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유발 하라리

유발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유발 하라리 지음/김영사 펴냄

'사피엔스'를 시작으로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까지 이른바 '인류 3부작'을 펴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책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뒤 스스로 신의 자리를 넘보게 됐다는 대서사를 통해 불가해한 세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탁월하고 대담한 이야기로 각계각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세상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쓴 셈이다.이번에는 유발 하라리가 '우리' 속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한다. 그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에 주목해 '유발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을 펴냈다.◆역사 속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 하라리는 기로에 선 21세기 사피엔스를 위해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탐색한 '인류 3부작' 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간돼 1천600만 부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1세기 사상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 책은 인류 3부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선행 연구로, 2002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하라리의 박사 논문이기도 하다.하라리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주목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이다.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은 군인회고록은 1450년에서 1600년 사이 34명이 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문헌으로, 17세기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 역사(history)와 개인사(lifestory) 사이의 긴장 관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사실상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회고록은 오늘날 기준에서는 구색을 갖춘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과관계로 이어진 이야기라기보다 제각각인 에피소드의 나열이다. 역사적 사건과 자신의 현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 또 그들은 회고록에서 사실을 감정이나 생각이라는 필터를 거쳐 묘사하지 않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추상적인 경험보다 구체적인 행동이 명예의 준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였고,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 손색이 없다.하라리는 역사 속 개인의 의미에 주목한다. 왕과 국가의 권력에 맞서 자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려 했던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삶을 통해 역사 속 개인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논리적 인과관계 없는 군인들의 무용담 기록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아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은 명예를 목숨처럼 여긴 전사 귀족(warrior noblemen)이었다. 귀족이 아니면 역사 속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었고, 정체성도 빼앗기고 말았다. 여기서 개인은 전사 귀족도 하급 전사도 모두 포함한다.◆'우리'의 역사와 '나'의 역사하라리는 "인간의 현실 중 '역사적인' 일부가 먼 과거에 속할 때는 '역사'라고 불리고, 가까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속할 때는 '정치'라고 불린다"고 말한다.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학문적인 질문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질문이다. 경계선 안의 사람과 사건들에서 새로운 권력과 역할이 생성된다. 반면 역사적 현실에서 밀려나면 정치의 세계에서도 밀려난다.그는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이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을 역사와 개인사의 동일시로 고찰한다. 일화 중심적인 역사는 기록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며, 언제라도 추가할 수 있게 결말이 열려 있다. 각자가 인과율의 억압 없이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삶 또한 의미를 가지며, 닫히지 않을 것이다. '왕조-민족의 위대한 이야기'는 개인사는 분리되어 떨어져나간 '우리'의 역사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다. 물론 당대 회고록 저자는 귀족 남성으로 정체성이 한정되었고, 역사의 내용은 명예로운 행동으로 국한되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는 손색이 없다.하라리는 현재 역사가 결말을 열어둔 일화 모음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점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이 개인사와 역사를 동일시했던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개인사가 역사보다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개인사와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이 논문을 쓰고 7년 뒤 '사피엔스'를 통해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는 아직 커다란 공백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이 공백을 채워나가야한다고 말한다. 516쪽, 2만2천원.

2019-08-22 11:24:15

[반갑다 새책]마음속 아이를 부탁해/한영임 지음/행복에너지 펴냄

모두가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차근차근 도와주는 수필이자 실용서로,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통해 얼마든지 현재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지은이가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갑자기 남편이 슈퍼마켓을 하자고 했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결국 시작하게 됐다. 장사는 대성공이었다. 매일같이 손님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과 싸우게 되었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본문 중에서)평범한 아주머니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 넣는 멘토로서 삶을 시작한 지은이는 힘든 시절을 거쳐 마음코칭 강사, 시낭송가, 창업지도사, 사회복지사, 장례복지사, 스포츠댄스 지도사로서 다채로운 삶을 쌓아가고 있다.우리 모두는 언제가 죽는다. 그 언젠가는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유한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나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지은이 역시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 속에 있던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고 한다. 마음코칭을 통해 지은이의 마음 속 어린 아이가 울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문제의 요체는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되자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던 것이다.'드림 리스트를 작성하라' '마음의 힘을 믿어라' '롤 모델을 모방하라' '운동은 필수다' '받고 싶은 만큼 주어라' '관심분야의 책을 읽어라' '소명을 찾아라' '감사 일기를 써라' 등 지은이가 책에서 주장하는 논지들은 모두 '마음 속 아이 돌보기'의 방법들로 차근히 따라가다 보면 진정으로 평안한 '나'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체험한 작고 소중한 깨달음과 평범한 이야기들이 함께 버무려 진다면 우리가 그렇게 찾고자 했던 삶의 진리는 어느 새 우리 가까이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299쪽, 1만5천원

2019-08-21 11:21:09

박현덕 시인, 2019 백수문학상 수상자. 한국시조시인협회 제공

박현덕 시인 제5회 백수문학상 수상

김천시가 지원하고 백수문화제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5회 백수문학상 본상에 박현덕 시인의 '저녁이 오는 시간 1-겨울 운주사'가, 신인상에는 구애영 시인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가 각각 선정됐다.백수문학상은 김천이 고향인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 시조에 담긴 문학정신을 기리고, 세계화 시대에 맞는 현대시조의 역량 있는 우수 시인을 선정해 그 예술정신을 격려하고 널리 선양하기 제정된 문학상이다.올해 문학상 심사는 2018년 7월 1일부터 2019년 6월 30일까지 발표된 시조시인의 작품을 대상으로 정용국, 박성민, 정희경 시인의 예심 선고에 따라 백수문학상 후보자 9명, 신인상 12명이 추천되었고, 이근배, 김제현, 이승은 시인의 본심 심사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됐다.전남 완도 출신인 박현덕 시인은 광주대 문창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 .199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 작품상, 오늘의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조집 '겨울 삽화', '밤길', '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 '스쿠터 언니', '1번 국도', '겨울 등광리', '야사리 은행나무'를 냈다.신인상 수상자 구애영 시인은 1947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돼 등단했다.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수상. 시조집으로 '모서리 이미지', '호루라기 둥근 소리' 등이 있다.시상식은 오는 8일 31일 김천 직지사문화공원에서 열리는 백수문화제에서 진행된다. 상금은 본상은 2천만원, 신인상은 500만원이다.박현덕 시인은 "백수 탄신100주년의 해에 수상을 해 기쁘다"며 "시조는 일상 속에서 순간의 찰나를 포착해 단아한 그릇에 담아냄과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설 때 시적 성취로 연결된다. 앞으로도 철저히 고뇌하고 번민하면서 단순 서정에서 탈피, 존재론적 인식을 담아내고자 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19-08-20 14:58:28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홍익희 지음/행성B 펴냄

종교를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교회나 절, 성당 등의 건축물이나 그 상징, 그리고 구성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천국와 지옥같은 사후 세계의 교리나 종교 규범 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앙 체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종교의 탄생과 발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흐름과 함께 해왔다.종교를 한 걸음 물러나 인류 문명사의 흐름에서 바라본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가 출간됐다.◆문명의 흐름과 함께하는 종교베스트셀러 '세 종교 이야기'를 통해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을 다루면서 세계사의 흐름과 종교 분쟁의 근원을 짚어낸 홍익희가 인류 문명의 더 넓은 바다에서 세계 종교를 통찰한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로 돌아왔다. 책은 문명의 발생, 종교의 탄생, 제국들의 흥망과 함께한 종교의 역사를 통해 종교적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종교가 말하는 진리와 평화는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인류의 기원,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고대 신화의 탄생, 기후 변화에 따른 유목민족의 이동, 국가 체제 혹은 사회 제도를 뒷받침하는 사상의 수립, 제국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국가종교의 필요성 등을 통해 종교는 모양을 갖추었고 가다듬어졌다. 또 종교끼리도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종횡으로 영향을 미치며 형이상학적이고 제도적인 틀을 만들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인류의 종교 발자국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인류 문명사로 세계 종교를 바라볼 때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유목민족과 정주민족의 대결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드넓은 초원 지역이 형성되자 바이칼 호수 근처에는 몽골로이드계 유목민이, 흑해가 범람한 코카서스 지역에는 코카소이드계 유목민이 등장했다. 코카서스 초원의 유목민은 인도유럽어족으로 흔히 아리아인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것이 '쿠르간 가설'이다. 종교와 관련해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이들의 발자국이다. 토테미즘의 효시인 이 유적은 농경생활 이전에 종교 공동체가 먼저 성립됐다는 점을 입증한다.초원의 유목민족은 정주민족이 살던 지역으로 들어가 지배계층이 되면서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웠다.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에 따르면 인류 초창기 유럽대륙에는 여신을 숭배하는 여성 중심의 평화로운 문명이 형성돼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3천500년을 전후로 호전적인 기마 문화인 코카서스 초원 문화가 서쪽으로 세력을 뻗쳐와 인도유럽어족의 유럽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가부장제와 부계체제를 앞세우면서 남신 숭배 사회가 됐다.아리안의 일부가 기원전 15세기경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 북부로 쳐들어 가면서 카스트 제도를 새로운 통치 체제로 구축했다. 그리고 이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대 페르시아 다신교를 조금 변형시킨 브라만교를 만들었다. 브라만교는 사상의 발전을 거듭하며 불교와 힌두교로 이어진다.◆제국과 왕, 그리고 종교이 책에서는 제국과 세계 종교의 관계도 다룬다. 인도유럽어족이 세운 히타이트의 최고신은 미트라였다. 자손과 가축을 내려주는 번영의 신이자 만물을 품은 빛의 신이었다. 미트라교는 고대 페르시아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 시대까지 번성했고 초기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마스와 일요일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으며 미트라교는 쇠퇴했다.조로아스터교는 세계 종교 성립에 뿌리다. 키트라교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고, 유일신, 선악 이분법 등의 개념은 유대교는 물론 기독교까지 이어졌다. 중국으로도 전파돼 경교로 불렸고 미륵불과 정토 사상 등으로 불교에 파급됐다.조로아스터교도 비스타스파왕을 만나기 전까지는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자신의 종족에게서 거부당한 조로아스터는 박트리아의 비스타스파왕에게 전도하러 가지만 2년간 투옥을 당한다. 하지만 왕은 다신교보다 유일신교가 국가 운영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이고, 이후 급속히 퍼져나간다. 비스타스파왕은 콘스탄티누스황제를 떠올리게 한다. 로마제국의 단독황제가 되는 계기였던 밀비우스 전투를 앞두고 꿈에서 승리의 계시를 받은 그는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한다.이처럼 이 책은 세계 문명사와 함께한 종교를 다룬다. 이 때문에 종교의 교리적 특징이나 차이점 등 다소 딱딱하고 추상적일 수 있는 내용들을 명쾌하고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밖에도 '신라 기마인물상은 쿠르간 가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집트 신전과 콜로세움을 세운 민족은 누구인지', '콧수염을 기른 서양인 모습의 불상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준다. 660쪽, 2만8천원.

