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조성연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2018-08-20 11:19:5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19:18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는 시간 심 상 숙 사과를 깎습니다 둘레를 깎습니다 붉은 껍질은 꽃이 흔들리며 망설였던 거리입니다 피울까 말까, 시간의 굴레가 영글었습니다 씨앗의 일가들이 칼날을 지나 흩어집니다 푸른 그림자 속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우리의 둘레를 깎습니다 향기는 공감각적 두께로 앉은 벌레소리입니다 잎사귀 사이로 내린 별빛이 고스란히 부서집니다 대롱거리던 표정과 비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시간이 잘립니다 사각사각 일가들은 잘도 헤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귀에 익은 발자국 하나가 멀어집니다 칼날이 스쳐간 자국, 그 아래로 멍의 둘레를 따라 나는 고요히 걸어 내려가 봅니다 아주 사소한 이파리 하나가 붉어가는 사과의 볼 위로 나볏이 스쳐 내린 길입니다

2018-08-20 11:19:0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18:47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여호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2018-08-20 11:18:0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물의 과외공부-당선소감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물의 과외공부-당선소감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 보이지 않는 벽은 뚫기도 어렵다, 만 리길도 아닌 한 길속에 있다는 언어를 잡기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낚시대 가냘픈 손잡이에 숨어있는 언어를 부르며 낚시 끝에 쉽게 모습을 주지 않는 시어를 찾아 멀고 깊은 하늘에 낚시를 던진다. 별빛아래 까만 피를 흘리며 시리도록 눈을 끌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낚시 대와 나란히 하얀 바다를 걸어가고 있다, 고기야 차라리 낚시 대로 나를 낚아가라, 진한 커피향의 구수함 같은 연륜이 있고 중후하며 깊이 있는 노년의 향기를 같기 위해 글을 쓰면서 중도에서 좌절의 벼랑을 닥칠 때 마다 도망하고픈 날이 많았지만 안개를 벗은 태양은 더 맑고 찬란하다는 학교 선배님 위로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길, 점심시간에 걸려온 시니어 문학상 당선 소식은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게 귀에 남은 여운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시니어 문학상 당선소식은 고기가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뒤늦게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점점 잃어가는 노후를 뜻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는 건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맑은 샘물 같아 다시 한 번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를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그리고 좀 더 깊고 세심한 글을 강조하시는 맹문재 교수님과 시는 시어가 쉽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씀을 늘 해 주시는 공광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의 글에 빛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래토록 남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08-14 05:00:0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민윤숙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2018-08-13 15:32:03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민윤숙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2018-08-13 11:52:01

레드팀/마이카 젠코 지음/강성실 옮김/스핑크스 펴냄

레드팀/마이카 젠코 지음/강성실 옮김/스핑크스 펴냄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탁월한 전략가적 기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현재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분석해 나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콕 집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 속에서 국가, 기업, 조직은 살아남을 뿐 아니라 더 나아지기위해서는 이쪽의 쇄신만이 아닌 저쪽의 입장도 함께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예측하고 행동할 것인가? 국제 안보 전문가인 저자 마이카 젠코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레드팀'(Red Team) 활동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즉 레드팀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의 여부는 기업들에 경쟁에서의 우위를 가져다주며, 중요한 정보 판단의 허점을 찾아주고, 위험한 군사작전에서 그것을 실행하기 이전에 문제점을 찾아준다. 덧붙여 레드팀을 조직하고 그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과 그들이 찾아낸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보여주고 있다. ◆레드팀이란 무엇인가 레드팀의 역사적 연원은 13세기 로마교황청에 가 닿는다. 로마가톨릭교회 초창기 1천여 년 간은 성인 추대에 다소 무계획적이었다. 그 결과 지역마다 성인의 수가 넘쳐났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성인추대의 신성화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시성과정에 개입, 성인 후보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권한이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일명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임무는 성인으로 추대된 후보자들의 덕행과 '기적을 행했다'는 평가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악마의 변호인 개념을 이어받아 냉전시기에 미국 군조직에서 자생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 레드팀이다. 레드팀은 1960년대 초 워게임 이론에 적용되는 접근법과 랜드(RAND)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미 국방부가 전략적 결정을 평가하기 위해 활용한 시뮬레이션에서 점점 구체화됐다. ◆레드팀의 활동 사례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로 2천996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있었다. 이 테러 이전에 미 연방항공국 산하에서 활동했던 레드팀은 민간 항공사에서 보안상 결함을 발견하고 수차례 개선점을 건의했다. 그 전에 레드팀은 1996년 '마르코 폴로 작전'으로 불린 취약점 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작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미국행 항공기에 폭탄을 밀반입하는 가상실험으로 모두 44건의 폭탄 밀반입 시도 중 단 한 건도 걸리지 않았다. 또 톱니 모양 칼날의 사냥용 칼을 바지에 넣고 뉴올리언스 국제공항 3곳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등 약 1년간에 걸쳐 주요 공항 보안구역에 접근하는데 95%의 성공률을 보이기도 했지만 미 연방항공국 관료들은 이 정보들을 묵살하고 말았다. 그 결과 9'11테러범들을 미국 내 항공사들과 공항들의 전반적인 보안체계를 자신들에게 이롭게 이용, 대참사를 일으켰다. 2002년 미군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획된 가상합동훈련인 '밀레니엄 챌린지 2002'. 육군 중장 벨이 지휘하는 350명의 미국 블루팀(아군)과 퇴역 해병대 중장 폴 밴 라이퍼가 지휘한 적국을 모델로 한 90명의 레드팀과의 한판 전투에서 레드팀은 상상도 못할 다소 기만적인 기습작전으로 10분 만에 블루팀을 초토화시켰다. 미사일 공격을 추적해 요격해야 할 항공모함전투단의 이지스 레이더망은 마비돼 제 기능을 못했고 항공모함과 여러 척의 순양함, 5척의 양륙함정을 포함한 19척의 미 함선들을 침몰했다. 결국 가상 적군의 놀라운 위력에 밀레니엄 챌린지 2002 참가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자는 이외에도 15건의 사례를 더 분석해 다양한 레드팀의 활동을 보여준다. ◆레드팀은 만능키인가 제아무리 뛰어난 전략과 무기체계, 용병술일지라도 이를 운용하고 결정하는 리더가 얼마만큼 그 유용성을 취사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고금의 교훈이다. 마찬가지로 레드팀도 조직의 이익, 목적, 능력을 시뮬레이션, 취약점 조사, 대체 분석 등의 기법을 통해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체계화된 과정일 뿐이다. 그것이 외국 군대든 경쟁업체나 악의적 해커든 각각의 결정을 내리는 데 고려해야 할 변수는 너무나 많다. 자기만족, 집단적 사고의 오류, 타성, 편협한 시각은 정치와 정부, 전쟁, 비즈니스에서 큰 실패가 발생했을 때 가장 흔히 진단되는 문제점들이다. 따라서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 '레드팀에 대한 오해와 전망'에서 레드팀의 잘못된 활용, 즉 ▷임시 변통적 접근방식 ▷레드팀 조사결과를 정책으로 오인하기 ▷프리랜스 레드팀의 잘못된 활동 ▷나쁜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화풀이하기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레드팀을 잘 이용하기 등에 대해 경고하고 있으며 레드팀 활동을 보다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 의사결정권자들은 영리하면서 정교하고 통찰력 있는 선택이 요구된다고 했다. 392쪽 1만7천원. ▷지은이 마이카 젠코 미국외교협회 선임 연구원으로 레드팀 전문가로 활동.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 거주. 다른 저서로 '위협과 전쟁 사이'가 있다.

