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진 정신

이헌태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지난 7월 31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 국립 해양과학관이 개관했다. 사진은 해양과학관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 31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 국립 해양과학관이 개관했다. 사진은 해양과학관 모습. 연합뉴스
이헌태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이헌태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필자는 지난 7월 개관한 울진의 국립해양과학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울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울진은 금강송 천년대왕송이 우뚝 서 있는 한반도 등줄기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독도와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요즘 관광 레저 교육 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 명승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울진은 서울에서 아주 먼, 그것도 높디높은 태백산맥을 넘어야 닿는 한적한 바닷가 오지였다. 이런 지리적 조건이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울진 지역민들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 온 것 같다. 1천 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 울진 주민들의 의식과 정서에 새겨진 독특한 '울진 정신'은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 정신과 강인한 생활력의 보부상 정신으로 집약된다. 선비 정신의 핵심인 의리는 유학에서 말하는 옳은 것, 마땅한 것으로서 선비들의 판단 기준이었다.

그리고 울진에는 옳음을 위해 자신을 바친 역사 인물들이 즐비하다. 여말선초 고려 공양왕 복위를 꾀했던 대사간 출신 최복하, 영월에 유폐된 단종 복위에 나섰다가 처형된 최시창 최면 부자는 울진 선비들의 의리를 대표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굴욕을 당하자 청 태종을 암살하려고 청나라 수도 심양까지 갔다가 실패하고 목숨을 잃은 장대룡도 있다.

울진은 또 구한말 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하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지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영덕 출신 영릉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활동 주무대가 울진이라 울진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고, 러일전쟁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의병 중장군 최경호, 을사조약 이후 강원도 의병총참모장 이강년 휘하 강원도 남부 의병대장으로 활동 중 전사한 김현규, 관동창의군 중장군 전세호 등 수많은 의병장들이 울진 출신이거나 울진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1931년 일본군 군사시설을 폭파한 간도사건 주모자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한 권태상 외에 주병웅 황만영 주진수 진규환 곽종목 전영직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도 울진 출신이다.

한편 울진은 과거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서울에서 가장 먼 오지였기에 귀양 유배지로 유명했다. 한양에서 더 멀어질수록 더 무거운 형벌로 취급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울진으로 유배된 사람들은 당대의 거물이었다. 유자광, 이산해 등 수많은 고관대작과 선비들이 귀양을 왔고, 임유후는 화를 피해 자진 은거하기도 했다. 울진 출신 가운데서도 출세와 벼슬을 멀리한 수많은 선비들이 나왔고, 특히 동양의 노스트라다무스로 알려진 격암 남사고는 울진의 독특한 환경이 낳은 거인이다. 강인한 생활력의 보부상 정신은 울진의 자연환경에 기인한다. 지난 2010년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보부상길이 발굴되어 십이령 금강소나무숲길로 다시 열렸다. 옛날 울진의 보부상들은 소금과 미역, 염장품과 건어물을 바지게에 지고 태백준령 열두 고개를 넘나들었다.

장편소설 '객주'를 9권까지 썼던 소설가 김주영은 십이령길을 넘던 울진 보부상길이 발굴되자 9권을 탈고한 지 30년 만에 마지막 10권을 완성했다. 그는 "보부상 대장 격인 행수의 공덕을 기리는 철비, 주막거리, 서낭당 등 보부상의 다양한 현장이 남아 있는 길은 전국에서 울진이 유일한데, 이런 길도 모르고 객주 9편을 썼다니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울진 보부상들의 억척같은 생활력은 지금도 울진 사람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울진을 대표하는 두 가지 정신, 곧 의리와 생활력은 울진이 새롭게 도약하는 데 있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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