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세상 읽기] 대구, ‘TK’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쾌청한 날씨 속에 대구 83타워 너머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매일신문 DB 쾌청한 날씨 속에 대구 83타워 너머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매일신문 DB
이상철 칼럼니스트 이상철 칼럼니스트

북쪽의 팔공산과 남쪽의 비슬산이 우뚝 서 있는 곳, 낙동강과 금호강이 굽이굽이 흘러 만나는 곳, 그것들이 만들어 낸 넓고 평탄한 분지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살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곳을 '대구'라 부른다.

처음에는 부족국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요가 말한 것처럼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늘날 대도시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였다. 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은 대구는 늘 위기와 그것을 극복과정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먼저, 경상감영의 설치를 들 수 있다.

조선은 건국 후 4군 6진의 개척 등 정치적 시선을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군의 전라도 진격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대구를 주목한 결과, 이곳저곳을 떠돌던 경상감영은 경상좌도와 경상우도가 합쳐지며 대구에 설치되었다. 그 뒤로 대구는 3백여 년간 영남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두 번째로, 6.25전쟁 때 대구는 임시수도였다.

6.25전쟁 때, 국군의 최후 방어선이었던 대구가 점령당할 경우, 수십만 명의 피란민들 목숨은 물론, 국토의 공산화는 자명했다. 다부동 전투에서 버텨냈고, 그 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대구는 인민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때 피란 온 외지인들과 다양한 물자 등은 대구가 대도시로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격동의 역사를 가졌다는 점이다.

대구 인근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신라와 가야의 문화유적들은 대구지역이 신라와 가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현장으로 추정케 하며, 후삼국 시대 때 공산전투 등지에서 보듯 대구는 왕건과 견훤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 장소였다. 또한, 구한말 때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여 주권수호운동을 전개하였고, 대한민국 수립 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2.28 항거로 4.19혁명을 촉발시킨 진원지였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대구를 '경상도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거리가 매우 고르니 또한 땅의 형세가 훌륭한 도회지'라고 저술한 바 있다.

그래서 일까? 대구는 늘 내륙의 중심지였다. 낙동강 수계와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여서 조운(漕運)을 통한 물자 수송이 편리했고, 영남대로의 거점이 되어 늘 사람들로 붐비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 대구 약령시와 서문시장의 성장은 당연했다. 또한 사통팔달의 DNA를 가진 대구에 삼성 등 많은 기업들이 창업한 것도 필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거 미인, 사과, 섬유로 유명했던 대구를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시선은 근래에 많이 바뀐 듯하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바라본 유학산. 매일신문 DB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바라본 유학산. 매일신문 DB
"대구사람, 권력자에 절대 항변 안해"…누리꾼 갑론을박 기사. 매일신문 2020.04.10.

특히 대구를 가부장제와 집단주의에 순응하는 도시민들의 성향과 외부인들에 대한 텃세가 심한 보수적인 도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얼마 전, 신문기사("대구사람, 권력자에 절대 항변 안해"…누리꾼 갑론을박. 매일신문 2020.04.10.)에 나온 대구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말한 기사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대구 사람들은 좋게 말해 예의바르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당사자 앞에서는 상당수가 절대 나쁜 말을 않는다.(중략) 나쁘게 말하면 권력자 내지 힘 있는 주체나 세력에게 굉장히 순응하는, 절대 튀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중략) 대구 사람들이 겸손한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상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략) 한국전쟁 피해를 그다지 입지 않고 서원 같은 정통이 계속 이어지며 사고방식이 과거와 단절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오랜 기간 가만있어도 혜택을 받고 살아 권력자에게 더 순응하며 자부심으로 변형된, 대구만의 폐쇄적이고 답답한 정서가 정착되지 않았을까"

물론 대구사람들은 이렇게 평가받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하는 면도 있다. 보수정권에게는 이용당하고 진보정권에게는 홀대당하는 '호구'도시가 되었다며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이러한 지역정서를 교묘히 이용하여 출세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일부 여야정치인들의 모습도 보기 좋지만은 않다.

그러나 대구의 특산품은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구는 현대 정치사의 중심이었다. 늘 그렇듯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기 마련이다. '대구·경북' 지역을 지칭하는 'TK'는 경제 개발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빛'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호남차별'과 '독재'라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대구는 이제 'TK'를 넘어서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TK'라는 말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노골적인 지역주의 선동에 속은 'TK'유권자들의 배신감과 상실감을 이용해 만든 용어이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협력은 좋지만 너무 'TK'브랜드에만 집착할 경우, 과거 영남 전체를 아우르고 호남, 충청 등 삼남의 유통·물류의 중심지였던 대구의 역사적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글로벌 도시로의 성장을 꿈꾸는 대구의 도시 브랜드를 희석시킬 우려도 있다.

대구는 늘 그랬든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 왔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시민들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며 버텼기에, 수도권을 비롯한 타 지역들이 코로나19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한반도의 지도를 보면, 남으로는 창원에서 시작하는 구마고속도로가, 북으로는 춘천에서 시작하는 중앙고속도로가, 동해와 서해를 잇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절묘하게 대구를 지나간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대구라는 도시는 폐쇄적인 보수도시의 이미지보다는 개방적인 사고, 다원적인 가치관, 텃새 없이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도시의 이미지를 가져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TK'라는 울타리를 버리자. 'TK'의 '대구'가 아닌 세계 속에 'DAEGU'가 되어보자.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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