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책 CHECK] 조기교육 쇼크

조기교육 쇼크 윤재성 지음 / 현사랑 펴냄 영유아와 초등학교 아동기는 아이의 좋은 인성 및 성장을 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 엄마들의 36.5%가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잘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답했던 64.4%의 엄마들은 과연 자녀 양육과 좋은 교육 방법을 잘 알고 있을까? 이 엄마들이 알고 있다는 지식은 과연 진실일까? 상당수의 엄마들은 아이 양육과 교육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육과 교육에 관해 많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엄마들이 잘못 알고 있는 육아와 자녀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무분별하게 지나친 조기 사교육을 시키는 경우 아이의 정신세계는 심한 상처를 받는다.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먼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자녀만 공부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는 자녀는 성인이 되어 성공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지나친 조기사교육을 시키는 경우, 아이의 뇌에 이상이 올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둘째, 적기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394쪽, 1만8천800원.

2018-04-07 00:05:00

[책 CHECK] 야윈 돼지의 비밀

야윈 돼지의 비밀 트레이시 만 지음 / 이상헌 옮김 / 일리 펴냄 사람들은 "다이어트는 효과가 있고 건강에 좋지만 비만은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각종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다이어트는 효과가 없고, 건강에 나쁠 수 있고, 비만은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칼로리를 제한하는 다이어트가 장기적 체중 감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 연구를 소개하고 왜 그런지 설명한다. 또 기존 다이어트 방식이 최적의 건강을 위해 필요치 않으며 해롭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단순히 음식을 제한하는 다이어트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사례도 제시한다. 해결책으로서 음식을 제한하는 고통 없이 적정 체중에 도달해 유지할 수 있는 12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칼로리를 제한하지 않으며 의지가 필요하지도 않고, 몸무게를 삶의 중심에 두는 고통스러운 자기부정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략이다. 이 책은 덧붙여 몸무게 집착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만인을 차별하는 '체중으로 낙인찍기'(weight stigma)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비만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할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삶의 초점을 몸무게에서 건강과 웰빙으로 옮길 것을 권하고 있다. 304쪽, 1만5천원.

2018-04-07 00:05:00

손태룡 음악문헌학회장이 자신의 저서 '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우륵에서 박태준까지 대구, 1,500년 음악사…『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

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 손태룡 지음/ 영남대출판부 펴냄 대구에서 음악의 출발은 언제부터일까? 물론 음악이 인류 역사의 출발과 함께했으니 구석기, 신석기시대까지 소급될 수도 있겠다. 음악문헌학회 손태룡 회장은 대구 음악의 기원을 삼한시대까지 소급하고 있다. 이 시기를 고대국가의 태동기라고 본다면 국가 차원의 제천(祭天)의식이나 축제가 나타난 시점을 음악의 출발로 해석한 것이다. 이렇게 싹을 틔운 대구의 음악은 가야의 우륵을 만나 '현(絃)의 미학'을 꽃피웠고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향가(鄕歌)라는 독창적 장르까지 만들어냈다. 이 책은 대구에서 음악이 어떻게 형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가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있다. 좁게 보면 '대구의 음악사'이지만 넓게 보면 '대구의 인문학 도서'로 봐도 충분할 듯하다. 우륵에서 박태준에 이르는 대구의 1천500년 음악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대 삼한시대부터 음악 전통 이어와 이 책은 대구지역의 한국음악사와 서양음악사를 함께 다루고 있다. 근대 이후 대구 국악이 어떻게 형성되고 양악이 언제, 어떻게 도입돼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가를 밝혔다. 삼한의 옛 영토 중 하나였던 대구는 일찍이 음악의 '감도'(感度)가 높았던 도시였다. '밤늦도록 술 마시며 놀았다'는 삼국지위지동이전의 기록이 이 시기임을 볼 때 고대 경상도 지역에서도 무천(舞天), 영고(迎鼓) 같은 제의, 축제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601년 경상감영이 설치되고 대구가 영남의 거점도시로 부상하면서 지역의 음악 문화도 수준과 격(格)을 높여갔다. 1827년 양악이 유입되면서 1910년대부터는 전문 음악인이 배출되었고, 음악 단체들이 활발히 음악 활동을 전개하며 근대음악 도시로서의 기반을 구축했다. 미술, 문학, 무용 같은 종합예술도 이런 환경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저자는 튼튼한 이론적 기초 외 각 장르마다 사진, 도표를 실어 독자들이 흥미롭게 대구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기생·명창·권번 등 전통음악 탐색 대구 음악의 첫 장을 여는 제1부는 대구 전통음악 총론 성격을 띠고 있다. 1장에서는 진한과 변진의 음악 상황, 가야국과 신라의 음악, 통일신라의 공연 활동을 다루었다. 고대 경상도 음악 문화를 대표한 대가야의 가야금이 신라에 흡수됨으로써 영남의 음악은 한층 폭넓고 차원 높게 발전해 갔다. 가야를 병합한 신라는 포괄적인 음악 문화를 형성하며 '향가'라는 특색 있는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후 고려, 조선시대 수도가 개성과 서울로 옮겨졌지만 경상도에서 음악의 발전은 계속되었다. 수도를 서라벌(경주)에 두었던 통일신라의 문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대구의 음악을 살피기 시작하는 2장에서는 기생조합 및 권번, 향기(鄕妓)의 역사적 흐름, 일제강점기 기생 단체들을 살피고 있다. 이어 3장에서는 배설향, 이화중선, 박록주 등 영남에서 동편제의 맥을 이어간 지역의 '여류 명창'을 다룬다. 또 '대구아리랑'을 음반으로 취입한 최계란을 통해 음악 창작 도시로서의 대구 전통을 확인하고 있다. ◆악보에 녹아든 대구의 애국·민족정신=2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대구의 근대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1900년 사문진에 최초로 피아노가 들어오는 과정부터 관악기 등장, 대구 최초의 악대 활동에 대해서도 살핀다. '근대음악 총론'에서는 독자들이 한눈에 사료를 읽어 내려갈 수 있게 연대순으로 자료들을 정리했다. 저자는 근대화 초기 대구지역 서양음악은 매우 역동적이었다고 강조한다. 혼성합창의 창시자 박태원, 한국인 최초 바리톤 김문보, 영남지역 최초의 소프라노 추애경, 작곡과 합창운동의 선구자 박태준, 한국 양악사의 큰 별 현제명, 독일 가곡의 파종자 권태호, 사랑과 생명을 위한 바리톤 이점희, 피아노 음악계의 대모 이경희 등이 초창기 대구 음악을 활발하게 이끌어가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3부 '대구음악 탐구'에서는 모두 13편의 논문을 실었다. '예술사 기술 방법론'부터 '영남음악가의 유성기음반 고찰' '대구지역 요정의 맥(脈)'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의 음악 활동'까지 그동안 저자가 학계나 언론사에 투고, 기고했던 자료들을 모았다. 저자는 700쪽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대구의 음악을 정리했지만 모든 작업은 '대구 정신'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모든 격동기 지역의 시대정신이 음악에 투영됐기 때문이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대구 10월 항쟁, 2·28 민주학생운동은 근대 여명기 대구의 정서를 관통해온 역사적 사건들입니다. 당시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구의 애국, 민족정신이 음표로, 악보로 생생하게 녹아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67쪽, 3만5천원. ◆손태룡(孫泰龍)=1975년 영남대 기악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음악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음악사에 관심을 가져 영남대 대학원에서 한국음악학 과정을 마쳤다. 지금까지 총 28권의 음악학 전문연구서를 정식으로 출간했고, 200여 편의 음악사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는 음악문헌학회 일을 맡고 있으며, 음악사와 관련한 기고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2018-04-07 00:05:00

[반갑다 새책] 민청학련

민청학련/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지음/ 메디치 펴냄 영구집권을 꾀했던 박정희 정권에 온몸으로 맞선 청년학생들의 850일, 한국 민주화운동의 씨앗이 된 민청학련의 모든 것을 밝힌 책이다. 1972년부터 한국 사회를 장악했던 유신체제는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고 극단적인 권위주의체제로 돌입한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였다. 7년간 이어진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1979년의 부마민중항쟁이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의미 있는 대규모의 저항이 있었다. 바로 민청학련 항쟁이다. 유신이 선포되기 전부터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는 청년학생과 민주인사들은 산발적인 저항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72년 10월 유신 선포를 기점으로 대학생들은 대대적인 반독재 학생봉기를 계획했고, 이를 돕는 민주인사들과 접촉하며 투쟁 수위를 높여갔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민청학련 항쟁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의의까지 모든 것을 정리했다. 민청학련의 당사자들로 구성된 민청학련계승사업회가 200여 회원들의 구술 기록 및 80개의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민청학련 항쟁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의의를 정리했다. 민청학련이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갖는 위치를 재조명하고 그에 걸맞은 제 위치를 찾기 위한 첫걸음 의미를 갖는다. 710쪽, 3만2천원.

2018-04-07 00:05:00

[반갑다 새책] 조선 선비 당쟁사

조선 선비 당쟁사/ 이덕일 지음/ 인문서원 펴냄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조선의 건국 세력인 신진사대부는 계유정난(수양대군의 쿠데타)을 거치면서 훈구파로 변질된다. 이런 공신세력을 비판하면서 조정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 사림이다. 성종 이후부터 과거시험을 통해 정계에 등장한 사림은 훈구파의 공격인 사화(士禍)로 여러 번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세력을 복구하여 재도전했으며, 명종~선조 무렵에 정권을 장악했다. 드디어 권력의 핵심부에 등장한 사림은 단결하여 이상적인 조선 사회를 만들었을까?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색당쟁'이라 불리는 분열이었다.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이어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리고 '사색당쟁'의 끝은 노론의 일당 독재와 세도정치, 그리고 망국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사림의 등장에서 세도정치까지'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권력을 두고 어떻게 싸웠는가, 그 과정에서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1차 사료를 근거로 명쾌하게 정리한다. 당쟁의 시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민낯,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효종의 북벌을 둘러싼 서인과의 갈등, 현종 때 예송 논쟁을 통한 왕의 정통성 시비, 숙종 연간의 여인천하와 드라마틱한 환국 정치, 사도세자 살해와 정조와 노론의 대결 등 숨 가쁘게 전개되는 조선의 정치사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재미있게 풀어냈다. 424쪽, 1만8천500원.