2018-08-08 13:41:22

둔황의 채색 조형/류융정 지음/판진스 편집/임광순'김태경 옮김/동국대학교 출판부 펴냄

둔황의 채색 조형/류융정 지음/판진스 편집/임광순'김태경 옮김/동국대학교 출판부 펴냄

고대 비단길의 중심이자 상업무역의 집산지였으며 4대 문화, 6대 종교, 10여 민족이 하나로 융합된 곳인 둔황(敦煌). 이곳의 모가오(莫高)굴에는 지금까지 735개의 석굴, 4만5천㎡의 벽화, 2천여기의 채색소상, 5좌의 당송시대 처마가 보존돼 있다. 무릇 유적이나 유물은 전쟁, 천재, 인재로 인해 소실이 불가피하지만 이곳 절벽에 조성된 둔황 석굴사찰만은 온갖 풍파 속에서, 그것도 화려한 채색의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4세기에서 14세기까지 1천 년간 이어진 중국 불교미술을 대표한 둔황 석굴 채색소상들의 오묘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거의 매 페이지마다 둔황 석굴의 화려한 채색을 살린 사진을 싣고 있다. 특히 420번 모가오굴에 있는 세 개의 벽감으로 구성된 전당석굴의 사진은 푸른 빛과 황금 빛의 두 조화로 인해 성스러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책장을 뒤로 넘기다 보면 당나라 후기 고승상(高僧像)에 이르면 둔황의 채색 조형물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236쪽 1만8천원.

2018-08-08 13:34:46

위대한 식재료/이영미 지음/민음사 펴냄

위대한 식재료/이영미 지음/민음사 펴냄

'현명한 소비가 위대한 식재료를 낳는다'.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는 내용물의 신선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형마트의 깔끔한 랩 포장을 경계하고 원산지와 제철을 생각하며 공장 가공품은 앞면보다 뒷면을 살피라고 주장한다. 부계가 개성출신이고 모계가 전북출신이라 음식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혈통과 절대미각의 남편을 만나 팔도음식을 섭렵한 저자는 음식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예술 평론가이다. 이 때문에 전국을 발로 뛰며 취재도 했다. 덕분에 겨울을 짱짱하게 버티고 자란 포항초가 두껍고 맛과 향이 진하지만 병충해에 약해 겨울철에 재배될 수밖에 없는 시금치라는 것도 알려준다. 첫머리엔 한국인에 가장 기본 식재료인 소금, 쌀, 장을 다루고 이어 채소류와 축산물, 수산물, 과일과 술을 담그는 것까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먹방과 쿡방이 대세인 요즘, 맛과 색에 천착하기보다 음식의 기본이 되는 식재료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는 저자의 발상전환이 신선하다. 376쪽 1만6천원

2018-08-08 13:34:0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수제 양복점에서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수제 양복점에서

수제 양복점에서 -김선중 일생을 행사로 끌고 왔거나 끌고 갔거나 하는 일들로 의복들은 다 헤졌다. 갈수록 허물어지던 누추를 한 벌 정장으로 지탱해왔던 것이다. 수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췄다. 그 어떤 의식도 없는 무료한 양복 한벌을 맞췄다. 자꾸 색상에서 버려진 듯 또는 신세진 듯 주변의 색과 나는 점점 구별된다. 이것은 철저한 소임인 듯 은폐술이거나 소외의 풍이다. 단추들은 인심이 후하게 바뀌었다. 주머니는 그 어떤 일탈의 비상금도 필요 없음으로 형식적이어도 무방하다. 등판은 여분의 치수를 조금 앞쪽으로 구부려야 할 것이다. 그에 맞춰 어깨는 더 이상의 상승의 힘을 주문하지 않기로 한다. 왼쪽 젖 가슴 위의 견장들, 이젠 흙냄새 좀 맡으라고 바지통을 널찍하게 잡았다. 잘 삭힌 몸, 녹이 많이 슨 몸 가봉(假縫)이 끝나고 잘 맞춤된 옷은 관(棺)을 닮았다.

2018-08-06 11:26:3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대상-논픽션]뒤로의 여행⑥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대상-논픽션]뒤로의 여행⑥

"살아 있어 고맙다." 그날 장모님은 전남 광양군 진월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순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종일 달려오면서 차멀미로 물 몇 모금으로 버티시고도 누워서 인사하는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뒤로의 여행 후기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먼저 나의 후회는 어떤 것들인가를 살폈다. 첫 번째는 효도였다. 효도는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그동안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효도란 부모님께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것도, 화려한 옷을 사다 드리는 것도, 외국 여행을 시켜드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부모님의 말씀을 살갑게 들어주고, 소찬의 밥을 함께 먹고,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작은 일들에 부모님은 더 행복해하신다는 걸 몰랐다. 그런 효도를 내일 해야지, 이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루고 미루다, 어머님이 먼 길 떠나고 나서야 효도를 생각한다는 건 후회막급이었다. 두 번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는'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읽었던 글이 여행 후에야 진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그동안 나는 곁눈질 하지 않고 열심히 가족을 위해 노력하면 가장의 의무도 가족에 대한 사랑도 일정 부분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의식이었다.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대입해보니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밑바닥이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의 말을 주고받아야 행복이 싹트는 비결임을 모르고 지냈다. 세 번째는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다. 소확행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물질만능주의인 현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소확행은 삶 속에서 사랑을 키우고 표현력과 적극성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바로 내 마음을 적응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첫날 세 가지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문 앞에서 작은 연초록 잎 사이로 담회색의 꽃대를 밀어 올려 연분홍 꽃을 세 송이나 피운 앵초 꽃이 앙증맞은 얼굴로 아침 인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일이었지만 소확행을 적극적으로 살핀 결과였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자 아침 기분이 상쾌했다. 낮이었다. 책을 읽다 말고 문득 생각났다. 엊그제 손녀가 주고 간 생일축하 손 편지를 꺼냈다. 초등학교 육학년인 외손녀의 편지를 반복해 읽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생신 축하드려요.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소중한 분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와 병원도 가고 또 위로해주셨지요. 얼마 전에는 엄마 아빠 사이가 안 좋다고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안타까워하시며 바로 해결해주셨지요. ……중략…… 할아버지가 항상 강조하시는 웃어른께 인사 잘하기, 나쁜 말 쓰지 않기, 공공장소에서 예의 지키기, 친구에게 양보하기, 등을 실천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장점이 된다는 할아버지 말씀 잊지 않을게요. 할아버지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가끔 길게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짧게 말씀해주세요. 햇살 좋은 날에 사랑하는 손녀 올림' 초등학생 육학년 손녀의 솔직한 편지를 읽으며 흐뭇함이 가슴 한가득 밀려들었다. 특히 편지 끝에 '햇살 좋은 날'이라는 봄날을 표현한 편지를 들고 나는 한참 동안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오후였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은 먹었느냐고, 그리고 덧붙인다. 컴퓨터 그만 좀 하라고,…… 얼마 전 안과에서 망막 정맥 폐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계속 치료를 해도 완치보다는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데 불과하다고. 그 말을 들은 딸이 며칠 후 눈에 좋다는 영양제 두 종류를 사다 주곤 복용 여부를 챙기는 것이었다. 이 또한 소확행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 생각했다. 딸이 두 아이를 키우는 바쁜 와중에도 약을 고르고 약의 복용 여부를 챙기는 마음이 고마웠다. 가족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알뜰살뜰 챙겨주겠는가 싶었다. 나는 오늘도 가족에 대한 사랑 표현을 딸로부터 배우며 소확행 하나를 보탰다. 뒤로의 여행 후 나의 결론은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판단했다. '삶은 주문을 외우며 헤쳐 나가는 가시덤불'이라고.

2018-08-06 11:26:09

문 대통령이 휴가 중 읽은 책 '국수' '소년이 온다' '평양의 시간은…' 베스트셀러 될까?

