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여성 혁명

이진숙 전 대전 MBC 대표이사

이진숙 전 대전 MBC 대표이사 이진숙 전 대전 MBC 대표이사

"사상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운전을 하고 있어요. 정말 흥분이 돼요. 역사적인 순간이죠."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도로 주행을 한 사람의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자동차를 사고 시험 운전을 하는 사람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카리마 부카리다. 2018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천 달러를 넘는 나라에서 여성이 운전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말로 들린다. 카리마는 캐나다에서 운전을 배웠지만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하는 순간 운전을 할 권리를 빼앗겼었다.

중동의 일부 나라에서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성을 소유물로 보는 부족 관습이 남아 있다. 여성의 운명은 세 남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통한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엄한 보호 아래,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에게 '보호권'은 이전된다는 것.

'중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일부다처제이다. 하지만 일부다처제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매우 인도주의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자원이 부족하던 6~7세기, 다른 부족을 침입해서 식량과 자원을 빼앗아야 했고, 그래서 종교도 생존을 위한 전쟁은 용인해 주었다. 이슬람 이전에는 여아가 태어나면 사막에 묻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전해진다. 성장하기 전에 입을 줄여버리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할까. 전쟁이 잦아지면 인구의 불비례 현상이 발생한다. 전투가 이어지면서 많은 미망인들이 생겨났는데, 전근대 부족사회에서 미망인이라는 지위는 요즈음으로 치면 한순간에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와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남성 한 명이 네 명의 여성과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현재의 사회보장제도와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것. 전쟁으로 줄어든 남성 인구와 여성 인구의 비율이 1대 4 정도가 되었으며 이것이 일부사처제의 기원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21세기에 이런 설명은 현실감이 전혀 없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나라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있고 생존을 위한 전투도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도 제도는 남았다.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제도와 일부다처제를 유지했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막았다. 결혼 전에 연애를 하면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버지나 오빠가 딸(동생)을 살해하는 '명예 살인'(Honor Killing)은 지금도 왕왕 발생한다. 요르단처럼 개방이 진행된 나라들에서는 전근대적 전통주의가 많이 사라졌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운전이 허용된 것이 2018년이라면 놀랄 일이 아닌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을 허용한 것을 두고 아랍 문화권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 변화했다는 상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근대적인 일부다처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경제 발전 수준이 더 높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는 중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동에서 가장 부자 나라는 이스라엘,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 기준 3만3천 달러에 이른다. 노동부 장관, 외교부 장관을 거쳐 총리까지 오른 골다 메이어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했고 2020년 UNDP 조사에 따르면 여성 불평등지수는 19위를 기록하고 있다(수치가 낮을수록 여성 지위가 높다). 반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상대적으로 더딘 팔레스타인(107위), 이집트(110위), 시리아(118위), 이라크(120위), 예멘(154위)의 경우 경제적 발전도 크게 뒤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또 대구는 어떨까. 1981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14명의 시장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16대부터 21대까지 20년 동안 대구·경북 지역구 국회의원 150여 명 가운데 여성은 단 5명(8선)에 불과했다. 3대 도시였던 대구가 현재 4대, 5대 도시로 떨어진 배경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여성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완독률이 좋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