2018-04-07 00:05:00

1970년대 학생들이 박정희 카드섹션을 하는 장면. 매일신문 DB

새대열이 쓴 대구 환골탈태 반성문…『대구,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다』

대구,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다/ 27명 공저/ 살림터 펴냄 이 책은 27명이 함께 칼럼 형식으로 묶었다. 그래서 이 27명의 공동저자를 '새대열'(새로운 대구를 열자는 사람들)로 정했다. 대구를 바꾸어 나라를 살리자는 정신으로 창립된 지역 중심 지향 유권자 단체로 보면 된다. 지방분권시대, 새로운 대구를 열 수 있는 참신한 자치세력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체 슬로건은 '대구 First, 청년 First, 여성 First'. 27명의 공동저자는 책 서두에 '대구가 쓰는 반성문'을 작성했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제 우리 대구시민은 지난 반세기의 '상처뿐인 영광'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대구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시민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대구를 정치적 다양성과 문화적 개방성이 있는 진취적 도시로 환골탈태시키기 위해 분투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박정희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한민국 비전 실현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으겠습니다." 27명의 공동저자는 대구의 학계, 법조계, 언론계, 교육계, 문화계, 의료계, 예술계 등 박정희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동안의 굴절된 대구경북의 정치, 경제, 문화를 두루 살피면서 허심탄회하게 개인사를 들려주기도 하고, 태어나고 자란 고향 대구에 대한 예리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더불어 무한 애정을 담아 대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살펴본다. 공동저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만 해도 대구경북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는 흥미롭다. 전체 4부로 구성하고 있다. 제1부는 ▷새로운 대구경북으로 태어나야 한다(홍종흠 전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경북의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배한동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대표) ▷박정희 신화 지우기(우호성 전 매일신문 기자) ▷'꼴통' 소리 그만 듣자(김상태 전 영남일보 사장)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허노목 변호사) ▷보수의 심장, TK 정치의 대분화(박재일 영남일보 편집부국장) ▷대구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제2부는 ▷컬러풀 대구, 구호에서 현실로!(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안경 쓴 자들의 도시(이준석 경북대 경영학부 4학년) ▷화합과 통합의 시대를 열자(김진철 한의사) ▷'유랑민' TK(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새로운 '大邱'를 위하여(강민구 수성구 의원) ▷부흥! 지역혁신!(김정모 경북일보 논설위원) ▷대구발 정치혁명과 대한민국의 장래(김형기 교수). 제3부는 ▷한 그루 큰 나무, 거북이의 꿈(김성순 동학연구가) ▷능금꽃 피는 대구의 희망을 그려본다(신재순 화가) ▷온전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새로운 대구를 어떻게 열 것인가(최봉태 변호사) ▷2·28 도시 대구와 18세 투표권(이동관 매일신문 광고국장) ▷영남대학을 시민의 대학으로 돌려놓기 위해(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친박 독점 13년에 잃어버린 지역 자생력, 어떻게 살릴 것인가(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 ▷'대구'라는 배타성(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제4부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문학(김용락 시인) ▷반교육의 온상, 학교 그 부끄러운 자화상(이석우 전 대구교육연구소장) ▷박정희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성우 구미도량초교 교사)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지방분권(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 ▷대통령의 권력 비만, 그 다이어트 요령(김윤상 경북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분단지역에서 통일국가로(이우백 한맥리더십아카데미 대표). '새대열' 공동저자들은 책 부록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앞에서 대구가 쓰는 반성문'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원망하고 나무라기에 앞서, 우리는 대구시민으로서 먼저 스스로를 반성하고자 한다"고 고백했다. 292쪽, 2만원.

2018-04-07 00:05:00

[이종문의 한시 산책] 가마 문을 닫고서야/ 양만리

가마 문을 닫고서야 양만리 가마 문을 닫고서야 산 빛을 어찌 알랴 閉轎那知山色濃(폐교나지산색농) 산에 핀 꽃 그림자 무논 속에 떨어졌네 山花影落水田中(산화영락수전중) 울긋불긋 물속의 꽃, 자세히 살펴보니 水中細數千紅紫(수중세촉천홍자) 낱낱이, 산꽃들과, 맞다, 데칼코마닐세 點對山花一一同(점대산화일일동) *원제: 水中山花影(수중산화영): 물속의 산꽃 그림자 남송(南宋)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인 양만리(楊萬里·1124~1206)의 시에도 눈부시게 환한 봄날이 왔다. 이 세상 천산 만산에 새싹들이 영치기 영차 한꺼번에 죄다 들고 일어난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대지의 신이 갓 돋아난 눈록(嫩綠)에다 점점 더 시퍼렇게 덧칠을 해댄다. 시퍼렇게 환(幻)을 친 바로 그 산 빛을 배경으로 하여, 형형색색의 온갖 꽃들이 아예 맨발로 뛰어나와, 한바탕 트위스트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 울긋불긋한 산꽃들의 그림자가 무논에 판박이로 들입다 떨어져서, 낱낱이 다 몽환적인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 "대지가 제 속의 분홍색 다 토해 놓았나?/ 청도의 봄은 곳곳마다/ 어질어질 분홍색도 가지가지.// 하야스레붉으죽죽분홍 산길./ 보라스럼밝으레연분홍 무덤./ 파르므레붉으노르끼분홍 마을./ 달콤맵싸레연두비스무리분홍 밭머리./ 어디든 죄지어 흔들리는 마음의./ 거므스레하야스름분홍 꽃나무들.// 저 한참 더 흔들리는 분홍 일색(一色)." 이하석 시인의 '봄색(色)'이다. 아아, 이 미친 봄날의 지랄발광하는 흥취를 타고 앞산 뒷산의 '분홍 일색'이 다 들썩거린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가마를 타고 가마 문을 철커덕 닫아놓은 채로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 있다. 가마를 타는 재미가 제아무리 좋다 해도, 캄캄한 어둠 속에 앉아 있기보다는, 설사 매 맞으며 간다고 하더라도 가마 메고 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을, 봄날도 이토록 환한 봄날에 가마 문을 닫고 앉아 있다니? 저 사람에게 천지간에 눈부신 봄날이 와서 산 빛이 제아무리 푸르다고 한들, 그 푸른 산에 '분홍 일색'이 으쌰으쌰 다 들썩거리고 있다고 한들, 그 '분홍 일색'들이 물속에 거꾸로 뛰어내려서 낱낱이 다 황홀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 한들, 도대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봄날이 오며는 뭐 하노 그자… 꽃잎이 피면은 뭐 하노 그자"다. 누가 말했던가? '연꽃 피는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들린다'고.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는 사람에게는 연꽃 피는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감각의 문을 철커덕 닫고 있는 사람들은 마을 앞 연못에 해마다 연꽃이 소담스레 피어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되다 만 시 한 수 읊어주고 싶다. "그대/ 그 죄를 다,/ 다 어이 감당할래,/ 엄청 눈물겹고 아프도록 부신 봄을,/ 아 그냥 다 보내놓고// 죄인 줄도/ 모른/ 그 죄".(이종문, '그 죄')

2018-04-07 00:05:00

김을련 작 '푸르름 속으로'

[내가 읽은 책]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태준, 문학동네(2018)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태준, 문학동네(2018) 춘곤(春困)인가? 소생과 시작의 계절이 되면 왠지 따라오는 피로감도 짙어진다. 볼륨감 있는 책이 어쩐지 부담스럽다. 이럴 때는 말라깽이 시집을 한 권 들어본다. 가볍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가벼움의 무중력 상태로 이끌려 들어간다. 시인은 청량감 있는 긍정의 운을 띄운다. '시가 누군가에게 가서 질문하고 또 구하는 일이 있다면 새벽의 신성과 벽 같은 고독과 높은 기다림과 꽃의 입맞춤과 자애의 넓음과 내일의 약속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 한다.' 2018년 2월 문태준은 새 시집에 계절과 사랑과 어머니를 곱게 담아 정성스레 내어놓았다. 3년을 숙성시킨 일곱 번째 작품집이다. 그는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이래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을 출간했다. 이 시집들에 수록된 작품들로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현대 시단에 유의미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금년에 나온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에는 '일륜월륜(一輪月輪)-전혁림의 그림에 부쳐'부터 '산중에 옹달샘이 하나 있어'까지 63편의 시가 분홍빛 책자 안에 석류알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신작을 통해 만나본 그의 시 세계는 애잔하고 포근하고 아름답다. 오늘 감꽃 필 때 만났으니 감꽃 질 때 다시 만나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중에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의 사이에 감꽃이 마르는 반나절은 마애불이 닳아 없어질 억겁의 시간과 이어지고 소통한다. 작가는 모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관계에 대한 사유, 존재와 존재 사이의 주고받음에 대한 생각을 넘어 너와 나란 분별, 경계를 무너뜨렸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념즉시무량겁이라 했던가. 찰나의 생각이 영원과 하나가 되는 그사이에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기가 막히는 삶의 연속에서 기나긴 기다림을 무료한 일상으로 바꾸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 '앓는 나를 들쳐 업고 소낙비처럼 뛰던'(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듯이, 마주 보고 있어도 그리운 연인을 기다리듯이, 혹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잃어버린 자식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우리는 잔잔한 시간 사이를 유영한다. 오솔길을 걸어가 끝에서 보았네 조그마한 샘이 있고 샘물이 두근거리며 계속 솟아나오는 것을 뒤섞이는 수풀 속에서도 이 오솔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네 중에서 애상(哀想)이 아름다운 것은 슬픔 속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오솔길 끝에서 만나는 샘물처럼 우리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너와 나의 분별을 허물고 생사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 자연은 우주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 속에서 끝없이 사모함으로 모든 것을 마음에 모실 수 있게 된다. 사모의 정이 있는 누구에게나 이 가벼운 우주를 권하고 싶다.