문 대통령이 휴가 중 읽은 책 '국수' '소년이 온다' '평양의 시간은…' 베스트셀러 될까?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 읽은 책들을 보면 대통령이 고민하는 국가 현안을 알 수 있다. 청와대가 3일 밝힌 도서 목록은 소설 '소년이 온다'와 '국수', 방북취재기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이다. 각각 근현대사 문제와 민중의 삶, 북한의 현재 모습을 화두로 삼고 있다. ◆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미권의 권위 있는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철저한 고증과 취재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다뤘다. 참혹한 상황 속에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폭력의 문제를 천착하면서 인간성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216쪽, 1만2천원. ◆ 김성동 '국수' 김성동 소설가의 여섯 권 분량의 장편소설 '국수'는 1991년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27년 만인 지난달에 완결을 낸 작품이다. '국수(國手)'는 바둑에서 쓰는 말로 알려졌지만 애초 소리, 무예, 글씨, 그림 등 나라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작가는 전했다. 임오군변과 갑신정변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 전야까지 각 분야 예인과 인걸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충청도 예산·덕산·보령을 중심으로 바둑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소년,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름난 화적이 되는 천하장사 천만동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조선 말기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6권 2천328쪽, 9만원. ◆ 진천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가 작년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네 차례 단독 방북 취재를 통해 포착한 평양의 모습을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안에 담았다. 진 기자의 방북 취재는 2010년 천안함 사건 후 우리 정부가 취한 대북제재 조치인 5.24 조치 이후 처음이다. 평양은 물론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을 돌아보고 지난 10여 년간 숨겨져 있던 북한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평양냉면 붐을 일으킨 평양 옥류관 주방, 려명거리 73층 아파트 내부, 단둥-평양 여객열차에서 찍은 평안도 평야지대 추수 장면, 실제 평양지도 등을 처음 공개한다. 316쪽, 2만원.

2018-08-03 20:01:52

역지사지 일본/심훈 지음/한울엠플러스 펴냄

역지사지 일본/심훈 지음/한울엠플러스 펴냄

지구촌에 존재하는 국가와 국가, 문화권과 문화권 사이에 시공간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타자화'로 요약할 수 있다. 서양의 역사가 타자에 대한 원초적 거부반응의 시간이라면, 동양 역시 존왕양이(尊王攘夷·임금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침)와 위정척사(衛政斥邪·성리학 이외 모든 종교와 사상을 배척함)의 사고가 뿌리 깊었다. 그 대표적 예로 나와 우리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거리감을 뜻하는 이 같은 '타자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발현과 식민지 개척의 시대를 초래했다. 이제 인식의 범위를 좁혀보자. 반도국가로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전통적으로 문(文)을 숭상해온 한국과 대륙과 동떨어져 험한 섬나라에서 칼과 무력을 받들어온 일본의 정체성 또한 여실한 차이가 있다. 이 책은 2014년 지은이가 낸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본의 특성을 하늘과 땅, 사람을 중심으로 지리생태학적 진화의 산물로 인식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天-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일본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속담 중 하나가 "벼락이 네 배꼽을 노리고 있으니 배를 꽁꽁 감싸라"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일본 열도는 잘 알다시피 지진, 화산, 쓰나미에 매년 태풍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게다가 하늘은 수시로 벼락으로 열도를 강타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별로 없을 듯 싶다. 현재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아직껏 기독교나 불교보다 신도(神道)가 맹위를 떨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이승에서의 안녕이지 저승에서의 행복은 아니었다. 엄청난 자연재해와 극한의 공포는 8세기 초 고서기(古書記·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와 전설을 기록)에 나타난 만세일계의 천황 일족이 건국신화 속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의 직계 자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 건국신화는 등장하는 신들의 수와 족보 등이 복잡다단하기로 이름나 있다. 이 가운데 신의 자손이 강림해 열도를 다스린다는 설정은 예측 불가한 자연재해 속에서 천황일족을 신성불가침의 대상으로 경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우리네 속담은 일본인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자연재해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아픈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地-꽃꽂이와 삼나무 그리고 해안선 '이케바나'로 불리는 일본의 꽃꽂이는 꽂아둔 꽃이 시들면 새 꽃으로 갈아줌으로써 꽃병 속 꽃은 계속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꽃 하나하나의 안위(?)보다 외양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꽃꽂이가 자연미에 무게를 둔다면 일본 이케바나는 인공미를 강조하고 있다. 왜? 불안한 현세에서 아름답지만 늘 꽃병이 살아있도록 강제해야하는 행위는 일본만의 특징인 셈이다. 일본 화엄종 본산이자 나라현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본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의 근간은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수령 3천여 년 이상 자라는 아름드리 삼나무에 있다. 기둥이 굵고 대들보가 커질수록 건물의 높이와 규모가 거대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정유재란이 끝나고 약 2년 후 1600년 10월 기후현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이 건곤일척의 전투를 벌였다. 18만여 명이 맞붙은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에도막부 시대가 열린다. 7년간 조선과 전투에도 불구하고 불과 2년 만에 이 같은 대규모의 병사들이 전투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본의 인구에 있다. 선사 이래 일본 인구는 언제나 한반도에 비해 수적 우위(2~4배)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엔 한국보다 4배나 인구가 많았다. 그 까닭은 해안선이 길수록 인구가 많아진다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人-벤토와 병영적 사회 우리나라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할 때 숟가락과 젓가락이 쉴새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웃과 교감하는 열린 형식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 음식문화인 벤토는 혼자서 먹는 닫힌 형식이다. 그런데 이 벤토가 매끼마다 엄청난 수로 대량 소비된다. 라면, 우동, 덮밥, 카레도 벤토의 확장판에 불과하다. 또한 일본은 700년간 무사 정권이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움켜쥐어온 나라다. '금지'의 규범과 '복종'의 도덕률로 무력과 강압이 상부구조를 이루고 '순종'과 '침묵' '타율'과 '몰개성'이 자연스레 하부구조로 뒤따라온 나라이다. 이 때문에 자신이 이웃과 집단에 맞춰지도록 강제된 병영 같은 사회가 일본의 또 다른 이면이 된 것이다. 208쪽, 2만4천원 ◇지은이 심훈 교수는 세계일보에 근무했고 미 텍사스 주립대서 언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림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부에 재직 중이다.

2018-08-01 13:24:55

고구려에서 배우는 경영 전략/석산 지음/북 카라반 펴냄

고구려에서 배우는 경영 전략/석산 지음/북 카라반 펴냄

고구려 700년 역사를 훑어보며 기업가 정신과 조직 경영 비법을 대비시킨 이 책은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 아이디어와 역동성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도전정신에서 나옴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고구려가 중국의 룰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듯 기업도 시장에서 룰 테이커(Rule taker)가 아닌 롤 메이커(Rule maker)가 되어 판도를 바꿔야 롱런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한다. 172년 고구려 장수 명림답부(明臨答夫)는 수천의 병력으로 한나라 10만 대군과 맞선 좌원대첩을 승리함으로써 한의 영향에서 벗어났고, 젊은 시절 노비와 소금장수 이력이 있는 미천왕은 정확한 판단과 승부사 기질로 낙랑과 대방군을 병합했으며 열정적 리더십의 광개토대왕은 전쟁을 수단화함으로써 국태민안을 달성했다. 무릇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기업가 정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력한 의지, 승리에 대한 욕구, 창조의 환희는 기업가에 필수적인 도전정신의 3대 요소임이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다. 304쪽, 1만4천원

2018-08-01 13:14:17

조용헌의 인생독법/조용헌 지음/불광출판사 펴냄

조용헌의 인생독법/조용헌 지음/불광출판사 펴냄

'강호동양학'이란 독자적 학문을 개척하며 이 시대의 이야기꾼인 조용헌이 '알수록 자유로워지는 내 운명 사용법'이란 부제를 달아 낸 책이다. 저자는 20대 중반부터 풍수서와 사주명리학을 탐닉하고 명산대천을 찾아 주유하며 강호의 낭인들과 우정을 쌓아왔다. 한마디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그 덕에 풍수, 사주명리, 유(儒), 불(佛), 선(仙) 고수들에게 자연과 인생의 이지를 체득하게 됐고 삶을 보는 혜안도 키울 수 있었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렇다고 맘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인생이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바라보는 시각을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다른 각도로 돌려버린다. 그 결론이 운명은 홀연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작은 노력들이 좋은 기운을 불러오고 그 공덕이 쌓여야 운명의 흐름도 바꾼다는 사실이다. 모든 세대가 미래를 두려워하면 살아가는 지금, 이 책이 작을 길잡이가 될 수 있다. 344쪽, 1만9천800원

