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그 많던 한량은 다 어디 갔을까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광산 김씨 외가에 홀로 의탁되어 자랐다. 광산 김씨 문중 큰 제사마다 검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참석하던 할아버지뻘 친척 중 '삼례 양반'이 기억에 남는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웃고, 막걸리를 좋아하던 이였다. '그 어른 참 한량이었지.' 그이를 한량이라고 지목하는 말에 비난의 뜻은 없었다.

정약용은 공무에서 물러나와 건(巾)을 젖혀 쓰고 울타리를 따라 걷고, 달 아래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산림과 과수원, 채소밭의 고요한 정취에 취해 수레바퀴의 소음을 잊었다고 했다. 뜻 맞는 벗들과 '죽란사'(竹欄社)라는 시모임을 만들어 날마다 모여 시를 돌려 읽고 취하도록 마신 정약용 같은 선비가 한량의 원조였을 테다.

돈 잘 쓰고 풍류를 즐기는 향촌의 유력 계층의 젊은이들은 가계 경제에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았다. 벗을 환대하고 풍류에 더 열심이었던 탓이다. 농작물의 파종이나 수확 같은 노동의 강제를 면제받는 대신 마을 공동체의 의례를 주재하거나 분란 해결에 앞장을 섰다. 마을마다 한두 명쯤은 있던 그 한량들은 농경시대가 저물고 산업화시대로 넘어가는 변화 속에서 마을 공동체들과 함께 도태되며 자취를 감춘다.

서양에도 한가롭고 세상사에 무관심한 부류가 있었다. '댄디'라고 불린 이들은 직업이 없어도 부모의 재산 덕택에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일체의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교양과 높은 예술적 안목을 쌓고, 세련된 복장으로 군중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멋지게 차려입고 거북을 끌고 파리 산책에 나서던 일단의 사람들. 보들레르는 19세기 서양에 반짝하고 출현한 이들을 '영웅주의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했다. 이 위대한 문명의 잔재는 모든 것에 침투하고 평준화하는 민주주의 물결에 밀려났다. 댄디는 꺼져 가는 별처럼, 지는 해처럼 한 점의 애수를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이 바뀌고 나날을 축제처럼 즐기던 한량도 댄디도 사라졌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는 생산 강제의 시대다. 모두에게 노동 의무를 지우는 사회에서 노동으로 자기 부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거나 고립무원의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다. 노동의 실행을 거부하고 외톨이로 사는 이들은 한량의 돌연변이 종이다. 오늘날 외로운 늑대, '히키코모리', 사이코패스로 명명되는 이들은 간혹 반사회적 공격성으로 섬뜩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신자유 체제는 공동체를 조직으로 전환한다. 오래된 마을 공동체들은 와해되고, 온라인의 그 많은 커뮤니티나 동호회는 과거의 공동체를 대체한 잔존물이다. 또한 신자유 체제는 세계를 극장에서 공장으로 바꾼다. 놀이와 축제는 추방되고, 노동의 실행만이 가치를 부여받는다.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는 진정한 축제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들뜨게 해서 대량 소비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상업주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한량이나 댄디는 사회적 생산의 유용성 대신에 유희를 선택한다. 그들은 관조적인 휴식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한량들이 거간꾼이나 정치 모리배로 타락한 뒤 소멸되면서 우리는 한량과 함께 공동체의 중재자를 잃었다. 호걸스럽게 노닐던 한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곁에서 사라진 한량들이 그립다. 새들의 지저귐과 계곡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매화 향기에 취해 시를 짓던 이들이 살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한량들이 누린 여유와 한가로움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생산 강제에 속박당하는 삶의 압박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한량들이 맡던 공동체의 중재자들이 사라지자, 사회 갈등은 더 날카로워지고 삶은 속됨 속에서 척박해졌다. 우리는 놀이가 아니라 컴퓨터 게임에 더 몰입하고, 연애가 아니라 포르노에 더 빠지며, 삶의 충족 대신에 쾌락과 말초적 흥분을 추구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오늘날의 위기는 한가함과 여유를 압살하고, 자발적으로 노동의 강제에 휘말린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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