2018-03-31 00:05:00

야정 서근섭

두 권에 펼쳐진 반세기 서화 인생 파노라마…『야정 서근섭 교수 서화집(상·하)』

야정 서근섭 교수 서화집(상·하)/ 서근섭 지음/ 이화문화출판사 펴냄 우리 전통적인 예술 양식인 서예와 문인화는 화선지(한지) 위에 침묵으로 말하는 먹을 위주로 고매한 인간 정신을 드러내 보이는 예술이자 도라 할 수 있다. 이 양식에는 절제에서만 발견되는 기하학적인 은유의 미학이 자리매김하며, 인간적인 이 미학에는 절제를 통한 균형과 조화, 투명한 빛이 중요한 미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서예가는 기하학적인 구도와 틀 속에 '마음의 그림'을 압축하고 절제해 그 나름의 빛깔로 형상화하는 예술가이다.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예술가의 경우 신비롭고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추구, 일상적인 경험의 공간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삶의 진폭을 넓히고 고양시켜주는 새 지평의 조형언어를 향한 꿈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다. 원로서예가 야정(野丁) 서근섭은 바로 그런 예술가이다. ◆반세기 서화세계의 변모 총체적 집성한 '서화집' 발간 서근섭 계명대 명예교수의 서화집(상'하)은 반세기 넘게 서예와 문인화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서화세계의 변모와 개성적인 예술적 성취 과정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상권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이태수 시인의 서문과 정상옥 전 동방대학원대 총장'이중희 계명대 교수의 글을 싣고, 1974년부터 2012년까지의 서화작품 도판을 연대순으로 담았다. 상권에는 또한 도판에 곁들여 권원순 미술평론가, 심재완 전 영남대 명예교수, 문종선 '서예문화' 발행인 등의 작품평을 실었다. 하권에는 그의 서화세계에 대한 민학림 중국향주미술가협회 주석'손병철 서예평론가 등의 글을 실었으며, 도판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추상회화적인 조형성으로 나아가는 현대적 감각의 독창적인 최근 작품을 실었다. 또한 정점식 전 계명대 예술대학장과 정태수 선생의 작품평, 신문기사, 그리고 인보와 참고도판 작품활동 기록 등도 담겨 있다. 이태수 시인은 서문에서 "그는 오랜 전통이 쌓이면서 굳어져버린 형식과 내용의 한계를 첨예한 감수성과 빼어난 에스프리, 치열한 실험의식으로 무너뜨리고 뛰어넘는 창조적인 조형언어들을 빚으면서 참신한 미학적 공간을 열어 보이는 매력을 발산한다"면서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현대적인 감각과 발랄한 상상력으로 국제적인 문맥에 놓일 수 있는 새로운 필법과 화법을 지향하면서 장르의 벽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거의 어김없이 전통적인 서예와 문인화에 뿌리를 두면서 그 정신의 깊이와 높이에 맥을 대는 양면성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고 평했다. 야정은 "지금껏 해온 작업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편집을 해놓고 보니 아쉬운 감이 든다"면서도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작품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전통에 뿌리 두면서 현대회화 접목…독창적인 세계 구축 전통서화로 출발한 그의 작품은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며 새로운 길 트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근래의 작품은 화선지와 안료뿐 아니라 천(광목)과 다양한 물감 등 새로운 재료를 끌어들였다. 특히 최근에는 회화의 추상표현주의 기법이나 설치작품과 같이 평면을 일탈해 입체성으로 그 영역을 과감하게 확대하는 파격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 때문에 그의 문인화는 단순한 선과 과감한 붓 터치 등으로 대상의 내면을 형상화하거나 대담한 구도, 생동감 넘치는 필획이 두드러지는 비구상 작업으로 비약되기도 한다. 서예작품 또한 문자와 회화의 접목, 문자의 상형에로의 회귀나 그 조형성의 극대화로 나아가는 새로운 화법을 펼쳐 내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그의 실험은 소밀, 고졸, 균제 등 기존에 중시돼온 개념을 뛰어넘기 시작했으며, 재료의 다양화를 통한 회화성 떠올리기로 변모하면서 점차 콜라주나 흘리기 등 현대회화의 기법들이 구사되고, 전통적인 문인화와 현대적인 문인화가 공존하는 화면, 구상화와 추상화가 공존하는 화면, 서예와 회화가 한 공간에 표현되는 화면을 함께 끌어안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서화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선친 죽농 서동균 지도로 시화 입문 야정은 선친 죽농(竹農) 서동균 선생의 재능을 타고나 그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지도를 받았고, 그 예술혼을 이어받았다.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까지 선친으로부터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며 '따라하기'(전수)에 무게를 싣는 한편으로 안진경, 구양순, 저수량, 육조의 해서와 왕희지의 행서 등을 두루 익히고 섭렵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석고문' 등을 통한 전서, '장천비' '사신비' '조전비' 등을 통한 예서 연마에 매진했다. 선친의 지도에 힘입어 이런 힘든 과정들을 거친 그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각광받기 시작했다. 1978년 선친이 별세한 뒤 그는 그동안 천착해온 고전에서 자신의 세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초서와 갑골문, 금문, 청대 하소기의 예서와 행서 등 한문 오체의 빼어난 개성적 작품까지 연마의 폭을 넓혔다. 사군자, 산수, 인물, 기명절지 등에 이르는 표현기법을 갈고닦았으며, 국전 등을 통해 서예가로 지명도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부터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는 서예와 문인화를 발표해 이 분야의 개척자로 떠오르는 한편, 파격적인 구도와 죽농의 영향을 넘어서는 대범한 필획 구사 등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일궜다. ◆후학 양성과 서단 발전에 이바지 야정은 후학 양성과 서단 발전에도 이바지해왔다. 1992년 계명대에 서예과가 개설되면서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으며, 같은 대학교 예술대학원에 서예 전공을 신설(미술학과장)해 100여 명의 석'박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출범한 교남서화연구회의 후신인 영남서화회를 주도한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계승해 이끄는 죽농서단 이사장으로서도 40년이 훨씬 넘게 활약해왔다. 1923년 석재 서병오가 개설하고 죽농 서동균이 운영해오던 영남서화원을 1973년부터 맡아 지도'운영해 왔다. 2009년에는 한국 서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 최초로 동방대학원대학교 서화심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373쪽)'하(269쪽), 24만원.

2018-03-31 00:05:00

[책 CHECK]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변혁

한국 현대시의 전통과 변혁 이태동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문학적 해석으로 문학사를 쓰고 있는 이 책은 문학에 예시된 사회사나 혹은 사상사를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특정 작품에 대한 인상과 평가들로 이루어진 일반 문학사와는 다르다. 한용운에서 문태준까지 한국 현대시의 내면적 구조와 그 실체를 다양한 퍼스펙티브(Perspective)를 통해 심층적으로 탐색한 비평적 학술서이다. 한국 현대시가 100년을 훌쩍 넘기고 있지만, 문학사의 반열에 올라 있거나 오를 수 있는 수준의 작품이 아직도 난해함 때문에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숨은 실체와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밝혀지지 못하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이 책은 한국 현대시를 비평적으로 조명하고 설득력 있는 해석을 통해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숨은 뜻을 새로이 밝힘으로써 일반 독자와 작품들 사이에 놓인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시대적으로 중요한 작품들 안팎의 현실을 통시적이면서도 공시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풍경은 물론 지난 1세기 동안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직면해야 했던 인간성의 위기와 시대적인 흐름이 이들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어 나타났는가를 압축적으로 밝히려고 했다. 508쪽, 3만9천원.

2018-03-31 00:05:00

[책 CHECK] 근본 없는 페미니즘

근본 없는 페미니즘-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김익명'강유'이원윤'국지혜'이지원'히연'정나라'박선영 지음/ 이프북스 펴냄 2018년 지금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위드유(With You) 열풍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2015년부터 '메갈' 또는 '워마드'라 불리는 전혀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기존의 페미니스트들과 결을 달리하며 '미러링'이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숱한 충격파를 던졌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페미니스트 세대의 시작과 흐름을 기록했다. 2015년부터 2018년 1월까지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타임라인을 담았다. 이 타임라인에는 메르스라는 질병으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각종 젠더 담론이 들어 있다. 옹달샘 사건, 서울 왕십리 골뱅이 사건, 'PD수첩' 그들은 왜 그녀들에게 등을 돌렸는가 관련 논란, 맥심코리아 2015년 9월 호 표지 논란, 조작되거나 이중잣대로 보도된 뉴스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생리대 논란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들 사건에 대한 기록을 통해 한국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활동으로 페미니즘을 실현했는지를 보여준다. 227쪽, 1만5천원.

