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박성미 작곡가

박성미 작곡가 박성미 작곡가

어느덧 한해의 반이 흘러간다. 힘차게 다짐하고 새해를 시작했지만, 아직 눈앞에 놓인 무수한 일들을 생각하니 문득 걱정이 일기도 한다. 나는 이때마다 어릴 적 꿨던 꿈이나 현재 내가 닮고 싶은 롤모델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 환상에 젖다 보면 다시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가 샘솟기 때문이다. 나의 꿈은 항상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곡가 박 파안 영희이다. 작곡가 박영희는 예명 '파안'과 본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결합한 영희 박-파안(Younghi Pagh-Pa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디 활짝 웃는다는 의미의 파안(破顔)이었지만 철학자 도올 김용옥으로부터 '책상 옆의 비파'라는, 음은 같으나 의미는 다른 한자 조합을 선물로 지어 받은 뒤로는 그 한자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녀의 앞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동양인 여성 최초 독일어권 국가 음대 작곡과 교수이자, 1975년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 최초로 오케스트라 곡을 위촉받은 여성 작곡가 등의 면면이 그것이다. 충북 청주 출신인 그가 1974년, 29세 때 "모든 게 변화하는 힘든 시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각오로" 감행한 독일 유학을 시작으로 그는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작곡가로 정평을 얻고 있는 작곡가 박영희. 그가 이루어낸 업적과 창작한 곡들은 사실 '여성 최초'라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대단하다.

나는 박 파안 영희 선생님을 몇 해 전 실제로 만날 기회를 얻었다. 내 스승의 스승인 그를 사석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선생님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진중함과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고 계셨다. 지금은 내가 독일을 가거나 선생님이 한국을 오실 때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가 사용하는 메신저 아이디 '작곡하는 사람'에 대해 물으셨다.

"왜 작곡하는 사람이야?" 나는 작곡을 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이유였기에 그냥 멀뚱멀뚱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작곡가라고 바꿔, 작곡가잖아." 짧은 말이었지만, 나의 꿈이자 롤모델인 그가 나를 작곡가로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가슴이 요동쳤다.
아득한 선생과 까마득한 제자 사이일거라 생각했던 우리 사이는 경계가 없었다. 그 덕에 선생님의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인생에 대한 생각,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가 살아온 수십 년의 나날들이 그의 음악으로 탄생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 깊이 안다. 아직 30대인 나는 열정 가득한 선생님을 보며 늘 마음을 다잡곤 한다.

지난 7월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선생님과 일상을 보내며 함께한 시간이 2020년 지쳐가는 지금, 날 버티게 해줄 에너지임을 다시 확인했다. 꿈을 잊고 사는 여러분에게 잠시라도 꿈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 가득 담아 글을 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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