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독립지사 백산 우재룡 선생

대한제국·일제강점기·해방…평생 나라에 헌신
열 살 이후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워하며 살아와

우재룡 씨의 흉상 우재룡 씨의 흉상

아버지께서는 1884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셨다. 나는 1944년생으로 선친께서 환갑의 나이에 나를 보신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1955년 72세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열 살 남짓의 나이에 가끔 집에 들르는 아버지를 뵌 것이 기억의 전부이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돌아가신 70여 년은 우리나라의 유례없는 격동의 시기였다. 온 생애를 국가의 격동기와 함께하신 아버지의 생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만은 어린 나이에 짧은 시간 스쳐 가듯 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휘저은 태풍과 같은 기억으로 나는 열 살 이후 안 계신 아버지를 평생 흠모하고 그리워하며 살았다.

아버지는 1915년에 광복회 조직하신 분이다.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을 치른다'는 광복회의 독립전쟁론 설파하시며 생애를 보내셨다.

2019년에 '백산 우재룡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아버지의 전 생애를 조명하고 정리한 백산 우재룡 평전을 봉헌한 바 있다. 물론 여러 연구자와 관계자의 도움으로 헌정했지만 본인으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결실과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원하던 독립이 이루어졌지만 그동안 독립된 조국에서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63년이 돼서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에 수여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해방 정국에서 '독립 운동가들은 시주를 하고 흙 떡을 맞은 꼴이 되었다'하고 자조 섞인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야 진정한 독립이 된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하시던 분이셨다.

아버지는 "相識萬天下知心能幾人. 善如人相交信義爲第一(얼굴을 아는 사람이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사람과 잘 사귀는 데는 신의(信義)가 제일이니라.)"라며 내게 유훈을 남기셨고,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귀에 쟁쟁한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본인의 선친 백산 우재룡은 국가보훈처가 '2009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대표적인 독립지사이다. 아버지는 한말 의병전쟁, 1910~20년대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산남의진, 광복회, 주비단 활동 등을 통해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격동기의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해방 정국, 전쟁의 소용돌이가 떠오른다. 평생을 올곧게 사신 아버지 그립고, 존경한다. 끝으로 나에게 산 같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아들 우대현(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 준비위원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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