2018-03-31 00:05:00

대구의 역사, 풍물, 인문을 소재로 한 상희구 시인의 장편 연작시집 '신발 거꾸로 신고 나온 시에미'가 출간됐다. 상희구 시인이 금호강변 아양루에서 향토사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100편의 연작시 대구 향토사 읇다…『신발 거꾸로 신고 나온 시에미』

신발 거꾸로 신고 나온 시에미/ 상희구 지음/ 오성문화 펴냄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트로이전쟁을 다룬 대서사시로 알려져 있다. 2만7천803행의 시에는 그리스 연합군과 맞서 싸운 트로이군의 무용담이 잘 묘사돼 있다. 역사라는 다큐 영역과 수사(修辭) 영역인 시가 만나 역사 서사시로 결합한 것이다. 성격과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대구에도 지역의 역사와 풍물을 소재로 연작(連作) 시집에 몰두하는 시인이 있다. 최근 '신발 거꾸로 신고 나온 시에미'를 펴낸 상희구 씨다. 100편의 연작시에는 태조 왕건의 팔공산 전투와 대구의 성곽, 역참, 봉수 등 대구의 향토사를 다루고 있다. 시(詩) 형식이지만 역사서로 내용도 충실해 일독하는 것만으로 대구 역사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텍스트가 토속 방언으로 쓰여져 대구의 원형질에 더한층 다가설 수 있다. ◆대구 사투리로 역사, 인문학 형상화=호머가 트로이에서 용감히 싸우는 트로이군에 집중하듯 저자의 모든 시재는 대구의 역사, 인문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대구의 DNA를 복원하는 소재로 저자는 대구 토속 방언을 택했다. 이 사투리로 대구의 언어, 대구의 정서, 대구의 서사, 대구의 인문(人文)을 투박하게 복원했다. 저자의 역사시 출발은 1989년 '발해기행'이었다. 1987년에 등단한 시인은 그 설렘과 기쁨을 역사시로 풀어냈다. 1996년 '요하의 달'로 이어진 그의 역사기행은 2010년에 이르러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외국 역사(주로 민족사)를 작업하다 어느 순간 고향 대구가 떠올랐어요. 민족사를 찾아 대륙을 누비는 것도 좋지만 나의 DNA가 살아 숨 쉬는 대구를 장편 서사로 옮겨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40년간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 시냇가, 길모퉁이의 추억은 원형대로 살아 있어요. 이런 추억과 감상들을 시로 끄집어내기로 한 거죠." 시인이 화두로 삼고 있는 '대구시지'는 이번 호까지 모두 7집까지 나왔다. 앞으로 10집까지 펴낼 예정이다. 1집은 대구의 서정(抒情), 2집은 장터 풍물, 3집은 대구의 음식과 명소, 4집은 대구 인물, 5집은 경상도 사투리의 속살, 6집은 대구의 사찰, 재실, 서원, 문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앞으로 8집에 신(新)대구 십경(十景), 9집에 민속 세시풍속, 10집에 팔공산을 비롯한 산과 강이 담기면 저자의 '대서사시'는 막을 내린다. ◆4부에 걸쳐 대구 향토사 복원='올개 국민학교 3학년짜리/ 순돌이란 늠이 학교에 갈라꼬 책가방을 챙기다가/ 무망간에 지 에미한테 쫓아가서/ 에미 목덜미를 부둥키 안고는 엄마 내 젖좀 도고/ 칸다/ 어미가 하도 얼치거이가 없어서….(중략) '점점 어물어진다'로 시작하는 시집은 모두 4부 100편으로 구성됐다. 1부 '경상도 사투리의 속살'에서는 토속 방언의 진수를 보여준다. '비 맞은 중 맹쿠로 구시렁거리 쌓는다' '입덧 빌나기 하는 년 치고 아들 놓는 년 못봤다'처럼 다소 거친 사투리들이 여과 없이 퍼부어진다. 전통시대 시정(市井)에서 통용되던 말이지만 시로 옮겨지면서 연로한 독자들에겐 향수로, 젊은 독자들에겐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정제되지 않은 사투리 원형이 쏟아지는가 하면 '비리닉닉하다' '껄찌이 묵는다'처럼 밑에 주석을 봐야 해독이 가능한 사투리들도 있다. 저자는 "대구의 사투리는 의성(擬聲), 의태(擬態)의 표현이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층(層)이 많아 표현이 매우 정교하다"며 "어떤 시에서는 절제된 사투리 시어 한두 개로도 어린 시절을 그대로 복원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2부는 대구지역의 '전설'을 다룬다. 주로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소개된 지역의 일화를 싣고 있다. '홑어미 위해 놓은 징검다리' '못된 시에미 질딜인 거신 미느리' 등은 모두 '대구의 전설과 설화'에 원문으로 전하는 이야기들이다. 이 전설들은 시인의 필력을 입어 '조청처럼 찐득하고 농익은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려 태조 왕건 설화'를 다룬 3부는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패한 왕건의 도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주(敗走) 동선을 따라 벌어졌던 일화들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역사 이야기에 접어들면서 난무하던 사투리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대신 시인의 문체는 진지 모드로 변한다. 역사 사실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4부는 '대구의 성곽, 역참, 봉수'에 대해 다룬다. 첫 장에 지역의 성터, 역(驛), 봉화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지역 문단에서도 시인의 작업을 '모어'(母語)로 읽는 연작 장시(長詩)로 표현하며, 대구의 인문, 지리, 풍물을 고향의 언어로 맛깔나게 풀어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후기 '시어(詩語)와 임계속도'에서 자신의 시작(詩作)을 '임계속도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모든 대구 역사 지식, 인문학 지식, 풍물 지식을 활주로로 끌고 나와 임계속도를 넘겨 마하(Mach)의 영역으로 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때쯤 대구도 호머의 대서사시는 아니더라도 전집(全集) 역사시집을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31쪽, 1만5천원.

2018-03-31 00:05:00

[반갑다 새책] 세계사 아는 척하기

미국에 있는 '블루스의 성지'는 이집트가 기원이 된 지명이라고? 인도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은 누구일까?' 왜 독일 주변에는 '~부르크'라는 지명이 많을까? 세계사를 공부하거나 세계 지도를 보다 보면 생기는 의문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계사를 익히게 한다. 지리, 지명, 지도에 얽힌 수수께끼는 무엇보다 관련 역사를 알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앞서 말한 '블루스의 성지' 멤피스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4대 문명의 발생' 과정을, 인도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을 알려 주면서 '헬레니즘 문화'를, 독일 주변에 '~부르크'가 많은 이유를 밝히면서 '프랑크 왕국의 분열'을 설명하는 식이다. 이 책은 문명의 탄생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대략적인 세계사의 흐름을 지리, 지명, 지도의 비밀을 풀면서 설명한 새로운 유형의 역사서다. 세계사에서 큰 영향을 미쳤던 39가지 중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된 지리, 지명, 지도에 얽힌 수수께끼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지도에는 사건과 관련된 지명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 이동 경로, 지배 영역의 변화, 해당 연도 등이 표시되어 이해를 돕는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시간 여행과 세계 여행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252쪽, 1만3천800원.

2018-03-31 00:05:00

[반갑다 새책]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구성애 강사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 교육이 한때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지만, 성교육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부담스러운 숙제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성폭력 문제가 떠오르면서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새로운 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 씨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을 출간했다. 성인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선에 비판이 있는 것처럼, 왜 남아(男兒)만을 겨냥하느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손 씨는 지금까지의 성교육이 '기울어진 막대기'와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아들과 성을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을 기록하면서 성교육을 아이와 일상에서, 실제 경험에서 대화로 실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성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성 의식과 성평등을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상에서 숱하게 부딪칠 법한 다양한 성 관련 상황과 물음에 대한 답을 담았다. 2차 성징을 축하하는 존중파티부터 연애성적표, 자위예절 등 저자가 실제로 아들 성교육 때 실천한 내용도 보인다. 260쪽, 1만4천원.

2018-03-31 00:05:00

대학경전 전문(1천763자)

