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다 어디 갔을까?

장석주 시인(인문학저술가)

장석주 시인(인문학저술가) 장석주 시인(인문학저술가)

언제부터인가, 티브이 방송 편성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코미디 프로그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티브이 지상파 방송 편성에서 왜 사라졌는지, 나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유머 1번지', 가장 최근의 '개그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유머와 위트를 뒤섞은 콩트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쓴 쩨쩨한 정치에 대한 날 선 풍자로 서민에게 웃음을 주며 번성기를 누렸다.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은 명맥이 끊겼다. 팍팍한 나날의 삶에서 그나마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는 노릇을 하던 코미디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주던 그 많던 코미디언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웃음이 항상 기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웃음은 복잡한 프로세스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한 표현이다. 웃음은 대상과 당위적 기대 사이에 비대칭이 형성되는 찰나에 솟구친다.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거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질 때 사람들은 웃는다. 이때 제3자는 그 실수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안도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에는 주체의 우월감과 짓궂음이 묻어난다. 타자의 낭패에서 즐거움의 계기를 찾는 이 무의식의 행동에 깃든 짓궂음은 악취미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압달라에서 살았는데,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가진 철학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 아흔 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온종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구로 나와서 부둣가 노동자를 바라보며 웃어대는 그를 가리키며 노망이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유명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이 늙은 철학자를 관찰한 뒤 그가 미친 것도, 병에 든 것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늙은 철학자가 온종일 발작하듯이 웃어댄 것은 주민들의 부조리한 상업 활동과 어리석음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생리학자들은 웃음이 인간 내부에 있는 과도한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코미디언들의 바보 연기가 웃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실이' 배삼룡, '맹구' 이창훈, '영구 없다'의 심형래 같은 바보 연기의 달인들은 무의식 중에 우리 안의 우월의식을 부추긴다. 그들이 연기한 바보스러움과 엉뚱함이 우리 안의 '자만과 착란'을 자극해 웃음을 터지게 한다. 광대의 익살극이 유행하던 시대의 천재 시인 보들레르는 웃음을 '불행의 징후'라고 했다. 웃음이 제 고통에 대한 신체적 경련일 때, 혹은 제 자만의식을 분출하는 행위일 때 이것은 내면의 불순물이고, 제 안의 '불행의 징후'를 타인에게 되비춘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다.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웃음은 근심과 시름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고, 억압과 고통에 맞서는 비판과 저항의 뜻을 담아낸다. 웃음은 근엄한 독재와 파시즘, 광신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악에 항변하는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 경제 불황에 전염병 팬데믹이 덮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암울하고 팍팍해졌다. 그럴수록 유머와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현실 극복 의지를 북돋는 청량한 자극제가 되거나,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들에 찌든 마음의 치유제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맘껏 웃다 보면 감정을 옥죄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먹방'이 꿰찬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매몰된 개인 미디어에서 방출하는 '먹방'이 자아내는 웃음은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코미디를 대신하는 '먹방'은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비틀린 웃음만을 낳는데, 그런 웃음은 가짜 치료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진짜 즐거움으로 꽉 찬 유머들, 남이건 자기건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웃음들이다. 그런 유머와 웃음들이 우리를 살리는 명약이다. 우리를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들의 활동 무대인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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