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지리산 자락 베고 섬진강에 기대 누운 경남 하동

이국적이면서 이질적인 삼성궁... 탄성 릴레이
북천 코스모스메밀꽃축제, 다음 달 20일까지 이어져
화개장터, 하동 차밭, 쌍계사, 불일폭포 엮은 당일 코스도 추천할 만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등도 빼놓기 아쉬워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은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처럼 보인다. 돌로 만든 예술품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은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처럼 보인다. 돌로 만든 예술품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태풍 '타파'를 견디자 하늘색이 바뀌었다. 명징한 빛깔은 가을의 것이다. 하늘만 바라봐도 여행인 계절이다. 마음이 들떠 하늘에 닿았다. 폭이 좁은 강물에 하늘이 내려 비친다. 강줄기에 옛 기억이 둥둥 떠온다.

이른 가을을 탄다. 북천 코스모스와 악양들 황금들녘이 돕는다. 섬진강을 곁에 둔 경남 하동에서다. 단풍은 아직이다. 다만 무더기로 피어난 꽃무릇에 바뀐 계절을 실감한다. 지리산 자락을 베고 섬진강에 기대 누운 하동에서 머문 가을이다.

 

삼성궁의 절경으로 꼽히는 연못의 모습. 진녹색의 물 색깔이 주변 구조물과 어울려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삼성궁의 절경으로 꼽히는 연못의 모습. 진녹색의 물 색깔이 주변 구조물과 어울려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학동 삼성궁

지리산 자락을 자동차로 오른다. 창문을 내려 심호흡을 만끽한다. 해발 800미터 정도인 청학동에 들어서면 들숨이 다르다. 딱히 휴양림이라 구획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리산 독바위가 보이면 삼성궁에 근접했다는 신호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 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三聖)궁'이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성전이자 수도장으로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83년부터 조성됐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단단하게 쌓은 돌담 사이로 순례길이 따로 나 있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탄성을 쏟아내며 삼성궁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단단하게 쌓은 돌담 사이로 순례길이 따로 나 있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탄성을 쏟아내며 삼성궁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청학처럼 보이는 새의 형상이 나타난다. 그 뒤로 제법 규모가 큰 구조물이 똬리 틀고 있다. 돌로 쌓은 성처럼, 혹은 봉수대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돌멩이로 쌓은 탑이다. 되는 대로 쌓은 게 아니다. 견고하게 쌓은 느낌이다. 돌담도 마찬가지다. 차곡차곡 쌓은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넣었다. 무너뜨리기 어려워 보였다. 철옹성이다. 침략자가 있다 해도 쉽게 점령하지 못할 요새다.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보더라도 신비감은 두드러진다. 비교적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자 연못이 나타난다. 거대정원이다. 수식어 하나만 붙이자면 '돌덩이가 많은'이 적당하고, 하나 더 붙이자면 '신비로운'이 어울린다.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이다. 거대암석마저 제자리인 듯 어울려 있다. 요새같은 이곳을 돌로 만든 예술품이라 불러도 무리는 아니다.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은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철옹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은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철옹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순례길이 따로 나 있어 관람객들이 다닌다. 가벼운 등산을 각오해야 한다. 단박에 오르긴 쉽잖다. 쉬지 않고 15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쉬지 않고 오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오르막이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서다. 밭은 숨과 탄성을 뒤섞어 뱉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입장료 7천원(성인 기준)의 자신감이었다.

삼성궁 최고의 풍경은 연못이다. 장딴지가 10분 정도 고생하면 눈이 10분 넘게 호강한다. 된비알에 혀를 쑥 내고 오른 이들도 연못 앞에서는 외계어에 가까운 감탄을 쏟아낸다. 연못 앞에 잠시 머물며 이들이 쏟아내는 첫 마디를 정리해봤더니 우리가 통상 감탄사로 알고 있는 '우와'보다 '이게 뭐냐', '미쳤어' 따위의 비교과서적 표현들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은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처럼 보인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삼성궁 연못 주변을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은 돌덩이가 많은 신비로운 정원처럼 보인다. 프랑스인 관광객들이 삼성궁 연못 주변을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쯤에서 보충 설명이 필요한데 이곳은 이 지역 출신 한풀선사가 수련자들과 함께 삼한시대 천신(天神)을 제사 지낸 장소인 '소도(蘇塗)'를 본떠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쌍계사와 화개장터

쌍계사 경내에 무리지어 피어난 꽃무릇.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 속눈썹마냥 하늘거린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쌍계사 경내에 무리지어 피어난 꽃무릇.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 속눈썹마냥 하늘거린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벚꽃십리길로 이름을 알린 쌍계사의 가을엔 꽃무릇이 반긴다.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 속눈썹마냥 하늘거린다. 거짓말처럼 새빨간 꽃은 잎마저 붉어 제 몸을 태우며 날아갈 것 같다. 꽃무릇 하면 축제까지 여는 고창 선운사를 첫 손에 꼽는다지만 이맘때 대개의 사찰에서 쉽게 발견된다.