학문의 시작과 끝엔 대학·주역 있다…『주역의 관문 '대학'』

주역의 관문 '대학'/ 청고 이응문 지음/ 담디 펴냄 주역학의 종장(宗長,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사의 친손자인 청고 이응문(사진) 대연학당 원장((사)동방문화진흥회장)이 주역이야기3을 펴냈다. 청고의 주역이야기1은 '주역을 담은 천자문', 주역이야기2는 '세상을 담은 천자문 자해(字解) 건(乾)과 곤(坤)' 편에 이어 이번 주역이야기3은 자기수양을 위한 학문(爲己之學) '대학'을 주역의 관점으로 풀어준다. 이 책은 야산 선사가 대학의 착간을 고정한 '대학착간고정'을 정본으로 삼았다. 야산 선생은 "학문의 시조리(始條理)는 대학이요, 학문의 종조리(終條理)는 주역"이라고 정의했다. 대학이 유학공부의 시발로서 시조리가 되고, 주역이 유학공부의 종결로서 종조리가 된다는 뜻이다. '시종여일'(始終如一) 즉, 처음과 끝이 한결같음은 무궁한 태극(太極)의 도이다. 이를 공자는 일관지도(一貫之道)로 표명했다. 대학을 '시조리'로 삼고, 주역을 '종조리'로 삼음은 학문언행문사철(學問言行文史哲)을 순차적으로 닦는 칠서(七書: 대학'중용'맹자'논어'시경'서경'역경)의 독서방법에서도 잘 나타난다. '종즉유시'(終則有始)라 하듯이, 유학의 최고봉인 주역은 기본입문서인 대학을 낳는 토대가 됐다. 대학의 삼강령과 팔조목도 3변하여 8괘를 펼치는 역유태극(易有太極)의 전개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은 주역경전의 밑바탕인 도서(圖書)와 팔괘(八卦) 등에 의해 대학 경전의 핵심인 삼강령과 팔조목의 수리를 풀어낸다. 주역의 수리는 대학의 핵심인 격물과 치지를 이해하는데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 전문 64절목도 주역의 대성 64괘에 상응한다. 문장풀이에 있어 가급적 주역 경문에 연계해 살피도록 하고 있다. 야산 선사는 '대학착간고정서기' 해설을 통해 자기 수양을 위한 학문으로 대학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대학의 큰 메시지에 대해 이렇게 풀어낸다. 『무릇 사물은 밖으로부터 내게 온다. 내가 사물에 이르러(格) 그 물(物)에 내재된 이치가 내게로 와 앎에 이른다. 그러려면 먼저 성의(誠意)'정심(正心)해서 수신(修身)해야만 한다. 성실한 뜻과 바른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고 그 깊은 뜻을 터득하겠는가. 오직 자신의 정성과 바름 여하에 딸려 있을 뿐이다. 성의'정심'수신이 된 뒤에야 진실로 근본이 확립되어 물건이 저절로 내게 와 앎을 통달하게 된다. 대학에서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야산 선사의 친손자인 저자는 "대학에서 자기 수양을 배움의 제1덕목으로 삼고, 한 나라의 주체가 국민인 지금 우리 모두 올바른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대학을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는 31일(토) 오후 3시 대연학당 강의실에서 열리며, 4월 7일(토)부터 매주 토요일에 이 책을 바탕으로 저자의 강의(문의 053-656-4964)가 펼쳐진다. 319쪽, 2만원. ※용어설명 대학착간고정=주자의 '대학장구'처럼 대학을 경문과 전문으로 나누고, 대학 원문을 경문 1장과 전문 10장의 체계에 따라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1'2'3으로 열리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좇아 대학의 경문을 구성한 책. 총 10장으로 된 대학 전문이 4절목(춘하추동 4시 운행 변화에 따라 구성)씩 16문단, 64절목이다.

2018-03-31 00:05:00

유길준

[정혜영의 근대문학]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언문일치

150여 년 전 일본에서 알파벳, 즉 로마자로 일본말을 표기하자는 주장이 나온 일이 있다. 일본인의 지극한 서양 사랑이라고 섣부르게 비난하기에는 말과 글 일치를 향한 이 시기 일본 사회의 열망이 너무나 강렬했다. 일본은 우리처럼 오랫동안 말과 글이 달랐다. 자국 문자인 가나문자가 있었지만 소수 지배층은 한문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글을 썼으며 관공서의 공문 역시 모두 한자로 표기되었다. 중국을 거쳐 들어온 서양 책 역시 한문으로 쓰여 있었다. 당연히 문화와 지식은 소수 지배층의 것이었다. 나라는 하나였지만 문화도, 말을 적는 글도, 그 글을 사용하는 사람도 둘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다. 근대적 일본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보기에 서양에 버금가는 강력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일본인이 서양의 앞선 지식을 골고루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과 글을 일치시키고, 누구나 쉽게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자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로마자 표기라는 충격적 발상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이 발상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 대신 말과 글 일치를 위하여 한자와 가나문자를 적당하게 배합한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어 말과 글을 일치시켜갔다. 말과 글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은 근대초기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은 그 시작을 알리는 글이다. 유길준은 1881년 신사유람단 일원으로 메이지 유신이 한창이던 일본을 방문하여 서양을 배웠고, 1883년에는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지식으로서만 배운 서양 근대를 직접 경험하였다. '서유견문'은 바로 그 지식과 경험의 결과물이다. 책은 세계 지리 및 서양의 근대적 개혁, 유럽 기행문을 내용으로 담은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을 세계 중심으로 믿고 있고, 남녀는 유별하다고 배워왔던 조선 독자들에게 서양의 근대적 풍경을 담은 이 책은 새로우면서도 혁명적이었다. 내용 이상으로 혁명적인 것은 문체였다. 한문 대신 한자와 한글을 섞어 만든 새로운 문체를 사용한 것이다. 그 새로운 문체는 근대 수용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던 일본과 근대 서양을 두루 거친 유길준의 깨달음의 결과였다. 한글과 한자를 섞은 새로운 문체로 글을 쓰는 일이 유길준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학을 습득하여 한문을 줄곧 사용해왔기에 국한문체 글쓰기는 외국어 글쓰기만큼 어렵고 힘들었다. 그러나 조선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서양을 배우도록 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읽기 쉬운 문체로 써야만 했던 것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대통령 개헌안이 주목을 끌고 있다. 헌법의 한자식 표현을 한글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 주된 뜻이었다. 개헌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여기서 일단 뒤로 미루어 두기로 하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 문체를 사용하고 일본식, 한자식 표현을 배제한 것에 일단 초점을 둬보자. 새로운 문체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개헌안은 혁명적이며 민주적이다. 특권층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공문서를 국민 일반에게 개방하는 첫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주도하는 시대정신이기도 할 것이다.

2018-03-31 00:05:00

뭉크 작 '죽음의 침대'

[내가 읽은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창비/ 2012)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창비/ 2012) 우리는 가끔 타인의 장례식에 가긴 하지만 정작 죽음이 자신의 실존적 영역 깊숙이 다가와 있다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그것은 단지 남의 일인 것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며 비로소 죽음이 내 삶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그것은 한순간 승리에 도취한 장군들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도록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외침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에 있더라도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겸손한 자각이 필요하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소설이 바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188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죽음문학'의 고전이다. 평소 죽음은 나의 현재와 관계없는, 결코 오지 않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만 여기며 살아온 중년의 성공한 법률가 이반 일리치가 갑작스럽고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음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반 일리치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족과 의사들의 태도가 그에게 심한 존재적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의 분량은 생각보다 적지만 전하고 있는 내용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이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동료들이 갑작스러운 그의 부고를 신문을 통해 접하고 나누는 대화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보다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관계된 승진을 먼저 떠올렸고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반 일리치 역시 살아 있었더라면 똑같은 모습을 보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힘든 과정에서 가까운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에 좌절한다. 반면에 자신을 돌봐주는 하인 게라심의 진실된 마음과 행동에는 고마움을 느낀다. 게라심은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라며 죽음을 향해가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고 그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을 의심 없이 답습하며 살아가는 명예욕과 자만심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삶에 대한 이런 태도는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많은 반성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그때까지는 살아온 이기적인 방식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성찰적 자세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다.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심이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111쪽)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성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며 다른 자세로 삶을 의미 있게 가꾸어야겠다. 더구나 물질이 지배하는 요즘에는 도구적으로 전락해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요구된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남아있는 삶을 나 자신의 성숙뿐만 아니라 타인을 향한 이해와 공감의 시간으로 채워가도록 톨스토이는 죽어가는 이반 일리치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으리라.

2018-03-24 00:05:00

역자 정성희(가운데 검은색 줄무늬 옷)박사가 조나단 폭스와 함께 뉴욕에서 진행했던 플레이백 시어터 워크숍.

각본 없는 드라마가 궁금하다면…『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조나단 폭스 지음/정성희 옮김/연극과 인간 펴냄 미투 운동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특히 연극계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연극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대안의 하나로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를 주목하는 연극인들이 적지 않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연극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플레이백 시어터가 우리 사회의 곪은 상처를 치유하고 정화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플레이백 시어터를 창안하고 보급한 연출가, 조나단 폭스(Jonathan Fox)가 쓴 'Acts of Service'를 번역한 것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극은 사회를 위한 헌신과 기여 행위'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대본 없이 배우와 관객이 주고받는 즉흥 연극 플레이백 시어터는 기존의 대본 중심, 배우 중심의 연극에서 탈피해, 정해진 대본 없이 관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객과 배우가 즉흥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을 말한다. 대본 없는 연극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소 황당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연극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기록문학 이전의 구술 문화에 의존했던 고대 시대 즉, 예술과 힐링 사이의 경계가 없었던 고대의 연극적 환경을 현대에 회복하고자 창안된 새로운 현대 연극의 흐름이다. 사람들이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재연해내고 각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는 플레이백 시어터야말로 고대 연극 방법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를 바탕으로 조나단 폭스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목표는 '개인의 이야기를 공동체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로 풀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정성희 박사는 6년 전 뉴욕에서 이 책의 저자인 조나단 폭스와 함께 플레이백 시어터 제작에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경험에 기반하여 힘겨운 현실에서 이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정에서 번역하게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증발된 이야기, 감춰진 이야기 등 되살려 책 1부에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사상적 근원과 논리를 풀어내고 있으며, 2부에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제작에 대한 실제적인 작업 기법을 다루고 있다. 3부에서는 향후 논의되어야 할 플레이백 시어터의 과제를 제언한다. 부록에서는 공연 실황을 수록하고 있다. 책의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레이백 시어터에 대한 이론과 실제의 전반적인 이해에 관한 책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번역서의 제목은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이며, 부제는 플레이백 시어터의 특징을 나타내는 '관객과 만들어가는 대본 없는 연극'이 된다. '플레이백'(Playback)이라는 의미는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이야기를 재생해서 나누는 과정이 플레이백이 된다. 또 배우의 입장에서는 관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연기해서 되돌려 준다는 의미에서 플레이백이다. 우리 사회에는 외면당한 이야기들, 나눌 곳이 없어 증발된 이야기들, 감추어 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소외된 이야기들이 있어왔고, 그 소외된 이야기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서툰 언어로나마 진심을 담아 나누고 경청하면서, 우리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 전반이 고통받고, 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플레이백 시어터의 역할은 큰 기대를 모은다. ◇플레이백 시어터의 근원'기법'과제 담아 역자인 정성희 박사는 미국 뉴욕대학교(NYU)에서 교육연극을 전공하고, 경북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연극 연출자의 시각과 함께 교육적 사고와 철학을 갖고서 늘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연극으로 풀어나가는 작업과 연구를 20년 넘게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유학 시절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에서 이민자 및 소수민족들과 함께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공동체 치유 작업들을 끊임없이 전개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문화, 저소득층, 비행 청소년과 같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연극으로 사회문제를 치유하며 교육하고 있다. 교육연극에 관한 한 역자는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그가 거주하고, 주로 활동하는 대구와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와 계명대 겸임교수이며 한국교총의 교육연극 전국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교육연극개발원 대표이기도 하다. 정성희 박사는 '교육연극의 이해'라는 책을 2006년 출간하면서, 국내 최초로 교육연극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한 바 있다. 이 책은 연극학도들의 필독서로서 자리매김하였고, 교육연극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번역서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해' 역시 국내에서 플레이백 시어터의 이론과 실제를 다루는 첫 번역서로서 연극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리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확인되고 있듯,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왜곡되어 있는 국내 연극계와 사회 전반에 이 책이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366쪽, 2만원.

