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반갑다 새책] 신기한 마음여행

세계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청소년문제 전문가 박옥수 목사가 출간한 청소년 인성 지침서다. 박 목사가 직접 만화 속 해설자로 등장해 재미있는 스토리와 실질적인 예시를 통해 마음의 세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2009년 중국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산하기관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한 박 목사는 청소년 마인드 강연을 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인드북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가 출간됐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자기계발서 부문 7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판 등 12개 언어로 번역되어 18개국에서 판매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도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은 기존의 인성교육 책과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우선 청소년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화로 꾸며졌다. 재밌는 캐릭터와 감동적인 스토리로 구성돼 단숨에 읽혀진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마음에 대해 궁금하거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성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전작의 성공에 이어 이 책도 출간 직후 인터넷 교보문고 만화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마음, 욕구, 자제력을 주제로 크게 3분류로 나뉜다. 233쪽, 1만2천400원.

2018-03-03 00:05:04

[반갑다 새책] 조선 특파원 잭 런던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우정 지속의 법칙' 등으로 청소년 소설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가 설흔의 작품이다. 러일전쟁을 취재하는 종군기자로 조선을 찾은 잭 런던과 그의 조수이자 통역사가 된 조선 소년(만영)이 한 팀이 되어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잭 런던이 러일전쟁 취재를 하고 남긴 취재기인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속 실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세계적 작가와 조선 소년의 짧은 만남을 다룬 이 책은 소설이면서도, 당시 어두운 전쟁의 그림자와 현실을 잘 보여 준다. 특히 잭의 시선에 비친 조선과 전쟁은 당시 조선 사람들, 나아가서는 조선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잭은 친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후 알래스카 금광노동자, 통조림 공장, 심지어는 해적에 몸을 담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또 부랑자가 되어 전국을 떠돈다. 당시 미국 사회의 암울한 모습 속에서도 작가의 꿈을 놓지 않았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영보이' 만영도 전쟁보다 더한 현실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잭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 꿈은 만영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조선의 꿈이기도 했다. 167쪽, 9천800원.

2018-03-03 00:05:04

나카지마 아쓰시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호랑이 사냥'

우리 마음속 호랑이에 대하여- 나카지마 아쓰시의 '호랑이 사냥'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라는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중 드물게 소년기 6년을 조선에서 보낸 인물로 서른셋 나이로 요절한다. 조선 체류 기억이 강렬했던 것일까. 몇 편 안 되는 그의 유작 중 조선을 소재로 한 소설이 네 편이나 된다. '호랑이 사냥'(1934)은 그 네 편 중 한 편이다. 자동차가 다니고 기차가 달리던 1920년대, 그것도 경성에서 호랑이 사냥이라니 이 무슨 야만적 풍경이냐는 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카지마 아쓰시가 겪은 조선은 그랬다. 소설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6년을 체류한 경험이 있는 일본인 '나'가 조대환이라는 조선인 친구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호랑이 사냥 역시 그런 기억 중 하나이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기회에 조대환과 그 아버지의 호랑이 사냥에 동행하게 된다. 그 호랑이 사냥에서 나는 조대환과 그 아버지 같은 조선 지배계급의 냉혹하면서도 야만적인 이기심을 목격한다. 그들이야말로 마음속에 호랑이의 강인함이 아닌 야수적 냉혹함과 야만적 이기심을 키우고 있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주인공 나의 단편적 기억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다가 보면 조대환의 마음속 호랑이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드러난다. 그 퍼즐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이 조대환의 아버지이다. 소설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조대환의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고위 관리, 즉 황제의 신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되자 그는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일본인 학교에 넣어 일본인 교육을 받게 한다. 식민지 조선인에서 벗어나 일본제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철저한 신분세탁을 한 것이다. 이처럼 조대환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의 최우선적 가치이다. 소설에서 조대환이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보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본인이 되어야 하는데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은 '강함'보다 '비열함'과 '이기심' 같은 잔혹한 야망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 겸손한 태도로 타인과 소통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선한 의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 누구도 그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울러 내 삶의 뿌리가 아무리 보잘것없고, 헛되더라도 그 뿌리를 부인하는 순간 내 삶이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편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선에서 보자면 나카지마 아쓰시의 소설 역시 제국주의적 우월감에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도 문학도 그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강한 호랑이가 아니라 비열하고 잔혹한 호랑이가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03-03 00:05:04

권력, 인간을 몰락시키는 달콤한 함정…『권력, 인간을 말하다』

권력, 인간을 말하다/리정 지음, 강란·유주안 옮김/ 제3의 공간 펴냄 경북 고령 출신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다. 무겁고 날카로운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했다. 김 전 위원장은 "권력은 쥐는 순간 손을 베이고, 힘주어 드는 순간 손목과 팔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더 힘주어 휘두르는 사이 어느새 그 칼은 내 몸속에 들어와 있다. 그 칼을 내려놓고 나니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경북 성주 출신으로 '6공화국 황태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강하고 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약하고 짧은 것이 권력"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권의 핵심부에 있던 지역 출신 두 정치인들은 권력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대한민국 권력은 '권불오년(權不五年), 배지사년(Badge4년)'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은 5년마다 바뀌고,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올해는 마침 지방선거가 있는 해로 지방 권력을 향해 또다시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누구나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권력, 인간을 말하다'는 제목의 이 책 역시 권력에 지배당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권력의 교묘한 술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권력의 속성을 간파해 목숨을 지키고 부귀를 누린 자도 함께 보여주며 권력 사용의 적나라한 면모를 드러낸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고 충고한다. 수많은 처세서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비열한 음모와 냉혹한 배신, 가차없는 투쟁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온갖 권모술수를 총동원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권력을 손아귀에 틀어쥔 승자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황금 권좌에 올라선 순간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숭배와 부귀영화가 아니다. 권력은 어느새 주인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다모클레스의 검이 되어, 권좌를 향해 칼끝을 겨눈다. 이 책은 중국 당나라의 절대권력을 거머쥔 이들의 몰락 과정을 쫓아간다. 비천한 출신을 극복하고 대성한 인물부터 목적을 위해서라면 형제와 자식까지 재물로 바치는 냉혈한과 뛰어난 지략과 총명함으로 모두를 사로잡은 천재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권력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권력은 어떤 인물이든 개의치 않는다. 자기 주인의 약점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이를 연료삼아 그를 몰락으로 이끄는 음모를 소리 소문 없이 진행한다. 저자는 권력이 파놓은 함정 중에 치명적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비공식 정보 통로는 권력이 자신의 주인을 몰락시키는 은밀한 수법으로 역사에 자주 등장했다. 둘째, 핏줄의 유혹은 권력이 1인자를 무너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셋째, 관료집단의 이해관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권력이 제기하는 최대의 난제다. 넷째, 권력은 언제나 잠재적 적들을 제거하려 시도한다. 이 책은 1장 여론(이밀), 2장 후계자 선정(이세민), 3장 두려움(장손무기), 4장 무질서(무측천), 5장 타락(이융기), 6장 정보통제(이임보), 7장 기득권(안녹산), 8장 보상(곽자의'이광필'복고회은), 9장 그림자 권력(환관 집단), 10장 파벌(이덕유'우승유), 11장 합법성(황소'주온)의 순서로 권력이 파놓은 11가지 함정에 걸려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편 저자 리정은 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를 지칭하는 '바링허우'(80後)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현재 인민일보 평론부에서 일하고 있다. 352쪽, 1만6천원.

2018-03-03 00:05:04

추필숙 작 '다랑논'

[내가 읽은 책]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연금술사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연금술사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만큼 도는 빛, 그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나아가는 거리가 1광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처럼 백만 광년의 고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속에서 읽는 한 줄의 시는 틀림없이 우리의 삶을 비추는 섬광으로 다가오리라는 기대를 품고 표지를 넘겼다. 책날개에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일컫는 하이쿠를, 류시화 시인의 해설로 읽는다'는 요지의 글이 적혀 있다. 하이쿠는 450여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정형시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5'7'5의 열일곱 자 음수율을 지키고, 시가 짧은 만큼 한 번에 읽어 내려가는 것을 막고 여운을 주기 위해 중간에 '끊는 말'을 넣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을 우선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문학성이다. "단순히 촌철살인의 재치나 언어유희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은유와 상징을 통해 삶에서 얻은 깨달음, 인간 존재의 허무와 고독, 자연과 계절에 대한 느낌, 그리고 해학을 표현한다. 이 한 줄 시를 공통적으로 '하이쿠'라 부른다"(589쪽)라는 대목을 보면 정형시에서 출발한 하이쿠가 한 줄 시라는 포괄적인 형식으로 유지,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심는 여자/자식 우는 쪽으로/모가 굽는다 (잇사), 꽃잎이 떨어지네/어, 다시 올라가네/나비였네 (모리타케), 새는 아직/입도 풀리지 않았는데/첫 벚꽃 (오니쓰라), 잡으러 오는 이에게/불빛을 비춰주는/반딧불이(오에마루), 시원함이여/종에서 떠나가는/종소리 (부손)…." 밑줄은 점점 늘어난다. 어느 순간, 밑줄을 아껴야지, 다짐하고 만다. 펜 잡은 손을 가슴에 얹고 잠시 호흡에만 몰두하면서, 읽기에 공을 들였다. 공감이 주는 감동을 실컷 맛보았다고 할까? 책이 책답다. 시의 진정성이 충분히 와 닿았다. 백 마디 말보다 이름 한번 불러주거나 손 한번 잡아주거나 눈 한번 맞추는 것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우리 삶을 통틀어 통째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의 단면을 낱낱이 본 느낌이 든다. 본질적인 고독과 서툰 삶, 그 삶의 부조리 속에서 결국 사라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진정성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압축을 풀어내고 생략을 읽어 내는 '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명쾌한 해석의 영역을 넘어 가슴을 울리는 작품들이 수두룩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 해석은 백인백색이다. 읽는 이의 깊이에 의해 재탄생되는 것이 시다. 문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의 읽기와 남(류시화)의 읽기를 서로 견주어 볼 수 있다. 마음은 뒤에 감추고 모습을 보여 주라던 바쇼의 말과는 반대로, 하이쿠를 읽는 우리는 모습 뒤에 감추어 둔 시인의 마음을 내 마음속으로 옮겨오면 되는 것이다. 한 줄도 길고, 백 줄도 짧을 수 있다. 그러나 딱 한 줄로 백만 광년의 고독을 말할 수 있는 책은 이 책뿐이다. 유언처럼, 한 줄 시의 힘이 참 세다.

