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계성고 익명의 1억 기부 약속 '64년 만에 밝힌 진실'

6·25전쟁 시절 착오로 받은 장학금 이제 다시 기부
장학금 300만원 내놔…추가로 학교발전기금 1억원 기탁 의사도 밝혀

대구 중구 대신동에 남아 있는 옛 계성고등학교 건물들 모습. 64년 전 이곳에서 공부했던 이가 착오로 받았던 장학금을 최근 학교 측에 다시 되돌려 준 사연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 계성고 홈페이지
대구 중구 대신동에 남아 있는 옛 계성고등학교 건물들 모습. 64년 전 이곳에서 공부했던 이가 착오로 받았던 장학금을 최근 학교 측에 다시 되돌려 준 사연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 계성고 홈페이지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착오로 받은 혜택을 잊지 않고 되갚겠다는 얘기가 있어 화제다. 최근 대구 계성고등학교(교장 박현동)에서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 계성고에는 '익명의 기부자'가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300만원을 맡겨왔다. 코로나19 사태로 다들 힘든 때에 이 같은 정성은 더욱 소중한 선물. 이 기부자는 조만간 학교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맡기겠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그 마음 못지 않게 기부를 하게 된 사연이 색달라 더욱 눈길을 끈다.

이 기부자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서울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대구로 피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당시 학적 문제로 전학이 여의치 않았는데 계성학교에서 흔쾌히 받아줘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게 기부자의 얘기다.

문제는 가난한 피난민이라 학교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 학업을 포기하려 한 것도 여러 번인데 담임교사로부터 두 번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 장학금은 '가뭄에 단비'였다.

하지만 이 장학금은 사실 그에게 돌아갈 게 아니었다. 선교사가 목사 자녀에게 전달하라고 준 것이었는데 담임교사가 착각, 잘못 전한 것이었다. 이 기부자 부친의 직업란에 '군속(軍屬)'이라 기록된 것을 담임교사가 '군목(軍牧)'으로 잘못 알고 두 번이나 장학금을 지급했다.

기부자 역시 처음 장학금을 받았을 때는 이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두 번째로 장학금을 손에 쥐었을 땐 착오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이었던지라 졸업할 때까지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무사히 학업을 마친 그는 대학에 진학,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고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어려운 형편 탓에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게 평생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다들 형편이 어려워진 것을 보면서 70여 년 전 피난민 시절이 떠올랐고, 미안한 마음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정했다.

이 기부자는 당시 경제적 가치로 환산, 장학금 300만원을 우선 계성고 측에 기부했다. 여기다 조만간 재산을 정리하는 대로 1억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맡기겠다는 뜻을 함께 전했다.

계성고 박현동 교장은 "64년 전 가난으로 인한 학업 중단 위기 속에서 전해진 기적같은 장학금이 숭고한 뜻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며 "이번 사연을 통해 '배움에 주려 울고 있는 자 여기와 배부름 얻으라'는 계성의 설립 이념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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