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석' 밟은 이재명 "인권변호사 길 선택하게 한 5월 광주"

18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쓰여진 비석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쓰여진 비석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쓰여진 비석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쓰여진 비석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인 18일 "그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그러했듯, 광주를 지키기는커녕 비난했던 부끄러움이 저의 인생 경로를 바꿨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군사정권에 복무할 수 없어 26살 어린 나이에 검사 임용을 포기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한 것도 5월 광주"라며 이같이 적었다.

그는 "80년 5월, 저는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노동자였다"며 "제가 들은 5.18은 '북한군과 폭도들의 폭동으로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 였다. 모든 언론이 그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기에 저도 동조해 "폭도"들을 비난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이 지사는 "언론과 권력에 속았다지만 제가 그 참혹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에 가담했음을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며 "보고 듣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결코 개인의 무능력이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님을 깨우쳤다"고 반성했다.

이어 그는 "인적 영달을 추구하던 한 청년을 공정사회 대동세상을 꿈꾸는 공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5월 광주는 그래서 이재명의 '사회적 어머니'"라며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국가폭력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지사는 오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옛 망월묘역)을 찾아 참배하기 앞서 입구에 박혀 있는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지나갔다.

전두환 기념비는 1982년 3월10일 전씨 부부가 담양의 한 지역을 방문했던 것을 기념해 세워졌으며 광주주전남민주동우회가 이를 찾아내 1989년 1월13일 옛 망월묘지에 묻었다.

다음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글 전문.

80년 5월, 저는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노동자였습니다. 제가 들은 5.18은 '북한군과 폭도들의 폭동으로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 였습니다. 모든 언론이 그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기에 저도 동조해 "폭도"들을 비난했습니다.
언론과 권력에 속았다지만 제가 그 참혹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에 가담했음을 대학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죄송하고,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그러했듯, 광주를 지키기는커녕 비난했던 부끄러움이 저의 인생 경로를 바꿨습니다.
청년이 받은 충격은 비단 5.18의 실상 그 자체만이 아니었습니다. 보고 듣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결코 개인의 무능력이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님을 깨우쳤습니다.
학살 주역 군사정권에 복무할 수 없어 26살 어린 나이에 검사 임용을 포기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한 것도 5월 광주입니다.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던 한 청년을 공정사회 대동세상을 꿈꾸는 공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5월 광주는 그래서 이재명의 '사회적 어머니'입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국가폭력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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