2019-08-15 14:30:57

로마 시가지

[서평]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김경준 지음/ 메이트북스 펴냄

2천년 전 로마인들의 성공스토리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오직 실력과 노력의 결과였다. 산적들과 양치기의 작은 촌락으로 시작한 로마가 700년의 성장기를 거쳐 서방세계 전역을 지배하는 패권국이 되고 300년 가까운 번영을 누린 것은 변방의 벤처기업이 M&A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로마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조직으로 꼽힌다.지은이는 1천년의 역사를 유지하고 세계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성공 원동력을 대담한 개방성, 탁월한 리더십, 체계적인 시스템, 철저한 실력주의라는 4개의 바퀴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로마인의 국가경영을 현대의 기업경영에 적용해 과거와 현재를 타임슬립 하듯 넘나들며 경영의 핵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대담한 개방성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가 역사상 수없이 명멸했던 정복민족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로 이뤄진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개방성이었다.로마인들은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의 유력자에게 원로원 의석을 제공해 지배계급으로 편입하는 전통이 있었다. 정복을 통한 영토확대가 로마의 하드웨어 M&A라면, 개방성으로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정책은 로마의 소프트웨어 M&A였다고 할 수 있다.민주정치를 표방했던 그리스인에게 시민이란 '피를 나눈 자'였지만,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하는 자'였다. 로마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피부색과 출신지역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한 정도에 다라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펴갔다. 피를 흘리며 싸운 적국도 승리한 후 포용하는 대외적 개방성으로 공동체의 외연을 확대했다. 건국 초기 귀족들이 독점하던 정치적 기득권을 꾸준히 내부 개혁을 통해 평민들에 개방하면서 반체제를 체제 내로 흡수하고 인재 활용의 범위를 넓혔다. ◆탁월한 리더십조직의 수준은 곧 리더의 수준이다. 로마는 학교에서 배우는 고상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체험을 쌓는 것을 중시했다. 로마의 명문가 젊은이들은 군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하고 말단 행정직을 경험한 후 단계별로 공직을 거치고 리더십을 검증받으면서 지도자로 성장한다. 이런 시스템은 우수한 지도자가 끊임없이 충원될 수 있었고, 현실과 유리된 이상론에 빠져든 선동가가 지도자가 되면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로마사회는 실력에 기초한 힘의 논리가 지배했지만 지도층의 윤리의식이 리더십을 확보했다. 공화정 초기에 현직 집정관이 국법을 위반한 자신의 두 아들을 사형시키면서 법치주의 전통이 확립됐고, 전쟁이 나면 지도층이 가장 먼저 무기를 들고 달려나가 싸우면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재산을 기부하고 공공시설을 건축해 권위와 명예를 쌓는 문화가 널리퍼져 있었다. 로마에는 확장 과정에 다양한 민족과 집단이 편입됐지만 다음 세대의 지도층을 육성하는 시스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었기에 리더십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체계적인 시스템시스템과 매뉴얼만 제대로 갖추면 어떤 조직이든 기본점수는 딴다. 로마군의 핵심역량이었던 강력한 군사력은 불굴의 의지를 강조하는 정신력이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과 매뉴얼에서 출발했다. 공화정 로마는 매년 군대를 재편성하는 시민군체제였다. 최고지휘관부터 일개 병사까지 완전히 바뀌는 상황에서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히 시스템과 매뉴얼이 갖춰졌다. "로마군은 곡괭이로 싸우고 병참으로 이겼다"라는 평판도 있다. 시스템과 매뉴얼로 양성된 군사력을 체계적 병참으로 지원해 대규모로 집중 투입하는 로마군의 전쟁방식이 '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명성의 근원이었다.이런 사고방식은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로마의 무형자산이 되었다. 로마 전역을 핏줄처럼 연결한 가도와 도시기반시설인 상하수도 등 방대한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고 유지한 것은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세금제도는 넓고 얕게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낮은 세율을 유지하면서 공동체의 번영을 이끌어낸 세제도 효율적인 국가영영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철저한 실력주의로마가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철저한 실력주의가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신분제는 꽉 막힌 분리벽이 아니라 소통되는 삼투막이었다.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이 제정되면서 평민도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노예도 실력만 있으면 자유민이 되는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건국 초기 왕정에서도 왕위를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뽑았고, 매년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공화정은 당연히 실력주의 원칙이었다.재정시대에는 혈연을 후계자로 삼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런 경우에도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시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실력주의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 간의 분업 차원으로 확대됐다. 로마제국 내의 각 권역은 강점을 가진 분야를 특화해 국제분업구조에 참여했다. 시칠리아와 이집트는 밀을, 로마는 올리브와 포도를 생산했고, 그리스는 무역과 교육을, 갈리아와 게르만은 기병을 공급하는 형태다. 로마제국에 편입된 민족과 국가들에 적용된 '시장원리에 기반한 실력주의'는 개인은 물론 민족차원에서도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368쪽 1만6천원.

2019-08-14 16:52:13

[반갑다 새책]오호츠크해의 바람/류시욱 지음'방일권 옮김/도서출판 선인 펴냄

식민지 시대를 전후해 조선과 사할린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책의 부제가 '산 속에서 쓴 보름간의 일기'(山中半月記)다. 한문체가 많아 다시 한글로 옮겨 펴냈다.'산중반월기'는 2006년도 사할린 강제동원의 일면과 그 비극적 파장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로 판단돼 정부가 발행한 첫 사할린 강제 동원 관련 구술집인 '검은 대륙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속에 영인돼 출판된 바가 있다. 하지만 출판물이 정부 간행물이어서 배포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한자가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한시와 자작시도 많이 인용돼 있었다.사실 1920년대 조선에서 태어난 사람들치고 인간적 행복을 누렸던 이들이 얼마나 될까?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은 운명의 폭풍 속에 스러진 사람들의 눈물에 대한 기록은 너무 적다.지은이도 사할린 한인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글을 읽노라면 일본어와 러시아어 표현은 물론 북한을 한국보다 비교 우위에 놓은 듯한 부분도 있다. 이 점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의 시각에서 다소 불편한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하지만 지은이가 1950년대에, 그것도 한국 사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소식과 소비에트 체제가 일방적으로 전하던 정보만 접한 채 썼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그래서 지은이는 책머리 '자서'(自序)에서 말하길 "이 일기는 1957년 9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보름간 크라스노고르스크 임산 사업소 직속인 임동화 브리가다(작업반을 뜻하는 러시아어)가 새풀(억새)치러 가는 곳에 밥을 해주는 사람으로 따라가 쓴 일기"라며 "그저 붓끝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글이기 때문에 일정한 계통도 없으며 흐름도 순조롭지 못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은 혹독한 시대를 맞은 지식인의 고뇌와 삶의 팍팍함을 엿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지은이는 이 책외에도 '조선문전'이라는 조선어 관련 저서도 남겼다.143쪽, 1만6천원

2019-08-14 16:46:28

[베스트 셀러]8월 둘째 주

1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8:괴도와 납치된 신부 사건 트롤 아이세움2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3유럽도시기행1 유시민 생각의길4흔한남매1 흔한남매 아이세움5설민석의 삼국지1 설민석 세계사6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1 설민석 스토리박스7직지1 김진명 쌤앤파커스8반일민족주의 이영훈 미래사9천년의 질문1 조정래 해냄출판사10죽음1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19-08-09 14:54:48

조선의 미식가들/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어릴 적부터 입맛이 남달랐던 허균은 유배지에 와서 보니 쌀겨조차 부족했고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뿐이었다. 그나마 하루에 간신히 두 끼를 먹다 보니 종일 배가 고팠다. 허균은 여러 음식을 종류대로 나열해 기록하고 때때로 보면서 고기 한 점을 눈앞에 둔 셈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의 제목을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는 뜻으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붙였다. …… '도문대작'에서 언급된 지역은 동해·남해·황해를 비롯하여 조선 팔도에서 빠지는 곳이 없을 정도다. 벼슬한 뒤로는 남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음식을 대접받았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며 나물이며 먹어보지 않은 게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허균은 '식신로드'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조선의 미식가 中)먹방인 쿡방이 유행하고 자신이 다닌 맛집을 SNS나 블로그에 남기는 것이 유행이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먹은 것을 기록하고 남긴 15명의 미식가들이 있었다. 이들이 남긴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조선의 미식가들'이 출간됐다.◆왕부터 사대부 여성까지, 조선의 미식가들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해 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가 조선시대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지은이는 조선시대 문헌을 두루 살펴 직접 먹거나 만들어본 음식에 관한 글을 남긴 15명을 뽑아, 그들의 글을 통해 음식 취향과 경험을 책에 담았다.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남긴 글에서는 음식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그들이 '군자라면 먹고 마시는 일을 즐기지 말고 피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로 인해 음식은 절제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균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요, 특히 식욕은 생명과 관계된. 옛 선현들이 먹고 마시는 일을 천히 여겼던 것은 먹는 것을 탐해 이익을 좇는 일을 경계한 것이지, 어찌 먹는 일을 폐하고 음식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겠는가?"라고 말했다.이 책에서는 다섯 가지 사건과 시기로 한반도의 음식 역사를 구분한다. 불교의 유입에 따른 육식 기피, 원나라 간섭기 육식 문화의 확대와 새로운 음식 유행,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 된 성리학의 영향, 17세기 본격 시작된 연행사의 청나라 방문, '콜럼버스 교환'으로 새로운 식재료의 등장 등이다. '조선 미식가' 15인의 글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음식 취향과 경험이 등장한다. 왕과 어의, 선비, 사대부 여성 등 15명은 살았던 시대도, 남긴 글의 형식도 신분이나 성(性)도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시대에 유행했던 음식과 식재료, 요리법, 그리고 생생한 '식후감(食後感)'까지 살필 수 있다.◆음식에 대한 애정을 글로 남긴 미식가들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이색은 원나라에서 들어온 소주와 두부에 관한 시를 지었고, 조선 중기 연행사로 연경을 다녀온 김창업은 중국에서 맛본 새로운 음식에 관한 글을 남겼다. 정조 때의 학자 홍석모는 세시기를 통해 조선 후기 민간의 세시풍속을 자세히 기록했다.사대부 여성들도 서재에서 요리에 관한 글을 남겼다. 이들은 요리법을 연구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조선 여성이 쓴 가장 유명한 요리책은 장계향이 쓴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과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가 있다. 이들은 손수 요리책을 지어 집안 대대로 물려주었고, 여강 이씨는 집을 떠나 임지에 있던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며 요리법과 음식 맛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대부가 여성들이 남긴 글은 조선시대 지배층의 식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음식만을 주제로 한 글은 흔치 않았지만, 허균과 김려, 이옥 등은 직접 맛본 음식에 관해 글을 남겼다. 허균은 조선 팔도에서 먹어본 음식의 품평과 함께 먹은 장소, 요리법, 잘 만드는 사람과 명산지 등의 정보를 '도문대작'에 자세히 기록했고, 이옥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의 맛과 먹는 방법을 글로 남겼다. 김려는 귀양살이를 하며 박물학적 관심에서 어류학서 '우해이어보'를 썼는데, 그는 고추를 좋아해 고추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유교사회에서도 음식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글로 드러낸 이들 덕분에 우리가 조선의 음식에 대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352쪽, 2만원.