2018-08-01 13:14:08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최병길 '파도波刀'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최병길 '파도波刀'

파도波刀 구부러지는 길목을 두고 떠다니는 것들 날을 간다, 벼린 날을 갈며 그늘에 벼리고 베인 물이랑들이 한없이 거세어진다 물줄기의 향방에 아랑곳하지 않고제 몸 상처로 물결을 이끌고 내몰아서 지느러미를 이루어 낸다어차피 밀물과 썰물의 교대는 공간너머 시간의 터울 속에 이루어지는 원리니까, 수평선을 깔고 오는 붉어짐 속에서벼랑어깨 위 축축한 것들이 말라가는 것을 지켜보며곡선의 부유浮遊권을 암시하듯 해송 옆, 가지들 되돌아온 해풍에 추적추적거리며 파도의 노도怒濤를 집요하게 지새우며 지켜보았다. 서둘러 낮달의 낯빛을 비추는 무렵길목을 거스르는 파도波刀 휘두르고 있는 연유다 오후는 저물어지고새벽의 항로는 정처 없이 깊어져서 곡선의 눈부심이 되었다. 물살에 박힌 가벼운 날로 귀밑머리 무늬에 묻혀 삼켜진 것들은 투명하지만 차갑고 날카롭지만 처량하다 이제 파도波刀라 밑줄 긋고 나면 켜켜이 풀어놓는 숨비소리가 듷숨과 날숨의 표류하며 소용돌이친다 비수를 품은 엽선들이 숨줄을 틔우고 있다 시 – 최병길 '파도(波刀)' - 당선소감 저에게 이런 큰 상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시를 쓴지 거의 20십여 년 만에 이런 상을 받으니 과연 이 상을 받아도 될지 무안한 마음만 듭니다. 제가 이 상을 타기에는 저의 시는 좀 진부하고 낡았지만 이렇게 좋게 보시고 뽑아주신데 대해 무엇보다도 심사의원이하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했겠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 갑작스레 이런 귀하고 영예로운 연락을 주시니 제겐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앞으로도 열심히 시를 쓰겠습니다. 언제나 시는 제게는 오랜 갈증이었고 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시에 대한 애착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를 놓았습니다. 뒤늦게 쉰이 넘어서야 조금씩 시를 쓰게 되고 특히 문학상을 탄 시들을 즐겨 읽었고 언어의 놀라움을 깨닫곤 했습니다. 늘 어려울 때나 힘들 때 제게 알 수 없는 큰 힘이 되어주었던 시가 이렇게 무한한 영광까지 주니 무어라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시를 쓰신 분들에게 죄송스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쓸까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 손자 그리고 사위들에게 자랑하게 되어서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쓸까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 6. 20 최 병 길 드림

2018-07-25 16:54:40

오목눈이집증후군/박윤배 시집/북랜드 펴냄

오목눈이집증후군/박윤배 시집/북랜드 펴냄

'날이 가물자, 지붕 배수구 물받이에 새가 짓는 집/여기저기 지푸라기 물어다가 울긋불긋/꽃 울타리도 만든다/…중략…/내가 너의 눈을 닮아가니/너도 내 눈을 닮아갔다' 시집의 타이틀이 된 '오목눈이집증후군'이란 시다. 현실이란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면서 눈은 항상 비현실적인 이상의 세계로 향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현실과 그 너머의 세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시어를 매개로 한 자유로운 의식의 공간이동은 시인의 특권이다. 그러나 현실초월은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부터 갈등과 아픔을 동반한다. 박윤재 시인이 추구하는 서정시의 외양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녹을 날 기다려 몰래몰래 건네는 물 한 모금' '그녀 얼마만치 떠오를까' 등의 사건들이 의외의 결별을 겪는 것도 서정적 심상의 전이와 확산이다.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겨울판화'로 등단했다. 124쪽, 1만원.

2018-07-25 16:51:13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시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 당선소감 내겐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뒤에 갖는 버릇이 하나 있다. 이후에 나는 어디에 사용 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쓸 만한 걸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시니어작품 공모전에도 이순(耳順)의 세대가 그나마 감성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응모를 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서 잠시 뒤에, 이 만년의 감성이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현실에 적용되는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더 멋진 글을 쓰는 시대에 시니어의 감성과 정신이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앞서는 투지를 느꼈다.뭐니뭐니해도 시니어 감성을 눈여겨보는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저녁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땅거미를 지면으로 불러내어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반짝이게 독려하는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쏘시개를 모아 전등불 아끼는 부엌에 쌓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각을 맞춰 준 선자께 감사를 드리며 유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아래를 활기차게 걷는다.

2018-07-25 16:47:21

노을을 울리는 풍경소리/김술남 시집/해드림출판사 펴냄

노을을 울리는 풍경소리/김술남 시집/해드림출판사 펴냄

하루해가 꼬박 지난 후 나타나는 진한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서산 넘기 전 대낮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83세의 평범한 할머니 김술남 시인이 '거역할 수 없는 세상 순응하면서 오늘 여기 있음을 감사하며' 두 번째 시집을 냈다. 초교 2학년 때 겨우 한글을 깨치고 학교를 그만 둔 이후 닥치는 대로 독서량을 쌓으며 박상옥 시인의 지도로 시에 눈을 떴다. 2015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에 '까치똥'이 당선됐고 3년 전 첫 시집 '찔레꽃 하얀 꿈'을 냈다. 시집 속 '외로운 기러기' '책읽는 노고지리' '꽃신' 등 시는 흐트러짐 없이 삶을 꾸러가는 성찰의 또 다른 언어들이다. 팔순의 나이에 시를 쓰며 감성을 풍성하게 지켜나간다는 게 쉽지만은 아닐 터. '뻐꾸기 힘찬 노래 산천을 울리고'란 시어처럼 만년의 맑은 노을이 풍경소리로 공명을 울려 지난 세월에 대해 그리움을 대신하고 있다. 160쪽, 1만2천원

