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기획] 대구시 신청사 건립, 인천·광주·대전은 어땠나?

대구 지도. 매일신문DB 대구 지도. 매일신문DB

대구시청 신청사 유치전이 뜨겁다. 단순히 시청 건물을 새로 올리는 차원이 아니라는 판단이 그 열기의 바탕으로 보인다.

과거를 살펴보면, 그 지역에서 가장 큰(대표하는) 행정기관이 이전하면 그 지역 1번지 골목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나와 있는 후보지 4곳 가운데 북구의 시청별관, 달서구의 두류정수장 부지, 달성군의 화원읍 설화리 부지에 신청사가 지어지면, 그 일대에 새 도심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후보지 1곳인 중구의 현 시청 자리에 신청사가 지어지면, 동성로로 대표되는 지금의 도심이 좀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 첫 시내 '향촌동·북성로'

삼성을 세운 이병철을 배출했다지만, 그럼에도 큰 기업이 한 번도 자리한 적 없는 대구는, 그래서 큰 행정기관의 이전이 곧 1번지 골목을 형성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대구 북성로(왼쪽)와 서울 명동. 매일신문 DB 일제강점기 대구 북성로(왼쪽)와 서울 명동. 매일신문 DB

대구의 1번지 골목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북성로·향촌동이었다. 대구에서 가장 큰 행정기관인 경북도청이 이곳에 존재했다.(당시 대구의 지명은 '경상북도 대구부') 여기에 금융(조선은행 및 조선식산은행의 대구지점), 상권(미나카이백화점), 교통거점(대구역)이 딸려 지근거리에 자리하면서 번화가를 형성했다.

실은 서울도 그랬다. 광화문에 당시 국내 최고 행정기관인 조선총독부가 있었고, 인근 명동'종로를 중심으로 주변에 금융(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상권(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교통거점(경성역(현 서울역))이 모여 서울은 물론 국내 최대 번화가를 이뤘다.

◆대구시내의 동진 '동성로'

그랬던 대구는 1980년대 전후로 1번지 골목이 향촌동 바로 동남쪽 동성로로 이전하게 된다. 경북도청이 1966년 대구 북구 산격동(현 대구시청 별관 자리)으로 이전한 후 10여년쯤 걸려 향촌동은 구도심이 됐고, 동성로는 대구의 '시내'로 떠오른 것이다.

이를 두고 동성로 바로 동북쪽 동인동에 위치한 대구시청이 '끌어당겨서'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왼쪽 빨간원은 경북도청이 있었던 구도심 향촌동, 오른쪽 빨간원은 대구시청. 대구시청 바로 아래에 현재 대구 1번지 골목 동성로가 있다. 네이버 지도 왼쪽 빨간원은 경북도청이 있었던 구도심 향촌동, 오른쪽 빨간원은 대구시청. 대구시청 바로 아래에 현재 대구 1번지 골목 동성로가 있다. 네이버 지도

역학 관계는 이랬다. 대구시청은 1956년 현 대구시의회 청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10년 동안 대구 한복판에 대구시 청사와 경상북도 청사가 공존했는데, 존재감에서 신참 대구시청이 일제강점기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경북도청에 '밀렸던' 셈이다.

그러다 경북도청이 떠나면서 대구시청이 주도권을 잡았고, 시내 역시 점차 향촌동에서 동성로로 이동했다는 해석이다.

이어 1980년대는 동성로가 본격적으로 대구 1번지 골목으로 등극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대구시의 몸집이 눈에 띄게 커진 시기와 궤를 같이 했다. 1980년 수성구 신설, 1981년 직할시 승격 및 월배·성서·칠곡·공산·안심·고산 지역 편입, 1988년 달서구 신설, 1995년 광역시 승격 및 달성군 편입. 이렇게 점점 몸집이 커지는 대구시의 행정을 소화하고자 1993년 현재의 대구시 청사가 건립된 것이다.

즉, '대구시청-동성로'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지역 대표 행정기관이 큰 상권을 가까이 형성하는 법칙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적용하면 된다.(그런데 경북도청이 옮긴 산격동은 그렇지 못했다. 경북이 아닌 대구에 경북도청이 있었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풀이다. 그래서 주변엔 밥집, 술집만 많았을 뿐.)

대구 1번지 골목 '동성로'. 황희진 기자 대구 1번지 골목 '동성로'. 황희진 기자

그렇다면 금융과 교통거점은 어디로 간 걸까.

우선 과거에 은행이 행정기관 바로 옆에 자리했던 건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같은 행정기관 산하 특수은행의 경우이다. 상업은행이라면, 가령 행정을 맡은 시청과 입법을 맡은 시의회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자리해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 것과 달리, 은행 건물이 행정기관 가까이 위치하는 것보다는 지정 금고 입찰을 따내는 것 따위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리고 출장소나 지점을 행정기관에 입점시키면 되는 일이다.

기차역도 대구는 대구시청 가까이 대구역의 기능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동쪽 멀리 동대구역(1969년 신설)이 지역 대표 기차역이 됐는데, 이는 과거와 달리 교통거점이 도심에 있으면 되려 과밀을 만들기 때문이고, 대구의 경우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포함해 동대구를 대구 관문으로 키우려 한 도시계획의 영향으로 봐야한다.