2019-08-08 11:15:15

출처: 웨일북 '90년생이 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물 '90년생이 온다' 어떤 책? 줄거리는?

임홍택 작가의 책 '90년생이 온다'가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7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전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하면서 큰 화제가 된 것이다.이 책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문화 및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1990년대 생들의 특성을 사례 중심으로 설명한 책이다.이는 1990년대 생들이 불러온 새로운 사회현상과 이에 대해 기성세대가 가져야 할 시각 등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는 평가를 얻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한편 문 대통령은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경험한 젊은 시절, 그러나 지금 우리는 20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2019-08-07 15:14:38

[책]악학궤범 신연구/김상일 지음/솔과학 펴냄

얼핏 보면 음악과 수학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 음악은 수학적으로 해석되고 표현된다. 실제로 역사상 유명한 수학자들이 음악과 음향학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하프 연주를 하며 소리를 분석한 결과, 가장 듣기 좋게 조화를 이루는 경우 현의 길이나 현에 미치는 힘이 정수 비례 관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김상일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의 '악학궤범 신연구'는 당대 음악을 현대수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악학궤범과 피타고라스 콤마악학궤범은 1493년(성종 24년)에 왕명으로 성현, 유자광, 신말평, 박곤 등이 편찬한 음악 이론서다. 지은이에 따르면 9권 3책으로 이뤄진 '악학궤범'은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 1990년대 후반 한태동 박사의 '악학궤범 연구'를 시작으로 소수 연구자들이 연구의 명맥을 이어왔다.지은이는 '한태동의 악학궤범 연구에 대한 이해와 고찰'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은사인 한태동 박사를 이어 당대 음악을 현대수학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아냈다. 책은 온통 수학 기호로 가득차 있어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현대수학의 주요 개념에 대해 알고나면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책은 지은이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이자 연구의 핵심과제인 '피타고라스 콤마'가 관통하고 있다. 음악과 수학을 직접 연결한 장본인인 피타고라스는 현악기가 현의 길이에 따라 음의 고저가 달라진다는 데 착안해 현의 길이와 진동수 간 역분수(逆分數)의 관계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음계에 예기치 않았던 초과음이 나타난다. 이 초과음이 피타고라스 콤마다. 동양 음악사에도 피타고라스 콤마와 동일한 것이 나타나는데, 서양음악에서는 이를 처리하는 방법을 '순정율'과 '평균율', 동양음악에서는 '삼분손익법'이라고 한다. 이 삼분손익법이 바로 악학궤범에서 획기적으로 정리된다.◆윷판에 요약한 음악의 난제지은이는 피타고라스 콤마가 생겨나는 현상과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음악사에서 언급돼왔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태동 박사는 동서양 음악에서 가장 풀기 어려웠던 난제 중 하나인 피타고라스 콤마의 정체를 자연로그함수를 통해 밝혔다고 말한다. 그는 "한태동의 연구는 피타고라스 콤마의 생성 구조가 자연로그함수에 관련된다고 본 것은 동서음악사에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아직까지도 피타고라스 콤마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것이 자연로그함수 값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지은이는 한태동 박사의 자연로그 함수를 이해하기 위해 유학 시절 터득한 독일 수학자인 '게오르크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을 보조적으로 원용하고 있다. 칸토어는 실수를 가로와 세로로 된 사각형 안에 격자 형식으로 배열했을 때에 사각형 안에 들어가지지 않는 초과분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세로에는 '으뜸수'를 가로에는 '따름수'로 나누어 배열했기 때문이다. 음악에서도 으뜸음과 따름음으로 나누는 한 초과분 즉, 피타고라스 콤마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음악을 숫자 개념이나 단순한 사칙연산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현대 수학의 첨단 이론들과 논리를 모두 동원해야 할 정도로 음악은 수학적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현대 수학과 악학궤범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윷판을 통해 요약한다. 우리에게 친근한 윷놀이에서 개념을 포착한 다음 수학이나 음악에 접근하면 이 책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63쪽, 3만8천원. ▷지은이 김상일은 연세대 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문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해 필립스대에서 석사를, 클레어몬트대학교 대학원에서 과정 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한신대 철학과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현재 클레어몬트대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그는 전공을 정해 놓고 학문한 것이 아니라 '역설'이라는 주제로 지금까지 고민하고 책을 써 왔다. 저서로는 '대각선 논법과 조선易', '뇌의 충돌과 문명의 충돌', '역과 탈현대의 논리',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원효의 판비량론 비교 연구-원효의 논리로 본 칸트의 이율배반론' 등이 있다.

2019-08-01 11:13:11

[반갑다 새책]그때 생각나서 웃네/이종문 시집/시학 펴냄

'그때 생각나서 웃네, 그녀를 괴롭히는 그 자식이 빠지라고 물웅덩이 메운 뒤에 그 위에 마른 흙들을 덮어뒀던 그때 생각/그때 생각나서 웃네, 그 자식은 안 빠지고 어머야 난데없이 그녀가 풍덩 빠져 엉망이 되어버렸던 열두어 살 그때 생각/(중략)/그때 생각나서 웃네, 혼자 남아 청소할 때 그녀가 양동이에다 물을 떠다 날라주어, 세상에 변소청소가 그리 좋던 그때 생각'문학평론가 박진임은 시인 이종문의 시조의 특징을 3가지로 압축하고 있다.그 첫 번째는 "춘풍 황앵이 난초를 물고 세류 중으로 넘노는 듯한 봄날의 서정"성이며, 두 번째는 "북해흑룡이 여의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노는 듯한 풍자와 과장과 상상력"이며 마지막은 "단산(丹山)봉황이 죽실(竹實)을 물고 오동 속으로 넘노는 듯한 기억이 시가 될 때"라고.평론에서처럼 지은이 이종문은 고운 시어들을 모아 한 폭의 수채화 같이 단아한 시세계를 보여주는가 하면, 경상도 방언이 그대로 텍스트에 채록되면서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낼 듯이 그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으로의 회귀를 통해 삶의 위로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작시법은 눈물을 동반하게 만드는 영혼의 울림과도 같다.'모처럼 어머니와/함께 자는 밤이었다/창밖엔 귀뚜라미가/(중략)/슬며시 눈을 뜨니/어머니가 바투 앉아/날 빤히 보고 있었다/볼이라도 맞출 듯이/(중략)/"엄마 와?"하고 물으니/"좋아서"라고 했다/"뭐가요"하고 물으니/"그냥 좋아"라고 했다'엄마는 아들이 무턱대고 좋아 마냥 바라본다. 이런 장면은 누구나 있을법한 흔한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또한 인류의 보편적 기억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지은이는 그것을 시로 쓰고 있다. 그의 시조가 친근하고 시집을 좀체 손을 뗄 수 없도록 하는 힘이 여기에 있다. 지은이 이종문 교수는 현재 매일신문 토요일 '한시(漢詩) 산책' 코너에서 격주로 한시를 소개하고 있다. 118쪽, 9천원

