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린다”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국립대학 총장직선제가 부활되었다. 근 8년만이다. 직선제가 최선의 제도는 물론 아니지만, 필자가 재직 중인 K대학에서는 대다수 대학구성원들이 바라던 대로 교수·직원·학생에 의한 직접선거로 다음 주에 치러진다. "우리 총장을 우리 손으로!" 얼마나 와 닿는 구호인가. '우리 손으로'라는 부분은 괜히 마음을 설레게까지 한다. 머리보다 가슴에 호소하는 듯한 이 구호가 한낱 감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누구보다도 교수 유권자들(K대학의 경우 반영비율 80%)이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참 유권자 없는 참 총장은 존재할 수가 없다.

어느 집단이든 리더의 수준은 그 집단의 수준에 비례한다. 리더가 집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리더를 만들기 때문이다. 국가도 그렇고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총장의 인물 됨됨이에는 교수들의 수준과 안목이 숨어있다. 그 점에서 직선제는 양날의 칼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무딘 날이냐 예리한 날이냐는 순전히 유권자들의 몫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어버리기도 한다지만, 대학은 배를 띄우는 곳이지 엎는 곳이 아니다. 일반 정치권과 달리 대학이 애초부터 엎어지지 않을 튼튼하고 좋은 배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흔히 대학을 '지성의 전당', 교수들을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모르겠으나 국립대학이 더욱 그런 경칭으로 불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지식'과 '지성'이 같은 뜻이 아니듯, '지식인'과 '지성인'도 동의어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치중립적인 지식인과 달리 지성인은 당위(Sollen)와 욕구(Wollen)가 일치된 가치지향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체의 사심을 배제한 칸트(Kant)적 정언명령에 충실한 지성인들이 대학에 굳건하게 포진해 있는 한, 사회와 국가도 건강하게 유지된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후보들 중에 뽑을 만한 인물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잘 보면 참 총장감이 없지 않다. 진정한 대학 지성이라면 수고를 무릅쓰고 그런 인물을 찾아내어야 한다. 문제는 '그레샴의 법칙'이랄까 대학에서도 그런 인물이 반드시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택되지는 않는 데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수년전 겪은 좋지 못한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도 가끔 필자의 정신을 사납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선거라서 그런지 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K대 캠퍼스는 미동도 없다. '정중동'이라 했으니 물밑 움직임이 없을 턱이 없겠으나, 다행스럽게도 여태껏 듣기 민망한 잡소문은 들려오지 않는다. 문득 고교시절 입문한 흥사단('고등학생 아카데미')에서 처음 접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우국충정에 찬 말씀이 죽비처럼 등짝을 후려친다.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리듯, 독립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 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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