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슬럼프 극복하기

박소현 피아니스트 박소현 피아니스트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어김없이 슬럼프를 만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연습을 잘 해오지 않아서 혼날까봐 면피책으로 '슬럼프 카드'를 슬쩍 들이미는 학생도 간혹 있지만, '진짜' 슬럼프를 만났다면 대개의 경우 죽을 만큼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는데도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퇴보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소연한다. 게다가 더 이상 얼마나 더 열심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레슨 중에 눈물 바람을 일으키는 경우 덩달아 속상해지기 마련이다.

슬럼프란 단어가 우리의 삶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긴 하지만, 좁은 의미로 슬럼프의 사전적 정의는 연습 과정에서 어느 기간 동안 연습 효과가 올라가지 않고, 의욕을 상실하여 성적이 저하되는 시기를 말한다. 주로 스포츠 용어로 쓰이는데 음악에서도 필수적으로 반복 연습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스포츠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고, 대부분 이 지점에서 슬럼프가 야기된다. 그리고 그렇게 기술적인 부분에서 시작된 문제는 생활 전반이 침체되는 듯한 느낌으로 퍼져나간다.

학생시절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꽤 자주 슬럼프와 마주했던 것 같다. 특히 석사 시절은 헤매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어떤 곡의 연습이 잘 되지 않아 하루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날도 허다했는데, 결국 그 문제가 내 일상에 침범하여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게 됐던 적도 있다. 두 번째 학기 방학 무렵에는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야 할 상황이 닥쳐왔다. 잘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내 체력과 정신력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더욱 열심히 하는 것보다 오히려 반대로 '느긋하게 즐기기' 였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정체된 시간을 견디는 인내심이었던 것이다. 물론 말처럼 느긋하게 즐기는 것은 '이러다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해왔기에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느긋해지려 인내하고 노력했던 시간 역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는 것과 함께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학업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슬럼프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다. 그렇지만 경험에 미루어 보면 이 불청객이 한 번 방문하고 지나가면 어떤 방향으로든 한 단계 더 훌쩍 성장을 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록 그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질지언정 정체된 과정을 인내하는 힘, 그리고 성장한 모습으로 마주칠 나 자신을 기대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을 가져야 한다. '고진감래', 쓴 것이 다 하면 단 것이 오듯 고되지만 필요한 과정을 잘 견뎌 예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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