2018-03-24 00:05:00

[반갑다 새책] 그 아이에게 물었다

청소년기, 그 엇나가는 시간을 다독일 시집이 출간됐다. 2015년부터 꾸준히 출간된 한상권의 '창비청소년시선' 열두 번째 책이다. 교단에서 오랜 시간 청소년들과 함께해 온 시인은 아이들과 함께 묻고, 꿈꾸고, 생각의 기둥을 세우는 빛나는 순간들을 생각의 꾸러미에 담아냈다. 시집엔 엇나가는 청소년들의 시간이 거칠게 녹아 있다. 시인은 그 어긋남의 시간을 '나'와 '나', '나'와 '너',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다양한 대화를 통해 담아냈다. 그런데 이 대화는 동문서답처럼 자꾸 주제에서 비껴 나고, 한 개의 정답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외 규정이 많아 자꾸 빗나가는 '문법 시간'처럼 말이다. 대화는 문제없어 보였던 일상에 틈을 내고 세상과 자신을 눈여겨본다. 대화들은 뚜렷한 답이 없고 이렇다 할 끝도 없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옳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는 이 시들은 엇나가고만 싶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저자는 현재 대구 심인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시와 연극이 있는 삶을 공유하고 있다. 109쪽, 8천500원.

2018-03-24 00:05:00

[반갑다 새책] 송진환 시집 하류

시집 '못갖춘마디' 송진환 시인의 여섯 번째 작품집이다. 송 시인은 1978년 현대시학에 시가, 2001년엔 매일신문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돼 문단에 나섰다. 수록된 시들은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에, 기쁨보다 슬픔에 중심이 향한다. 시인은 어둡고 슬픈 곳에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며 그곳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시집 작품의 태반은 아픔, 상처로 채워졌다. 시들이 우울한 시상(詩想)을 머금은 데 대해 저자는 "1970년대 암울한 시대가, 1960년대 가족의 궁핍이 나를 어둡게 몰고 갔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서'에서 "40년을 달려와 이제 여섯 번째 시집을 냈다"며 "별반 이룬 것도 없지만 부끄러움도 없다"고 적고 있다. 다행히 시는 아픔만으로 끝나진 않는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새 살 돋는 기쁨이 그 안에 녹아 있다. 이것이 시인이 독자에게 주는 유일한 서비스라 믿기에, 매번 그걸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낮은 곳, 버려진 것, 어두운 곳, 그늘진 곳으로만 향하는 시, 그러기에 무겁다는 느낌이 가슴을 압박해 오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 무게 속에 우리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며 다시 펜을 잡는다. 104쪽, 1만원.

2018-03-24 00:05:00

겸재 정선이 그린 '대은암'.

[이종문의 한시 산책] 참 오래된 담장 가에

참 오래된 담장 가에 崔慶昌(최경창) 문 앞의 수레와 말 안개처럼 사라지니 門前車馬散如烟(문전거마산여연) 잘 나가던 그 권력도 그리 오래 가지 않네 相國繁華未百年(상국번화미백년) 깊은 마을 적요 속에 한식날 지나는데 深巷寥寥過寒食(심항료료과한식) 수유 꽃만 노랗구나, 참 오래된 담장 가에 茱萸花發古墻邊(수유화발고장변) 이 시의 원래 제목은 '대은암'(大隱巖)인데, 대은암은 청와대 뒤쪽 인왕산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대한 바위 이름이다. 바로 그 바위 앞에 지족당(知足堂) 남곤(南袞'1471~1527)의 집이 있었다. 위의 한시는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이 그의 옛집을 지나가다가, 권력 무상에 대한 가슴 뭉클한 소회의 일단을 시적 구도 속에 포착한 작품이다. 그런데 가만, 남곤이라니? 도대체 남곤이 누구였더라? 남곤은 원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서 사림파(士林派)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박은(朴誾), 이행(李荇) 등 빼어난 시인들과 어울리면서 문명을 크게 떨쳤던 당대 최고의 풍류 시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교적 도덕정치의 깃발을 내걸고 급진적인 개혁을 주도하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되면서, 그의 운명이 엉뚱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다. 조광조가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남곤을 소인배로 몰아붙이자, 도분이 난 남곤은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 등 몹쓸 인간들과 손을 잡고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 등을 일망타진했다. 일이 뜻밖에도 크게 벌어지자, 그는 적지 않게 후회가 되었던 모양이다. 귀양 간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리려고 하자 '죽일 것까지는 없다'고 건의를 했다. 건의가 묵살되어 조광조가 죽자, '소인이 군자를 죽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묘사화 등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높은 벼슬이 주어져서 마침내 영의정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원래 자신과 같은 편이던 사림파들을 몰살하는 일에 가담했으므로 조선조 내내 '저 죽일 놈'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좌우간 한때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누리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던 남곤! 그가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대은암에 있는 그의 집 앞은 찾아오는 수레로 완전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지만 권력이 죽어 흙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은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늘은 한식날,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아주 뜻 깊은 날인데도 마을 전체가 적막하기 짝이 없다. 퇴락한 담장 가에 산수유 꽃만 저 혼자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남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죽은 사람이었다. 그는 임종을 맞이하여 '평생 동안 마음과 행동이 어긋났다'면서 비석을 세우지 못하게 했다. 평생 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모조리 다 불사르게 하고, 자제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헛된 명성으로 세상 사람들을 속여 왔다. 너희들은 내가 쓴 글들이 세상에 전해져서, 나의 죄를 더 무겁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2018-03-24 00:05:00

문우이자 단짝이었던 이상(왼쪽)과 김유정. 매일신문 DB

文友 이상·김유정, 함께한 예술혼…『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김유정/ 홍재 펴냄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문학 천재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요절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 이 둘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81주년이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긋고 떠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예술혼을 이해하며 한날한시에 함께 죽으려고 결의할 만큼 단짝이었다. 먼저 사망한 이는 김유정이다. 병마에 시달리던 그는 1937년 3월 29일에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쓴 편지 '필승 前'을 끝으로 외롭고 신산했던 삶을 마감했다. 김유정이 사망하고 19일이 지난 4월 17일 이상이 일본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운명의 장난치고는 둘에게 잔인한 해였다. 김유정 29세, 이상 27세였다. 연이은 비보에 둘의 가족과 벗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얼마 후 합동추도식으로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했다. 둘 다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문학가였다. 기성 문학계에서는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 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로 치부했다. 그런 상황에서 둘은 가난, 고독과 싸우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나니 후대가 둘을 천재 문학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상과 김유정의 첫 만남은 1935년 봄이었다.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첫 조우가 이뤄졌는데, 둘의 성격은 판이했다. 김유정은 낯을 심하게 가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고, 이상은 말 그대로 모던보이 투사와도 같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독 잘 어울렸고 이후 우정은 점점 깊어졌다. 아마도 둘 다 몹시 가난한 데다, 폐병과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던 동병상련의 정 때문에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영혼의 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상과 김유정이라는 두 천재가 문학을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주옥같은 글 중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엄선해 당시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삶의 순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속어와 방언 역시 그대로 살려서 작품의 맛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두 사람이 사후 그의 벗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둘을 추억하는 글을 함께 실어 감동과 가슴 먹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소설가 채만식은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00자 원고지 1장에 대돈 50전을 바라고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며 소설과 수필을 썼다"고 회상했다. 시인 김기림은 "이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그는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이 없다.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책의 목차는 ▷프롤로그-이상'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 ▷이상 다시 읽기 ▷김유정 다시 읽기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 순으로 싣고 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두 사람의 살아생전 마지막 대화를 잠시 소개한다. ▷이상=김 형(김유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이 형(이상)! 이 형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이상=김 형(김유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이상은 김유정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그러나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김유정은 소설을 더 쓰고 싶어서 죽기 싫었다. 하지만 1937년 3월에 김유정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4월에 이상도 이승을 등졌다. 둘은 저승에서 만났을까. 320쪽, 1만5천원.

2018-03-24 00:05:00

[책 CHECK]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김영사 펴냄 이 책은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요리라는 철학으로 다양한 자연식을 소개해온 저자의 첫 에세이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요리 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밝힌다. 운명적으로 요리사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 권위 있는 요리학원 원장이자 각종 매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인의 삶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 이유,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방황과 탐구, 세계적인 명상학교 브라마쿠마리스에서의 수행과 생명의 법칙을 깨닫게 된 과정. 쉽지만은 않았던 그 시간들을 치열하게 통과하며 지금에 이른 저자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라고 말한다. 그것은 '밥 먹는 것'과 '숨 쉬는 것'이다. "지금도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며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다"는 저자는 '평화가 깃든 밥상'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 '풍석 서유구 선생의 생명 밥상' 등의 저서가 있다. 304쪽, 1만5천원.

