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스웨덴식 사랑법(Swedish Theory of Love)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스웨덴 체제 핵심 개인 독립·자율성

어떤 형태로든 의존하는 것 싫어해

온정주의 벗고 사회 보편 관계 조성

한국도 보수·진보 통합 가치 모색을

스웨덴의 민물가재 파티(crayfish party)는 북반구의 여름 절정에서 만나는 축제다. 스톡홀름대학의 한 파티에 초청받아 그들의 놀이 문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민물가재 그득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왁자하게 먹고 마시던 중 누군가 술잔을 스푼으로 부딪쳐 주목을 끌더니 짧은 인사에 노래 한 소절을 선창한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다음을 받아 멋진 합창이 되었는데 노래가 끝나 건배를 하고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잠시 후 다시 누군가 선창을 하고 합창을 일궈내고 서너 시간의 파티는 그렇게 이어졌다.

하지축제, 성탄시장, 가족모임에서도 스웨덴 놀이의 공통점은 합창과 군무이다. 부모와 아이, 모르는 사람끼리도 함께 어울려 100년, 200년도 더 된 전통 민요와 동요를 부르며 기막히게 율동을 맞춰낸다. 이쯤 되면 개들도 주인을 따라 들고 뛰며 대동사회 분위기에 동참한다.

우리의 놀이 문화를 새삼 짚어본다. 명절 가족모임에서 아이들이 '곰 세 마리'를 부르면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공연하고 어른은 관객으로 남는다. 아이로서는 평생 치르게 될 개인 플레이를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랄까.

노래방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놀이 문화를 보자.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로 어깨동무하는 순간은 마지막 곡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개별 독창의 연속이다. 탬버린과 춤으로 흥을 맞추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연 내지 관객이며 주인공은 분명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다. 재미를 위해서지만 화면의 점수를 확인해가며 내기를 하는 건 역시 성과주의 경쟁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이다.

북유럽은 어느 나라보다 사회 중심의 공공가치에 강하다. 연대성과 협력은 이들에게 절대 덕목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회공공가치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에서 출발하고 개인주의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역설이다.

역사학자 트래고드(Trägårdh)가 명명한 '스웨덴식 사랑법'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의존하거나 불평등한 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 간에서만 가능함을 의미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의존하는 것을 싫어한다. 한 세기를 거쳐 스웨덴이 추구해온 정책과 제도의 핵심은 개별 주체가 모든 형태의 종속과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자선으로부터, 노동자는 고용주로부터, 아내는 남편에게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노년의 부모는 장성한 자녀에게서 독립하는 것." 법과 정책의 기본 목표는 개별 주체가 주변의 사적 의존에서 벗어나 사회 일반의 보편적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까운 이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심리적 의존과 부담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 가족 친지에게 대하듯 타인에 대해서도 배려, 칭찬, 평가, 비판 등을 공정히 동등하게 할 수 있는 사회. 특별히 챙기고 봐줘야 할 이유도, 잘 보이고 비굴해야 할 이유도 없는 관계. 내 가족, 내 친구, 내 사람이라는 온정주의와 배타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사회중심가치에서 개인주의가치로, 확장과 수렴이 유연한 체제-일단의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정반대일 것 같은 개인주의와 사회공공가치가 북유럽에서는 실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온 점을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다.

이를 보면, 한국 보수세력의 자유주의론과 진보세력의 민주주의론이 스웨덴식 통합의 길을 함께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합리적 개인가치와 공동체 사회가치를 결합한 한국식 사랑법이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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