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10일 "당선 즉시 강력한 부동산 대개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순회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뒤 배포한 감사 연설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부동산 아파트 매매 게시판. 연합뉴스
최경철 뉴스국 부국장
최경철 뉴스국 부국장

'91대(對) 7' 워낙 압도적인 격차여서 미국 프로농구 NBA 드림팀과 길거리 농구팀 대결에서의 점수 차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우리 현대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특정 지역의 대선 후보 간 득표율 격차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양자 대결 구도를 통해 치열하게 맞붙었던 2012년 말 18대 대선. 당시 문 후보는 진보 진영의 아성인 광주에서 무려 91.97%를 득표, 불과 7.76%를 얻는 데 그친 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이 격차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박 후보 역시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80.14%의 득표율을 얻어 19.53%에 머문 문 후보를 4배가량 격차로 크게 따돌렸다.

대구와 광주에서의 각 정당 후보별 득표율이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통한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1987년 이후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철저하게 지역주의로 흘렀다. 영남은 보수로 불리는 정당이, 호남은 진보라 받아들여지는 정당이 압도적인 비율의 표를 가져갔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이 경로를 타고 정당일체감까지 형성됐다. 보수정당으로 호칭되는 국민의힘과 진보정당으로 인식되는 더불어민주당은 정당일체감을 강하게 느끼는 특정 지역민들에다 일부 계층·세대까지 충성도 강한 지지층을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역주의와 정당일체감에 기댄 투표 행태가 뚜렷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마침내 한국 정치에서 기존 경로 이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출발점은 지난 4월 7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진보정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었다. 보수정당 소속 이명박·오세훈 시장이 시장을 지내긴 했지만 최근 10년간은 보수정당 후보를 제치고 고(故) 박원순 시장이 내리 3선을 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서울에서 대선 주자들 가운데 득표율 1위를 했고, 18대 대선에서 역시 문재인 후보가 서울에서 박근혜 후보를 앞섰다.

지난 4월 7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여당의 박영선 후보가 제1야당 후보가 누가 나오든 무난히 이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선거 한 달 전 이른바 'LH 사태'가 터졌다. '특정 집단이 끼리끼리 해먹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부동산 민심은 지역주의·정당일체감 투표 행태, 즉 종전의 이념적 성향에서 탈피해 이익에 기반한 투표를 했다. 국민들이 자산 획득을 방해한 것으로 보이는 집권 세력을 심판하는 징벌적 투표를 시행, 집권 여당 민주당 대신 제1야당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서울시청으로 보낸 것이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경선도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에서 대이변이 발생, 이념이 아닌 이익 투표가 본격적인 경로를 형성했다는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장동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가운데 3차 선거인단은 2위 이낙연 전 대표에게 무려 과반을 훌쩍 넘긴 62.3%를 몰아줬고, 무난한 과반이 예상됐던 1위 이재명 대선 후보의 3차 선거인단 득표율은 28.3%에 불과했다.

올 한 해 투표 행태를 관찰해 볼 때 이익 추구 투표 행태는 한국 정치에서 본격적인 경로를 형성했다. 성난 부동산 민심이 이념의 정치에서 이익의 정치로 한국 정치의 경로를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들끓는 부동산 민심을 얕보다가는 내년 대선에서 어떤 정당이든 큰코다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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