2018-02-24 00:05:00

대구시 북구 학정동 들녘에서 가을걷이에 나선 콤바인이 노란 들판을 가로지르며 벼를 베고 있다. 매일신문 DB

먹고살려는 인류의 몸부림, 새로운 문명으로…『문명과 식량』

문명과 식량/ 루스 디프리스 지음/ 정서진 옮김/ 눌와 펴냄 16세기 유럽에 처음 들어온 감자는 높은 열량과 편리한 저장성으로 매력적인 작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인들의 키가 커지고, 출산율이 높아진 것도 당시 주식이었던 감자 덕분이었다. 심기만 하면 싹이 나고 주렁주렁 열리는 감자는 종자를 살 필요가 없었다. 가난한 아일랜드 소작농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작물이 감자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감자도 완벽하진 못했다. 유전적 동일성, 좁은 경작 간격 탓에 감자에 역병이 돌았고 농민은 희생양이 됐다. 썩어 들어가는 밭을 갈아엎었다. 새로 심을 감자조차 남아나지 않자 사람이 하나둘 죽어나갔다. 1845년 아일랜드는 인구의 8분의 1인 100만 명이 감자 역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100만 명이 영국과 신대륙으로 떠났다. 더 이상 대기근은 없었다. 곧 역병에 강한 품종이 들어오고, 농가를 떠난 이들이 늘어나 경작지가 넓어지면서였다. 적응이다. ◆톱니바퀴, 도끼, 그리고 중심축의 회전 인류의 여정도 이와 같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성장-위기-전환점이라는 주기를 돌고 도는 인류 문명의 축소판이다. 환경지리학자 루스 디프리스는 채집인에서 농부로, 다시 도시인으로 진화하는 인류 문명의 원천을 식량에서 찾는다. 그의 책 '문명과 식량'은 먹고살려고 환경에 저항하고 적응해 온 인류가 어떻게 번성했는지를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문명은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의 과정이며, 식량은 문명의 원동력이다. 그의 주장은 새롭지 않다. 먹고살려는 인류의 몸부림이 '문화를 번영케 하고 기술을 발달시켰다' '식량의 증산이 인구를 늘렸다' '식량 확보를 위한 경쟁과 혁신이 환경을 변화시키고 시'공간적 거리를 좁혔다' 등의 주장은 인류 문명과 세계사를 다루는 교양서의 단골 레퍼토리다. 그러나 그는 '톱니바퀴-도끼-중심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식상한 주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낸다. 기본적으로는 이렇다. 배고픈 사람이 끼니를 구한다. 식용작물을 재배하거나, 양분을 퍼트린다. 자연을 변형해 식량을 늘린다. 식량이 늘어나면 인구(개체 수)가 늘어난다. 성장의 톱니바퀴가 회전한다. 하지만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난관에 봉착한다. 기아라는 도끼(위기)다. 얼마 후 자연 산물을 활용하는 새 해결책을 내놓는다. 톱니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다시 식량이 늘고 인구가 는다. 한쪽으로만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성장을 막는 도끼, 그리고 새로운 회전을 추진하는 중심축(전환점)에 의해 톱니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이렇게 반복된 주기는 인류 역사의 궤적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다른 생물과 구분되는 특성을 더한다. 유전자에 의존해 진화하는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밈'(meme'개체의 기억저장소에 유전자처럼 저장돼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문화의 구성 요소)이 있어서 음식물을 선택하고, 시설을 만들고, 비료를 추출하는 혁신을 꾀한다고 주장한다. 자연과의 사투에서 식량을 얻는 방식은 종 다양성, 지구의 순환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변형해왔다. 20세기 전까지. ◆성장과 위기, 그리고 전환의 반복 저자는 식량을 확보하려는 인류의 노력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발견한 인간은 자연을 변형해 인구를 부양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발견한 밀 두 포기는 농경의 시발점이 됐다. 씨앗과 곡물을 저장했고, 재배종을 개량하고 가축을 사육하기에 이르렀다. 길들인 가축이 노동을 충당하면서 같은 면적에서 힘을 덜 들이고도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가축의 힘을 빌리는 방식은 고대 강 문명에서 수 세기가 흘러서야 유럽 대륙에 전해졌다. 곡물 생산량 증가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이끌었다. 식량공급량을 초과한 인구는 '도끼'가 됐다. 힘들고 고된 소작농의 사망이 급증하고 유례없는 추위와 대홍수, 기아와 전염병이 유럽을 강타했다. 끔찍한 시기 성장의 중심축이 되었던 것은 다시 가축을 이용한 노동과 거름, 질소를 고정한 토끼풀이었다. 배설물이 쉬는 땅의 지력을 높여 더 많은 농작물을 만들어 낸 것, 이른바 '농업혁명'이었다. 잉여식량은 도시 인구의 증가로 이어졌고, 화석연료가 동력자원이 되면서 경제의 축은 농업에서 산업으로 이동했다. 도시가 커진 것도 이때다. 그러나 분뇨 수거인이 인분과 정육점 오물을 모아 농촌으로 되가져간 덕분에 질소와 인이 이동했고, 비옥한 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은 화석연료와 질소비료의 몫이었다. 그러니 수질오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상승은 필연적인 결과다. 기계와 비료, 연료의 공급 증가는 대규모 단일재배로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단일재배는 또 도끼가 됐다. 병해에 취약한 단일재배의 위험에서 인류를 구한 것은 기적의 살충제 DDT였다. 새로운 '허수아비'의 등장으로 수확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기근의 걱정을 덜어낸 인류는 끈질긴 잡종교배와 품종개량을 통해 녹색혁명의 기적을 낳았다. ◆도시인의 위기 2007년 세계의 도시 인구는 농촌 인구를 넘어섰다.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식량이 어디에서 나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같았던 식량자원의 속도는 더뎌졌다. 인구의 급증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구의 순환 시스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가축분뇨와 비료'거름이 만들어낸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의 4분의 1 이상이다. 칼로리당 7~15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들여 한 끼를 해결하는 상황이다. 인류가 원하는 기름진 식단에 희생된 건 소'돼지'닭뿐만이 아니다. 가축을 키우고자 열대림을 훼손하고 개간하며 수만 년에 걸쳐 완성된 생태계는 교란됐다. 어느 때보다도 식량이 풍부하고, 인류는 번성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냉장고에서 고기가 썩어 버려지고, 개발도상국에서는 냉장시설이 없어서 고기가 썩는다. 또 다른 도끼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책은 뒷부분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언급한다. 장밋빛 전망이다. 도끼가 내려쳐지기 전에 도시인이 된 농부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무엇일까. 364쪽, 1만6천원.

2018-02-24 00:05:00

[책 CHECK] 조선시대 과학의 순교자

조선시대 과학의 순교자 이종호 지음/ 사과나무 펴냄 '조선시대에도 과학자가 있었을까?' 국립과천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는 2018년 현재 33명의 과학자가 선정돼 있다. 그중에는 장영실, 허준, 홍대용, 정약전, 김정호 등 조선시대 인물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상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불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조선시대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과학적 성취를 다루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치적인 사건으로 유배형을 받았다.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유배형에 처해진 사람들은 당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들은 유배형에 처해졌을 때 신세를 한탄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지식을 닦고 제고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자산어보'의 정약전, '북학의'를 쓴 박제가, 그리고 다산 정약용, 김정희 등을 비롯한 선각자들의 탁월한 업적은 유배가 아니었다면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유배 받은 이유야 어떻든 그들의 업적이 과학에 관련되는 한 모두 '과학의 순교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만일 그들의 삶에서 유배가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좀 더 근대화를 빨리 이루고, 과학기술이 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366쪽, 1만5천원.

