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로즈

운명적 청년과 사랑에 빠져 배신자로 찍힌 식민지 여성

자신의 선택 끝까지 고집하다 50년간 정신병원서 삶 파괴

아일랜드 서배스천 배리 소설 원작…1차 대전 시기 미모의 여성 수난기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50년의 수난을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로 이겨낸 한 여성의 이야기를,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인 짐 쉐리단이 연출했다. 영화는 아일랜드 작가 서배스천 배리의 소설 '로즈'(원제: The Secret Scripture)를 원작으로 한다. 시인과 극작가로도 활동 중인 서배스천 배리는 이 소설로 2009년 아이리시 어워즈에서 '올해의 소설'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짐 쉐리단 감독은 '나의 왼발'(1989),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등 강인한 아일랜드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족과 정의를 주제로 하는 영화들을 연출했다.

'로즈'는 원작가와 감독의 유명세뿐만 이니라 지난해 '캐롤'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국 배우 루나 마리와 영국 출신의 연기파 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각각 20대와 70대의 로즈를 2인 1역으로 선보인다. 아일랜드가 처해 있던 영국의 식민지라는 상황, 전쟁이라는 위기의 시대, 그리고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종교가 사람들을 지배했던 환경에서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고집했다는 이유로 삶을 파괴당한 한 여성이 있었다. 영화는 이 여성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내 진실을 알리려고 애쓰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는다.

로즈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5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다. 정신과 의사 그린 박사(에릭 바나)는 그녀가 책 속에 수십 년 동안 써내려간 글들을 발견하고, 서서히 로즈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관심을 둔다. 때는 1942년. 전쟁을 피해 고향 아일랜드에 정착한 아가씨 로즈(루니 마라)는 푸른 눈, 맑은 피부, 아름다운 미소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며 동네 최고의 인기녀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영국을 위해 전쟁에 참여한 동네 청년 마이클(잭 레이너)과 운명적 사랑에 빠지며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며 사는 평범한 꿈을 가졌던 로즈가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게 된 과거의 이야기가 시점을 오가며 미스터리하게 전개된다. 가톨릭 사제인 곤트 신부는 로즈 주위를 맴돈다. 비극은 곤트 신부가 로즈에게 매혹되면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그는 로즈를 향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질투에 사로잡혀 로즈를 비극 속으로 몰아넣는다.

피식민지인인 아일랜드인이며, 전쟁 시에는 더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순응하도록 교육받는 여성이고, 아버지의 사후 정신병 판정을 받은 엄마를 둔 딸이기에, 로즈에게 가해지는 주변인의 편견의 틀은 견고하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발랄함마저 죄가 되는 곳에서 로즈는 결코 자신의 중심을 놓지 않는다.

그녀가 강고하고도 폐쇄적으로 형성된 억압 구조에 저항하는 방식은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평생을 갇혀 지내게 된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글로 남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성이 죄악시되고, 아는 것이 많다는 이유로 마녀로 처형됐던 유럽 중세시대에서부터 교육받은 여성은 '못된 여성'으로 취급받던 식민지 시기 우리나라까지, 공부하고 글을 쓰는 여자가 핍박받던 시대는 그리 멀지 않다.

긴 세월 동안 병원에서 생활해 온 로즈를 정신과 의사가 방문하고 그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미스터리가 서서히 풀려나간다. 영화는 우아하고 짙은 감수성으로 충만하며, 아일랜드의 거칠고도 숭엄한 자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남성 정신과 의사와 여성 환자라는 수직적 관계, 해결사 남성 덕분에 여성이 자아를 회복한다는 구도는 어쩐지 진부하다.

초중반, 고딕풍의 미스터리한 공포 분위기와 우아한 멜로드라마 전개가 후반부에 손쉽게 해결되는 부분은 진부한 남녀 구도와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독립적 선택만으로도 정신병자로 취급받던 근세기 사건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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