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일본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일본대학 경제학부 교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아이들이 배워서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이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고, 법과 규칙을 잘 지키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법과 규칙을 지켜 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일본에도 순자의 군도 편에 있는 글귀를 딴, 물의 근원이 깨끗하면 흐름도 깨끗하다(源清ければ流れ清し)는 속담이 있고, 중국에도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 편에 기록된 상행하효(上行下效)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들 또한 최고 권력자가 부패하고, 법과 규칙을 마음대로 어기면 국민들도 따라서 불법행위를 자행하기 때문에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고, 나라가 쇠퇴해 갈 것이라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서양에는 평소 선망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일반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있다. 이것은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언론에 보도되면, 그 영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윗사람들이 잘못하면 일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서 정말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일반 사람들이 윗사람을 탓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연구가 필요한데, 올해 미국경제학회가 발간하는 저명한 학술지 중의 하나에 멕시코 지방정부의 반부패 방지 프로그램과 관련된 논문이 발표됐다. 지역 정치가의 부패가 밝혀지면 중학교에서 실시되는 시험에서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증가하는 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이다. 또 이 논문에서 정치가의 부정행위가 일반 시민들의 정직성, 준법정신, 그리고 신뢰와 같은 가치관을 현저하게 저하시킨다는 결과도 보고되었다. 다른 나라의 결과이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 속담처럼 윗사람들의 잘못된 행동과 말이 실제로 어린 학생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가치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연세대학교 경제학부의 양희승 교수가 중심이 되어 2005년에서 2018년까지 한국의 자살자 데이터를 이용해서 베르테르 효과를 검증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사용한 데이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극단적 선택이 있었던 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해의 경우 10만 명당 자살자가 처음으로 30명을 넘었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2018년에는 13년간 유지한 OECD 회원국 1위 자리를 리투아니아에 물려준 지 1년 만에 1위로 복귀한 것을 보면 베르테르 효과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양 교수 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명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언론에 보도된 후 단 하루 만에 자살자 수가 16.4%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유명인의 극단적인 선택은 여성과 청년층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보고함으로써 한국에서 베르테르 효과가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위의 두 연구 결과를 통해 오랫동안 회자되어 온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처럼 권력자와 유명인의 잘못된 행동이 어린 학생들과 일반 사람들의 행동과 가치관에 강한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농지법을 어기고, 법무부 장·차관이 형사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거나 기소될 예정이고,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식들의 유명 대학 진학을 위해 서류 위조를 서슴없이 했음에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등 현 정부 고위 인사의 '법 무시'는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정부 고위직의 인사에 있어서도 신상필벌의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잘못된 정책을 실시했던 책임자들을 오히려 주요 직책에 중용하고 있다. 이처럼 법과 원칙이 훼손되면,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의 투기 사건에서 보듯이 현재의 정부 조직 내에서 부패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고, 어린 학생들과 청년층에 있어서도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꼭 필요한 정직성, 준법정신, 신뢰와 같은 덕목이 제대로 형성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네 편 내 편이 아니라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8위

6 4 9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완독률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