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기획] 위드 코로나시대, 지성들로부터 듣는다

김선아 금오공대 교수·신규환 대구대 교수

인류가 겪어 온 팬데믹은 사회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되곤 했다. 14세기에 창궐했던 흑사병이 대표적이다. 노동력 고갈로 임금이 오르면서 농노를 대신할 기계를 찾게 된 게 1차 산업혁명 시발점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코로나19 역시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인류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위기이자 기회라는 관측이다. 네 번째 대담에는 김선아 금오공대 산업공학부 디자인공학 전공 교수, 신규환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를 초대했다.

신규환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신규환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자국의 감염증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연말연시를 보냈다고 한다. 역사로부터 배울 교훈은.

신규환=스가 총리의 공부는 늦은 감이 있다(웃음). 역사를 안다는 것은 불필요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인 미국이 과거 스페인독감 때처럼 전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면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나름대로 방역에 성공한 데에도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 경험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의료진조차 역사적 사례를 참고할 시간이 없다고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의학사(醫學史)를 연구하면서 느낀 것은 끊임없는 반추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김선아=디자인도 본질적으로 과거에 어떠했느냐 하는 트렌드 조사가 우선이다. 거기에서 주요 동인(動因)을 발견하고 미래를 예측해 인간 중심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안한다. 디자인 분야에선 팬데믹 이후 큰 흐름의 변화가 친환경이 될 전망이다. 산업화 시대의 양적 성장을 위한 대량 생산이 지구 환경의 위기,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는 반성이다. 앞으로 디자이너들이 책임감을 갖고 환경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달라진다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업도 이런 트렌드에 활동 방향을 맞춰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봉쇄·집합 금지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격리가 유일한 대안일까.

신=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답은 격리뿐이다. 과거에도 역병이 돌면 산에 가서 숨어 지내지 않았나. 하지만 최선책은 아니다. 봉쇄에 따른 생계 곤란, 심리적 공포를 정부가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봄 '대구 봉쇄'란 표현이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는데 실제로 1946년 콜레라 유행 당시 미 군정이 대구 봉쇄를 단행, '10월 항쟁'이 빚어지기도 했다. 20세기까지는 봉쇄형 방역이 대세였으나 요즘 시도되는 개방형 방역 또한 인류의 중요한 실험이라고 본다. 어느 정도로 개방을 유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김=코로나19로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터라 모두에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불안한 시기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2021년은 '글리치(Glitch·기계의 전자적 오류로 나타나는 잡음 및 불안정한 떨림) 현상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양한 노력과 시도로 파장을 하루라도 빨리 안정시켜 일상이 회복되길 바란다. 조금만 더 조심하고 견딘다면 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돼 올해를 다른 방식으로 살게 해준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김선아 금오공대 디자인공학 전공 교수.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김선아 금오공대 디자인공학 전공 교수.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마스크 없는 외출은 이제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1에서도 전자식 마스크가 화제였다.

김=팬데믹을 겪으면서 디자이너로서 느낀 점은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란 사실이다. 갑작스럽고 어려운 상황에서 각자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하고, 공유하는 모습이 매우 놀라웠다. 대구에서 처음 이뤄진 드라이브스루 검사, 천 마스크·남은 음식 나눔 등이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마스크 디자인도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 방역수단으로서의 기능, 개성을 표현하는 감성은 물론 사회·환경적 의미를 담은 마스크까지 등장했다. 마스크 키퍼, 마스크 스트랩 같은 액세서리의 등장은 생활밀착형 디자인의 사례이다.

신=질병의 역사에서 마스크의 등장은 17세기 유럽 페스트 유행 당시이다. 새 부리 모양 마스크 끝에 향료, 허브를 넣어 림프절 페스트의 특징인 악취를 막았다. 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19세기까진 몰랐기에 마스크가 많이 쓰이진 않았다. 현대적 개념의 방역 마스크는 1911년 만주지역 폐 페스트 확산을 막기 위해 화교 의사 우롄더(伍連德)가 면과 거즈로 만든 게 시초였다. 하지만 서양에는 집단면역으로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도 남아 있어 지난해 스웨덴의 방역 실패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그간 우리 사회가 안고 살아왔던 취약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김=디자인 분야 트렌드 가운데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이란 게 있다. 상품·시설·서비스를 이용하는 누구나 성별·나이·장애·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받지 않도록 다양한 이용자의 관점에서 고안한다는 개념이다. 차체를 낮춘 저상버스를 떠올리면 된다. 앞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제품 개발뿐 아니라 복지·일자리와 연계한 통합 서비스 구상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굿짐'(Good Gym)은 조깅 회원이 홀몸노인을 방문해 말동무가 되어주는 봉사활동으로, 건강과 자부심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신=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언택트 시대를 보내면서 인류가 많은 것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조만간 백신 접종이 시작하면 상황이 반전되겠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시대로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백신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아직 남아 있고, 집단면역도 예상대로 진행될지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도기인 올해는 분출하는 사회적 문제를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는 시기가 돼야 한다. 약한 고리를 보듬을 지혜와 함께 혐오와 차별, 인포데믹(허위정보의 확산) 방지 대책을 찾아야 한다.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에 바라는 정책이 있다면

신=최근 대구시의 대구형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안 철회, 일부 자치단체의 재난지원금 지급처럼 중앙과 지방의 엇박자가 너무 많아 아쉽다. 팬데믹은 전쟁과 같다. 정치 지도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선 화합을 이뤄낼 수 없다. 일관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설득력도 떨어진다. 방역에서도 민관 협업이 과제다. 민간과 정부의 역동적 관계가 중요하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방식 대신 자율적 방식으로 추진되어야만 활력이 생기고 긍정적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수요자 중심의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서비스 디자이너 양성이 이뤄져야 한다. 수도권이나 중앙정부에선 이미 서비스 디자이너를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기존처럼 다른 지역 사례를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지역에 맞는, 대상에 맞는, 진짜 문제를 발굴해 정책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담자 프로필

김선아 금오공대 디자인공학 전공 교수. 홍익대 박사. 서비스디자인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신규환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연세대 박사. 의료역사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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