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전통과 현재: 공자가 살아야 나도 산다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미국의 최대 명절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예전만 못하지만 한국의 추석 대이동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공항과 고속도로가 미어진다.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가 된다.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 장식하고 캐럴을 듣는다. 장성한 자식들이 부모의 집으로 찾아와 며칠씩 묵고 간다.

우리 한국도 명절이 되면 자식들이 고향의 부모를 찾아온다. 조상에 제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미풍양속도 여전하다. 제삿날에는 형제들이 모여 선조에 대한 예를 차린다.

제사치레에 소요되는 노동이 전적으로 여성들의 부담인 것은 부당하다. 제사 때 여자들이 음식을 마련하느라 부엌에서 연기를 마셔야 하는 동안 남자들은 안방에서 환담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화투나 마작을 하던 어릴 때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제사의 가부장적 폐습을 다룬 '나는 제사가 싫다'(2000)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제사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에게 올리므로 불합리하다는 데는 반대한다. 현재는 과거를 통하여 연결되기 때문이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연으로 형제자매, 사촌, 6촌으로 현 세대가 연결된다.

한국의 가부장제 전통을 보여주는 전형이 족보다. 순전히 부계 중심, 남자 위주이다. 여성들은 아예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다. 시부의 이름만 있다.

미국에는 족보가 없다. 한국처럼 친사촌, 외사촌, 고종사촌, 이종사촌의 구별 없이 모두 사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친가, 외가 구별이 없다. 남녀평등의 면에서 좋지만 가계도를 만들기는 어렵다. 부모 2명, 조부모 4명, 증조 8명, 고조 16명이 된다. 10대까지 올라가면 직계만 1천24명이고 형제자매를 포함하면 전 국민이 포함되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족보의 전통이 없다 보니 그것이 아쉬워 가계도를 마련하려 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한국의 족보가 남존여비의 폐단이 있지만,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표준화된 장부 입력이 가능했었고 가계도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제사가 가부장적인 것은 제사상 마련을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점도 있지만, 모시는 대상이 부모, 조부모, 증조, 고조 모두 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계에 대한 도외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외할머니는 외가에서 제사를 지내준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나는 제사가 싫다'와 같은 시기에 나왔다.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폐쇄성을 유교 전통에서 찾고 제사(조상 숭배)와 남존여비를 비판한다. 유교의 맹점을 지연, 학연, 혈연에 의존하는 인치의 정치로 본다. 법치 실종의 근원을 유교의 인문의식 온고지신 조상숭배에서 찾는다.

법치가 중요하지만 법만으로는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불법을 일삼는다면 공권력은 역부족이 된다. 법치가 제대로 작용하자면 대다수 국민의 윤리 수준이 높아 법 집행이 필요 없고 공권력은 예외적인 경우에 동원되어야 한다. 법치와 윤리 도덕은 상호보완적이다.

국가마다 윤리 도덕은 전통에서 나온다. 서양은 기독교의 죄의식, 동양은 유교의 수치심을 윤리의 기반으로 한다. 유교가 조선 사회의 후진성에 기여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우리의 전통이다. 우리의 뿌리가 유교에 있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중남미를 지배하면서 원주민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고 기독교를 이식하였다. 그 결과는 미주 인디언 사회의 높은 실업률, 알코올 중독, 범죄율, 그리고 인구 감소로 나타났다. 전통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혁신도 딛고 설 바탕, 즉 전통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이 조상들이 세운 피라미드와 신전 덕분에 관광 수입을 올리듯이 우리도 공자 덕을 보고 있다. 한국의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 발전은 배움을 강조하는 유교 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 혈연, 지연, 학연의 폐쇄성은 극복해야 하지만 이들 인연을 매개로 자율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사회의 안정적 기반이 마련된다. 공자가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제사도 없앨 것이 아니라 제사 준비에 남자들이 노동을 분담하고 미풍양속으로 보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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