2019-07-31 10:22:58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⑤

그것은 지난 6월 달이었다. 쑤이까이 망망계곡, 이 작전에서 크게 당했다. 작전 미숙과 통신 두절이 발목을 잡았다. 서 중위는 이 작전에서 그 당시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3중대에서는 우리들에게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었어야 했다.그것이 문제가 됐고 그다음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7중대의 중대장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했었다. 처음부터 첨병 소대에 치명타를 받게 해서는 대열이 흐트러졌고 상황 종료 모양으로 해 놨으니 자연히 시간만 지체하는 꼴이 된 것은 물론이다. 서 중위로서는 사태를 주시하고 어쩐지 이번은 정말 당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에 힘이 빠지고 열기가 식는 느낌을 받았었다.서 중위는 즉시 잠시 벌어졌던 상황을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수륙양용 차 없이 진격하는 방법을 모색한 후 다시 보고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앞을 쳐다봤는데 이번에는 그 러닝 셔스 장교가 없어진 대신 3중대 진지에 남아있다 튀어나온 듯한 동기생인 이 중위가 서 중위를 향해 급히 오는 것이 보였다. 이 중위가 왜 빨리 숲으로 들어가지 않느냐는 짜증스러운 소리를 자신에게 다가오며 큰 소리로 하는 것을 들었다.서 중위는 나름대로는 중대장에게 수륙 양용차는 포기하고 이제 2열 종대로 들어가겠다는 보고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또 아무리 다급한 처지라 하더라도 서 중위는 어디까지나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다. 밤하늘엔 먹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더 컴컴해지더니 소나기가 퍼 붇기 시작한다. 그대로 비를 맞다가 판초 우의를 풀어 텐트를 치기도 한다.결국 서 중위 소대의 첨병 분대가 3중대 대원들의 뒤를 따랐고 긴 중대의 대열이 차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긴장을 해 들어갔던 대열의 선두가 겨우 숲을 향해 20여 미터쯤 들어갔을 때였는데 그만 '꽝~하는 소리와 함께 적이 쏜 로켓 한 발이 또 대열의 맨 앞줄에서 폭발을 했다.불행하게도 앞장을 섰던 3중대 대원 2명이 모두 쓰러지는 것이 보였고 뒤따르던 서 중위 소대는 멈칫하며 모두가 제 자리에 웅크려 잠시 앉았다가 급히 그쪽을 피해 우회 진입로를 찾아 무작정 숲속으로 전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불과 100여 미터 정도 진입을 했을 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내용은 제자리에서 경계를 하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더 이상 진입을 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것이었다.사실상 상황은 이미 끝이 난 후다. 3중대 대원들은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서 거의 모두가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용감하기로 소문난 3중대장 장 대위도 팔에 총을 맞아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는 얼굴을 찌푸린 채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 중위 소대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물론 서 중위는 인사를 했으나 그는 아무 반응도 없이 그저 찡그린 얼굴 표정으로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 나간다. 그러나 다음부터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광경은 차마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참혹한 것이었다.적을 발견하고 뒤쫓다 머리에 총을 맞았다는 소대장과 많은 대원들이 이미 시신이 된 채 들것에 실리거나 대원들의 손에 끌려 줄줄이 이어 나오는 비통한 광경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대원이 전사하면 세 사람의 대원이 전사자를 위해 붙어야 했다. 두 사람은 시신을 들어야 하고 한 사람은 장비를 모두 챙겨 그 옆에서 경계를 하며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아~ 오늘은 하늘도 무심한 날이구나!" 이미 상황이 끝이 난 뒤라 서 중위는 비참하게 죽어간 전우들의 영혼에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며 정중히 묵례를 하는 수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대 초반 젊음이들이 이곳에서 죽고 사는 건 자신들의 의지완 상관이 없었다.서 중위가 나중에야 자세히 들었던 내용이지만 그렇게 3중대가 허무하게 적들에게 당했던 것은 갑작스러운 적들의 공격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바싹 마른 사질토 위에 엎드려 응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총알이 나가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지급받은 M16 소총은 불량품이 더러 있었다.바로 그 순간 '쩌 저 쩡!'소리가 귀를 가르며 지축을 흔들더니 바로 서 중위 소대에게도 정면과 옆구리에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작전이 빗나간 것이다. 따따따 땅 따다다 따다 당 소리에 놀란 소대원들은 소총을 연발로 놓고 좌우 없이 쏴 대기 시작한다.적이 가까이서 공격하고 있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엎드려 수류탄을 까서 정면으로 던지고 유탄 발사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소대원이 맞았는지 "아 앗!" 하고 드러눕는 것이 보인다. 맞았냐? 하니까 그냥 고개를 떨군다. 서 중위는 작전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긴박하게 작전상 후퇴를 처음 단행했고 즉시 철수했다.966포대 지원 포 사격이 적을 차단시켰고 2열 철수 행군은 이어졌다. '같이 죽을 수도 있었구나.'를 되씹다 맥이 빠진다. 그때가 새벽 3시쯤, 날은 개고 그날도 새벽에 뜨는 그믐달은 동쪽 하늘에 비치고 무심한 초원에 날이 밝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서 중위 소대는 이슬에 젖고 달빛에 젖어 쓴맛을 삼키며 귀대했다.다시 그때가 떠오른다. 아!..... 차 중사, 박 소위, 구 중위, 장 병장 등의 모습들, 다시 볼 수 없는 그들이 꿈에 보인다. 몇 번의 작전에서 전사자가 된 그들이다. 가엾고 애처롭게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다. 자신만 멀쩡히 살아있다는 게 현실 같지 않고 미안해진다.구 중위의 비보를 들은 여자 친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차중사의 와이프와 애들은... 그리고 장병장의 부모는 모두에게 이 밤은 끊어지고 바뀌어 전 인연의 벽을 실감하는 밤이었을까... 몇 주 전 서쪽의 초승달은 이제 동쪽에서 그믐달로 바뀌어 이 병동 위에 떠 있다 사라진다.잠시 후 태양은 서서히 남중국해 해면 위로 불꽃을 토해내고 벌써 훤해진 햇빛은 병실 창문을 노크도 없이 스며든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건너편 침대의 새로 들어온 부상병이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소리에 이곳이 어디인지를 인지하고 서 중위는 일찍 깼다.짧은 3개월이었지만 서 중위를 태워 어디든 다녔던 박 상병, 끝내 귀대하지 못하고 들판에서 죽었다. 아까운 또 한 사람의 젊음이 이국땅에서 그리던 귀국의 꿈이 꺾이었다. 서중위는 자기탓인듯 죄스럽다. 시신은 찾아 백골만 고국에 보내졌다.꼬딴의 언니 꾸엉판도 그곳에서 죽었다. 한국군의 수색작전에 그 부대 근거지가 다 불태워 없어졌다. 그녀가 하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당신들은 모른다. 우리 베트남 민족이 얼마나 수난 속에 살아왔는지..' 그녀는 그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나라를 구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이다.그로부터 1년 후 정확히 1973년 3월, 월맹은 사이공을 함락시켰다. 큰 나라 미국이 결국 게릴라전에 손을 든 것이다. 엄청난 돈만 그곳에 뿌리고 망신만 당한 꼴이 되었다. 자주독립의 역사를 만들었다. 안주했던 월남 정부군 수뇌들은 자기 가족만을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기 바빴다. 한국군도 3월 말까지 완전 철수를 단행했다. 이렇게 월남은 통일을 이뤄냈고 이젠 당당히 독립국가로 서게 됐다. 월남이 아니라 월맹이 해낸 일이다. 어느덧 46년이 지난 지금 월남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편을 갈라 총질하고 적이라고 보이면 그냥 쏴 대고 죽이고 불태우던 짓들이 이제는 멈췄을 것이다. 지상의 모든 생물을 삶아 낼 기세 같던 한낮의 붉은 태양과 야간 내내 정글 속을 비추며 우릴 더 향수병에 젖게 하던 그 달빛도 이젠 늘 푸른 들판을 내려다보며 모두 편한 표정이 됐을 것 같다.〈끝〉

2019-07-29 18:00:00

건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부키 펴냄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퇴행성 질환과 노화를 막기 위해 컴퓨터 리프로그램하듯 몸을 업그레이드 하려 한다. 그는 매일 250개의 알약을 먹고 몇 개월마다 수십 가지 검사를 받는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120세까지 살 계획이며, 러시아의 인터넷 대부 드미트리 이츠코프는 1만 살까지 사는 것이 목표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잘 절제하고 생활방식만 잘 관리하면 더 젊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약속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자칭 '운동광'이었던 루실 로버츠는 59세에 폐암으로 사망했고, 피트니스 산업의 개척자인 짐 픽스는 매일 16㎞를 달리고 식단 제한을 했지만 52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긍정 이데올로기, 저임 노동, 화이트칼라 몰락 등 현대 사회의 병폐를 고발해 주목받았던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현대인의 새로운 풍속이 된 '건강 열풍'의 숨은 진실을 폭로하는 '건강의 배신'을 펴냈다.◆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다는 '꿈'영생(永生)과 건강한 삶에 대한 염원은 늘 존재해왔다. 현대사회에는 인간의 이런 염원을 자기절제와 생활 방식 관리로 약속하는 시대다. 하지만 에런라이크는 현대 의학의 장밋빛 약속과 건강 열풍의 민낯을 드러내고 신랄하게 비판한다.지은이는 병원과 의료계 현장으로 뛰어들어 '현대 의학이 과학적'이라는 주장, '예방 의학이 무병장수를 보장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파헤친다. 또 피트니스센터와 웰니스 업계를 찾아 안티에이징의 비법을 제공한다는 그들의 프로그램과 제품이 실제로 효력이 있는지 살피고, 실리콘밸리에서 영생을 이루겠다는 사람들의 꿈이 실현 가능한지를 따진다.병을 조기에 발견해 쉽게 치료한다는 '건강검진'은 현대의학이 약속하는 무병장수의 핵심이다. 지은이는 이런 예방조치가 수명을 몇 년 더 늘려줄지도 모르지만 연장된 삶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다. 예방 의학은 대개 생명을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진다. 당사자가 비의료적으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요구해도 결국은 중환자실 병상에서 케이블과 튜브에 속박된 채 삶을 마감한다는 뜻이다.죽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검사와 검진은 과잉 진단이라는 유행병을 만들어냈다. 지난 20여 년간 우후죽순 생겨난 환자 권익 보호단체들은 수십 가지 질병을 '브랜드화'하고 검진 필요성을 홍보했다. 하지만 골다공증은 병이 아니라 35세 이상 여성은 거의 겪는 일반적인 노화 현상이며, 유방 조영 검사는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일한 환경 요인인 전리방사선을 쏘아대고, 치과에 가면 엑스레이로 다량의 방사선을 입에 쏟아붓는다. 갑상선암은 과잉 진단이 특히 심한데 21세기 초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여성들이 받은 갑상선암 수술 중 70~80%는 불필요했으며, 한국의 경우는 90%까지 올라간다.◆자연스러운 노화와 죽음그럼에도 우리는 현대 의학이 외치는 건강 열풍에 휩쓸리게 된다. 현대 의학이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의료계가 자신들이 과학에 근거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의료 사업의 독점권을 획득했고, 오랫동안 '사이비 과학'이라고 알려진 대안의학이 자신들의 경계를 침범하는지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독점권을 계속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모든 것이 통계적 증거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증거기반 의학'이 대두했는데, 사실상 오늘날의 검사 대부분이 이 '증거기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 예로 유방 조영 검사 덕분에 유방암 발병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전립선암 검진에서도 사망률 감소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지은이는 의료업계를 포함한 거대한 헬스케어 산업이 말하는 '몸과 마음을 통제해 무병장수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노화를 생명 주기의 자연스러운 단계가 아닌 질병의 일종으로 여기지만, 노화의 치료법은 없었다.우리는 죽음을 삶의 비극적 중단이라 여기며 이를 늦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아니면 삶은 영원한 비존재 상태의 일시적 중단이며 우리를 둘러싼 경이롭고 살아 있는 세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짧은 기회라고 여길 수도 있다. 지은이는 후자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 안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조화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까지 모두 포괄하는 패러다임이다"고 말한다. 이같은 관점을 받아들일 때 건강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지은이가 전하는 메시지다. 292쪽, 1만6천원.