2018-07-25 16:40:23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여호진 '햇반의 온도'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여호진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시 – 여호진 '햇반의 온도' - 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6:25:30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심상숙 '사과를 깎는 시간'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심상숙 '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는 시간 사과를 깎습니다 둘레를 깎습니다 붉은 껍질은 꽃이 흔들리며 망설였던 거리입니다 피울까 말까, 시간의 굴레가 영글었습니다 씨앗의 일가들이 칼날을 지나 흩어집니다 푸른 그림자 속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우리의 둘레를 깎습니다 향기는 공감각적 두께로 앉은 벌레소리입니다 잎사귀 사이로 내린 별빛이 고스란히 부서집니다 대롱거리던 표정과 비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시간이 잘립니다 사각사각 일가들은 잘도 헤어집니다 사과를 깎습니다 귀에 익은 발자국 하나가 멀어집니다 칼날이 스쳐간 자국, 그 아래로 멍의 둘레를 따라 나는 고요히 걸어 내려가 봅니다 아주 사소한 이파리 하나가 붉어가는 사과의 볼 위로 나볏이 스쳐 내린 길입니다 시 – 심상숙 '사과를 깎는 시간' - 당선소감 < 내 안의 타자他者를 환대歡待하다 > "매일신문사입니다. 심상숙씨께서 「사과를 깎는 시간」 시로 이번 매일 시니어 문학상에 당선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새해벽두, 광남 일보 신춘문예당선소식에 이어 2018년 초여름 올해의 두 번째 소식이다. 투고를 망설였던 곳이다. 초등교원으로 퇴직한지 몇 해, 『시와 소금』 계간지등단으로 지면발표가 잇달아 계속 시를 썼다. 재직당시에는 계간 『서울교육』 1998. 봄호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시가 게재된 적이 있을 뿐이다.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교원생활은 정신없다. 출근하랴, 살림하고 가족들 챙기랴, 대학원을 다니고 또 다니랴, 해마다 현장논문 써내랴. 늘 공문과 교육계획서 및 보고서작성, 수업발표에 세월을 잊고 있었다. 보육내지 아동교육의 창의성과 다양한 활동의 요구는 체력을 바닥냈다. 숨 가빴던 어느 날, 청으로부터 정년퇴직명령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퇴직을 하면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나왔을 때, 낯선 거리의 백일장에 산문을 한편 써낸다. 정을 붙여보려던 때문이던가. 장원을 통보받게 되고, 그로부터 시를 쓰게 된다. 이태 후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외7편으로 목포문학상 신인문학상수상으로 김현문학제에 목포문학관을 다녀오게 된다, 다음해 2013년 봄에 시 두 편으로 진주 이형기문학제에 일박으로 다녀오게 되고, 그해 여름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여성조선 문학상수상으로 시 부문 최우수, 「목련근처에서」로 여성조선 8월호에 게재된다. 그해 가을에 「명중」 으로 김장생문학상 본상수상으로 계룡을 다녀온다. 2014년 인사동소재 계간문예지 『시와 소금』 봄 호에 「물푸레나무 그늘 」외 4편으로 등단하게 된다. 『시와 소금』 등단 지와 엔솔로지에 신작시를 몇 번 발표하게 된다. 해마다 문인협회 연호지紙와 시냇물 창작동인지紙에 작품발표를 해 오고 있다. 이곳에 왔기에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思惟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歡喜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歡待할 것이다. 시를 써도 발표할 기회는 쉽지 않다. 올해 신춘문예당선이후 원고청탁으로 계간문예지 『다층』 2018.봄 호에 신작시, 「맞선」 과 「배경」, 그리고 시 전문 계간문예지 『예술가』 2018.여름 호에 신작시 「지난겨울이 깊었던 까닭은,」과 「바라나시*」 시 두 편씩을 발표했다. 계간문예지 『시와 소금』 가을 호 원고를 준비 중이다. 또한 올 7월 간행물로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를 출간할 예정이다. 첫 시집에 넣을 시인의 말을 적어본다.-대기오염이 심각합니다. 대기의 오염으로 삶의 질이 뜻 밖에 좁아졌습니다. 지구를 관찰하고 기록해 나갈 인류의 종種을 보전하고자, 통계자료들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연환경의 보존과 인류의 보전에 뜻을 둡니다. 새로운 의식으로 작은 실천을 찾아 떠납니다 보편적 개념에 의해 억압된 개별자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해방시키고자 돌아봅니다. 보편적 개념에서 동일성의 사유로부터 물러선 것들, 상처받기 쉬운 것들, 그러나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나의 의식이 나의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존재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자연의 오묘한 비밀, 앞으로의 과학으로 반드시 규명될 지구 한 구석의 비밀을 찾아, 오늘도 새롭게 떠납니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6년 째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식사준비와 몸 수발, 병원 입 퇴원과 간병을 해드린다. 지병으로 병원진료가 잦다. 어느 때는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서둘러 모셔놓고 나가기도 한다. 오늘아침에도 침대문제로 걱정되어 회수여부를 문의하고 있다.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계셔 힘이 된다. 저의 시를 눈여겨 손들어 주신 매일시니어 문학상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덕분에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시를 쓰기 위해 만나 뵌 아름다우신 선생님들, 함께한 문우님들께 감사말씀 전해 드립니다. 나의 힘이고 응원자인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진정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7-25 16:22:34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박윤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박윤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묵은 이명씨(耳鳴氏)가 산다 오늘따라 내가 흔하다 나는 계단참이고 우산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경이다 우스운 일에만 웃는다 인적 드문 내소삿길, 인중 긴 꽃을 내려다보며 눈으로 만졌다 무슨 계획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꽃 풀 먹인 모시 적삼 같은 녀석에게 안녕하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거기, 매발톱 꽃은 폭발이 아니라 함몰이다 사월의 허리를 부축하는 미나리아재빗과 누두채(漏斗菜) 대궁 위의 푸른 뿔, 안으로 안으로 구부리는 저 푸른 화판 저희끼리 붐비며 함몰 중이다 잎도 안 난 노루귀가 매발톱 따라 고개를 꺾는, 매발톱과 노루귀 사이 너를 묻으며 비를 맞았다 돌아와, 식은밥에 물 말아먹고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이명씨(耳鳴氏)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느냐며 속삭인다 시 – 박윤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 당선소감 접는다 해도 억울할 것 없는 나이, 이 나이에도 가만가만 찾아오는 기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한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해 몇 발짝 들여놓았다가 그만 길을 잃은 골목 같은 것, 길을 잃을수록 환해지는 불빛 같은 것, 제겐 그게 시였습니다. 쓸모없는 짓 좀 하며 살자고 마음먹은 후 가장 쓸모 있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제대로 한 줄을 쓰지 못해 자괴감이 앞서면서도 걷다 보면 도달할 곳이 생길 거라는 믿음, 그 믿음에 한발 다가선 기분입니다. 자신을 다그치라는 격려와 충고로 알고 더 열심히 읽고 생각하겠습니다. 벙긋벙긋 입모양은 보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거기 유리가 있고 창밖이 생기듯이, 창 너머에 네가, 혹은 내가 서 있듯이, 너머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의 모습일 텐데요. 삶의 어떤 국면을 쓰는 게 시일 텐데요. 삶에 다가서면 시가 되질 않고, 시에 다가서면 삶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 제 시의 모양새였습니다. 발표도 하지 않을 시를 왜 쓰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시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누군가가 매일신문사의 시니어문학상이 된 셈이라 더욱 기쁩니다. 자란 곳이고, 젊어 일한 곳이고, 아픔을 나눈 곳이어서 받은 상이 제겐 더 값지게 생각됩니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시가 아니라는 말씀, 세상은 표면, 표면이 아름다운 거라는 말씀, 쓰지 말고 쏟아내라는 말씀, 말씀들이 다 과제였습니다. 더 깊이, 멀리 말씀 속을 헤매보겠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을 버려 아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기뻐해 줄 딸이 둘이나 있어 행복합니다.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 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준 황 시인 고맙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종각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님 감사드립니다. 시니어문학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매일신문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6:17:45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장기성 '달빛 상념'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장기성 '달빛 상념'