여름에 피어 주로 분홍빛인 '상사화'와는 조금 다르다. 무리지어 피어난다는 의미로 '꽃무릇'이라 이름 붙었다고 한다. 겉보기와 달리 꽃무릇은 독성이 있어 벌레를 막는다고 한다. 사찰의 탱화와 전각을 보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셈이다.

쌍계사 경내에 무리지어 피어난 꽃무릇.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 속눈썹마냥 하늘거린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쌍계사 경내에 무리지어 피어난 꽃무릇. 곡선을 그리며 올라간 속눈썹마냥 하늘거린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쌍계사는 국내에 같은 이름이 여러 곳 있다. 논산, 안산, 진도, 창원과 달리 하동 쌍계사는 벚꽃과 차(茶) 그리고 국보로 존재감을 알린다. 대웅전 앞에는 국보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다. 사찰이 들어서게 된 내력을 담고 있다. 불교음악인 범패가 여기서 시작되었고, 원래 이름이 옥천사였다는 내용들이다. 887년 최치원 선생이 지은 비문은 1천 년 넘게 살아남아 국보로 만난다. 코앞에서 본다. 비신이 갈라져 있다. 멀쩡하길 바란다면 욕심이다. 크고 작은 전란에 비해 흠이 적은 편이다.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국보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 1천 년 이상 버텨낸 비신에 크고 작은 흠이 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국보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 1천 년 이상 버텨낸 비신에 크고 작은 흠이 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쌍계사 가는 길 좌우로 근래 들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카페가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은 오랜 기간 차밭이 있던 곳이다. 자투리땅마다 차밭으로 만들어놨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하동은, 차의 고장이라는 전남 보성 못지않게 차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했던 곳, 시배지가 있고 차문화센터가 가까이 있어 차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기 좋다.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불일폭포가 쌍계사에서 3㎞ 떨어져 있고 화개장터가 벚꽃십리길의 시작점이다. 화개장터, 차밭, 쌍계사를 거쳐 불일폭포까지 다녀오는 일정도 도전해볼 만한 하동 관광코스다.

쌍계사 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차밭. 진한 녹색의 차밭에 들어서면 눈이 편안해진다. 하동에는 국내에서 처음 차를 재배한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쌍계사 가는 길 좌우로 펼쳐진 차밭. 진한 녹색의 차밭에 들어서면 눈이 편안해진다. 하동에는 국내에서 처음 차를 재배한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화개장터에 온 김에 옛날 오일장 분위기를 느끼려 한다면 난감해진다. 가수 조영남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던 입이 일시정지된다. 현대화된 주변 풍경 탓이다. 상설시장처럼 돼 있다. 대형마트에 맞서기 위해 도심 시장과 오일장이 현대화된 것과도 결이 다르다.

식당가가 몰려있다. 대부분 가게가 다슬기국과 재첩국을 팔고 있다. 섬진강에 왔으니 재첩국을 먹어주는 게 도리라면 먹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맛집이라 특정하는 게 의미없을 만큼 식당마다 레시피도 거의 비슷하다. 최고의 손맛은 재료의 신선도와 먹는 이의 시장기다.

 

해장에 좋아 술꾼들에게 인기가 높은 재첩은 섬진강 주변에서 난 걸 으뜸으로 친다. 화개장터 식당가뿐 아니라 전남 구례로 넘어가는 섬진강가에서는 어김없이 재첩국을 팔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해장에 좋아 술꾼들에게 인기가 높은 재첩은 섬진강 주변에서 난 걸 으뜸으로 친다. 화개장터 식당가뿐 아니라 전남 구례로 넘어가는 섬진강가에서는 어김없이 재첩국을 팔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북천 코스모스

색감의 향연이다. 코스모스의 하양, 노랑, 빨강, 주황, 분홍은 농도를 달리해 개별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색채조견표를 대가며 색에 이름을 갖다 붙여줘야 할 만큼 다채롭다. 관람객은 50대 이상 여성들의 수가 압도적이다. 북천 코스모스는 그들의 젊은 시절 유행가처럼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이 아니다. 뭐랄까, 이건 마치 무더기로 몰려 피어있는 코스모스 밭이다.