2019-07-25 11:02:38

2019 대구여성 행복 일자리 박람회 모습. 매일신문DB

[서평] 일자리의 미래/ 엘렌 러펠 셸 지음/ 김후 옮김/ 예문아카이브 펴냄

4차 산업혁명시대 기존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일자리다. 경제발전은 물론 개인의 소득과 정부 세금은 모두 일자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의 상용화로 촉발되고 있는 일자리의 자동화는 무엇보다 중산층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또한 세계화와 디지털 경제가 자연스러운 지금, 기술 발달이 계층 사다리까지 걷어치우고 있다.이 책은 일과 일자리가 갖는 정체성의 비밀을 파헤치고 일의 보람과 의미의 실체를 밝힌다. 이어 과거에 교육 격차가 임금 격차를 낳는 과정을 탐구한 뒤, 이제는 단순한 대학 학위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는 노동시장의 현실을 짚어낸다. 직업훈련에 매진하는 지역대학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실직자 재훈련의 민낯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 어떻게 좋은 일자리를 준비하고 만들어내고 유지할 것인가?◆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는과거에는 열심히 노력만하면 직업의 사다리를 통해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일자리 증가가 빈곤율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고, 중산층 비율도 높아지지 않았다. 디지털 경제는 소수의 호사스런 고소득 일자리와 저임금 일자리를 창출했다.요즘 영화관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직원에게 표를 사거나 주문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계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창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사실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어렵지만은 기계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일이나 식당 테이블에 물잔을 놓는 일은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지만 기계로서는 난도가 높은 직업이다. 반대로 부기, 회계, 법률 분석처럼 높은 수준의 논리 추론이 요구되는 일은 인간에게 어렵지만 기계 입장은 쉬운 작업이다. 저임금 일자리보다는 나름의 기술역량을 요구하는 중간 수준 임금의 일자리가 크게 감소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이 중산층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가 많아지면 다 해결될까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일자리의 미래 2018' 보고서는 향후 5년간 창출될 일자리는 1억3천3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로봇에 의해 대체될 일자리는 그 절반 정도인 7천500만 개로 예상했다. WEF가 2016년 향후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 것에 비하면 낙관적인 전망으로 바뀌었다. 일자리는 사람들의 생계와 정체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자리의 증가와 감소에 따라 온 나라의 분위기가 바뀌고 금융시장이 요동친다. 이는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선거 결과를 결정짓기도 한다.그렇다면 일자리가 많아지면 우리 소득도 높아지고 삶도 좀 풍족해질까. 중요한 것은 일자리 양보다 질의 문제다.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임금을 적게 주는 일자리가 아무리 늘어나봐야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례로 대학 시간강사, 농장 노동자, 마늘공장 노동자 등 일자리는 일이 가혹할뿐만 아니라 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일자리를 볼모로 잡는 대기업들미국 텍사스 어빙시는 아마존 물류창고를 유치하기 위해 총 2억9천600만 달러에 달하는 세제혜택 등 특혜를 제공했다. 지역 주민들이 취업할 수 있는 훌륭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다. 어빙시민들은 아마존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시간당 8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아마존은 텍사스주와 미지급 세금문제가 불거지자 어빙시를 떠나 조건이 좋은 테네시 채터누가로 물류창고를 옮겼다. 채터누가 역시 아마존을 모셔오기 위해 의회는 3천만달러에 달하는 특혜조치를 의결했고 아마존에 32만3천748㎡의 토지도 무상 제공했다. 이에 호응한 아마존은 1천467개의 풀타임 정규직과 2천400개의 기간제 계약직을 약속했다. 정규직 임금은 시간당 11.25달러를 받게 됐지만 당시 미국 평균 시급은 24.57달러로 절반도 안되었다. 고용률 높이기에 급급한 정부가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세금을 대기업을 지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기업이 일자리를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모두 나서야 일자리 극복 가능국가적인 일자리 대란을 극복하는 첫 단추는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를 지원하고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행적인 방법은 공공정책의 핵심 어젠다가 되도록 정부와 기업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인간을 기계보다 한 걸음 앞서도록 교육하는 일은 헛되다.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역설계해서 우수한 기술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이 일로부터 진정한 가치를 도출해내는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고용창출 해법은 메이커 운동, 21세기형 노동조합, 근로소득세 개편, 기본소득제도 확립,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사회적 제도적 합의도 중요하다. 지은이는 "일자리 문제에 '낙수효과'라는 해법은 없다"고 못박은 뒤 "기업, 정부, 교육계, 노동자, 일반 시민 등 당사자 모두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일자리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486쪽 1만8천원.

2019-07-24 18:14:58

[반갑다 새책]맛있는 맥주를 위한 생맥주 위생관리/이일안 지음/에이치아이 북 펴냄

무더운 여름날. 냉방이 잘된 공감에서 마시는 한 잔의 생맥주는 후텁지근하고 짜증나는 한 여름날을 버틸 수 있는 상큼한 비타민C가 아닐 수 없다.지은이 이일안은 카페 컨설턴트이다. 다년간 카페를 운영했으며 매년 겨울 비수기에는 레스토랑의 문을 닫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며 커피와 술을 즐긴다. 20여 년 간 생맥주 매장을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과 조사자료, 50여 개국 여행을 통해 마신 맥주의 위생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무엇보다 맥주는 신선도가 중요시되는 먹거리이다. 그러나 지은이에 따르면 국내 생맥주 업계는 제대로 된 위생지침이 없다. 거의 모든 매장에서 주류업계 품질관리사에 의존해 위생관리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매장 운영자들은 어떻게 생맥주 위생관리를 해야 하는지, 라인을 청소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맥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이에 대해 책은 공장에서 생산된 맥주가 매장으로 배송, 고객에게 판매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맥주 위생관리를 분석하고 있다. 문제점과 개선방법도 제시해 맛있는 맥주를 위한 생맥주 위생관리를 알려주고 있다. 생맥주 매장을 운영하거나 창업하려는 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위생관리 매뉴얼인 셈이다.지은이는 생맥주 위생관리는 맥주회사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생맥주점 운영자들이 위생 개념을 알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제1장 '맥주'는 맥주의 기본적인 개념이해부터 시작해, 2장 맥주 탭 작동기능을 비롯해 생맥주 기기와 냉각기, 라이, 탭, 헤드 청소방법과 품질관리 등을 알아보고, 3장 생'병맥주 유통과정과 온도 변화 등을 분석하고 있다. 4장은 '생맥주의 비밀'편으로 반으로 잘라본 생맥주통, 1년이 지난 생맥주, 생맥주 한 통에 500cc 몇 컵, 한 통의 이익 등 소비자들이 궁금한 사항을 풀어준다.마지막으로 지은이는 "평소 맥주의 위생과 신선도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면서 "주세법 개정으로 수제맥주가 확산되고 있는 과정에서 맥주의 위생은 더 철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71쪽, 2만원