'달빛 상념' / 장기성 한가위에 고향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움일까 설렘일까. 아무래도 달빛에 대한 환상이 폐부 깊숙이 각인 된 탓일 게다. 초저녁이 되면 앞산자락에 둥근 달이 나무가지에 걸린다. 한낮에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햇빛은 온데간데없다. 간간히 길섶과 논두렁에 몸을 숨긴 희뿌연 열기의 흔적만이 햇빛이 다녀갔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줄 뿐이다. 무심한 세월이 흐른 탓일까. 고향엔 길동무가 되어줄 도반(道伴)이 없어진지 오래다. 혼자서 희다 못해 푸르스름한 달빛을 쫒아 바람도 쐴 겸 호젓한 오솔길로 나서본다. 어슴푸레 달빛 속에서 눈대중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이곳이 그곳이고 그곳이 이곳이다. 길섶의 벤치 위에 턱을 괴고 앉으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 언저리를 맴돌며 지금의 나를 잊게 만들고, 잡다한 상념들이 이 틈새를 놓칠세라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우리 동네는 산비탈에 위치해있어, 달빛이 창문을 통해 몰래 들어와 방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달빛이 너무 해맑고 투명하여 차마 잠자리에 들기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이런 밤이면 나는 뒷마당 뜰에 물끄러미 서서 물처럼 출렁이는 달빛 풍경을 탐닉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서로 사모하듯이, 나뭇잎들 속으로 달빛이 깊게 스며들었다. 나무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들쭉날쭉 땅위에 수묵화를 그려낸다. 그리움이 이 순간을 놓칠세라 빗살무늬를 일으키며 가슴팍으로 내려앉는다. 내친김에 달님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본다. "달님은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나요?" "아무래도 달맞이꽃이지요." "왜요?" "달맞이꽃은 원래 나를 따르던 요정이었답니다. 그믐이 될 때마다 나를 볼 수 없게 되자, 상심한 나머지 그만 쓰러져 달맞이꽃이 되었지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애절한 그리움의 상징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꽃말이 그리움이 아니던가요. 그 꽃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답니다." "해님은 달맞이꽃을 좋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야 그렇겠지요. 자신을 따르는 꽃이 따로 있으니까요." "궁금하네요. 무슨 꽃입니까?" "해바라기 꽃입니다. 그 놈은 해님을 지겹게 따라다니지요. 심지어 해님이 귀찮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흐린 날에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답니다." "달님, 혹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지요. 이태백이 나를 처음으로 낭만적인 사모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신다는 '월하독작'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가 경포대와 인연 맺을 것이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의 '경포호'에는 네 가지 낭만의 얼굴이 보인답니다. 첫 번째는 하늘에 뜬 저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바다에 뜬 모습, 세 번째는 호수에 뜬 모습. 마지막 모습은 술잔 위에 뜬 저의 모습이지요. 하나를 더한다면 해맑은 눈동자에 들어있는 저의 모습이랍니다. 그 당시만 해도 풍류와 해학이 넘칠 시절이라 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답니다." 상념이 상념의 꼬리를 물며 심연의 세계에 빠지니, 광음의 촉감이 무디어져 간다. 해님과 달님의 열광적인 팬은 누구일까? 생뚱맞은 쪽으로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다. 해님의 팬은 아무래도 '해바라기'가 아닐까.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퍼부으니 말이다.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숨쉬기조차 힘든 폭염 속에서도 맹목적으로 퍼붓는 사랑, 그것은 출세와 소유, 격정과 독선의 이미지와 왠지 닮은 듯하다. 하지만 달님의 팬인 달맞이꽃은 새색시 마냥 수줍은 에로스적인 사랑이다.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양보와 인내, 조화와 공존 같은 이미지와 왠지 닮아있다. 해님이 이성이라면 달님은 감성에 가까워 보이고, 해님이 현실이라면 달님은 낭만에 가까워보인다. 해님보다는 달님이 왠지 텅 빈 내 가슴에 포근히 내려앉는다. 환영(幻影)적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의식세계로 돌아오니, 달님은 이미 서녘에 걸려있고 밤이슬은 내 가슴속에 함초롬히 파고든다. ◆ 당선소감 창밖은 초록세상이다.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초하(初夏)가 막 눈앞에 어른거리며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 글쓰기는 감성이 아닌 팩트(事實)속에 갇혀 있었다. 팩트란 주관성과 감수성 쪽이라기보다는 객관성과 논리성의 편이 아니던가. 팩트의 우산 속에서 밖을 쳐다보지도 쳐다봐서도 안 되는 줄 알고 살아온 것 같다. 팩트 밖은 늘 불안하고 위험한 곳으로 여겨왔다. 마치 나의 작은 우주요 나의 따뜻한 안식처로 여기며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학창시절에는 가끔씩 팩트를 넘어서고 싶은 생각들이 나를 꼬드기며 부추긴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수절하는 심정으로 허벅지를 찔렸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문학적 DNA를 찾지 않고 걷어찬 셈이다. 그땐 그랬다. 간만에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팩트 밖의 새로운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밝고 찬란하다. 좁고 얇은 속박의 틀을 벗어나니 새로운 신세계가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이젠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싱그러운 세상, 내 가슴으로 느껴지는 상큼한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누구의 것을 흉내 내고 싶지 않다. 내 느낌과 감성을 그저 글로 토해내고 싶다. 어쭙잖은 글을 예쁜 시선으로 봐준 '매일신문'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인생 2모작에 빛나는 디딤돌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수필과 지성 」글벗들이 생각난다. 새롭게 펼쳐지는 이 길이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절감한다. 전도양양하게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길을 내고 닦는 심정으로 말이다. 하안거(夏安倨)로 축 쳐진 어깨에 새로운 서광이 비춰짐이 느껴진다. 내 글쓰기도 창밖의 신록처럼 푸르름이 가득 돋아나길 떨리는 가슴으로 기원해본다.

2018-07-25 14:02:28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박용운 '물의 과외공부'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박용운 '물의 과외공부'

어둠에 잠긴 청계호수 저녁 한 권을 다 읽은 촉촉한 물의 알갱이들이 호수를 빠져 나온다 소리 없이 주변을 다 암기하는 물안개 호수를 딛고 일어나 허공 한 귀퉁이를 펼친다. 주변을 감싸는 자욱한 물의 필체들 무지개로 날고 싶은 꿈 뼈가 없어 흐느적거리며 산자락을 휘감고 계곡을 오르지만 하루도 살지 못하는 헐렁한 물방울들 수없이 날갯짓을 하여도 하늘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가만히 걸어오는 아침 어둠을 살펴 조심조심 걷지만 햇살에 녹아내리는 물의 손가락 풀잎의 겉장이 다 젖었다 호수를 빠져나와 날마다 주변을 복습하는 물의 과외공부 또 새벽을 기다린다. 시 – 박용운 '물의 과외공부' - 당선소감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 보이지 않는 벽은 뚫기도 어렵다, 만 리길도 아닌 한 길속에 있다는 언어를 잡기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낚시대 가냘픈 손잡이에 숨어있는 언어를 부르며 낚시 끝에 쉽게 모습을 주지 않는 시어를 찾아 멀고 깊은 하늘에 낚시를 던진다. 별빛아래 까만 피를 흘리며 시리도록 눈을 끌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낚시 대와 나란히 하얀 바다를 걸어가고 있다, 고기야 차라리 낚시 대로 나를 낚아가라, 진한 커피향의 구수함 같은 연륜이 있고 중후하며 깊이 있는 노년의 향기를 같기 위해 글을 쓰면서 중도에서 좌절의 벼랑을 닥칠 때 마다 도망하고픈 날이 많았지만 안개를 벗은 태양은 더 맑고 찬란하다는 학교 선배님 위로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길, 점심시간에 걸려온 시니어 문학상 당선 소식은 귀를 자꾸만 후벼봅니다.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게 귀에 남은 여운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끈기와 집념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느끼며 오기에 가까운 투지로 젊은 시니어가 되기 위해 새벽 별빛을 보며 뛰어 온길, 시니어 문학상은 고기가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뒤늦게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점점 잃어가는 노후를 뜻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는 건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맑은 샘물 같아 다시 한 번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를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그리고 좀 더 깊고 세심한 글을 강조하시는 맹문재 교수님과 시는 시어가 쉽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씀을 늘 해 주시는 공광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의 글에 빛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래토록 남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3:53:16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당선작-신송우 '이름 짓기'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당선작-신송우 '이름 짓기'