2018-02-24 00:05:00

[책 CHECK] 붉은 혀

붉은 혀 김환식 지음 / 지혜 펴냄 김환식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인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돼 있으며, 100편 가까운 시가 실려 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고삐 풀린 말들을 길들이는 것이다', '순례를 한다는 것/참회하며 걷는다는 것이다', '선혈이 서산을 붉혔다' 등의 시구에서 보듯 저자는 아포리즘(aphorism'신조나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나타낸 짧은 글)의 대가이다. 시인은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경험으로 옮겨놓는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해 시로 빚어낸다. 시집에는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아포리즘으로 응축한 시를 비롯해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노래한 연애시,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시,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친 사건을 소재로 한 시 등 다양한 주제의 시가 실려 있다. 저자는 다년간 공직생활을 하다 창업해 기술혁신 유공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등 독특한 이력을 지닌 시인이다. 2005년 '시와반시'를 통해 데뷔했다. '산다는 것', '낙인', '천년의 감옥', '버팀목' 등 7권의 시집을 냈다. 현재 한국시협, 대구문협, 열림시, 서세루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66쪽, 1만원,

2018-02-24 00:05:00

이 책의 지은이는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우리 감정 변화를 이끄는지 입증하고 있다. 사진은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

음악에 따라, 같은 와인도 왜 맛이 다를까…『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와인 시음회에서 1번부터 5번까지 번호가 붙은 와인들을 차례로 제공했다. 시음회 동안 음악은 드뷔시의 '달빛'부터 바그너의 (역동적인) '발퀴레의 비행'으로 바뀌었다. 시음자들은 1번과 5번의 와인을 각각 다른 맛으로 평가했다. 사실은 같은 와인이었음에도. 배경 음악에 따라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실험이다. 저자 존 파웰은 '음악이 어떻게 우리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의 논거를 출발하고 있다. 또 음악의 다양한 효용과 쓰임새를 과학적 실험의 증거들로 설명하며 인류에게 '음악은 숙명'임을 명쾌한 논리로 설파하고 있다. ◆음악 장르 따라 쇼핑센터 매출 영향=쇼핑센터에서 프랑스 음악이 나올 때는 프랑스 와인이 더 많이 팔리고,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소비가 30%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좌우할까'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지난 수십 년간 심리학적 연구와 사회학적 연구에 몰두했다. 음악 심리학의 모든 면을 들여다보고, 음악이 어떻게 아기가 엄마와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돕고, 백화점에서 음악에 따라 어떻게 소비 패턴이 달라지는지를 밝힌다. 그 음악을 듣는 사람의 감정에 주목하며 음악이 우리 일상적인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14장에서 저자는 연주가의 연주 패턴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몇 가지 실험결과들로 설명한다. 보통 연주자는 악보대로든 즉흥적으로든 음악 효과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기법, 주법(奏法)들을 활용한다. 그들은 다양한 독보법(讀譜法), 타이밍, 주법, 강약, 음색으로, 때로는 실수조차 활용해서 우리의 감정을 요리한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고전음악들은 수백 년 전 음악가들의 영감에 의해 그려진 악보였을 뿐인데 그것들이 연주자들의 표현방식에 의해 인간의 감정이 좌우되는 것이다. ◆뇌 건강, 정서 안정에도 음악이 관여="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준다. 다양한 질병을 이겨내고, 과제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감을 쌓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하고, 그리움에서 기쁨에 이르는 감정들로 삶을 채워준다." 본문에 나오는 음악의 효용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음악과 함께 생활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 뇌를 적절히 자극하고 즐거움도 함께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에는 뇌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능들이 있다. 예를 들면 강력한 감정 자극제로 작용한다. 유쾌한 음악을 들으면 세로토닌과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 긍정적으로 기분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음악을 감정으로 바꿀까. 우리 뇌는 과도한 자극도, 부족한 자극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황이 복잡할 때는 조용한 음악을 선호하게 되고, 삶이 지루할 때면 거친 록(Rock) 음악으로 뇌를 자극한다. 우리는 종종 신체 활동에서 에너지를 얻고 집중력을 끌어올리려고 음악을 사용하고, 기분 전환용으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 인위적으로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축하나 애도 선율로 그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음악의 또 다른 용도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듣는 음악이 있다. 이렇듯 저자는 실험심리학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음악의 다양한 쓰임새를 과학적 실험의 증거들로 설명한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음악의 심리학적 비밀을 들여다보는 이 책은 음악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에 이은 후속작이다. 전작(前作) 역시 기발한 콘셉트로 음악 분야의 전문적인 독자를 포함해 일반 독자의 폭넓은 관심을 받았다. 이번 책은 음악의 심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음악이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는 다양한 사례들과 연구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그 사람이 듣는 음악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쇼핑할 때 배경음악에 따라 매출액이 차이가 나거나, 음식 맛을 평가할 때도 음악 장르에 따라 그 맛을 다르게 느낀다는 실험 결과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선보인다. 또 이야기와 영상이미지를 다루는 영역인 영화에서도 음악이 어떻게 감정 변화를 이끌어가는지도 세밀하게 밝히고 있다. 책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자주 듣는 음악들을 나열해보고, 그 리스트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들여다본다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89쪽, 1만7천원.

2018-02-24 00:05:00

[반갑다 새책] 신명난 탈출

15년간 대구카네기연구소를 운영해 온 이규석 씨의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금융기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이후 자기계발연구소를 세워 오랫동안 리더십 개발과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5부에 걸친 단원엔 모두 50편의 글이 수록됐다. 저자는 이리저리 엎치락뒤치락 난장판 인생을 가벼운 책 한 권으로 정리하면서 오래 망설였다고 말한다. '수필가들도 읽지 않는 수필을 뭐 하러 쓰느냐'는 질책도 들었다. 그러나 그래도 '나 여기 있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에 펜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가 실험적으로 시도한 '문장의 시각화'도 주목할 만하다. '돌탑'에서는 텍스트를 탑 모양으로 시각화해 독자들에게 이미지를 강조했고 '아버지를 찾습니다'에서는 치매노인의 반복된 물음에 대한 대답을 볼드체로 크게 써 짜증의 강도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필가 장호병은 발문에서 "이규석 표 수필의 미덕은 진실한 내용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창의적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현업에서의 삶과 앎, 문학에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규석 만의 수필 기틀이 마련되었다"며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내기 바란다"고 적고 있다. 208쪽, 1만원.

2018-02-24 00:05:00

[반갑다 새책] 낙타는 뛰지 않는다

경북 성주 출신 권순진 시인이 펴낸 세 번째 시집이다. 삶의 노정(路程)에서 길어 올린 65편의 시들을 함께 묶었다. 어딘지 낯익고 익숙한 시어(詩語)들이지만 그 이야기들은 마치 가공을 거치지 않은 꼬막처럼 날것의 싱싱함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묘한 매력을 숨기고 있어 일단 손에 잡히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흡인력도 강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10년 넘게 '시 운동'에 매진하며 다른 사람의 시만 소개해오다 이제야 정작 내 글을 펼쳐냈다"고 말한다. 시인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은행과 대한항공에서 근무했다. 행간에는 당시 직장이나 사회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녹아있어 당시 사회상이나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권순진의 시는 다채롭다. 기존의 시 문법을 따른 고분고분한 시보다 형식 파괴 시가 더 많다. 틀에 얽매임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펼쳐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고도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 권순진의 시 운동은 그러한 세상을 갈망하며 타박타박 걸어가는 낙타걸음의 족적에 비유된다. 10년째 지역 일간지에 시 칼럼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를 연재하고 있으며 시집 '낙법'과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1'을 냈다.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 작가회의, 대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128쪽, 1만원.

2018-02-24 00:05:00

누가 'SKY'를 움직이나…『대학과 권력』

대학과 권력/김정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서울대 OO명 합격!" 해마다 대학 합격자가 발표될 즈음이면 일선 고교나 학원에서는 서울대 합격자 수로 학교의 명성을 드높이려 한다. 10여 년 전쯤부터는 대학보다 의대, 건축, 글로벌 경영, 미술, 특수교육, 경찰행정 등 전공을 중시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성세대에게 서울대-고려대-연세대는 대한민국 1류 스카이(SKY) 대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굳건한 대학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로부터 출발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최초로 대학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식민지 시기부터 1990년대까지. 대학권력-국가권력-시장권력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대학을 보여준다. 더불어 현재 대학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대학사 100년을 돌아보며, 문제점과 해결책까지 짚어본다. 저자에게 대학은 스무 살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 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삶의 현장이자 학문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녹을 먹으며, 끊임없이 대학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로 이 책을 썼다. 고민 끝에 찾아난 하나의 명제. 한국 대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권력 집단의 힘'을 찾아냈다. 이를 포착하기 위해 '대학권력-국가권력-시장권력'이라는 권력의 3주체를 중심으로 한국 대학의 역사를 톺아본다. 한국 대학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권력'이라는 키워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4시기로 나누어, 식민권력과 타자적권력-사학권력-국가권력-시장권력이 작동했던 시기를 연대기 순으로 돌아본다. 한국의 대학사는 그야말로 '권력 집단의 힘'에 의한 수난의 역사였다. 식민지 시기에는 식민 권력이라는 주체가, 해방 후에는 미군정이라는 타자적권력이, 1950년대에는 사학권력이, 1970, 80년대에는 국가권력이 대학을 장악하며 고등교육이나 지성, 학술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닌 권력집단의 이익수단으로서 대학이 권력에 좌우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아래 자본권력에 의해 또다시 대학의 자율성은 무시된 채 시장화되었다. 저자는 대학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해방 이후 미국은 정치적'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한국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며 "아쉽게도 식민권력이라는 타율적 권력이 경성제국 대학을 세운 이래 100년 동안 대학은 대학 본연의 가치인 자치와 자율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의 대학은 시장권력, 즉 자본이 현실 권력 그 자체로 등장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학을 움직이는 힘이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의 자치로부터 나오지 않고, 재단과 정부, 시장이라는 권력에서 나온다는 점이 절망스럽지만 엄연한 현실임을 지적한다.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대학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확산과 함께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한'중'일 3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사회적 현상이 대학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대학 수는 크게 늘어났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춘천교육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저자 김정인은 "사립대학을 늘려놓고는 국가가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시장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대학의 자화상"이라고 강조했다. 380쪽, 1만9천원.

