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이상한 나라의 구속영장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법부를 존중한다는 생각에서 그동안 채널A 이동재 전 기자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 왔다. 하지만 검찰에서 증거로 확보한 두 개의 녹취록이 공개되고, 수사심의위에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중단하라는 권고가 내려진 이상, 이제 발부된 구속영장의 정당성을 따져볼 때가 됐다.

영장을 내주며 김동현 영장판사는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가 있는 점,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해 수사를 방해한 점" 등을 사유로 들면서 "실체적 진실 발견, 나아가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사유들이 내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고작 '미수' 사건에 영장씩이나 발부된 것은 아마도 이 일이 '검찰 고위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 때문이리라. 하지만 '혐의가 소명'된 것도 아니고, 그저 '의심'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게 과연 자유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검찰이 신청한 영장에는 일단 이 일이 피의자의 단독 범행으로 적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사안에까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동재 전 기자의 변호인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는 검찰이 청구한 범위 내에서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는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된다.

또 검찰 고위직과의 연결을 의심할 '상당한 자료'가 있다고 했으나, 정작 수사심의위에서 '상당'하다는 그 자료들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대체 그는 무슨 '자료'를 본 걸까? 녹취록엔 공모 혐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동훈 검사장의 명시적 언급이 등장한다. 이 견고한 사실을 뒤집을 만한 '자료'란 대체 뭘까?

취재원 보호를 위해 핸드폰을 초기화한 것을 증거인멸로 본 것은 그렇다고 치자. 도대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인식론적 필요가 인신을 구속할 사유가 되는가?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다.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이 판단의 바탕에는 검찰과 언론이 유착되어 있다는 선입관이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선결 문제 전제의 오류'에 해당한다. 그런 판단이 가능하려면 먼저 두 사람의 '공모'가 사실로 입증돼야 한다. 아울러 그와 유사한 사례가 다수 확인돼야 비로소 '검언 유착'이라는 일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검언 유착'이라는 것이 작년 조국 사태 이후에 여당 측에서 검찰의 예봉을 꺾으려 만들어 낸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것을 안다. 검찰과 언론은 그 사태의 전이나 후나 늘 똑같이 행동해 왔다. 하지만 검찰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그 행태를 '검언 유착'이라 비난하지 않았다.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이라는 말은 한 기자와 한 검사의 개별적 일탈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상황에 대한 어떤 '일반적' 판단, 즉 검찰 집단과 언론 집단이 모종의 유착 관계에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그 판단은 보편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명백히 정치성을 띤다. 그래서 이 사태는 심히 우려스럽다.

이 우려는 좀 더 넓은 지평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권은 자신들이 세운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공격하며, 이제 사법부마저 개혁하겠다고 공언한다. 검찰과 감사원에 이어 사법부마저 저들 식으로 '개혁'당하면 이 나라에 권력을 견제할 기관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한다.

사법부는 정의의 최후의 보루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 사태를 거치면서 이 사회의 '윤리'는 진영의 희생물이 되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 운운하며 그들은 윤리의 문제를 모두 법원에 떠넘겨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사법부뿐인데, 법마저 진영에 가담한다면 이 나라에서 '정의'라는 말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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