2018-03-24 00:05:00

[책 CHECK] 금호강에는 개미귀신이 산다

금호강에는 개미귀신이 산다 권오용 지음/ 만인사 펴냄 권오용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집에는 금호강을 배경으로 한 연작 시와 고향인 문경과 관련된 시 등 총 65편이 실려 있다. 시인은 고향의 영강을 닮은 금호강 부근에 산다. 시 기반 또한 고향에 대한 기억과 상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경 오일장이나 다리, 문경시를 흐르는 낙동강 지류, 생가, 혈육, 지명 등이 등장한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됐지만 시인의 마음은 여전히 고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에는 또 금호강변을 산책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쓴 시가 많은데, 시 '개미귀신에 홀리다'의 모티브가 되는 '개미귀신'의 거처 또한 금호강이다. '아양루에 올라'를 읽으면 누(樓)에 오른 자만의 고유한 시선과 여유가 느껴진다. 저자는 "오늘은 기억 속 어제와 닮아 있다. 읽던 책을 덮고 가끔 강변길에 나선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물과 기억들, 새로운 풍경이 시가 되었다"고 했다. 해설을 쓴 김상환 시인은 "그의 시는 금호강과 영강 사이에 있다. 신화와 현실, 부재와 현존, 신체와 영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고 평했다. 시인은 2014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섬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28쪽, 9천원.

2018-03-24 00:05:00

김형기 경북대 교수가 정책 에세이집을 펴냈다. 이 책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새로운 한국 발전 모델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박정희 발전 모델'의 상징인 포스코. 매일신문 DB

분권형 복지국가 실현, 한국형 모델 최우선 과제…『새로운 한국 모델』

새로운 한국 모델/ 김형기 지음/ 한울 펴냄 낡은 국가 발전 모델을 극복하고, 보수와 진보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찾아 고민해 온 경북대 김형기 교수가 펴낸 정책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경제 제3의 길' '새로운 진보의 길' '지방분권 국가의 길'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개헌 논의가 한창인 정국에서 우리가 어떤 발전 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은 전혀 다른 궤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저자는 새로운 한국 모델의 최우선 과제로 '분권형 복지국가 실현'을 들고 있다. 이 원칙을 전제로 분권 개헌, 노동시장 유연성 실현, 고복지'고부담 체제 구축, 소득 주도 성장체제 확립 등 새로운 의제들을 정리했다. ◆진보-보수 합의 한국형 발전 모델 찾아야=저자는 1997년 외환위기로 박정희 모델 효력이 종언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한국 모델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즉 개발 독재, 수출 주도 성장, 재벌 지배 체제, 중앙집권 체제로 요약되는 박정희 모델의 특징은 1980, 90년대 민주화, 자유화 과정에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것. 박정희 모델이 붕괴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왜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을까? 김 교수는 5년 주기로 반복되는 정권 교체를 주범으로 든다. 과거 정부가 도입한 새로운 경제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 부정되는 과정이 반복된 것이다. 지속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마련하는 일, 저자는 첫 단추로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 정립을 든다. 2012년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과거의 성장 우선, 효율화 같은 정책 대신 경제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공약한 바 있고, 진보 진영에서도 분배, 평등보다 성장, 효율성, 혁신을 중시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망이 밝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발전 모델은 '공생적 시장경제'=책의 첫머리에 저자의 관심은 '동아시아 발전 모델'에 미친다. 기존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을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한 변형으로 보고, 이를 일본 모델, 중국 모델과 비교하며 그 특징을 밝히고 있다. 또한 박정희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낡은 한국 모델의 효율과 위기, 그리고 위기 이후 전환 과정을 분석한다. 아울러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 과정에서 낡은 한국 모델이 붕괴한 요인을 살펴보고 새로운 한국 사회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4장에서 저자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이루는 새로운 경제 질서로 '공생적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공생적 시장경제는 기존의 한국 모델을 구성했던 개발 국가모델과 그것이 해체되고 새롭게 등장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한국 경제 '제3의 길'을 말한다. 저자는 공생적 시장경제로 나가는 정책 기조로 ▷신자유주의를 넘어 신진보주의로 ▷금융 주도 경제를 넘어 지식 주도 경제로 ▷하향식 경제를 넘어 상향식 경제로 ▷노동시장 유연성과 참가적 노사관계를 들고 있다. 수도권 집중체제의 극복도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현재도 경제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는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면 새로운 한국 모델에 '지방분권-다극발전체제'라는 가치를 반드시 담아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지역대표형 상원제, 국민소환제, 재정조정제 등을 제시한다. ◆분권 개헌 이뤄내지 못하면 역사 퇴행=저자는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성과를 한국적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연구와 실천에 앞장 서왔다. 이런 접근에 기초해 한국 모델의 비전과 정책을 ▷국가시스템 ▷헌법질서 ▷경제질서 ▷성장체제 ▷지역전략 ▷복지체제 ▷공공성 등의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한,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 모델'과 그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한다. 서문에서 "박정희 모델의 긍정적 유산인 산업정책과 금융 통제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부정적 유산인 성장 지상주의, 재벌 지배, 중앙집권 체제를 넘어서는 보수와 진보 간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정권이 교체돼도 이 합의에 기초한 한국 모델의 근간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개헌'이라는 국가 과제를 앞둔 시점에 발간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국민의 강력한 열망으로 새 정권이 출발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한국 모델을 이끌어낼 적기라는 것. 바람직한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일의 첫 단추는 '분권형 복지국가'로의 개헌임이 틀림없다.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 정국, 이번에 분권 개헌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범죄'가 아니겠는가. 319쪽, 2만원.

2018-03-24 00:05:00

추사 김정희 '세한도'.

[내가 읽은 책]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김정희』 조정욱

조정욱,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김정희』, 아이세움, 2007.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은 외국 편과 한국 편으로 나누어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한국 편은 김홍도, 이중섭, 장승업, 정선. 다섯 번째로 추사 김정희 선생을 소개했다. 미술가들을 다룬 책에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인물 김정희'라고 소개한 것이 뜨악하다. 글씨가 아니더라도 나 등 적지 않은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제목을 '조선의 글씨를 세운 김정희'라고 했을까.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이란 글씨에서 그 의문을 풀 수 있다. 그 글씨는, 그림이 곧 글씨고 글씨가 곧 그림임을 보여준다. "김정희에게 글씨와 그림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림을 그릴 때도 글씨를 쓰듯이 그렸고, 글씨를 쓸 때도 그림을 보듯 시각적인 효과를 충분히 한 후에 붓을 들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선생의 그림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한다. '세한도'는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제주도에 유배된 자신의 처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권력을 누릴 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하니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겨울의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자 이상적이다. 그는 역관으로 중국을 갈 때마다 선생이 부탁한 책을 구해다 준다.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만학집', '대운산방문고', '황조경세문편' 등을 기꺼이 구해주었으니 선생으로서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쓰다가 영감이 떠올라 그린 것이 세한도다. '세한도' 우측에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고 적혀 있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로 '우선, 먼저 이것을 감상해 보라'는 뜻이다. 그림 속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있고 집이 한 채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공자의 말을 편지에 인용하다 추운 바람 속에 서 있는 자신의 처지를 늙은 소나무에, 어린 소나무는 이상적의 마음을, 황량하고 쓸쓸한 처지를 집 한 채에 담았음이다. 이상적은 선생으로부터 받은 세한도를 중국으로 가져가 중국 학자들의 시와 조선 학자들의 시를 덧붙이는데 그 길이가 1천388센티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그림이다. 선생의 그림을 말할 때 '세한도'뿐만 아니라 '불이선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과천에 살 때 그의 곁에서 공부하며 시중을 들던 달준이를 위해 그려준 것으로 '난맹첩' 이후 20년 만의 작품으로 글씨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추구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선생의 생활 태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열 개의 벼루와 천 개의 붓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따뜻한 봄날이다. 책이랑을 걸어 나와 옥산서원, 은해사, 백흥암으로 떠나자. 그곳에 가면 추사 선생의 그림은 아니더라도 기품 있는 글씨를 만나볼 수 있을 테니까.