2018-02-24 00:05:00

이종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모두 기뻐하건마는

모두 기뻐하건마는 이휘(李彙) 아들을 낳으면 모두 기뻐하건마는 生子人皆喜(생자인개희) 유독 내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네 吾心獨不然(오심독불연) 이 세상 한량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世間無限苦(세간무한고) 아들께 또다시 전해주는 것이어니 於汝又將傳(어여우장전) 조선시대의 진사(進士) 이휘(李彙)가 아들을 낳고 지었다는 시다. 아들을 낳으면 기뻐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유독 그의 마음이 기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을 한다면 그가 서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조에서는 조상이 한번 서자가 되면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서자 계열로 분류되어 말 못 할 차별과 수모를 겪었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이 겪어온 밑도 끝도 없는 괴로움들을 아들에게 대물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버지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무겁고도 괴롭다. 자라서 상황을 다 알게 된 아들이 '왜 나를 낳았느냐'고 따지고 들면 도무지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여 상하(上下) 노복(奴僕)이 다 천(賤)히 보고, 친척과 고구(故舊'오랜 친구)도 손가락질하며 아무의 천생(賤生)이라 이르오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사오리까?" 적서(嫡庶) 차별의 가당치도 않은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한 소설 '홍길동전'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은 정이품 판서인 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던 여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홍길동은 명문대가의 아들임이 분명하지만, 막상 그의 사회적 위상은 양반은커녕 서민보다도 훨씬 못한 것이었다. 첩을 두는 것을 인정했던 조선시대에는 홍길동과 같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들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지녀도 사회적 진출에 한계가 있었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제사 때도 당당하게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문 근처에서 얼씬거리거나, 대문 근처에서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말하여 동서고금에 그 유례를 찾을 수가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신분적 질곡 앞에 망연자실케 했던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갑오경장을 계기로 하여 적서 간의 제도적 차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자식의 출생을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는지는 의문스럽다. 상하 계층 간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적서의 차이에 못지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재벌 2세가 되기도 하고, 찢어지게 어려운 가난뱅이 아들이 되기도 하는 그 출발부터가 적서의 차별과 닮은꼴이다. 게다가 계층 이동의 사닥다리마저도 별로 없어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번 하층은 영원한 하층으로 고착화되기 쉬운 상황에서, 가난뱅이 아버지가 마음 놓고 아들을 낳기는 정말 어렵다. 자신이 겪어온 하층민의 서러움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이 커서 '왜 나를 낳았느냐'고 따지고 들면 도무지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아 말도 안 되는, 울컥 도분이 나는 세상!

2018-02-24 00:05:00

[책 CHECK] 설리화야 설리화야

설리화야 설리화야 이룸 지음/ 카프카 펴냄 저자의 직간접 체험이 녹아 있는 소설이다. 작품의 배경 및 스토리를 보면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자란 저자의 성장 및 성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주 무대인 대구의 수성교 주변과 고대국가 조문국의 서울에서 발단이 이뤄지며 결말 또한 그곳에서 마무리된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일주일간 벌어지는 전국체전 기간이란 얼개 속에서 진행되는 서사로 인해 많은 사연들이 자연스럽게 압축된다. 파격적인 구성, 내용과 달리 서정적인 문체가 눈에 띈다. 시를 보는 듯한 서정적인 지문이 그렇다. 그리고 추리적 구성으로 흥미를 유발시키는가 하면 대사의 말맛을 제대로 살린 사투리 구사도 돋보인다. 영상미를 의식한 배경묘사와 극문학에서나 볼 수 있는 대사에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하는 가독성까지 겸비했다. 전북 김제 출신인 저자는 주로 대구에서 자랐다. 계명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핑크하우스', 장편소설 '갓바위' 가 있다. 현재 청소년(대구시 문학영재반)을 대상으로 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345쪽, 1만2천800원.

2018-02-10 00:05:00

[책 CHECK] 풍크툼

풍크툼/박미영 지음/ 화니콤 펴냄 "2월의 오늘 같은 날, 몽유(夢遊), 몽상적 기질 아닌가 혼자 씁쓸해하면서 나는 또 옛집이 있는 거리에서 발을 멈춘다. 영화 촬영지로 추천하고 싶을 만큼 삼십여 년 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옛집이 있는 옛길, 나는 걷고 또 걷는다. 스스로 고백하건대 이 길은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이란 뜻을 가진 나의 풍크툼(punctum)이며, 어쭙잖은 내 글쓰기의 근간이다."-옛집이 있는 거리에서 이 책은 저자가 일간 신문 등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펴낸 산문집이다. 제목 '풍크툼'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내세운 개념으로, '찌름'을 뜻하는 라틴어 'punctionem'에서 비롯됐다. 풍크툼은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추정'해석할 수 있는 의미나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여러 직업 가운데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이란 자리가 가장 오래됐다는 저자는 현재 달구벌 아트센터 '달'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시집 '비열한 거리'가 있다. 180쪽, 1만2천원.

2018-02-10 00:05:00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의 '생명의 이름'은 생물'생태에 대한 꼼꼼한 기록인 동시에 생명체의 이름에 담긴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사진은 권 교수가 책의 소재로 삼은 다양한 생명체들. 사이언스북스 제공

생명의 이름 속에 새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생명의 이름』

지구 생명체의 숫자는? 어떤 과학자는 0이 스무 개쯤 붙는다고 하고, 어떤 생물학자는 생물을 동'식물, 미생물에 바이러스, 세포까지 분류하다가 '범위'부터 막혀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고도 한다. 이렇게 무량대수(無量大數) 생명체들도 이름표를 달지 못하면 그냥 '생물'이나 '유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으로부터 학명이나 분류 명(名)을 얻어 달면서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며 인류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건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린네였다. 그는 속(genus)과 종(species)을 나타내는 두 라틴어 단어로 된 학명을 생물에 부여하는 '이명법'을 창시해 현대적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았다. 이 책은 저마다 이름과 사연을 간직한 채 우리의 산천을 형성하고, 인간과 함께 살아온 생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생명체 이름들의 재밌는 사연 소개 '달팽이 박사의 생명 찬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세상에는 '이름 모를 풀'이 없고, 아주 작은 생명에도 다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권오길(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의 전작 '생명 교향곡'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펼쳐지는 생물들의 생태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 책은 생명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이름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생명 교향곡'의 선율을 잇는 작업이었다. 제철을 견디지 못하고 설익은 채로 떨어지고만 '도사리', 매미가 탈바꿈한 자리에 남기고 떠난 '선퇴', 겨울에도 푸르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겨우살이'처럼 우리의 말이 새겨 놓은 생명의 이름들은 시어(詩語)처럼 아름다운 우리말로 고스란히 기록됐다. 선조들이 자연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들은 우리말에 새겨졌고 대대로 전수돼 지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우리의 DNA를 구축해왔던 것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 따라 5부로 구성 이 책은 정지용의 시 '향수'를 따라 우리 산과 들, 바다에서 생물들을 만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1부 '넓은 벌 동쪽 끝'은 우리 들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물과 들짐승, 들꽃들의 얘기를 다룬다. 하늘에는 해바라기 꽃을 달고 땅에는 감자를 달고 있는 것이 엉뚱하다고 해서 '뚱딴지'라 불리는 돼지감자, '신선의 손바닥'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제주도에서 자생해 온 선인장 얘기가 수록돼 있다. 인터넷주소를 구성하는 골뱅이(@)에서는 달팽이의 '느림의 미학'을 칭찬한다. 면도날을 타고 넘지만 베이지 않는 유연함에서 '처세의 미학'을 배운다. 2부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에는 우리 강을 수놓으며 생명력을 뽐내는 개구리밥과 연가시 등에 관한 얘기가 담겼다. 반딧불이를 보고 '개똥불로 별을 대적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알아보고, 잠자리를 뜻하는 다른 말로 '청령'이나 '청낭자'라는 우리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산짐승'바다생물 이야기 분석 3부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는 하늘로 높게 뻗어 올라간 나무들과 산짐승들의 얘기를 다룬다. 뻐꾸기의 탁란(托卵) 습성을 관찰하며 악랄한 이기적 유전자를 비판한다. '어미를 죽이면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살모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뱀의 억울한 사연과 '황조가'에 등장해 우리 역사 속 한 장면을 함께한 꾀꼬리의 얘기를 들어 본다. 4부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은 자유롭게 바다를 활보하는 바다 생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언각비'와 '전어지'와 같은 문헌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들의 이름은, 우리말이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또 구각(舊殼)을 벗어야만 성장, 변화를 맞을 수 있는 꽃게의 숙명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5부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지붕'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 여기며 자연과 공생해 온 우리의 정겨운 터전을 들여다본다. '까치밥'으로 남겨 둔 감에서 선조들의 아름다운 미덕을, 우리 몸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배꼽을 보며 우리 역시 다른 생명들과 닮았음을 본다. '돼지감자가 세상을 바꾼다' '그령(한국에 흔한 여러해살이풀)처럼 억세게' '잠자리의 결혼비행' 등 소제목들에서 느껴지듯 이 책은 어려운 과학책보다는 수필에 더 가깝다. 생물을 바라보는 한 노학자의 애정 어린 기록인 동시에, 생명을 관조하는 한 문학가의 서정적 에세이이기도 하다. 302쪽, 1만6천500원. ◆권오길 교수는=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기고, 서울사대부고에서 생물을 가르쳤으며,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25년간 근무했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저작과 방송 활동, 강의를 통해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전파하고 있다. 일간지에 '생물 이야기'를 연재 중이고 포항공대, KAIST 등 여러 곳에 특강을 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글쓰기와 방송, 강의를 통해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쉽고 재미있는 과학을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2002), 대한민국 과학문화상(2003) 등을 수상했다.