이름 짓기 / 신송우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빙판길에서 넘어지면서 한 차례 실패가 있고 난 뒤라 너무 서두른다고 나무랐다. 내심으로는 손자를 얻는다는 반가움에 좋은 이름을 지어보려고 궁리를 하였다. 본관의 같은 항렬자에 부르기 쉽고 적기 쉬운 것으로 짓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 오래전 N 학교에 도서관을 신축하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한울'이라고 응모를 한 결과 그 이름이 채택되어 현판식을 했다. 그때 특정 종교 신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중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산악회를 조직하고 이름을 지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높은 산이기도 했고 높은 산을 오른다는 뜻으로 고산회(高山會)라고 지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둘레길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이니 어울리지 않은 명칭이 되고 말았다. 학교 관리자가 되고 운동장 동편에 다목적 건물을 지었다. 개관을 앞두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고심 끝에 제출한'미래관'이 채택되었다. 그곳을 가끔 지나가다 현판을 보며 학생들이 저마다 미래의 꿈을 갖고, 가꾸어 간다고 여기니 가슴이 뿌듯하였다. 퇴직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파크골프를 배웠다. 클럽에 가입하고 첫 모임을 했다. 임원에 선정되지 않았으나 클럽을 상징하는 이름을 '한마음'이라고 정하였다. 골프 회동 시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우리 클럽 이름이 뭐냐고 들먹이면 이내 수그러들기도 한다. 내 이름에는 항렬자 외에 소나무 송자가 들어간다. 백부님께서 나무 목(木)에 귀족의 작위를 일컫는 공(公)을 합하여 만든 글자로 지었단다. 한학을 공부한 대구의 K 교육장은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란다. 그때마다 백부님에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제대로 듣거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 아쉬움이 있다. 어릴 때 동네 여자 이름 끝 자가 대부분 숙, 순, 옥, 자이었다. 그네들이 시집을 가더니 고상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나는'보람','아라'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 반 출석부를 작성하다 깜작 놀랐다. 이름이'아라'인데 하필이면 성이 박씨가 아닌가.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놀림감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학생 어머니와 의논하여 개명 절차를 밟아 주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 이름을 족보의 항렬자에 맞게 지었다. 가운데 한 글자만 짓다 보니 쉽사리 해결되었다. 딸 이름 짓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부르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으로 지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 때의 일이다. 딸은 자기 반에 같은 이름이 셋이나 있다며 몇 날을 뽀로통했다. 시집을 가서 딸이 태어나자 직접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아들은 연일 독촉을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이름을 짓는데 자부심을 가졌다. 막상 내 손자 이름을 짓는 일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 본인의 사주와 맞는 이름에 복을 더하기 위하여 짓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너희 부부가 의논하여 짓든지 아니면 철학관을 방문하여 상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가 지어야 한다며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출산일은 수도꼭지 틀어 놓은 양동이에 물이 차오르듯 다가오는데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이름을 이태나 늦게 지어 두 살이나 적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짓겠다고 서점에 가서 작명에 관한 책을 모두 샀다. 산책을 하나하나 정독을 해봐도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읽은 책 내용의 공통점을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먼저 본관에 돌림자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고심 끝에 선대에 훌륭하신 분의 이름으로 내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다.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드디어 손자의 이름을 '신채호'라고 지었다. 아들과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 앉혔다.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훌륭하게 키우라고 당부하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마주보더니 이내 얼굴이 보름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았다. 손자가 자라서 반드시 이름값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당선 소감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당선 소식을 접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터라 지하철 바퀴 구르는 소리보다 더 가슴에서 쿵쾅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중학교 때였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내 기행문이 교내 방송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누구나 꿈을 꾼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문학도의 꿈을 접고 현실에 충실해야만 하였다. 퇴직을 앞두고 고향 가는 길에 동생이 "형님! 퇴직하면 무엇 하며 지내시렵니까?" 그동안 학교 일에 전념하며 지내던 터라 "이제 좀 쉬어야지" 통상적인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세상을 등질 때까지 행복한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용기 내어 늦깎이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학아카데미 개강식 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부분 나보다는 젊은 사람들이라 놀라며 머뭇거리다 겨우 용기를 내어 뒷자리에 앉았다. 문학 분야에 초보인 나는 그들에게 뒤질세라 강의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문학에서 나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안전한 레일 위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지하철과 같은 삶이었다면, 이제는 버스를 타고 부대끼며 전후, 좌우,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쉬지 않고 나아가리라. 끝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과 매일신문사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를 아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18-07-25 13:53:03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 당선작-류재홍 '지심도 동백'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 당선작-류재홍 '지심도 동백'

지심도 동백 / 류 재 홍 불현듯 눈을 떴습니다. 시계가 네 시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깜깜합니다. 창문을 열려다 밀려오는 바람에 놀라 얼른 닫고 맙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양팔을 벌려가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어떤 이는 글쓰기로 새벽을 밀어내고 누구는 독서로 하루를 연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몸부터 풀어야 합니다. 한 번 망가진 몸은 좀체 돌아오지 않아서 어르고 달래가며 쓸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지심도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낮부터 따뜻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남편이 봄옷을 꺼냅니다.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일찌감치 세탁해서 넣어둔 겨울옷을 꺼내기도 싫었거니와, 추운 것보다 더운 걸 더 못 견디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집을 나서자마자 어깨를 웅크립니다.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스 안을 아무리 훈훈하게 해 놓아도 자꾸만 웅숭그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쉼 없이 달려 거가대교 휴게소에 다다랐습니다. 모두 전망대로 올라간 틈을 타 휴게소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리털 조끼를 본 남편이 반색하며 입어봅니다. 시중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가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 지심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하늘에서 본 섬 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아서 지심도라 한다는데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이름인 동백섬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도 동백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는지 섬은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모두 봄바람에 신명이 나 있습니다. 우리도 콧노래를 부르며 둘레 길을 올랐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 보았던 사량도 동백이 생각납니다. 사량도에는 온갖 종류의 봄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을 지나다 무엇에 끌린 듯 멈춰 섰습니다. 나무도 땅도 온통 검붉게 물들어 있는 게 묘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수많은 동백꽃이 한데 어우러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달렸거나 누웠거나 한결같은 색이었는데,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해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도 그런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꽃을 볼 수도 있을 거야. 여기는 말 그대로 동백섬이 아닌가. 마음은 벌써 부풀어 오른 풍선입니다. 둘레길 초입에 조그만 카페가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 있어 나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한 무리의 붉은 꽃이 하트 모양으로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주인이 손님을 끌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이것뿐일까. 인위적인 것에 코웃음 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군데군데 동백꽃은 피어있었습니다. 땅에는 더 많은 꽃이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붉은빛도 분홍도 아닌 희멀건 색은 내 마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비수처럼 꽂히는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했습니다. "날씨 탓인가 아니면 끝물이라 그런가, 꽃이 왜 이래." 지나가는 사람들도 투덜거렸습니다. 맛도 멋도 잃어버려 휘적휘적 걷기만 했습니다.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하트 모양의 동백꽃 앞에 섰습니다. 아직도 선홍색 그대로 환합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지막하고 여린 아기 동백이 몇 개의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수백 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라고 말한 것을. 이곳은 원래 국방부 소유의 땅이라 오래된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몸에서 청춘의 힘을 맛보려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새삼 지나온 산을 뒤돌아봅니다. 장대한 거목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인데 미우니 고우니 하며 호들갑 떨게 무어냐며 일갈하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거나 선명하거나 다 같은 동백꽃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당선 소감 수필 밭에 이름을 올린 지 내년이면 십 년입니다. 돌이켜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해 놓은 게 별로 없습니다. 작가다운 프로 근성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아예 손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열하게 매달리지도 못했으니까요. 몸이 따라주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타성에 젖어버린 마음 탓이 더 크리라 봅니다. 마냥 주저앉고 싶던 차에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좀 망설였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자괴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때 책 한 권 내겠다며 덤벼들었던 '책 쓰기 포럼'의 열정이 떠올랐고, 다시금 그 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신력을 끌어올릴 무언가가 절실했다고 봐야 더 옳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며칠을 글과 씨름했습니다. 덕분에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필다운 글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내 안의 틀을 깨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꿈이 한낱 욕심으로 끝나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십사 미리 부탁드립니다. 내 글의 근간이 되어준 가족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뭉친 여세주 교수님을 비롯한 수요반 문우들께 이 공을 돌립니다. 늘 아껴주시는 달구벌수필 선생님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니어 문학상'을 제정한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2018-07-25 13:42:00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시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 당선소감 68년 전, 우리들은 6.25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었다. 학생들은 거주지에 속한 학교에 편입되었다. 나는 구덕산 밑 부산여중으로 갔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을 다 수용하기에는 교실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천막으로 교실을 짓고 피난 학생들은 천막에서 수업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수업을 했다. 얼마 후 당국에서는 부산으로 피난 온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학교를 시작하라고 했다. 우리 피난 학생들은 모두 본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30~40평, 일본식 건물에 전교생이 다 들어가야 하니 비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은 집대로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살았으니 그 답답함은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진해로 소풍을 갔고, 답답했던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마냥 즐거워서 학교로 돌아왔고, 소풍 기행문을 썼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우수작품 낭송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작품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며 그 때, 내 마음에 자긍심을 심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 문학에 대한 열망의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그 보다 앞서 6.25전쟁이 나기 전,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때는 좌익 우익이 딱 갈라진 시대가 아니었다. 프로레타리아의 이상론에 심취되어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그 이론에 매료되어 있던 사람들도 많은 때였었다. 당국과 학교에서는 반공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반공 표어를 지어 오라고 자주 숙제를 내 주었다. 하얀 칼라에 귀 밑, 1cm의 머리를 찰랑 거리면서, 나는 당당하게 학교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중앙 맞은편에 "무궁화를 좀 먹는 붉은 벌래 없애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아니 저건 내가 써서 낸 내 표어잖아' 그 순간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붓글씨 앞에서 나는 감격하여 경직된 모습으로 한 참을 서 있었다. 그 감격은 아침마다, 현관을 들어설 때마다 더 해 갔었다. 아마도 정말 내게 씨앗이 심겨진 때는 그 때가 아닌가 싶다. 진해 소풍 기행문 사건은 그 씨앗이 발아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서울로 환도한 나는 그 싹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많은 형제에 맏딸인 나는 대학 국문과에 합격은 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바로 위에 오빠가 의용군에 갔다, 온 관계로 대학 입학이 늦어졌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해에 대학을 가게 되었고, 내가 양보를 해야 했고, 밑에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으니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집안 형편이었다. 일찍 결혼을 했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느라 작가의 꿈은 꾸지도 못했고, 또 남편 사후, 남편 사업을 대신 하느라 문학에 대한 열망은 접어 두었었다. 회사 일이 어는 정도 안정 되자, 늦은 나이임에도 공부를 시작했다. 문화 쎈타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수필반에서 수필을 쓰고, 드디어 학교로 갔다. 중앙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서 육년 동안 단편을 썼다. 교수님이 이번에는 장편을 한 번 써 보자고 했다. 장편 첫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가장 감명 깊은 장면, 이렇게 세 장을 써오라고 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썼다. 다음 시간, 선생님은 많은 작품 중 소설이 될 만한 작품은 내 작품 하나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 날부터 2년에 걸쳐 장편을 썼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고무되어 용기를 얻고, 힘을 내어 열심히 썼다. 70이 넘은 나이에 밤을 새우면서 썼다. 쓰면서 선생님과 문우들의 합평을 토대로 개작을 해 가면서 썼다. 그리고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기를 아홉 번째, 제 7회 혼 불 문학상 응모 전에 응모 했다. 핸드폰 문자에 혼불 문학상에서 문자가 왔다. 혼불에서? 혼불에서? 이것은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다. 힘겹게 열어 본 화면에는 '혼불 문학상 수상자 발표'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내게 이런 문자가? 내게? 눈물이 앞을 가려 화면을 볼 수가 없다. 잠시 진정하고 다시 열어보았다. '282명 응모자 중,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예선 17편 안에 들었다' 고 한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대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만하면 족하다. 그런데 또 매경 시니어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논픽션과 시, 두 부문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쓸 것이다. 2013년도 노벨 문학상, 여성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나와 같은 나이인 83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2018-07-25 13:25:54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김현숙 '내 영혼의 까치발'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김현숙 '내 영혼의 까치발'

