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야당에 허울만 남긴 법사위원장 받으라는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데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으면 법사위원장을 내년 6월부터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한 여야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한다. 송영길 대표는 28일 방송에 나와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 '갑질'을 못 하도록 개혁 입법을 전제로 넘기는 것"이라며 "8월 25일 상임위원장 선출 이전에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법사위를 넘길 수 없다"고 했다.

여야는 지난 23일 법사위원장을 내년 하반기부터 국민의 힘이 맡고 법사위의 '법안 체계·자구 심사권'도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민주당 강경파와 강성 친문(親文) 지지자들은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면 체계·자구 심사권을 확대 적용해 법안 처리 지연에 악용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송 대표의 말은 이를 의식한 '당내 정치용'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합의대로 법안 체계·자구 심사권이 축소될 경우 법 같지도 않은 법이 마구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체계·자구 심사는 법안 내용의 위헌 여부, 다른 법과의 충돌 여부, 자체 조항 간 모순 여부, 법규와 용어의 정확성, 통일성 등을 심사해 잘못을 걸러내는 과정이다. 이는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온 17대 국회 이후 여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를 막는 기능도 해왔다. 이 권한이 대폭 축소되면 법사위는 법안이 개별 상임위에서 본회의로 가는 과정의 형식적 통로로 전락할 수 있다. 법사위가 법안 체계와 자구 심사를 제대로 못 하는데 굳이 법사위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 법사위에서 '법안 발목 잡기'가 자주 벌어졌다며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17대 국회 이후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온 관행을 무시하고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고서는 체계·자구 심사권은 손대지 않았다. 그래 놓고 야당에 법사위원장을 넘기겠다고 하면서는 축소해야 한다고 한다. 힘 빠진 법사위원장을 넘기겠다는 얄팍한 속셈이다. 이에 덜컥 합의한 국민의힘도 얼빠졌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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