2019-07-24 13:31:53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④

순번 상 빠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서 중위는 작전에 나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지난번 오작교 작전을 할 때도 서 중위는 워낙 그곳 지리에 익숙해 있어서 앞장을 섰었다. 신임 중대장을 도울 입장으로 맨 앞장서서 공격을 했던 것인데 또 작전을 나가게 된다는 것은 좀 무리한 것이라 생각되어 은근히 화를 삭이기도 했었다.20시경 호수의 동쪽 지역에서부터 먼저 적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서 중위 소대 쪽에서 보면 호수 건너에 있는 5중대가 적으로부터 처음 공격을 받았던 것은 박격포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공교롭게도 미 해병대로부터 지원 나온 탱크 옆에 떨어져 그래도 대원 2명이 경상을 입었을 정도로 끝이 났다.그러나 5중대에서 응사하는 총알과 케리 시 30 경기관총의 예광탄들과 총알들은 고스란히 약간 마주 본 듯한 우리 7중대의 전면으로 날라 오고 있었다. 서 중위는 혹시라도 자신들의 위치가 탄로 날지도 몰라 소대장들에게 모두 참호 속에 머리를 박고 일체 응사를 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했다.총소리는 불과 5분도 채 안 되어 멎었다. 서 중위는 중대장과 함께 불빛이 새지 않게 손을 가려가며 연신 줄 담배를 피워댔다. "틀림없이 또 이곳저곳을 집적여 볼 것 같네요. 이놈들이 나갈 구멍을 찾느라 노크를 해 보는 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대장을 안심시키느라 서 중위는 되도록 자신 있게 말을 했다."그리고 소대장들에게 당부를 했습니다만 적들이 바싹 우리 앞으로 다가오기 전에는 사격은 물론 절대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중대장은 담배를 입에 물은 채 서 중위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가벼운 웃음을 지워 보였다."따다 다다다 다당.."귀가 따갑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5중대의 남쪽 지역인 6중대 쪽에서 먼저 총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다음은 3대대가 막고 있는 곳으로 부터도 총알이 나르고 "꽝~"하는 포탄이 터지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 이놈들이 또 도주로를 찾느라 분산 공격을 해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이 조용하면 차츰 모여 이곳으로 오겠지요.""오려면 빨리 와라! 음..."중대장은 소리를 낮추며 또다시 입을 쫑긋해 보였다.몇 분 후에는 또다시 총소리가 멎고 적막 같은 시간이 다시 흘렀다.중대장과 서 중위가 주저앉아 있는 곳은 수려한 숲속에 매우 큰 정원을 가진 별장 같은 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의 영화도 간 곳 없이 잔해만이 쌓인 폐허 위에 낯선 이방의 객들만이 모여 지루한 게릴라전의 개전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서 중위가 처음 신참 소대장으로 소대원들을 이끌고 야간 매복을 나갔을 때다. 떠 있는 둥근 달을 쳐다볼 때마다 지금쯤 한국에서도 전쟁터로 자식을 보낸 수많은 부모들이 저 달을 같이 쳐다보며 자식들의 무사 귀향을 빌고 있겠지"하는 생각을 자주 해 본 적이 있다.또 어떤 때는 자신이 전생에 그렇게도 죄를 많이 지었던가? 하는 자학적인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여자들과 술도 마시며 시간을 즐기던 한때를, 친구들을 떠 올려 보기도 했었다. 절실한 소외감에 한탄스러움까지 느낄 때가 있었는가 하면 앞으로는 "국가적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은 절대로 기필코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해 보며 계속 모기에게 뜯기는 길고도 먼 밤을 지새운 때가 많다. 남국의 그날 밤은 검은 구름이 끼었고 달은 가려져 모습이 귀했다. 그 속에서 그믐달은 낯선 모습으로 신음을 뱉고 있었다.그토록 지루하던 시간도 이제 새벽 3시가 가까워졌다.중대장도 서 중위도 실망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중대장님, 이제 눈을 좀 붙이시지요."서 중위는 그 자리에 조금 더 있기로 하고 중대장은 약간 떨어져 있던 통신병과 함께 미리 전령이 준비해 놓은 좀 더 낮고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던졌다."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서 중위도 잠시 눈을 좀 붙이지그래"서 중위는 오감이 모두 곤두서는 밤이 아닌데도 지난 3월경 2대대 3중대 6소대 대원들이 대낮에 정찰을 나가다 대대본부가 불과 300미터 정도 거리밖에 안 되는 전방 도로에서 기습을 받아 거의 1개 분대 가량의 대원들이 적에게 확인사살까지 당했다는 치욕적인 일을 떠 올렸다. 정신이 번쩍 든다.전쟁이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어떤 경우 한 치의 오류도 잠시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전쟁이고 보면 지금의 이 순간에도 너무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서 중위는 잠시 하면서다. 혹시라도 우리 후미를 적들의 구원 병력이 불시에 치고 들어오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에 통신병을 불러 다시 한 번 후미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도록 했다.병력을 다소 적게 배치한 후미지만 아직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후 서 중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꽝, 꽝, 꽝, 따다 다다다 다다다 다당..."즉시 깨어 계속해서 폭음과 총을 난사하는 소리는 고막을 구멍 나게 할 것 같다. 놀란 서 중위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즉시 10 미터 아래쪽에 자리를 향해 집중 사격을 같이 퍼부었다. 분명 폭음과 집중사격의 총소리가 중앙의 2소대 매복 지점으로부터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 걸려도 걸렸구나 싶은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중대 전체가 이미 전투 상황에 돌입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기에 매우 흥분이 되었다.중대장은 이미 상황이 일어난 2소대장으로부터 아마 이동하던 적일 것 같다는 간단한 보고만 듣고 즉시 1소대장과 3소대장에게 각각 자기 전방의 경계를 철저히 하고 적이 확인되기까지는 절대로 사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계속되었던 집중사격 총소리도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끝이 났다.2소대의 김 소위는 경험이 많은 고참 소대장이라 이미 소대 전방에다 인계철선으로 조명탄을 설치해 놓고 그 조명탄 위에는 수류탄을 장치해 놓았던 것이다. 일단 적이 인계철선을 건드려 조명탄이 터지면 누구나 밝은 빛에 놀라 몸을 엎드리게 되는데 이 순간 신호탄 위의 수류탄은 벌써 열을 받아 자연히 폭발을 하게 된다.이때 대원들은 놓치지 않고 수백 개의 파편이 작열하는 크레모어 스위치도 누르는 동시에 일제 사격을 가하게 되므로 여기에 걸리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는 건 물론 시신마저 분간하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중대장과 서 중위는 이미 상황이 끝났다고 보았지만 너무 앞이 캄캄하고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적들인지 재수 없게 돌아다니는 동물들인지는 아직은 장담하기 이르다고 생각했다. 2 소대장의 보고로는 십중팔구 적들일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날이 밝기 전에는 확인이 안 되니 절대 다가가서 확인은 하지 않기로 했다.서 중위와 중대장은 경쟁하듯 줄 담배를 피웠다. 날이 밝으면서 대원들은 일제히 접근해 사살된 적들을 확인하고 무기를 수습했다. 우린 해 냈고 살았다. 이렇게 전과를 올린 일도 새삼 생각이 나지만 나중엔 치른 또 한 번의 작전, 쑤이까이 전투는 더 기억이 생생하다.(7월30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5회가 게재됩니다)

2019-07-22 18:00:00

어른이 처음이어도 괜찮습니다

[책 체크] 어른이 처음이어도 괜찮습니다/ 류지희 지음/ 미다스북스 펴냄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 성인이 되려고 욕심내지 말자.'지역에서 29세 디자이너로 생활하고 있는 류지희 씨가 '어른'이라는 말이 무겁기만 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책 '어른이 처음이어도 괜찮습니다'를 냈다.책은 1장 모든 것이 서툴고 처음인 어른 살이에 대한 경험담 '사랑은 힘들고 어른 살이는 어렵다', 2장 어른에게 필요한 건강한 마음과 내면돌봄의 방법 '지금 나에게 필요한 TO DO LIST', 3장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비법 '남처럼이 아닌 나처럼 사는 방법', 4장 사회에서 겪는 고충을 통해 당당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불친절한 세상에서 나로 살아남는 기술', 5장 어른이 처음인 날들을 살아가는 메시지 '완벽하지 않은 어른인 나에게'로 짜여 있다.지은이는 "평범하기 위해 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등 자신을 돌아보고, 눈치 보지 않고 나 스스로 온전하게 굳건히 설 수 있는 삶이 진짜 어른스러운 삶이다"고 조언한다. 336쪽 1만5천원.

2019-07-22 16:43:24

[책]없어서 창의적이다/권업 지음/쌤앤파커스 펴냄

인기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 셰프들이 15분이라는 주어진 시간 안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냉장고 주인이 원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가장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낸다. 세상을 뒤흔들 만한 변화를 이끌었던 괴짜 기업이나 비지니스맨의 성공 스토리도 이와 비슷하다. 단돈 36만 원으로 중고 우주선을 만들어낸 소년부터 온갖 고물로 수제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 최고 혁신상을 받은 인도의 타타그룹까지. '빈손'에 가까운 열악한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진짜'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없어서 창의적이다'는 바로 이들, 무일푼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빠르고 창의적으로 '진짜'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성공의 핵심은 창의성 아닌 근성기술은 정교해지고, 단순노동은 로봇으로 대체된다. 시제품 개발은 더 빨라지고, 완제품은 모든 산업 분야로 융합된다. 수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 연구 개발하는 것은 더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경쟁사의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상황이 열악하다고 탓하는 것도 의미 없다. 생존 여부는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한 고객의 욕망을 향해 새로이 섞고, 뒤집어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 '신상'을 내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열정 없는 창의 없다'고 강조하는 권업 대구 테크노파크 원장은 이 책에서 오늘날 혁신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성보다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근성'이라 말한다. 우리가 '완벽한 아이디어', '결점 없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완벽한 설계도로 준비된 것들이 아닌 반복된 열의와 근성에서 탄생한 과실이라는 것이다.빈손으로 진짜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뛰어난 천재이거나 가진 것이 많아서 성공한 게 아니다. 방대한 정보 안에서 유용한 것을 선별해내는 '통찰력', 이를 재조합하는 '창의성',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근성'과 발 빠른 '실행력'으로 시장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지은이는 완벽한 아이디어, 거대한 자본, 정교한 설계를 모두 갖추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쓰임을 다르게 보는 엉뚱함, 잦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겠다는 근성만 있으면 진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교한 설계도는 아예 생략한다. 목적에 부합하는 재료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재료만 가지고 어떻게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인지 골몰한다. 각 재료의 쓰임을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끼워 맞추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엉성했던 결과물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 이것이 반복될 때 실행력이 빨라지고 주저함은 사라지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도 면역력이 생겨나는 것이다.◆부족하더라도 일단 시작하라지은이는 스타트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방식은 불확실한 미래와 싸워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연속이라 말한다. 그는 "그 과정 안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은 빠른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속도에 달려 있다. 실제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위대한 창업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운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필요한 뭔가가 없다고 슬퍼하거나 변명하거나 상황을 탓하는 대신 살아남기 위하여 그 없음을 채울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전한다.결핍도 단순히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창의성과 도전을 촉발시킨다. 은박지에라도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이었지만, 그의 은지화는 최고 수준의 예술로 평가받는다. 벤처 기업가는 허름한 트레일러나 차고 안에서 혁신적 제품을 개발해낸다. 애플이 그렇게 탄생했다. 폐기된 비행기 부품으로 가구를 만드는 모토 아트의 책상은 3천만 원에 팔려나가고 있으며, 찢어진 방수 천으로 명품 핸드백을 만드는 프라이탁은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 세계 350여 개가 넘는 매장을 냈다.스티브잡스, 마윈도 빈손으로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아이디어, 충분한 자본, 잘 다듬어진 설계도를 모두 갖추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지은이는 책을 통해 빈손으로 무작정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들처럼 일단 시작할 것을 권한다.▷지은이 권업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앨라배마대학교 맨더슨 경영대학원에서 우수 박사 학위 논문상을 받고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스캣: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라'가 있다. 256쪽, 1만6천원.

2019-07-18 11:32:51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김도훈·박시윤 지음/디앤씨 펴냄