2018-02-10 00:05:00

거북이와 달팽이. 책 속 이미지

[내가 읽은 책]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루이스 세풀베다/열린 책들/2016

내 이름은 '반항아'. 나는 이름이 갖고 싶었고, 왜 느린지에 대해서도 궁금했었어. 애타게 느린 종족이라는 것과 달처럼 둥글다는 뜻의 '달팽이'들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행복한 것 아냐'며 다들 시큰둥했지. 외톨이가 되자 세 그루 너도밤나무 근처 가장 아는 것이 많다는 수리부엉이를 찾아갔어. 그는 내가 느린 이유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해 주었지. 관습에 얽매여 그날그날 살아가는 달팽이들은 내 존재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야. 터무니없는 질문에 지친 할아버지 달팽이가 쪼아 버리겠다고 윽박질렀을 때 납매나무를 떠나기로 결심했지. 달팽이들이 왜 느린지 이유를 알게 되고, 이름을 갖게 되면 돌아오겠다며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거북이 '기억'이 나의 이름을 지어주었어. 그는 누군가에게 어디로 가는 건지 묻는 것은 잘못이고, '어디서 오는 길인지' 물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어. 자신이 인간의 망각으로부터 오는 길이며, 인간들은 자라면서 다 잊어버리는 종족이란 것을 알려 주었지. 거북한 질문이 많은 사람을 '반항아'라고 부른다고 했어. '기억'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보여주었지. 인간들이 만드는 집들과 금속 심장이 달린 빠른 쇠 동물들을 보았을 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꼈어. 또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며, 맞서 싸워야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지. "달팽이 네게도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느리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야 되겠니? 내가 '반항아'라는 이름의 달팽이를 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네가 몇 걸음 가다가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거북이처럼 느린 덕분 아니겠니. 넌 코앞에 닥친 위험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서 이들을 구하려고 애를 쓰는 용감한 달팽이란다. 그러니 반항아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테니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봐." '기억'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납매나무로 돌아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인간들의 침입을 설명했지. 인간들이 곧 검은 길을 내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올 것이란 '기억'의 말을 전했어. 처음에는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위험을 알려준 나를 존경과 믿음으로 바라봐 주었어. 새로운 민들레의 나라를 찾을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다는 믿음이었지. 달팽이들의 여행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지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 지금처럼 계속 길과 집을 만들고, 땅을 깊게 파헤친다면, 우리처럼 '민들레의 나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기억'이 말한 대로, 너희가 '자라면서 모든 것을 잊는 종족'이라고 해도 나 같은 반항아 인간이 한 명쯤은 있을 테지. 제발 그의 말을 들어줘. '반항아' 달팽이가 하는 말을 들어준 것처럼!

2018-02-10 00:05:00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을 각색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스틸컷.

범죄소설, 팬들은 열광하는 데 문단에선 왜 홀대받을까…『범죄소설의 계보학』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지음/ 소나무 펴냄 더블버튼 트렌치코트에 파이프 담배, 특이한 모자. 추리소설 하면 연상되는 탐정의 모습이다. 그들이 쓴 모자는 오죽하면 탐정 모자라는 이름 외에 뚜렷한 명명조차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탐정의 전형적인 모습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분야든 모르는 게 없고, 조목조목 따져 들어가는 논리는 물샐 틈이 없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어떻게 탐정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귀족과도 퍽 어울리는 외모와 교양을 갖춘 인물이다. 날카롭고 지적인 그들, 그리고 그들은 주로 '백인 남자'다. '범죄소설의 계보학'은 오랜 시간 한국을 포함한 세계 문단에서 저평가됐던 범죄소설이 문화적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검토하는 것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계명대 영문학과 계정민 교수에 따르면 충분한 자격이 있다. 범죄소설은 사건의 선정성을 무기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단순한 상업적 장르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저자는 뉴게이트 소설, 추리소설을 거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로 이어지는 영미 범죄소설의 흐름을 좇으며, 계급갈등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소설 속 범죄가 어떻게 발생하고 해결되는지 분석했다. ◆범죄소설의 이데올로기적 저항성 시작은 뉴게이트 소설이다. 1830~47년 사이 영국에서 출판된 범죄소설 중 런던의 뉴게이트 감옥에서 처형된 범죄자들의 일대기를 담은 '뉴게이트 캘린더'에 등장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어머니의 말 한 필을 훔친 범인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지는 걸 본 불워 리턴은 '피비린내 나는' 영국 형법을 거세게 공격하는 '폴 클리퍼드'를 써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피지배계층이 당대 법률과 제도의 피해자라는 급진적 관점을 담은 추리로 열렬한 지지를 받던 뉴게이트 소설에 대한 인기가 컬트현상(특정 영화를 수십 번 보거나, 대사를 따라하거나, 관객이 서로 경험을 공유하는 등 열광적인 행동)으로 바뀌자 권력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노동계급이 선거권을 얻기 위한 차티스트 운동이 전개될 때였다. 하류층 범죄자를 영웅시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전폭적인 메시지를 유포시켰으니 노동계급의 환영, 지배계급의 억압은 당연한 결과였다. 뉴게이트 소설에 대한 탄압이 이뤄질 때 체제 절충적 소설도 나타났다. 저자는 새커리의 '캐서린',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예로 든다. 결국,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던 거의 유일한 범죄소설은 경계와 억압을 이기지 못하면서 문단의 이단아로 내몰렸다. 100년 넘게 비평가의 관심 영역에서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다. ◆추리소설 속 비밀 뉴게이트 소설이 물러난 자리에는 추리소설이 등장한다. 탐정과 범인의 대립 구도를 바탕으로 하는 추리소설의 기본 틀은 미스터리 범죄-범죄자의 추적과 체포-미스터리 해결이라는 규범에 묶여 있다. 뉴게이트 소설의 저항적, 혁명적 성격은 사라졌다. 여기에 창조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지 못했다는 분석도 추가됐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연작은 위대한 탐정이 흥미진진한 게임을 벌이는 고전 추리소설의 전형이다. 새로운 영웅 격인 탐정 역시 당시의 계급'인종'민족 등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는 사실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에드거 앨런 포의 '오귀스트 뒤팽', 심지어 땅딸막한 외국인으로 통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까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적 명탐정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은 백인 남자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이러한 탐정의 재현이 계급'인종'젠더의 원형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합리적 사유와 과학적 분석으로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고도의 추리력과 전문성을 갖춘 완벽한 인물이 상류 계급 출신 백인 남자라는 설정은 기존 계급체제를 공고히 한다. 여성 탐정은 어떨까. 여성 탐정 추리소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다. 여성이 범죄를 수사한다는 설정만으로도 기존의 젠더 규범이 교란되기 때문에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노처녀 탐정 추리소설은 영문학 영토 내 입지를 다졌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미스 마플이 대표적이다. 마플은 노화한, 무성적 존재,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어서 비위협적인 존재다. 마플이 젠더 규범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진 점은 추리소설의 문화적 시민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삼류소설의 반란 저자는 특히 질 낮고 점잖지 못한 문학으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꼽는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1920년대 펄프픽션(값싼 펄프지로 인쇄돼 간행된 대중소설)이라는 잡지를 통해 최초로 등장했다. 권위 있는 문학지가 아니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잡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했다. 여기에 폭력적 요소와 성적 자극까지 추가돼 상업성에 치우친 저속한 소설로 평가됐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팜므파탈을 핵심적 주제로 제시한다. 계 교수는 팜므파탈의 아찔한 섹슈얼리티나 젠더적 저항보다 계급과 자본이라는 논점에 집중한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는 지배계급과 자본가계급이 범죄자로, 노동계급과 하위계급이 피해자로 설정된다. 그는 팜므파탈의 욕망이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보다 물질적 성취를 향한다는 점에서 자본가 계급의 속성이 내재한다고 설명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가려진 팜므파탈의 본질은 노동자 계급의 좌절과 분노라는 뜻이다. 범죄소설은 시대와 함께 호흡해왔다. 여러 이데올로기와 대립하고 경합하고 타협하면서 대중적 인기와 무관하게 저평가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소설 문학의 한 장르가 됐다. 문학적 시민권을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질문은 유독 장르소설을 천시하는 한국 문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며 지난해 서점가를 흔들었던 것을 본다면 '아케치 코고로'를 만들어 낸 에도가와 란포의 등장을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을까. 376쪽, 1만8천원.