내 영혼의 까치발 / 김현숙 쉰의 중반을 넘던 때는 꽁꽁 동여맸던 허리띠를 잠시 풀어놓고 싶었다. 여유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지만 그마저도 사치였을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내 목숨은 갑자기 벼랑으로 추락했다. 나는 호소할 틈도 없이 뉘누리는 큰 입을 벌리고 날 향해 달려들었다. "대장암입니다. 위치도 몹시 나쁜, 횡행 결장암입니다." 눈을 감았다. 그때 바람이 불었던가. 눈앞에 있던 창이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리고 사람들 옷자락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눈을 떴을 때 컴퓨터 화면에는 내 몸의 일부인 내장 부위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둥근 통로를 막고 있는 대롱들, 피고름이 엉겨 붙은 붉은 형체를 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영상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3기로 추정되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면 수술도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 날 붙잡고 있던 어떤 끈이 툭,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편치 않았던 지난날 삶의 조각들이 물거품처럼 바위에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수시로 날 향해 날아들었다. 어느 날, 남편의 폭력과 인권유린에 길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내 존재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자유를 찾게 했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대가는 처절했다. 거기엔 절망이란 단어가 찍혀 있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전날, 무엇에 이끌리듯 나는 도깨비 시장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 속을 몇 시간째 정신없이 헤맸는지 모른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내 손에는 겨우 몇 가지 찬거리가 들려 있었다. 오래 살았던 만큼 많은 추억이 스며있는 동네였다. 낡은 집들이 사라진 곳에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 폐가를 만났다. 불에 탄 듯 폐가는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텃밭에 타다 남은 개나리 가지 앞에서 나는 서성였다. 손을 뻗어 개나리 가지를 쓸어내리는데 가지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어차피 폐가와 함께 사라질 생명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난 무작정 개나리 몇 뿌리를 파헤쳐 까만 봉지에 주섬주섬 담았다. 검게 그을렸지만 가지 끝은 마치 사위어가는 내 모습 같아 신들린 듯 창가 화분에 심었다. 대장암 선고를 받던 날은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뒤척였다.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들 무렵, 독서실에서 돌아온 아들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요즘 암은 웬만하면 다 치료가 된대요. 아무도 엄마를 못 데려가게 수술실 밖에서 내가 지킬게요. 그렇게 큰소리치던 아들은 겨우 대학생일 뿐이었다. 수술 전날 아들은 쪽 침대에서 노트북에 코를 박고 졸고 있었다. 검색창에는'대장암'이란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매달렸던 순간에 아들은 훌쩍 커버린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병은 그렇게 우리에게 각자의 길을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마취제가 들어갑니다. 천천히 하나, 둘, 셋을 세어보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내 의식은 서서히 무의식으로 이동했다. 그때 온몸을 파고드는 경쾌한 리듬이 있었다. 급박한 수술실 안에 울려 퍼지는 요한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내가 꼭 붙잡아야 할 삶의 끈이었던 것도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온몸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지독한 한기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다. 아들이 덮어준 푸른 담요 한 장의 온기로 나는 죽음과 싸웠다. 아들은 내게 온기였고, 아들에게 난 울타리였다. 수술 후 회복 기간은 죽음과 맞닥뜨린 후 찾은 또 다른 평안이었다. 비로소 영혼의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창가에 심어 둔 개나리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자 파릇한 숨이 느껴졌다. "피~움!!" 한밤중 어디선가 새털같이 가냘픈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난 무심코 창문을 열어보았다. 어둠 속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등불을, 부러질 듯 깡마른 시커먼 나뭇가지 끝에 생명의 환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시간이 그 작은 꽃잎에 맺혀 있음을 알았다. 십 년이 지났다. 해마다 개나리를 보면, 아니 봄기운이 느껴지면 가슴이 뛴다. 마취 직전, 수술실 안에 흐르던 요한 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 그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이던 내 영혼의 까치발이었다. ◆당선 소감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비틀대다 상처입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빛이라곤 없는 어둠속은 깊은 수렁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을 때 어떤 외로움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만 멈춰서도 난 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한 발짝 한 발짝, 어둠의 속살을 밟고 가느다란 빛을 찾아 손을 내밀었습니다. 빛은 조금씩 환하게 바뀌었고 어둠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 지금 우리 조선은 이렇게 어두컴컴한 삶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 밝은 학문의 길을 열어 주셔서 이 나라를 학문의 등불로 밝히게 해주세요." 문득 하란사가 이화학당에 입학할 때 프라이 교장에게 간곡히 부르짖었던 절규가 생각났습니다. 살아있다는 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수필 은 대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의 절망을 그렸습니다. 그때 제게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오히려 친구였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던 이들도 죽음을 예측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세상 눈빛이 모두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형식적인 위로를 앞세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홀로 방황하던 약한 영혼은 죽음의 문턱에서 필사적으로 까치발을 들고 세상과 맞섰습니다. 아무도 제게 문학이 천명(天命)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고독한 글쓰기였지만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매달렸습니다. 우연히 방송대 선배인 장미숙 작가와의 만남에서 저는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제 의식이 졸탁(啐啄)으로 깨어지던 날. 저를 가두었던 두려움도 깨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만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올려주신 매일신문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 숙입니다.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는 글쓰기에 장애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껍질을 벗고 나온 애벌레의 마음으로 묵묵히 수필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07-25 12: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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