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각자의 상상

박세향 극단 수작 연극배우 박세향 극단 수작 연극배우

평소 어딘가를 이동하는 동안 주변을 관찰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있다. 그 속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기도 하는데, 대개는 독특한 상호명 같은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 '박미장원'이라는 미용실과 '박가네'라는 고깃집이 같은 건물에 있는 것을 보고 '두 가게가 아예 다른 업종인데 상호가 비슷하네? 저 집은 그럼 박 씨 형제가 운영하는 곳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상의 박 씨 형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거나,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토끼요리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보고 '토끼 요리를 찾는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은 걸까, 토끼 요리 판매가 불법이 된 걸까?'라면서 문 닫을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들이다. 때로는 이런 생각들이 계속 뻗어 나가서 내릴 곳을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며칠 전, 연극 무대 세트 이동을 위해 용달차를 불러 작업실로 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주변을 보고 있는데, 어떤 식당 간판에 '즉석 압력밥'이라는 문구와 함께 압력솥의 그림이 있었다. 그 간판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보통 '밥'의 이미지가 있어야 할 곳에 '압력솥'이 있으니 너무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탓이었다.

그렇게 혼자 웃고 있으니 같이 가던 용달차 기사님께서 이유를 물어보셨고,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기사님의 대답은 "이렇게 보고 기억에 남으니 광고 효과는 톡톡히 봤네요"였다. 순간 그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식당 사장님이 의도적으로 눈에 띄기 위해 간판을 저렇게 만든 거라 생각할 수도 있구나."

문득 내가 쓴 작품으로 연극공연이 만들어졌을 때가 생각났다. 평소 대본을 써나가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을 완성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어떤 말투를 가지고 있을지 상상하고, 혼자서 연기를 하면서 쓰곤 한다. 공연 제작이 확정되고, 내가 만든 인물들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너무 설레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공연 날 설렘을 가지고 공연을 관람하는데, 무대에 오른 두 인물의 성격이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반대로 표현되어 너무 신기했다. 같은 대본을 보고도 그걸 접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된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웠다. 같이 관람한 지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하는데 같을 수가 있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여태 내가 연기했던 많은 인물들도 작가의 상상과 달랐을 텐데, 입장이 달라졌다고 그걸 간과한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희곡도 나중에 공연으로 만들어진다면 인물들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상상하는 모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서 살아 움직일지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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