2018-02-10 00:05:00

[반갑다 새책] 한국이 소멸한다

한국 경제 사상 초유의 인구 붕괴가 시작된다. 1천700만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 한국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왜 서울의 인구가 줄어드는가. 이 책은 한국사회 담론과 경제 화두에 하나씩 답하며 해결책을 모색한다. '30년 내 산촌의 80퍼센트 이상 지방소멸.'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소식들이다. 언론 보도와 같이 이제 한국 경제 사상 초유의 인구 변화가 시작됐다. 작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증가하던 생산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었고, 한국은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를 지나 고령사회(Aged Society)로 완전히 진입했다. 이는 소비, 세수, 투자 등 경제성장을 이끄는 각종 요소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로써 한국 경제는 생산인구의 감소로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 시대에 직면하게 됐다. 인구 통계와 세대 분석으로 사회 변화를 읽어내고 경기 흐름을 전망하는 경제학자 전영수 교수는 인구 변화로 인해 한국 경제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준다. 단순히 인구 변화로 인한 거시경제 측면의 전망에서 나아가 청년, 중년, 노년이 겪게 될 생애의 변화까지 알려준다. 또 이들이 장차 겪게 될 사회, 경제적 변화를 언급하면서 개인과 가계, 정부의 역할까지 짚어본다. 324쪽 1만6천원.

2018-02-10 00:05:00

[반갑다 새책] 우리안의 식민사관

한반도 한사군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한국 사학계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 분야들이다. 재야 사학자 이덕일 씨가 정리한 이 책은 영토적으로는 해방을 이루었지만 사관에서 '해방'되지 못한 한국사를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다. 우리 세금으로 극우 일본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사학계의 실태를 고발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식민사관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증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5장에서는 식민사학자들의 비상식적인 역사의식,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고발한다. 자신들과 다른 관점, 즉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 시켜왔는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는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건을 들어 설명한다'고 밝혔다. 491쪽, 2만원.

2018-02-10 00:05:00

이탈리아 내 바티칸공국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역작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는 이 대작을 그리다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탈진했다.

생생한 이탈리아 문화여행기…『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펴냄 "항상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이제 다시는 갈 일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이 들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잊기 어려운 추억이 되어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나라." 이 책 서문 중 일부다. 지은이가 이 책을 펴낸 동기는 미켈란젤로에서 마리노 마리니, 단테에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까지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탐색하기 위함이다. 그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고, 그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여행 에세이로 이 책을 펴냈다. 이미 이탈리아 한 작가의 삶을 조명한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카라바조, 단테, 미켈란젤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왔다. 이번 저서는 '근대 인문학의 황혼'이라고 할 법한 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독서애호가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나의 서양미술 순례' 덕분이다. 지금은 '미술 기행'이라는 말이 흔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인문학적인 에세이면서 여행기이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가 섞인 이런 형태의 책은 매우 파격적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25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 이어 이제 60대가 된 저자가 다시 이탈리아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난 소회를 기록하고 있다. 25년 사이에 달라진 세계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지만, 저자가 '늙음'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고통의 순간이 계속될 것 같았던 비관적인 청년의 관점이 인간의 역사 전체가 그와 비슷한 고통의 반복으로 이뤄진다는 관점으로 확장된다. 더불어 예술작품을 인간이 유한한 시간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역사 속에 기어코 남기는 흔적으로서 읽어내는 것도 이채롭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다뤘던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프리모 레미,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외에 모딜리아니, 샤임 수틴,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 주세페 스칼라리니, 오기와라 로쿠잔, 사에키 유조, 마리오 시로니 등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각각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지만 각자 그 시대와 장소에서 치열하게 악전고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라바조는 반종교개혁의 시대에 종교적으로는 정통파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혁명가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본성을 가차없이 그려냈으며, 모란디는 파시즘의 시대에 고전성, 고요함, 조화라는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반파시즘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마리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인간의 승리가 아닌 패배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미켈란젤로는 예술적인 대작(바티칸공국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인 '최후의 심판')의 완성을 추구했으나 말년에는 탈진해버렸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탈리아 근대 작가들과 작품들이 저자가 여행하면서 겪은 여러 에피소드들과 합쳐져 생생한 이탈리아 문화여행기로 읽힌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봤던 인간을 향한 마음의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한다. "'나'의 주관적인 프리즘을 통해 본 이미지며, 이탈리아를 얘기함과 동시에 '나'를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편 저자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이 대학 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348쪽, 1만8천원.

2018-02-10 00:05:00

현진건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는 소박한 일상을 꿈으로 삼던 시대가 있었다. 꿈 실현의 필수조건인 농사지을 땅과 일 마치고 돌아올 마을, 그 어느 것도 없는 팍팍한 시대였기에 그런 일상이 한 시대를 아우르는 꿈으로서 등장했던 것이리라. 일제강점기 조선, 특히 1920년대 조선에서 그 꿈은 참으로 강렬했다. '바라 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라는 시 구절이 나올 정도로 1920년대 조선에서 그 꿈은 강렬했다. 조선 땅이 일본제국의 땅이 되고 그 땅에 일본인들이 밀려들어 오면서 쫓겨나야 했던 수많은 조선인들의 삶이 바로 그즈음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진건의 '고향'(1926)은 이처럼 고향에서 쫓겨난 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경성행 기차 속에서 '나'가 남루한 복장의 한 조선인과 동석하면서 시작된다. '나'를 통해 전달되는 조선인 '그'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 내용이다. 조선인 '그'는 열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서간도로 이주하여 십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고향을 떠난 이유는 한 가지, 일제의 경제 침탈로 농사짓던 땅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이다. 나와 기차에서 동석한 그때 그는 서간도에서 안동현과 신의주로 거기에서 다시 일본 규슈 탄광촌과 오사카 철광촌이라는 멀고도 긴 유랑의 세월을 끝내고 고향을 방문하고는 경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유랑 생활 십여 년 만에 고향이라고 찾아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고향 마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100여 호나 되던 농가는 이미 폐농이 되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고, 젊은 날 마음을 두었던 동네 처녀는 유곽을 떠돌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부모도, 친구도, 마음을 둔 처녀도, 집터도, 과거를 기억할 모든 것이 사라진 그곳이 더 이상 고향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망국의 현실 속에서 고향을 잃은 사람이 '그' 한 사람뿐이었을까. 고향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조차 마음은 떠돌고 있던 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소설 속 그의 삶은 망국의 삶을 살아가는 조선인 일반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진건의 '고향'이 나온 지 90년이 지났다. 현진건이 갈망한 고향은 일반적 의미의 고향을 넘어, 하나로 뭉친 독립된 조선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고향을 찾았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고향이 있을까. 평창올림픽이 곧 시작한다. 올림픽 개최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현진건의 고향 독립 조선이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서 좌우로 갈려 있는 형국이다. 90년 전 조선인들이 만주와 연해주를 떠돌면서 디아스포라(diaspora)를 만들더니 이제는 남북과 좌우로 갈라지면서 고향을 나누는 형국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이 '디아스포라'를 통합의 잔치로 만들기를 희망한다.

2018-02-10 00:05:00

하승미 작 '코스모스'

[내가 읽은 책]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주정일 외 옮김/ 샘터/2011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주정일 외 옮김/ 샘터/2011 문을 닫는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더 필사적으로. 더 큰 내가, 나를 구해줄 때까지! 버지니아 M. 액슬린은 아동심리학자로 심리적, 정서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놀이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과도한 반복이나 강요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가 원하는 방식대로 치료를 진행한다. 그는 정신적 아픔이 있는 아이를 먼저 치료하면 그 부모들의 정신건강도 치료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상반되는 기조다. 이 책은 버지니아의 놀이치료 아동 중 한 명인 딥스가 치료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잠근 문을 싫어하는 딥스는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다섯 살배기다. 아빠는 유능한 과학자이고 엄마는 의사다. 출산 계획이 없던 부모는 딥스를 정서적으로 거부하고 딥스에게 지적 우수성만을 요구한다. 사랑보다 억압에서 자라는 딥스는 자신만의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 침묵, 관계의 단절, 공격성, 퇴행 등 다양한 이상 행동을 보인다. 또래 친구들과 많이 다른 딥스는 유치원 선생님의 소개로 버지니아와 놀이치료를 하게 된다. 버지니아는 딥스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얘기해달라고 재촉하지도, 묻지도 않는다. 여러 장난감과 도구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져보고 무언가를 시도해봄으로써 스스로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한다. 특히 칭찬을 하거나, 제안 또는 질문을 해서 내면의 소리가 아닌 외부의 자극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 또 부모와 경험한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관계가 아닌 대인관계에서 스스로를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치료를 진행한다. 딥스는 서서히 버지니아를 신뢰하게 된다. 버지니아와의 일대일 놀이치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면서 딥스는 버지니아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한다. 딥스가 웃고, 인사를 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기 시작하면서 회색빛 엄마도 미소를 짓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던 아빠도 유연해진다. 아이의 정신적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넘치는 물질만 제공했던 모순된 부모는 딥스의 문제가 능력 부족이 아님을 어쩌면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 버지니아는 딥스가 자기 자신보다 더 자신의 내적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며 책임감 있는 자유 의식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라고 발달한다는 것(87쪽)을 알아가도록 그저 믿고 기다려준 것이다. 세상 어떤 것도 안정될 수 없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없기에, 외부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내면의 힘을 이용한다면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91쪽)을 다섯 살의 딥스는 스스로 알아냈다. 두려운 세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며 고립시켰던 작은 딥스가 아닌 큰 딥스가 된 것이다. 우린 때로 딥스였고, 지금도 딥스일 수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변하기만 하는 세상을 헤쳐나갈 능력을 상실한 채 홀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특히 누군가의 교사라면, 누군가의 부모라면 읽지 않으면 안 될 책이다. "세상 모든 딥스를 위해! 내가 원한 대로, 당신이 원한 대로, 우리가 원한 대로…." (299쪽)

