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풀팅’을 기억하십니까

1984년 제1회 대구연극제 포스터 1984년 제1회 대구연극제 포스터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1987년 5월 극단 연습실, 작품 연습을 위해 배우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지난 밤 마신 술기운 탓에 두통이 남아있지만 대본을 받아든 두 눈은 생기가 가득하다. 이번 공연은 오랜만에 2주간 장기공연으로 진행된다. 긴 공연기간만큼 관객 수가 걱정이다. 관객이 적게 들면 공연할 맛도 나지 않을 뿐더러, 제작비는커녕 단원들 출연료도 챙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연 기간 내내 홍보를 해야 하기에 포스터는 1만 장 정도로 넉넉히 준비했다.

몇 차례 대본 돌려 읽기를 끝내고 단원 몇몇이 일어나 포스터를 주섬주섬 챙겨든다. 지난 밤 시내 지도를 펼쳐두고 미리 구역을 정해뒀기에 그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몇 곳에 도착하니 아뿔싸, 영화 포스터가 먼저 자리 잡고 있다. 옆에 있던 막내 단원이 그 위에 '덧빵(덧붙이기의 은어)' 하자고 제안한다. 큰일 날 소리다. 영화 포스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다음날 시내 전 구역에 붙은 연극 포스터가 모조리 떼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영화 홍보 담당자는 연극보다 더 숫자도 많고 전문적으로 움직이기에 그 위에 '덧빵'을 하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다. 아쉽지만 빈틈을 찾아 하나 붙여놓고 옆 구역으로 이동한다.

팔뚝에 잔뜩 붙여둔 테이프가 하나씩 뜯길 때마다 털이 뽑혀 나가지만 좀 더 빨리 움직여야하기에 통증을 느낄 겨를이 없다. 테이프로 붙이면 쉽게 떨어진다고 풀통을 지고 나선 몇몇 선배들도 있다. 이른바 '풀팅(풀붙이기의 은어)'이다. 그냥 풀만으로 붙이는 것보다 풀 속에 본드를 조금 섞으면 접착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다음날 아침 뜯겨져 있는 포스터를 가슴 아프게 바라볼 바에는 뗄 때 고생할 청소부 아저씨들 생각은 접어 두는 편이 낫다.

조를 나눠 몇 시간 꼬박 다니니 2천장 정도 소진됐다. 남은 것은 며칠 뒤 다시 붙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며칠이라도 잘 붙어 있어야 할 텐데, 괜히 불법 광고물 부착이라고 벌금이나 물게 되진 않아야할 텐데…'라는 걱정을 안고 말이다.

몇몇 연극인들에게서 들은 '공연 포스터를 옆구리에 끼고 대구 시내를 누비던 그 때 그 시절'을 글로 재현해봤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하면 홍보 걱정이 제일 크다. 예술인들에게는 큰 비용이 드는 TV나 신문 광고보다는 '포스터'를 통한 홍보가 꽤 중요했다. 해당 행사를 기억시킬만한 문구와 사진, 그림을 한 장에 함축시켜 전달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대구오페라협회 오페라 토스카 포스트(1973년 대구 지역 전문 음악인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오페라) 대구오페라협회 오페라 토스카 포스트(1973년 대구 지역 전문 음악인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알리는 데 한 몸을 바친 포스터들은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 공연의 역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시대별‧용도별로 제작 기법이 달랐고 담긴 내용도 가지가지다. 옛 포스터 자료들을 들춰보면 용도에 따라, 제작 경비에 따라 포스터 크기와 재질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서도 눈에 잘 띄어야하기에 서체와 크기, 색깔 등에 꽤 많은 공을 들였다. 공연 제작자와 친분이 있는 화가가 포스터 제작을 도와준 경우도 많다.

1952년과 1953년 대구국립극장에서 열린 김상규 신무용발표회의 포스터는 아주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두 장은 현재 대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공연 포스터이다. 그림을 그린 이를 찾을 수 있다면 더 가치가 높아질 자료다. 1957년 6월 대구현악회 창단 공연 포스터는 서양화가 백태호 화백이 직접 글씨를 써서 디자인해줬다. 1960년대 초반 대구관현악단 공연 포스터의 그림과 디자인은 서양화가 이경희 화백이 대부분 맡았다.

1973년 대구의 전문 음악인들이 참여해 만든 최초의 오페라 <토스카>의 공연 포스터와 무대미술은 서양화가 이묘춘이 맡았다. 이후 대구오페라단의 공연 포스터는 서양화가 이경희와 강우문, 그리고 백낙종 화백이 그려줬다. 1982년 제1회 정기공연 작품을 무대에 올린 대구시립무용단의 포스터는 A4용지 두 장을 이어놓은 크기로 펼쳐놓은 앞면은 포스터로, 뒷면은 공연 정보가 담겨 있는 팸플릿으로 활용됐다. 포스터 그림은 서양화가 추영근의 작품이, 아래에는 무용단원 단체 사진이 실려 있다.

1980년대 이후 사진기가 널리 보급된 이후부터는 사진을 포스터에 활용한 경우도 많다.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로는 화가들의 '손맛'보다는 전문적인 포스터 서체와 디자인이 널리 활용됐다. SNS와 유튜브를 최고의 홍보수단으로 보는 요즘 청년예술가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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