2018-03-17 00:05:00

긍정적 생각이 노화를 막는다…『늙지 않는 비밀』

늙지 않는 비밀/ 엘리자베스 블랙번'엘리사 에펠 지음/ 이한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최근 미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은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중 1명은 우주에서, 다른 1명은 지구에서 1년을 생활한 뒤 나타난 신체 변화를 분석했다. 우주인 동생의 골밀도는 감소했고, 근육은 위축됐으며, 척추는 늘어났다. 이 가운데 연구팀이 가장 놀란 변화는 텔로미어(telomere)였다. 우주인 동생의 텔로미어가 지구에 남았던 형보다 길어졌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에 반복되는 염기서열로, 텔로미어의 길이가 길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밝혀져 있다. 실험대로라면 지구에서 더 빨리 늙고, 우주에 머물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장수의 비밀이 우주에만 있지는 않다. ◆노화의 비밀, 텔로미어 마모에 있다 텔로미어의 길이와 장수의 상관관계를 다룬 '늙지 않는 비밀'(The Telomere Effect)이 나왔다. 텔로미어의 분자학적 특성과 텔로미어를 합성하는 효소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를 발견한 공로로 캐럴 그리더, 잭 쇼스택과 함께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와 건강심리학자 엘리사 에펠 교수가 텔로미어를 연구하면서 밝혀낸 사실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우리 몸의 염색체에는 유전자 DNA가 있다. DNA는 마치 두 가닥 실을 꼬아놓은 모양이다. 세포가 분열하려면 DNA가 복제돼야 하는데, DNA 복제효소는 한 가닥씩 복제해 다시 두 가닥을 만들어 낼 때마다 염색체 말단이 짧아진다. 두 가닥 실을 묶었다가 매듭을 잘라내 다시 두 가닥을 만들 때마다 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을 할 때 유전정보의 소실을 막고자 유전자 DNA 말단에 붙어 있는 염기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가닥을 말한다. 유전 정보를 담지 않은 이 염기 서열은 DNA 말단에 수천 개가 반복돼 있으며 DNA가 복제될 때마다 잘려나갈 뻔한 유전자 DNA를 대신해 떨어져 나간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그 길이가 짧아진다는 얘기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어느 정도 줄어들면 세포는 분열을 멈춘다. 건강한 세포가 더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우리 몸에 노화가 시작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텔로미어가 짧을수록 더 일찍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텔로미어의 마모는 노화와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텔로미어는 짧아지기만 하는 걸까. 과학계는 염색체 DNA는 기존 DNA로부터 생화학적으로 복사되어야만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떤 생물은 전에 없던 곳에서 DNA를 만들어냈다. 원생동물의 하나인 테트라히메나에서 세포분열 때마다 짧아진 텔로미어 끝에 DNA를 덧붙여서 원상 복원하는 효소, 즉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를 찾아낸 것. 불행히도 인간에게는 계속 텔로미어를 늘릴 수 있는 텔로머라아제가 충분하지 않다. 수명을 연장하거나, 노화를 지연시키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텔로머라아제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는 없을까. 어떤 영양보조제, 어떤 화장품은 텔로머라아제를 늘린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런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분열을 멈추지 않는 암세포를 상상하면 된다. 암세포는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하지만 텔로머라아제가 있어서 죽지 않고 증식할 수 있다. 억지로 몸속 텔로머라아제를 늘린다면 암 발병 위험이 커진다. ◆건강과 장수를 부르는 습관 '웃으면 복이 온다' '스트레스는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조언은 지겹다. 책은 텔로미어를 짧아지게 하는 상황과 텔로미어를 보호하는 습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스트레스는 건강의 적이다. 저자들은 잘 알려진 '명제'를 연구로 증명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를 두려워하고, 위협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이란 기대로 자신 있게 대처하는 사람보다 텔로미어 길이가 짧다고 한다. 냉소적 적대감, 우울증, 불안도 같은 결과를 나타낸다. 스트레스는 면역계를 손상하고, 면역세포(T cell)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부지런하게 일하는 면역세포는 분열을 빨리하고, 텔로미어 길이가 빠른 속도로 짧아진다. 결국, 세포가 늙으면 면역계는 더욱 약해지게 된다.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대사성 건강과 인슐린 내성에도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복부지방은 텔로미어를 짧게 한다. 짧은 텔로미어 때문에 인슐린 내성은 커지고, 당뇨병 위험이 커진다. 지방세포는 염증 유발 물질을 분비해 면역세포를 더 늙게 한다.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적절한 수면도 텔로미어의 활성과 관련이 있다. 운동은 체내 항산화 물질을 늘려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는다. 일주일에 3번, 45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잠을 충분히 자면 배가 덜 고프고, 감정 기복이 덜하며, 텔로미어 소실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최소 7시간 수면을 권한다.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과일, 견과류, 해조류로 짜인 식단과 오메가3가 풍부한 연어'다랑어를 추천한다.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 흰 빵과 당을 첨가한 음료 등은 당연히 적(敵)이다. 부모의 텔로미어는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아이는 수정과 동시에 모든 유전물질을 넘겨받는다. 임신기의 스트레스'흡연이나 열악한 환경도 모두 물려받게 되고, 동시에 아기의 텔로미어가 침식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단백질, 코엔자임 Q, 엽산 등 모체의 영양 상태나 자궁관리, 나아가 건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양육법까지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똑같은 나이라도, 누군가는 늙어보이고 병들었는데, 누군가는 탄력 있는 피부에 건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건강과 장수, 젊음과 행복의 비결은 세포에 있다. 460쪽, 1만7천원.

2018-03-17 00:05:00

[책 CHECK]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 예이르 리페스타드 글'김희상 옮김/ 그러나 펴냄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것은 비효율적인 제도이다. 죄가 명확한 사람한테는 그냥 처벌을 내리면 되는 것을 굳이 변호사라는 제도를 둬서, 변호사로 하여금 범죄자를 변호하게 한다. 또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변호를 거부하는 사람한테도 형사재판의 경우 강제로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 범죄자의 입장에서 변호를 하도록 민주주의는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비록 비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비효율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논의를 하고, 이성적인 판단, 최대한 옳은 결정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한다. 우리 인간이 역사를 발전시켜 오면서 최대한 오류를 피하고 바르게 결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 중 하나가 변호사 제도인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파괴하려 했던 브레이비크라는 테러리스트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변호하는 변호사의 역설과 고민이 담겨 있다. 브레이비크의 변호인이었던 저자는 이 책에서 브레이비크가 무엇 때문에 이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고, 또한 자신은 왜 변호를 맡게 됐는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244쪽, 1만5천원.

2018-03-17 00:05:00

[책 CHECK] 빼앗긴 들에서 봄을 지키다

빼앗긴 들에서 봄을 지키다 심후섭 지음/ 해조음 펴냄 이 책은 이상화기념사업회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의 시와 그 정신을 전해주기 위해 펴낸 것이다. '할배가 들려주시는 이상화 시인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상화 시인이 살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을 비롯해 3'1만세운동 참여 과정, 친구인 백기만과 현진건 등과 동인 '거화' 구성 과정, 여러 시작(詩作) 활동의 배경 등이 시인이 남긴 작품과 함께 그려져 있다. 맨 끝에는 이상화 연보가 수록돼 있다. 이상화기념사업회 공재성 이사장은 "팩트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번 검토했고, 초등학생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을 구사해 엮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이기도 한 집필자 심후섭 동화작가는 "이상화 시인의 인간적 고뇌가 어떻게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독자들에게 보다 의미 깊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앞으로 이상화 전기 독후감 쓰기 대회에 활용된다. 200쪽, 1만2천원.

2018-03-17 00:05:00

후쿠시마 원전 재앙 인류에게 던진 논란…『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간 나오토 지음/ 김영춘'고종환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 반도에서 동쪽으로 70㎞ 떨어져 있는 해저 29㎞ 지점에서 지축이 요동쳤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된 규모 9.0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도쿄 및 수도권 일대 건물까지 무너뜨린 지진은 초대형 쓰나미를 만들며 해안도시를 덮쳤다. 지진해일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면서 엄청난 핵 재앙으로 발전했다. 수천, 수만 채의 건물, 교량, 자동차들이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에 세계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7년.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해일 사태는 여전히 공포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행정 수반이었던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부터 19일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온갖 정부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 시스템을 비판하고 원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하고 있다. ◆방사능 공포 vs 효율적인 전기 생산 수단=원전은 접근하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원전은 정말 위험한 걸까. 원자력은 포기해야만 하는 에너지원인가. 이런 점에서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일본 후쿠시마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좋은 사례로 다가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저자는 국가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 원자력 안전 신화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등을 서술하며 자신이 상황에 따라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시간 순서대로 밝히고 있다. 사고 수습 과정을 통해 일본의 비상시 대응 메커니즘, 정책 집행, 추진 과정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저자는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의 가설에 근거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반경 170㎞ 이내는 강제 이전 구역으로, 도쿄를 포함한 250㎞ 이내는 희망자 이전 구역으로 정했다. 약 5천만 명의 대피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 구역에서는 대기와 바다를 통해 방사능이 뿌려지고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저자는 고마쓰 사쿄의 SF소설 '일본 침몰'을 생각하며 '5천만 명의 수십 년에 걸친 피난'을 떠올렸다고 한다. ◆총리 퇴임 후에도 '탈원전' 운동=간 나오토 총리는 퇴진 후에도 탈원전 운동을 이어가며 자연에너지, 대체에너지 등의 실제 적용을 연구해 '원전 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대안까지 제시해 설득력을 높였다. 물론 원자력 마피아들의 교묘하고 집요한 로비를 피해가며 말이다. 또한 대국민 담화뿐 아니라 직접 피해지를 방문해 이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트위터로 소통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또 '원전 제로'가 국민 스스로 선택한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에너지 정책에 반영하고자 싸우고, 결국 법안을 통과시켰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자 일본, 독일, 스위스, 대만, 벨기에 등 5개국도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기료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흑자가 31년 만에 적자로 전환(약 26조원)되고, 석탄과 LNG 발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해 엄청난 탄소세 부담(파리기후협정)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일본은 2015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아베 정부는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 저자는 이에 따라 각국 피폭 지역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돌아올 경우 닥치게 될 위험도 지적한다.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능 오염은 다음 세기까지 지속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정책 고민하는 한국에도 타산지석=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정률 20%였던 신고리 5, 6호기의 중단 여부에 관해 3개월 동안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같은 해 10월 원전을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3의 지진은 한반도에서도 규모 7 이상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원전 철폐' 주장이 다시 설득력을 얻으며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원전 정책을 고민하는 우리의 상황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일본 재앙을 다룬 또 다른 책 '도쿄 최후의 날'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후쿠시마 재앙 이후 또 한 번의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향후 50년간 40만 명 이상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암 발병에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핵 재앙의 고리를 미래세대에게 물려 주지 않는 일,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요, 다짐이다. 196쪽, 1만3천원.

2018-03-17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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