2018-02-03 00:05:00

1967년 영화 '꿈'. 신상옥 감독은 '꿈'을 1995년과 1967년 두 차례 만들었다. 1967년 작 '꿈'에는 거대 영화제작사가 동남아 시장 수출을 위해 제작한 대중영화라는 특성이 더해졌다. 테오리아 제공

'충무로 황제' 신상옥은 왜 사라졌나…『극장, 정치를 꿈꾸다』

극장, 정치를 꿈꾸다/ 이상우 지음/ 테오리아 펴냄 '극장정치'라는 말이 있다. 극장에서 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적인 이벤트 효과를 활용한 정치를 말한다. 예컨대 대통령이 선택한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대결구도를 만들고 여론몰이를 하려고 기획한, 대통령 주연'기획'연출의 드라마가 극장정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정치형태에 붙이기도, 북한의 통치행위를 일컫기도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극장처럼 극적인 정치가 극장정치로, 극장보다는 정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주어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이상우 연극평론가 겸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정치가 아니라, 극장이 정치적 욕망을 어떻게 표출했는지에 주목한다. 책 '극장, 정치를 꿈꾸다'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전쟁, 분단시대를 겪으며 관객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극장은 어떤 방식으로 시대정신을 드러내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는 극장의 문화정치를 연극과 영화 두 장르로 나누고, 역사, 젠더, 민족주의, 영화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역사극에서 기억의 정치학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 여배우의 성립과 인식은 젠더 관점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식민지 시대 민족주의를 극장에서 어떻게 확인할지, 분단 시대 영화와 정치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될지 네 가지로 나눠 정리했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본격화했다. 우리말을 쓸 수 없었고, 연극'영화에 대한 검열도 강해졌다. '현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극화할 수 있는 소재는 역사적 인물이었다. 고대사 이야기가 과거 민족에 대한 향수가 되고, '이조'(李朝) 이야기는 원망과 회한의 대상이 되어 역사극의 두 갈래를 형성했다. 한쪽에서는 민족통합의 담론을, 한쪽에서는 조선 쇠퇴 담론을 이야기하는 기억 담론의 투쟁이 극으로 표현됐다. 서술 주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기억은 김옥균에 대한 극단의 시선에서 두드러진다.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 김옥균은 독립과 개혁을 주장하며 갑신정변을 이끈 근대개혁운동가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일본의 힘을 빌려 정변을 꾀했다가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파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나 광복 이전 그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일제강점기 작품 속 김옥균은 나운규가 만든 영화 '개화당이문'(1932)에서 보듯 개혁운동가로 그려지기도 하고, 박영호의 희곡 '김옥균의사'(1944)에서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저자는 김옥균을 다룬 문화텍스트가 각기 다른 기억으로 역사적 인물을 서술하고 재현하면서 한 인물에 대한 기억이 경합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근대국민국가의 왜곡된 성 인식은 여성에게 새로운 잣대로 작용한다. 여배우의 탄생은 윤심덕이나 토월회 여배우의 사례처럼 수많은 난관이 필요했다. 하루아침에 추문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화가 겸 문인 나혜석도, 유관순의 이화학당 스승이자 천재로 불린 박인덕도 '조선의 노라'가 됐다.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 김명순은 일본 유학 시절 육군사관생도 이응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극단 토월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기진이나 염상섭, 김동인, 전영택 등 남성 문인들로부터 돌아가며 인신공격을 받고 '탕녀'(蕩女)로 낙인찍힌다. 금욕주의적 연애 이상을 추구하는 글을 써가며 자신을 스스로 방어해야 했던 김명순의 상황은 당시의 젠더 인식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배뱅이굿'(1942), '맹진사댁 경사'(1943), '한네의 승천'(1972) 등 이른바 '민속의례 3부작'으로 유명한 민족주의 작가 오영진은 일본어로 작품활동을 했다. 저자는 식민모국의 언어로 민족주의를 말하는 아이러니는 단순히 민족을 배신한 활동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히 일본어가 국어로 강제되는 상황 외에 일제강점하 동아시아 문화블록 내에서의 신질서 편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충무로 황제' 신상옥 감독을 분단 체제를 대표하는 극장정치의 주인공으로 꼽았다. 1950, 60년대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 등 흥행작을 쏟아냈다. 박정희'김종필의 후원으로 안양영화촬영소를 연수하고, 박정희 정권과 밀월관계를 형성하며 영화사 '신필름'을 차리며 할리우드식 영화감독을 건설한 것도 신 감독이다. 그러나 영화계를 대표해 정부의 영화검열정책에 반대하다가 영화 미디어를 권력의 손에 쥐려던 정권과의 갈등과 불화로 몰락했다. 최은희와 비슷한 시기에 실종됐다가 탈북하기까지 북한에서 활동한 그는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20편의 영화를 제작'연출했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그의 영화는 유일사상국가의 체제 선전용으로 이용됐다. 그는 탈남과 탈북을 모두 경험한, 그래서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영화를 연출한 유일한 감독이지만 어디에서도 창작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지는 못했다. 한국 영화사에서의 입지가 약화하고, 북한 영화사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 그의 영화는 예술이 정치에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을 통해 분단체제가 예술에 가한 억압을 일깨운다. 근대의 극장은 불온한 감각, 음탕한 욕망, 허황한 꿈이 재현되는, 금기와 불온의 공간으로 취급됐다. 숱한 예술가들이 정치적 욕망을 투신한 공간이기에 극장에는 시대 공기가 담겼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던 관객은 작품과 작가, 그리고 극장의 표상에 사로잡힌다. 시대는 다른 방식으로 극장을 공격했고, 극장은 그만의 다른 방식으로 답했다. 그래서 '블랙리스트' 사태는 새삼스럽지 않다. 늘 그래 왔듯 정치적 욕망과 시대적 억압이 뒤얽힌 덤불에서 극장은 새로운 정치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392쪽, 1만9천원. ▷지은이 이상우는… 연극평론가 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 메이지대 문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유치진을 통해 한국 근대극을 재조명한 '유치진 연구'로 유명하며 '근대극의 풍경' '우리 연극 100년' '영화, 대동아를 상상하다' 등을 공동집필 또는 공동번역했다.

2018-02-03 00:05:00

[책 CHECK]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 김서형 지음/ 학교도서관 저널 펴냄 이 책은 그림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역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반 고흐의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에서 초승달, 화성, 금성이 같은 하늘에 나타나는 '천체 결집현상'이 묘사된 것에서 출발해 별의 탄생 역사, 별과 관련된 신화, 인류의 우주관 변화 과정 등을 살펴보는가 하면, 모네의 그림에서 태양의 탄생과 태양이 인류의 예술에 미친 영향, 오늘날 지구와 태양의 관계를 살펴보는 식이다. 이 책은 빅뱅부터 혁명과 전쟁 이후의 현대사회까지 살펴보고 있다. 원숭이가 그려진 앙리 루소의 그림에서 다윈의 진화론과 논쟁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으며,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에서 신과 인간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나무와 관련된 북유럽 신화를 이해하고, 생명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언급한다. "인류의 기원과 현재, 미래가 한 화폭에 담겨 있는 이 그림처럼 세상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기원을 연구하고 고찰하는 것은 다양한 생명체와 인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220쪽, 1만4천원.

2018-02-03 00:05:00

[책 CHECK] 대구지오그라피

대구지오그라피 박진관 지음/ 도서출판 보물섬 펴냄 이 책은 저자가 4년 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 엮은 것으로 대구의 역사와 지리, 문화, 자연 등을 살펴보고 생생하게 되살려낸 저서다.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그 역사와 문화, 그 안에 살아있는 우리 삶의 스토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1982년 대구시가 펴낸 '대구의 향기'에서 대구를 서울, 부산에 이은 한국 3대 도시에 포함시키고 분지성 내륙도시, 정치도시, 군사도시, 상업도시, 섬유도시, 사과도시, 교육과 문화도시로 규정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대구가 3대 도시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라면서 "글을 연재하는 과정에서 대구 새로운 정체성 찾기에 골몰했고 그 결과 다른 지역과 비교되는 특색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도시 정체성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생물처럼 변한다고 본 저자는 대구의 자연지리에 주목하고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보물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일본의 자취, 2'28민주운동, 대구 사람 전태일'조영래 이야기 등을 사진과 함께 다루고 있다. 저자는 "다른 지역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과장하는 데 비해 대구는 자연과 역사'문화유산을 알리고 선양하는 데 인색했다"면서 "이 책이 대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08쪽, 2만5천원.

