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발의 해방

이수민 소설가

이수민 소설가
이수민 소설가

며칠 전 서울에 다녀왔다. 또각또각, 퇴근 시각 전철 플랫폼으로 뾰족한 구두를 신은 무리가 쏟아졌다. 또각거리는 소리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촌각을 다투듯 어딘가로 향하거나 초조하게 전철을 기다렸다. 무리의 구둣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코가 뾰족한 가죽에 담긴 발은 옴짝달싹할 수 없이 포위돼 있었다.

한때는 내 발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혹자는 구두의 착용감을 좋아할지 몰라도 평평한 발바닥에 손가락처럼 긴 발가락을 가진 나에게 구두는 고문 도구였다. 신데렐라의 언니처럼 발가락 하나를 도려내고 넷만 남는다면 어떻게든 구두에 발을 맞춰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한국에서 얼마간 일했다. 고위 공무원을 위해 문을 여닫거나, 미리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의전 업무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리 민첩하게 움직여도 걸음은 기대 이하로 느리고 엉성했다. VIP는 별말이 없었지만, 상사의 눈빛은 차갑게 식었다.

비슷한 시기, 친구는 쇼핑에 몰두했다. 헐렁한 정장과 구두를 보고 "힙합 하냐"라며 회사 임원이 핀잔을 준 탓이었다. 일의 연장처럼 패션 잡지와 영상을 쌓아놓고 집요하게 연구한 끝에 그는 임원의 선호에 부합하는 옷과 신발을 찾아 구매했다. 갑갑하다며 몸에 붙는 의복을 싫어했던 그는 점점 날렵한 구두코의 샤프함을 칭송하는 인간으로 변해갔다.

'운신의 폭'이란 말이 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거리' 혹은 '행동할 수 있는 범주'를 뜻하는 표현이다. 나는 신발과 '운신의 폭'을 자주 연관 짓는다. 다섯 발가락에 주어지는 공간과 심신의 자율성이 맞닿는 경험이 쌓인 탓이다.

경험의 역사가 전시된 곳은 신발장이다. 까만 힐은 발가락 사이에 피가 고인 줄 모르고 명령을 좇아 뛰던 때를, 도회적인 부츠는 네모난 재킷 위에 코트까지 겹쳐 입고 누군가의 손발이 되어 권위를 떠받치던 순간을 소환한다. 그나마 구두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던 때는 간헐적 백수 시절이며, 작가가 되고부터 발은 구속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맞이했다. 이제 또각거리는 신발은 뒤편으로 밀려났고, 전면에는 시끄럽지 않은 신발만 놓여 있다. 다섯 발가락에 고루 운신의 폭을 제공하는 조용한 신발만.

직업인으로 의복을 갖춰 입는 인생의 단계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도 탈피라면 탈피다. 퇴근 시각 전철역으로 또각거리며 쏟아지는 무리 역시 언젠가 과거의 껍질을 벗고 새 외피를 입는 과정을 거쳤을 거다. 탈피하는 곤충은 껍데기에서 벗어날 때마다 성숙과 비상을 경험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향해, 무엇을 바라 탈피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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