 신비함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시국에 도시가 아닌 지리산 자연 속을 한 시간 가까이 뛰어다니는 이야기는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김은희 작가가 지리산을 굳이 소재로 선택한 데는 이러한 공간의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드라마가 그리는 몇몇 사건에 담겨 있는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서 발견된다. 2회에 등장했던 산 속 소나무 불법 굴취사건 에피소드는 값 비싸다는 이유로 그 나무를 캐가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다른 나무를 잘라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또 4회에 등장했던 '감자폭탄' 에피소드는 1960, 70년대 웅담을 노린 밀렵꾼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현재에도 자행되는 불법 밀렵의 문제를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즉 '지리산'은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눈 호강의 자연을 보여주면서,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의 어긋난 욕망을 담는다. 결국 코로나19같은 감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한 건 바로 이런 욕망 때문에 환경을 파괴한 대가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지리산'의 여러 사건 속에 드리워져 있다.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제공

'지리산'은 그래서 그간 범죄 스릴러를 계속 그려왔던 김은희 작가의 진화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킹덤'을 하면서 확장되었을 작가의 세계관은, 도시가 아닌 자연적이면서 역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지리산을 선택하게 했을 것이고, 그 선택은 단지 범죄만이 아닌 인간의 어긋난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비극까지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게 했을 것이다.

물론 왜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작품들만큼의 공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응복 감독의 연출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런 우려마저 상쇄시키는 건 김은희 작가의 필력이다. 범죄스릴러가 과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는 듯한 작가의 야심이 '지리산'에서는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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