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되살아나는 독재의 망령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35조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35조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흉보면서 배우고 욕하면서 닮아 간다더니 요즘 우리나라가 딱 그렇다.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들이 득세해 이제 국민의 삶 주변에 '독재'라는 말이 얼씬도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독재라는 말이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문주주의'란 신조어까지 등장해 회자된다.

민주주의는 독재의 대척점에 있다. 단연 국민 모두가 주인이다. 대통령도 틈만 나면 '국민의 뜻'을 들먹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모두는 아닌 모양이다. 문주주의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국민이 아닌 '문(문재인 대통령)이 주인'이란 것이다. 따져 보면 틀릴 것도 없다.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으니 원하던 대로다. 반대파 입장에서는 "'이니' 뜻대로만 하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신조어는 현상을 투영한다. 대통령을 풍자한 대자보를 붙이면 유죄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 잡혀갈 터다. 정책 잘못을 지적했다간 '인민재판'에 가까운 마녀사냥을 감수해야 한다. 40년 전 군부독재 시절 벌어진 사건에 저들과 다른 표현을 썼다가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징역을 살 수도 있다. 사법부 판사가 재판에 나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탄핵을 들먹이는 세상이다.

그뿐 아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현 정권의 저격수로 등장한 진중권 전 교수는 '웅동학원 탈탈 털어먹었죠?'라며 지난 3월 게시글을 올렸다가 뒤늦게 고발당했다. 그는 문 정권의 민주주의 개념을 '나치 독재'에 빗댔다. 자신을 '싸가지 없다'고 비난한 여당 의원에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문주주의' 국가에서는 가능하다"고 맞받았다. 그를 고발한 단체는 '적폐청산 국민참여연대'란 이름을 달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독재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지금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여당은 단독으로 국회 문을 열자마자 17개 상임·특별위원장직을 싹쓸이하고 또 나흘 만에 35조원짜리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했다. 추경 처리에 '비상 대책'을 요구한 대통령의 한마디에 입법부가 수족처럼 움직였다. 제1야당 참여 없는 국회 단독 개원은 1967년 7대 국회 이후 53년 만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의석수에 따라 나눠 갖던 여야 협치의 전통은 28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관례대로 하자는 야당의 요구는 '발목잡기'이고, 여당의 단독 개원은 '일하는 국회'로 포장했다. 독재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대통령 인사권을 통해 사법권력을 장악했고, 협치를 버린 대가로 입법권력도 장악했다. 이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내 편' 아닌 판검사들의 목줄을 거머쥘 공수처 설치만 남았다. 이는 문주주의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6월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나라의 특징으로 '집권 세력이 쉴 새 없이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공격하는 것'을 짚었다. 그다음 단계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독립적인 기관들(특히 사법부와 언론들)의 발을 묶거나 거세하는 것'이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사례 연구를 통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닌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둘을 오버랩하면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