[책]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

'거친 바다 위 세 척의 배는 가랑잎처럼 떠돌았다.'1882년 왕명을 받아 울릉도로 향하던 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은 배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이전 울릉도는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고려 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조선 태종 때부터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우는 쇄환정책(刷還政策)을 펴왔던 터였다. 대신 2, 3년에 한 번씩 수토관을 보내 섬을 관리했다.1882년 고종은 울릉도를 계속 비워둬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규원을 현지로 보내 섬의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이규원은 지금으로 치자면 군 사단장급 장성에 해당하는 정3품 무관이었다. 그는 10여 일 동안 울릉도 전역과 해안을 검찰한 뒤 보고서와 지도를 작성해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이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섬으로 이주시키며 울릉도 재개척의 역사가 시작됐다.당시 이규원이 남긴 보고서가 '울릉도 검찰일기'다. 이규원은 고종에게 하직인사를 한 뒤 출발해 울릉도를 조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2개월의 여정을 일기에 담았다. 특히 12일간의 울릉도 조사 기록엔 매일의 날씨와 지형, 식생, 만난 사람들, 느낀 점 등을 상세히 적었다.책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은 검찰일기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울릉도·독도 이야기다. 울릉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 조선 정부는 왜 울릉도를 비워두고 관리했는지, 울릉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 독도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는지, 다시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언제 부터였는지 등 상당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쳤을 우리 역사를 쉽게 풀어 알려준다.책은 130여 년 전 이규원의 여정을 따라가며 울릉도·독도 역사를 하나씩 끄집어내는데,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종이 위의 섬' 이란 제목의 8장(章) 소설 부분이다."유연호는 잠들지 않았다. 낱장으로 그린 그림들이 한 장의 종이 위에 퍼즐을 맞추듯 제자리를 잡아 나갔다. 붓끝에 걸린 그의 감각이 새하얀 종이를 생생히 채웠다. 점잖고 단아했던 그는 밤새 지지리도 궁상맞은 몰골이었다. (중략) 칠흑의 밤, 그만의 기법은 아득한 이끌림으로 되살아나 종이 위에서 분출하였다. 먹 선은 산 능선을 타고 기어 내려와 물속에 잠기는 듯싶다가 다시 기어올라 선명하게 산과 바위를 일으켜 놓았다. 산과 기암괴석이 밤새 종이 위에 적당하게 올라와 있었다."다음은 같은 장 해설 부분이다."당시 검찰사 일행 중엔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있었다.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유연호. 지금으로 치자면 국가 소속 공무원이었다. (중략) 유연호 같은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가 아닌 '규장각' 소속이었다. 1783년 정조는 유능한 화원을 왕실에서 수시로 데려다 쓰기 위해 차비대령화원 제도를 만들었다. 도화서 화원을 대상으로 별도의 시험을 통해 뽑힌 이들은 '당대 최고수'였다. 규장각 일지인 '내각일력'에 따르면 1783년에서 1881년까지에 기록된 차비대령화원은 100여 명. 김홍도, 김득신 등 친숙한 이름도 여럿 눈에 띈다. 다시 말해 고종은 당대 최고 화원 가운데 한 명인 유연호를 울릉도 검찰에 동행하도록 명했다. 고종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검찰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지난해 매일신문 '에세이산책', 2017년 '매일춘추' 필진으로 참여했던 박시윤 작가가 소설 부분을 맡아 썼다. 김도훈 매일신문 기자는 이 책을 기획하고 해설 부분과 부록을 썼다.두 지은이가 가장 애썼던 부분은 '역사의 대중화'다. 박시윤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을 통해 130여 년 전 이규원 검찰사 일행과 울릉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김도훈 기자는 당시 여정을 소개하고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울릉도·독도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독자들이 역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볼 수 있도록 장소에 대한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기록에 없는 이야기는 피했고 객관적 사실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읽기 편하도록 애썼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울릉도 검찰 이듬해 울릉도에 첫 이주민이 들어온 이후 지난 100여 년 간 섬사람들이 일궈온 삶과 문화 이야기도 부록으로 엮었다. 김 기자가 올해 1월 초까지 5년 넘게 울릉도에 근무하며 찍은 100여 컷 사진은 책의 또다른 볼거리다.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를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책을 이렇게 평한다."책장을 넘기면 울릉도의 아름다움과 함께 참으로 안타깝고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실이 전개된다. 그래서 울릉도의 아름다움은 더욱 처연하게 다가오고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각성과 함께 우리 국민들이 모두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일어난다."

2019-07-18 11:21:05

[반갑다 새책]와촌의 발자취/박기옥 글·사진/홍익출판사 펴냄

팔공산이 병풍처럼 처져있고 박사'천통천이 고을을 감아 도는 배산임수의 천혜의 고장, 와촌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지은이는 책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먼저 집필한 석학들의 기록물을 토대로 자료를 들춰내 그것을 거머쥐고 골골샅샅이 답사했다. 그 결과 천년 고찰과 유적'유물 산포지를 거의 찾았고 33개 저수지도 살폈고 25개 마을과 자연부락 고샅을 골고루 누볐고 주민들도 만나 역사와 얽힌 이야기를 청취했다.책을 쓴 목적은 와촌의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기 위해서이다. 일일이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한 지은이의 노력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노고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독립운동 유공자와 6'25 참전 용사 자료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중요자료로 여겨진다.310쪽, 1만5천원·

2019-07-16 13:28:50

[반갑다 새책]색동옷 입고 춤을 추다/심후섭 다시 씀/학이사어린이 펴냄

책의 부제가 '새로 읽는 우리 고전-삼강행실도'이다. 1434년 삼강(충 효 열)에 뛰어난 사람들의 행적을 모은 삼강행실도는 세종대왕이 당시 진주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자 무너진 윤리를 되살리고 효행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책을 펴내도록 한데서 편찬됐다.내용은 우리나라와 중국 서적에서 백성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 각 35명씩 모두 105명의 이야기를 뽑아 그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옛날 중국 초나라에 노래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 70이지만 부모님 앞에서 늘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노래자는 일부러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 부모님들 기쁘게 해드렸다. 그럴 때마다 노래자 부모님은 기뻐했다.'동화작가인 지은이는 청소년들이 바른 품성을 가꾸는데 목적을 두고 한문 투의 문장을 현대적 문장으로 고치고, 오늘날 초중고생들 모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책 내용을 다듬어 역었다. 335쪽, 1만5천원

2019-07-16 13:28:28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대상 "린호아의 그믐달"③]

"너희는 그럼 미국의 용병으로 온 것이냐?""그건 아니다. 우리가 받는 월급은 병사 50달러 내외이고 장교인 내가 중위로 150 달러 정도 받는다. 이것이 용병의 대가라면 너무 싸게 팔려온 거 아닌가.""그건 너희 국가에서 더 돈을 받고 실제론 40%만 주는 걸로 들었다. 호주 군대는 미군과 같은 300달러 정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다.""상관없다 따로 더 받는 건 우리도 가난한 나라니까 정부가 따로 챙겨 좋은 곳에, 경제개발이나 우리 국방에 쓸지 모르겠다.""너 같은 애국자가 이 나라엔 별로 없는 게 유감이다. 남 베트남 정부 얘기다. 허울 좋은 민주공화국인지 미국의 원조 덕인지 오래전부터 남쪽은 썩었다. 정부 고위직이나 하위 공무원까지 모두 부정을 일삼고 부패 비리에 혈안이다. 무정부 같은 체제에 도둑질이 만연되어 있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너희 한국군은 이 나라 역사를 아는가?""어느 정도는 교육을 받았다.""지금 우리 북쪽 월맹은 체제가 다른 공산권이지만 이 나라 역사를 비춰 볼 때 오랜 시간 큰 나라 중국의 지배를 1920년까지 받았다. 그 당시는 중국이 청나라였고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이름도 중국 본토의 월나라 남쪽 지역이라는 호칭으로 월남이라고 불렸다.역사와 전통이 그리고 문화와 의식이 거의 중국화 되어었다. 지금도 그 문화와 풍습이 그리고 글자까지 많이 남아 있다. 그 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태평양전쟁 시엔 일본의 군화발이 전 국토를 짓밟아 놓았다.긴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는 프랑스가 다시 이 나라를 교대로 차지하고 지배해서 그때부터 지루한 독립전쟁, 내전으로 전 국토는 빈곤과 피로 물들었다. 계속 식민지로 만들어 모든 이권을 가지며 갈취해가기 바쁜 그런 역사 속에 우리 민족은 또 그들에게 시달리며 핍박과 고난 속에 살았다.이어서 중국 공산당의 물결이 이 나라에도 새롭게 들어오게 되면서, 그 이념을 부르짖고 의식을 차리자고 호찌민 주석이 투사로 나섰다. 그러면서 이 땅에 공산당이 결성되고 혁명적인 거국 독립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거의 프랑스를 몰아낼 때쯤 파리 평화 회담이 열리고 큰 나라들의 농간으로 신은 우리편이 아니었는지 이번엔 휴전선이 남북으로 갈라졌다.그러면서 이 땅에 무슨 자원이 많이 있어서인지 놓치기 싫은 어여쁜 애첩이라도 있다는 건지 다시 미국이 개입해 북쪽은 멀리 한 채 남쪽 정부를 도웁네 하며 간섭을 하면서 지금의 이 지루한 싸움이 있게 된 것을 당신들도 알아야 한다.우리는 이제 이 나라의 완전통일과 독립을 원한다. 그동안 우린 너무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 이해가 없는 이 나라에 와서 남쪽을 돕고 미국을 도와 싸우면 안 되는 것이다."이 말은 꼬딴의 언니 꾸엉판이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한 말이었다.이런 소리를 서 중위는 비록 적군이지만 이 나라 본토인으로부터 들으니 상황이 달라서인지 그 말이 맞는 말 같이도 들린다. 이 나라가 우리 한반도 역사와 비슷한 면도 있는 것을 느끼며 동병상련의 마음도 가지게 된다.그러면서 서 중위는 작전에 출정해 적군이 보이면 무조건 죽이고 무기를 회수하고 전과만 올리면 최선을 다하는 군대이고 또 개인적으로 자신만 살아서 돌아가면 모든 게 선이고 영광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전에도 가끔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 있고 이데올로기는 또 무엇이며 이 전쟁의 명분은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회의도 들곤 했었다. 모든 전쟁이 국가적 대의를 위해 병사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되고 의무이고 명령이라 끌려가 싸우다 죽는 것이 무슨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는지 묻게도 된다.서 중위는 국가의 부름으로 군인이 되어 본분인 명령을 따르고 충성을 하는 것이지만 이 월남이라는 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이 내 나라 내 형제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하는것도 아니지 않는가.남의 나라에 와서 전우들이 하나 둘 죽는 걸 보면서 과연 이것이 의무이고 숙명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인생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정말 젊음을 다한다는 것은 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곳 인민의 숙원이자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는 그들을 죽이고 작전을 방해하는 행위도 우리가 정말 잘 하는 짓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비록 그들의 체제가 공산권이라고 해도 우리가 여기 와서 우리 체제와 반한다고 명령이라고 무조건 죽이고 때려부수고 해서는 과연 옳은 일인지 점점 회의가 들었다.좁은 나무 침대 물통 하나가 전부인 움막에서 서 중위는 언제 이송이 될지 자신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 답답한 시간만 가고 있었다. 어느덧 2주가 지나고 있다. 또 한 번의 포로 심문이 있던 그 다음날 그 장교 이름이 꾸엉판인데 조용히 서 중위를 불러 부대장은 모르는 자기 생각이니 이곳을 탈출해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거다.자기들 사정이 좋지를 않아 그대로 풀어 주는 건 문책이 있을 것 같고 허술한 경비를 만들어 줄 테니 탈출해 돌아가서 부대 귀대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다. 깜짝 놀랄만한 제안에 서 중위는 꾸엉판의 손을 얼떨결에 잡으니 얼른 빼면서 오늘 저녁에 감행하란다.아마 경비병이 총은 쏠 것이다. 크게 막지는 않을 것이며 여기 지도도 줄 테니 30분 가면 큰 도로 19번 도로가 나온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잘 돌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다. 이 무슨 말인가? 풀어주겠다니 얼떨떨해진다. 한밤중 거의 자정 무렵 꾸엉판이 다시 와서 이제 가야 된다고 후문 쪽을 가리키며 일어나란다.운전병도 곧 나올 것이라며, 그리곤 꼬딴이 자기 친동생이 맞는다고 잘 가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그동안 자기 여동생으로부터 남쪽의 정보를 많이 습득하며 지낸 것도 같다. 꼬딴이 서 중위에 대해 살려주라도 했는지 어떤 얘기라도 있었는지는 추측해 보지만 잘 모를 일이고 속단할 수 없었다.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 밀림이 그나마 은폐가 되어 무사할 수 있을지 염려도 됐지만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박 상병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 중위와 합류하면서 이제 탈출하는 거라고 귀띔을 하며 뛰기 시작할 때 어디서 웅성거리며 경비병인 듯 소리가 들린다.그래도 멈추지 말고 그대로 뛰라는 꾸엉판의 지시를 생각하며 죽기 살기로 뛰는데 뒤에서 고함소리 소총 소리가 따다 당 탕탕 쏴 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뛰었는데 몸에 총알이 박히는 것 같았다. 박상병도 몇 발 맞는 것 같다. 뛰다가 쓰러진다. 박 상병! 일어나! 악을 썼지만 못 일어나겠단다.얼마 뒤따라오는 인기척은 없어 보여 박 상병 몸을 들쳐 없고 걸어 보려고 들쳐 안으니 그대로 축 늘어져 무겁기 짝이 없다. 엎드려 통곡하려는데 자신의 몸도 피가 엉기고 흐르는 것이 보인다. 거의 기다시피 도로를 나오니 멀리서 자동차 불빛인 듯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인다. 손을 흔들고 쓰러졌고 깨어보니 이동 병원이었다.병실에서 누워만 있으니 소총중대 일이 엊그제 같이 또 떠 오른다. 탈출 때의 악몽은 거의 매일 겪기도 했었다.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치열한 전투를 하다 부대 내의 소대장 한 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소대장 교체가 이번에는 내 차례라고 학수고대하던 소대장들은 "야 이 새끼 죽긴 왜 죽냐?"하고 비통해 하며 원망도 섞였었다.물론 전우의 죽음도 애석했지만 자신의 소대장 자리를 교체하기 위해 한국에서 오고 있는 소대장 요원이 우선 교체 순번이 된 자기보다는 결번된 소대에 먼저 배치가 되어야 했다. 때문에 소대장을 면할 기회를 한 번 놓치고 나면 전투를 한 번씩 더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7월23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4회가 게재됩니다)