다른 지역도 비슷한 모습인데, 그러나 상권만큼은 과거나 현재나 큰 행정기관에 따라 붙는 경우가 많다.

◆시청 따라 상권 온다

그래서 여러 대도시가 대표 행정기관, 즉 시청을 이전시켜 신도심 및 상권을 생성,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인천시청, 광주시청, 대전시청 이전이 대표 사례이다.

(왼쪽부터) 광주시청 청사, 대전시청 청사. 광주시, 대전시 (왼쪽부터) 광주시청 청사, 대전시청 청사. 광주시, 대전시

인천시청은 1985년 인천항 인근 중구 인현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인현동은 구도심이 됐고, 구월동이 인천 1번지 골목이 됐다.

광주시청은 일제강점기 동구 광산동에 있다가 1969년 같은 동구 내 계림동으로 이전한 뒤, 2004년 신도시인 상무지구로 이전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다른 공공기관, 기업들도 상무지구로 따라왔다. 그러면서 계림동 바로 아래 금남로와 충장로는 구도심이 됐다. 이곳엔 2015년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 점점 비어가던 구도심을 채웠다. 일종의 보상 사례로 해석할만하다.

대전시청 이전은 광주시청과 비슷한 사례다. 중구 대흥동에 있던 게 둔산신도시를 개발하면서 1999년 둔산동으로 이전했다.

아울러 인천시청·대전시청 이전 사례의 닮은 점도 있다. 옛 인천시청 자리에 인천 중구청이, 옛 대전시청 자리에 대전 중구청이 들어서 있는 게 똑같다.

◆구도심 쇠퇴 문제도 분명

그런데 시청 이전이 긍정적 효과만 만든 건 아니다. 상권이 이동하면서 인구도 함께 빠져나가서다.

인천 구도심 상권은 시청이 있는 구월동은 물론 송도·청라 등 신도시로도 계속 옮겨가고 있다. 대전도 시청이 있었던 대흥동을 중심으로 그 서쪽 은행동 및 동쪽 대전역이 함께 모으던 유동인구가 점점 시청이 있는 둔산동, 또 다른 신도시인 도안신도시(둔산동 서쪽)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구도심 공동화가 발생, 교육(학습권 보장)과 복지(의료서비스 질)를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한 학교와 병원이 자꾸 신도심으로 가려고 해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광주 구도심의 높은 공실률 문제는 광주 언론이 꾸준히 다루는 기사 소재이다.

이에 최근 '도시재생'이 구도심 살리기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게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며, 만능도 아니라서 이런저런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신청사 건립, 완벽한 답은 없다?

결국 대구는 다행히 먼저 진행됐기 때문에 선례로 삼을 수 있는 인천·광주·대전시청 이전 사례를 따지고 또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천은 80년대 성장시대에 개발 흐름을 탄 것은 물론 도심 과밀에도 대비해 시청을 이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시청 이전에 이어 신도시도 잇따라 건설한 선택은 서울의 베드타운이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대도시 중 서울, 부산 다음으로 꼽히는 등 자신감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도시 안 여러 곳에 번화가를 만들어 도시 발전을 꾀하는 모습이다.

광주와 대전은 IMF 시기를 기점으로 성장시대가 종료된 후 도시 활성화를 위해 시청을 이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신도시 개발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대구와 단순 비교는 할 수 없다. 광주의 경우 시청 외에도 여러 공공기관과 기업 등이 함께 이전했고, 시청이 있었던 구도심엔 분명 보상이 주어진 점이 참고할만한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앞서 언급한 사례들 가운데 가장 늦은(2004년) 광주시청 이전에서도 15년이 더 지난 지금은, 인구 감소 등 저성장 흐름이 더욱 짙어져 도시에겐 오히려 도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축소가 요구된다고도 할 수 있고, 그러니 차라리 기존 도심을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있는 도심 잘 고쳐 쓰자는 얘기다.

그럼에도 여러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심은 마치 생물처럼 계속 이동한 게 사실이다. 도심에도 수명이 있어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게 섭리일 수 있다. 서울 같은 수도(인프라 집중)나 울산 같은 공업도시(공장, 공단 입지가 더 중요)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시청 같은 행정기관 이전이 도심의 변화를 주도 및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어떤 답을 선택하더라도, 장점은 최대로 단점은 최소로 하는 행정력, 주민 합의, 유관기관 협조 등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세상에 완벽한 답은 없어서다.

그래서 답을 고르긴 했는데 그걸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지금도 난항을 겪고 있는 인천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후보지 선정 이후가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천시청 청사. 매일신문DB 인천시청 청사. 매일신문DB

인천시는 시청을 이전한 후 30여년만에 시설 노후를 이유로 현 청사 바로 인근에 신청사를, 재개발 단지인 루원시티(서구 소재, 청라국제도시 바로 동쪽, 인천시청에서는 북서쪽)에 제2청사를 건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대한 재정 투입 부담에 신청사는 백지화했고, 제2청사만 추진키로 했다. 그랬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제2청사에서 규모를 줄인(부지는 그대로) 복합청사 건립을 현재 추진 중이다. 이렇게 새로 지으려는 청사의 규모가 점점 줄면서 일부 주민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는 등 현지에선 좀 시끄럽다.

예상 밖으로 더 들 수 있는 비용, 뜻밖의 장애를 만나 느려질 수 있는 추진 속도, 시장의 임기가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시사점을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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