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착오로 받은 혜택을 잊지 않고 되갚겠다는 얘기가 있어 화제다. 최근 대구 계성고등학교(교장 박현동)에서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 계성고에는 '익명의 기부자'가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300만원을 맡겨왔다. 코로나19 사태로 다들 힘든 때에 이 같은 정성은 더욱 소중한 선물. 이 기부자는 조만간 학교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맡기겠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그 마음 못지 않게 기부를 하게 된 사연이 색달라 더욱 눈길을 끈다.
이 기부자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서울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대구로 피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당시 학적 문제로 전학이 여의치 않았는데 계성학교에서 흔쾌히 받아줘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게 기부자의 얘기다.
문제는 가난한 피난민이라 학교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 학업을 포기하려 한 것도 여러 번인데 담임교사로부터 두 번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 장학금은 '가뭄에 단비'였다.
하지만 이 장학금은 사실 그에게 돌아갈 게 아니었다. 선교사가 목사 자녀에게 전달하라고 준 것이었는데 담임교사가 착각, 잘못 전한 것이었다. 이 기부자 부친의 직업란에 '군속(軍屬)'이라 기록된 것을 담임교사가 '군목(軍牧)'으로 잘못 알고 두 번이나 장학금을 지급했다.
기부자 역시 처음 장학금을 받았을 때는 이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두 번째로 장학금을 손에 쥐었을 땐 착오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이었던지라 졸업할 때까지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무사히 학업을 마친 그는 대학에 진학,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고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어려운 형편 탓에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게 평생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다들 형편이 어려워진 것을 보면서 70여 년 전 피난민 시절이 떠올랐고, 미안한 마음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정했다.
이 기부자는 당시 경제적 가치로 환산, 장학금 300만원을 우선 계성고 측에 기부했다. 여기다 조만간 재산을 정리하는 대로 1억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맡기겠다는 뜻을 함께 전했다.
계성고 박현동 교장은 "64년 전 가난으로 인한 학업 중단 위기 속에서 전해진 기적같은 장학금이 숭고한 뜻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며 "이번 사연을 통해 '배움에 주려 울고 있는 자 여기와 배부름 얻으라'는 계성의 설립 이념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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