13회째 맞는 코스모스메밀꽃축제다. 다음 달 20일까지 열린다. 색색의 색종이를 녹색 그라운드에 뿌려놓은 것처럼 넓고 화려하다. 꽃들이 제법 누워있다. 태풍 링링이 눕혀 놨다. 그러나 워낙 넓기에 누워있는 코스모스는 소소한 연민으로 넘긴다. 중년여성들이 꽃길 사이로 줄줄이 들어간다.

가을을 알리는 하동 북천 코스모스 꽃밭 사이로 관광객들이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가을을 알리는 하동 북천 코스모스 꽃밭 사이로 관광객들이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원두막에 앉아 그들의 감상 패턴을 지켜본다. 우선 코에 댄다(향을 음미한다). 꽃을 꺾는다. 귀나 머리카락에 꽃을 꽂는다. 입에 문다. 줄기를 잡고 돌리며 걷는다. 꽃밭에 던져둔다. 자세히 살피니 이건 엄연히, 추억회로를 돌리는 행위다. 어린 시절 그렇게 놀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안 변한다.

이들이 코스모스에 열광하는 이유 중에는 눈높이가 있다. 키높이에 맞다. 어깨높이다. 거느린다는 느낌을 준다. '꽃이 아파요,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문구는 효력이 없다. 꽃밭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갈등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사장에서 북천역이 바로 보인다. 기차 편으로 올 수 있다. 동대구에서 북천으로 바로 오는 기차는 없다. 진주까지 와서 갈아타야한다. 진주에서 북천으로 가는 기차는 하루 다섯 차례 있다. 20분 거리다. 여행사들도 여행상품으로 판다. 쌍계사, 화개장터, 그리고 이곳 축제를 묶어 당일치기로 내놓는다.

대형 축사가 행사장 코앞이다. 시각적 만족으로 후각적 불편을 다소 감수해야한다. 역에서 1km쯤 떨어진 하동레일바이크의 시작점, 옛 북천역에도 코스모스와 메밀꽃은 피어있다.

 

◆소설 '토지'의 무대

소설 작품은 내놓는 순간부터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어디까지나 독자에게 듣기 좋은 말이다. 소설은 작가와 운명공동체다. 죽어서도 함께 한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기념관, 문학관을 바라는 이유다. 대부분 소망에 그친다. 문학적 공감대 형성, 쉽게 말해 공전의 히트나 인지도가 바탕에 깔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악양 박경리문학관에 서 있는 박경리 작가의 동상.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악양 박경리문학관에 서 있는 박경리 작가의 동상.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소설가 박경리만큼 전국에 산재해 작가적 영향력을 뽐내는 이도 드물다. '박경리기념관'은 박경리의 고향 경남 통영에, '박경리문학공원'은 작가의 집필 공간이 있던 강원도 원주에, '박경리문학관'은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에 있다.

필적할 만한 작가가 있다면 조정래 정도를 꼽는다. 전남 고흥의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 전북 김제의 '아리랑문학관', 전남 보성의 '태백산맥문학관'이 살아있는 조정래 작가와 연관 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 악양들과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보성 벌교갯벌은 소설 속 인물들이 악전고투하는 곳을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어 친근하다.

다른 점이라면 악양들에서는 세련된 느낌이 난다는 거다. 박경리문학관, 드라마세트장과 함께 복합시설처럼 들어선 탓이다. 덕분에 여러 대하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촬영지다. 벌교갯벌 주변의 소화다리나 홍교 등 기존에 있던 것을 소설에 실은 '태백산맥'과 다른 느낌이다.

최참판댁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에 주변 상가를 둘러본다. 태백산맥문학관 주변에 소설 속 등장인물인 외서댁을 간판으로 낸 상점이 보이듯 '토지'의 주인공 서희를 내세운 간판이 유난히 많다.

악양들 한가운데 서 있는 부부송. 서로 의지하듯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악양들 한가운데 서 있는 부부송. 서로 의지하듯 서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근방에 고소성이 있다. 악양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가 군사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소성 일대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최근 스카이워크를 설치해 악양들판과 섬진강을 내려다보게 했다. 소설 '토지'에서 그려진 것처럼 '한가위에 너른 들을 가득 채운 벼가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게 선명히 보인다. 악양들판 한가운데 두 그루 소나무가 서로를 의지하듯 서 있는 부부송, 그리고 섬진강 하구 멀리 재첩을 줍는 이들도 희미하게 보인다.

관련기사

라이프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