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같았다

같았다 /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타클라마칸 사막. Image by Walter Frehner from Pixabay
타클라마칸 사막. Image by Walter Frehner from Pixabay
같았다 /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펴냄
같았다 /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등단 20년을 맞은 백가흠 작가가 소설집 '같았다'를 냈다. 2015년 내놓은 소설집 '四十四' 이후 6년 만이다. 2018년부터 우리지역 유일의 문예창작과인 계명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던 터다. 교수 직함을 달고는 처음으로 묶어낸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같았다' 등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렸다.

'같았다'라는, 여운이 긴 제목이다. '환한 숨', '밝은 밤' 같은 '형용사+명사' 조합의 소설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라도 있을 텐데. 우리 동네 말로 '그기 그기다'는 제목에 궁금증이 인다.

뭐가 같다는 말일까. 소설집의 서두를 여는 작품 '훔쳐드립니다'에서 힌트를 건져낸다. '훔쳐드립니다'는 "긴장감은 설렘을 가져온다"고 믿는 도둑, 범상치 않은 이름의 '범상'이 주인공이다. 범상은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한때 대학 강단에서 오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 대비 수익성이 높은 쪽으로 업종을 완전히 바꿨다.

스스로가 철저히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고 자부한다. 나름의 규칙도 있다. 도둑에게는 절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직업윤리다. 아무거나 다 훔치면 결국 잡힌다나. 자신이 몇 년 동안 잡히지 않고 완벽한 도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자기 통제를 꼽는다. 책이라도 한 권 쓸 기세다. 박사나 도둑이나 그게 그것인 건가. 하긴 숨겨진 삶(도둑)이나 드러난 삶(박사 학위자임에도 백수 신세)이나 불안에 떨긴 마찬가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주의 이름난 부호 경주 교동 최씨 고택. 경주시청 제공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주의 이름난 부호 경주 교동 최씨 고택. 경주시청 제공

이어지는 단편 '그 집'에는 괴상한 형태의 벼락부자가 등장한다. 돈은 많은데 쓸 돈이 없는 고로 부자가 아닌 셈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다. 일을 하지 않는데 굳이 일을 해야겠단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소설가가 주인공인 '그는 쓰다'에서도 풍요로움이 전해지지 않는 부유함은 메시지처럼 소설집을 관통한다.

심지어 스님이 주인공인 '타클라마칸'에서도 똑같다. 스님은 수행을 위해, 부처를 모시기 위해 굴을 파 나갔는데 그 굴이 부동산 벼락부자 코스처럼 웃돈까지 챙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 수련하는 마음으로 텃밭을 일구고 있었는데 밭을 일구는 족족 땅값이 올라버린 그런 경우랄까.

'같았다'의 의미를 추리하고 결론을 내리는 사이 완전히 결이 다른 단편소설 한 편의 습격을 받는다. 단편 '어제의 너를 깨워'다. 추리소설 양상마저 풍기는 소설집 전체와 분위기가 사뭇 달라 반색할 만한 작품이다. SF 장르소설처럼 상상의 영역이 확장돼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한국전쟁 종군 신부, 에밀 J. 카폰 신부
전쟁의 성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한국전쟁 종군 신부, 에밀 J. 카폰 신부

죽은 자의 말을 수집하는 '은자(隱者)'가 주인공이다. 웹소설에서나 봄직한, 직업적 소명이 강한 임무를 갖는다. 사람이 죽을 때 심장에 소량의 에너지가 남게 되는데, 그것을 열에너지와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시신에 남은 마지막 말을 수집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대개의 독자는 물리학적 검증을 원하진 않지만 애써 입증하려는 움직임을 말릴 재간은 없다.

여튼 이런 기술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수집하고 있어 양성된 주인공인 은자는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이들의 마지막 말을 수집하러 심장에 대침을 꽂고 정수리에 대침을 꽂아 성대와 연결한 뒤 에너지변환장치를 이용해 영혼과의 대화에 필수라는 주문('오더' 말고 '스펠')을 왼다.

다수의 웹소설에서 발랄하게 정의를 구현해내는 능력자들처럼 훈훈하게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해 안타까운 결말이라는 점에서 장르소설과 구별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자신의 꿈에서 착안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지난해 꾼 이상한 꿈, 죽은 사람들의 말을 받아 적는 일을 하는 꿈을 꿨는데 나는 그런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난처하기만 했다. 한참 후에 꿈속의 일화를 소재로 '어제의 너를 깨워'를 썼다"고 밝혔다. 32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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