2018-02-03 00:05:00

한국의 경제 번영을 상징하는 서울 도심 빌딩. 매일신문 DB

한국 경제 재도약 위해 반드시 짚고 가야할 것들…『한국 경제 진단과 처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5년 홍상수 감독이 제작한 영화다. 1부에서 속물, 찌질남으로 묘사되던 주인공(정재영 분)이 장면을 바꾸어 2부에서는 지적이고 상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시선을 살짝 비틀어 정반대의 해석을 도출해 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듯한 이 책은 시점을 바꾸어(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경제 흐름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개발, 성장시대 때 통용되던 '성공 방정식'이 현실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 전'현직 관료 6명이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저자들은 해외의 경제 대가 7인을 지상(紙上)으로 초대해 그들의 혜안을 빌려 우리 경제가 고민해야할 일곱 가지 주제를 살피고 있다. 1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재벌 문제를 살펴본다. 기업 이론의 대가 로널드 코스(Ronald Coase)의 견해를 통해 우리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벌은 대중들이 '욕망하면서 혐오하는 존재'다.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찬사를 받아왔지만, 한편에서는 정경유착과 비리의 온상이라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코스는 '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기업의 순기능을 강조한 학자다. 기업가의 자원 배분 역할을 평가한 그의 이론은 정부 개입을 비판하고 재벌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활용되었지만 그렇다고 '정부 무용론자'도 아니었다. 코스는 '현재 우리 재벌들이 자원을 배분하는 기업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2장에서는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로부터 저성장의 원인과 대책을 듣는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발전의 동인을 설파한 혁신 전도사로 유명하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저성장의 장기화 추세다. 저성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재도약을 꾀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삶의 질'이라는 화두 앞에서 GDP 성장률 중심의 정책을 유지해 나갈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혁신 방향을 찾아 나설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를 호출하는 3장에서는 저소비가 문제인지, 과소비가 문제인지를 살펴본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소비 부족을 재앙으로 보고, 반대로 개인의 입장에서는 분수에 넘치게 소비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소비 경제 주체들이 모인 국가 경제가 오히려 저소비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것도 난센스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 효과는 지속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갤브레이스는 부자들의 무분별한 과소비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개인의 과소비를 부추기지 않고 경제 전체의 수요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에게 디플레이션과 맞설 용기'지혜가 있는지 살펴보는 4장에서는 윌리엄 필립스(William Daniel Phillips)가 등장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기억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경제 성장률을 올리려면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는 '필립스 곡선'은 이제 재해석되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성장률을 올려서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본과 유로존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강도 대책을 써가며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과연 디플레이션을 감당할 체력을 갖추었느냐'고 묻는다. 로버트 배로(Robert Barro)의 '조세 평탄화 이론'이 적용되는 5장에서는 정부의 재원 조달이 대해 살핀다. 재정수단으로 '조세'를 선택할지 '부채'를 선택할지 고민이 크다. 과거에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수가 저절로 늘어났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로존 재정 위기에서 보듯 국가 부채 문제는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부채가 누적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증세를 할 것인지, 국채를 발행할 것인지는 중요한 선택이다. 배로의 '조세 평탄화 이론'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살펴본다. 6장에서는 리처드 칸(Richard Kahn)의 혜안을 빌린다. '재정 승수'(Fiscal multiplier)를 통해서 경기 침체와 불황의 시기마다 구원 투수를 자임한 정부 재정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언제나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를 부활시켰고, 각국은 빚을 내서 경기를 뒷받침하는 재정 확대 정책에 매진했다. 현재의 장기 침체 국면에서 또다시 재정을 구원 투수로 내세워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마지막 7장에서는 행동경제학 대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나서 어떤 경제 정책이 좋은 정책인지 살펴본다. 오늘날 정책 입안자들은 요리책에서 레시피를 고르듯 정책들을 선택하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다. 현실의 경제 주체들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기 때문에 그런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경제 정책은 태생부터 허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소화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많은 경제 이론들이 존재한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그동안 익숙했던 경제 정책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경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자고 말한다. 한국의 최고 엘리트 관료들이 세계 경제 석학들의 지혜와 이론을 빌려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해법 도출의 유무를 떠나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2018-02-03 00:05:00

[반갑다 새책] 오빠 이상, 누이옥희

요절한 천재 시인, 소설가 이상을 문우나 예술가 친구가 아닌 가족의 시선으로 접근한 책이다.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상이 '나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지칭한 여동생 옥희 씨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으로 스토리를 풀어 간다. 작가는 2015년 우연한 계기로 이상의 여동생 옥희 씨의 둘째 아들이자 이상의 조카인 문유성 씨 부부를 만나면서 이상의 인간적인 체취를 좇는다. 특히 이상이 여동생 옥희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쓴 산문 '동생 옥희 보아라-세상 오빠들도 보시오'와 옥희 씨가 1962년, 1964년 각각 '현대문학'과 '신동아'에 쓴 회고기 '오빠 이상'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옥희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할머니(이상의 어머니)의 아들 사랑, 어머니의 애틋한 오빠생각을 풀어내는 것이다. 저자가 발굴해낸 손창섭 소설가의 흔적을 이상의 가족과 연결 짓기도 한다. 천재라는 베일을 걷어낸 인간 이상의 모습이 단락과 행간에 그대로 녹아있다. 한편으로 이상에겐 여성 편력이 심한 탕아, 제멋대로 산 광기 예술가, 천하 난봉꾼 등 비운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옥희 씨는 오빠를 삐딱하게 평가하는 세상의 시선을 향해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오빠는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사람이었다.' 348쪽, 1만8천500원.

2018-02-03 00:05:00

[반갑다 새책] 규슈 역사문화여행

유일상 건국대 명예교수가 일본 규슈의 구석구석 명소와 사연을 소개하는 규슈 역사문화여행 가이드북을 펴냈다. 이 책은 규슈를 깊게 이해하며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8개 장으로 나눠 규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여러 명소를 소개하며 규슈를 깊이 있게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규슈의 7개 현을 모두 다루면서 그 현에서 가볼 만한 곳과 그곳에 깃든 역사적 사연, 그곳과 관련된 인물, 최신 여행 루트까지 소개한다. 이 책의 특징은 그렇게 여러 지역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담긴 사연과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된 인물들,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다루는 데 관련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규슈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백제의 유민들이 정착한 곳이나 임진왜란에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장수들과 관련이 있는 곳,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의 흔적이 남은 곳은 규슈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431쪽, 2만원.

2018-02-03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나이 들어도 쉽지 않은 게 혀 간수하는 것이라

혀[舌] 풍도 입은 재앙이 나오는 문이고 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라 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수한다면 閉口深藏舌 (폐구심장설) 어딜 가도 몸이 편안하리라 安身處處牢 (안신처처뢰) 옛날 중국에 하약돈(賀若敦)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군으로서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공에 비하여 상이 작다고 여기저기서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혀를 함부로 놀려댄 죄로, 황제로부터 자살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목숨을 끊기 전에 그는 아들 하약필(賀若弼: 544~607)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꼭 강남(江南)을 평정하고 싶었다. 그 꿈도 이제 다 글렀구나. 부디 네가 내 꿈을 대신 이루어다오. 그리고 아들아, 나는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게 되었다. 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부디 혀를 잘 간수하여라." 말을 마친 그는 뾰족한 송곳으로 난데없이 아들의 혀를 콱 찔렀다. 붉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 후로 하약필은 혀를 놀리고 싶을 때마다 송곳에 찔릴 때의 그 아찔한 아픔을 떠올렸다. 대장군으로서 강남을 평정하여 아버지의 꿈도 이루어드렸다. 그러나 지위가 높아지자 점점 더 기고만장해져서 함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혀를 마구 놀려대다가 황제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의 경고도 자유롭고 싶은 그의 혀를 끝내 말리지 못하여, 결국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토록 모질게 훈계했는데도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말았으니, 입안의 혀를 통제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 위의 시를 지은 馮道(882~954)는 바로 그 혀를 아주 잘 통제했던 사람이다. 그는 당나라 말기로부터 자고 일어나면 왕조가 뒤바뀌던 5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조에 걸쳐 무려 11명의 황제들을 모셨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왕조의 현실적 당위성을 강조함으로써 벼슬살이를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위의 시에는 바로 그 오묘한 처세술의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해야 할 때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을 고이 보존하면서 높은 벼슬을 끝까지 유지한 비결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문학적 능력과 원만한 성품 같은 미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줄타기와 줄서기의 명수로 더욱더 널리 알려졌으며, 급기야 처세술에 능한 지조 없는 벼슬아치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군자는 말을 잘 한다고 해서 사람을 천거하지 않으며, 사람이 시원치 않다고 해서 그가 한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君子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인생을 풍도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의 시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송곳 같은 아픔으로 기억하고 싶다. 과거에 무심코 했던 말들이 낱낱이 다 부메랑이 되어 유턴을 하고, 어젯밤 술김에 한 말들이 아차, 하고 떠오를 때마다, 풍도의 시를 되새김질하게 되는 이유다. 벌써 환갑이 지났는데도 그 게 아직도 안 되느냐, 이 세상 천하 미련한 것아!

2018-02-03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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