2019-07-15 18:00:00

미노와 고스케는 자신의 얼굴을 내건 매대가 서점마다 있을 정도로 영향력있는 출판 편집자다. 그가 자신의 성공 스토리와 젊은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21세기북스 제공

미치지 않고서야/미노와 고스케 지음/21세기북스 펴냄

괴짜, 관종, 난놈, 트러블메이커……. 출판 편집자인 미노와 고스케를 수식하는 단어는 셀 수 없이 많다. 출판 편집자라는 다소 드러나지 않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서점에는 그의 등신대를 세워두고 그가 편집한 책만 모아 놓은 매대가 있고, TV 방송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출연하며, 유명 맥주 CF에 등장해 일침을 가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심지어 '그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돈을 지불하고도 일할 수 있다'는 청년들마저 있다.출판사 '겐토샤' 소속의 편집자인 미노와 고스케는 2017년 Newspicks Book이라는 새로운 레이블을 만들고 담당한 책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년에 100만 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이력을 갖게 된다. 그가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일하기 방식을 엮은 '미치지 않고서야'를 펴냈다. ◆실력보다 브랜드를 키우자'아마존 재팬 종합 1위, 누계 판매 부수 12만 권'을 달성한 '미치지 않고서야'는 회사 안에서 빼어난 실적을 올리고 회사 밖에서 본업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내기까지, 미노와 고스케가 온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한 새로운 시대, 일하기 혁명을 담았다.출판사에서 평범한 회사 생활을 보내던 지은이는 어느 날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광고영업부 소속이던 그는 사장을 설득해 편집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물급 인사들만 섭외해 책을 만들어 갔다. 주변 반응은 차가웠다. 숱한 질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1년 만에 100만 부를 팔아치우며 '일본을 대표하는 히트 메이커'가 됐다.편집자가 된 지은이는 실력만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력있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대다수의 책이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한 채 반품되기를 반복하자 그는 SNS에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어떻게 하면 파급력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책에 관해 더 언급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기로 한 것이다.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절대로 팔 수 없다. 앞으로 물건을 고르는 기준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누가 어떤 철학을 통해, 어떤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인지, 하는 이야기 말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책을 선전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과 인생도 그대로 드러냈다. '미노와가 사는 방식이 마음에 들고 그에게 공감해. 그가 편집한 책을 읽고 싶어.'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그가 수년 전 '앞으로는 서점에 편집자의 이름을 내건 매대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칼럼을 썼을 때, 그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전국 서점에는 미노와 고스케의 사진으로 장식된 매대에, 그가 편집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미노와 고스케'라는 이름만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회사를 그만두지 말고, 회사를 이용하라눈에 띄지 않게 월급을 받는 만큼 일하면서 퇴사만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그는 회사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지은이는 도쿄로 이사하면서 월급의 3분의 2 이상을 월세에 쏟아부었다. 결혼해 아내와 아이도 있으니 가장으로서 어깨도 무거웠다. 그는 곧장 부업에 뛰어들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틈틈이 인터넷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자 양성 강좌에 나갔다. 유료 온라인 살롱을 운영하고 상품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 결과 부업으로 본업의 20배 넘는 돈을 벌게 됐다.하지만 실력이 20배가 된 것은 아니다. 차이는 의식의 전환이었다. 휴일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시간을 돈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본업에 힘써서 이름을 알린 뒤 그것으로 새로운 일을 늘려간다. '회사라는 무대를 이용해 개인 브랜드를 쌓아간다'는 것이 지은이가 "연봉 0엔이 되더라도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회사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인프라와 자본, 사람과 경험이 있다. 회사를 이용하고, 또 회사에 보답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다만 회사의 간판 뒤에 숨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돌아갈 곳이 있는 인간에게 사람들을 열광하지 않는다.지은이가 운영하는 온라인 살롱(유료 회원제 커뮤니티) '미노와 편집실'을 운영 중이다. 이 곳에는 1천여 명의 회원들이 매달 5천940엔을 내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지은이의 주변에는 기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회사처럼 연공서열에 따라 순서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노력한 만큼 성장해간다. 뉴스픽스, ZOZO 등 대형 기업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미노와 고스케는 오늘도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있다. 그는 "'죽지 않으면 찰과상일 뿐'이라는 마음으로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라"며 젊은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292쪽. 1만4천원

2019-07-11 10:28:26

어제를 표절했다 표지

[책 체크] 어제를 표절했다/ 천세진 지음/ 피서산장 펴냄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계속 이어지고, 생명체들의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생명과 삶의 양식이 복제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복제되었다면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을 잃고 소멸했을 것이다.이 책은 인문학의 중심이 되는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문화가 유지된 것은 복제처럼 보이는 이어짐 속에서도 창조적인 스타일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생태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스타일'이란 관점에서 대중적으로 풀어냈다.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 음식, 음악, 의상, 관광, 건축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생태적 존재이자 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정체성을 살펴보았고, 각각 인간이 갖고 있는 문화적 고유성에 주목해 쌍둥이조차도 서로 다른 '문화인종'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지은이는 "인문학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이 고통을 받고 있고, 사회적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인간의 삶과 사회적 삶이 일정한 한계 안에서 '표절'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59쪽 1만5천원.

2019-07-10 17:27:32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②

이렇게 다국적 군인만 드나드는 사무실에 여직원은 분위기 메이커도 되고 지역 사정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꼬딴은 업무에 아주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월남인 남자와 여자는 대부분 몸이 말랐고 성격은 온순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되면 여간 화를 내는 게 아니다.당연한 자존감이 있는 민족인데 많이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참을성도 있고 눈치는 아주 빠르다. 꼬딴은 이제 18살, 다 큰 나이지만 체격이 워낙 약해 보이고 표정이 어두워 잘 농담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 여동생 같기도 해 부대 병참 중대에서 음식재료인 A 레이션, B 레이션 등을 얻어다 차에 실어 자주 갖다 줬다.처음엔 사양을 하더니 받아놓고는 열대과일을 들고 와서 나눠주고 서 중위한테는 특별히 망고와 용과 같은 좀 귀한 걸 가려 주곤 해서 정이 들었다. 이성 간이 아닌 오누이의 정이랄까 그 집 아버지가 전투에 일찍 사망해서 안 계시단다. 엄마 혼자 4남매를 키웠다고 집안 얘기를 듣기도 해 딱하기도 해서였고 군내 거주민들 사정 같은 것도 가끔 얘기해 줘 친해지기도 했다.서 중위는 월남 도착 후 5개월 반 동안은 전투 중대 소대장을 했다. 그 당시엔 배 타고 일단 월남 도착하면 병과에 관계없이 소총부대로 가서 전투 경험을 갖게 했다. 4개월 16일 동안 작전에 참가하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 중대원들과 정이 들만하니까 헤어지게 된 것이다.월남 실정을 몸에 익히고 나면 자신의 병과대로 차출이 되어 원래 병과 분야에서 사단이나 연대 내에서 근무하기도 하지만 보직이 변경된 채 1,2년을 다른 직책으로 기간을 채우고 귀국하기도 한다. 운이 없거나 탁월한 전투 능력이 보이면 그 중대에 말뚝이 되기도 하는데 서 중위는 4개월 만에 연대로 돌아와 민사과에 배치되어 대민 업무를 보게 되었다. 월남어 교육도 사단에서 3개월 마치고 군청에 정보장교로 자주 나가게 되면서 미군과 월남 군 요원들과 같이 근무를 한지는 또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그러던 중 연대장 지시로 3대대에 민원이 발생해 사건 조사차 출장을 갔다가 오는 도로상에서 납치가 된 것이다. 좀 늦은 시각인데 군 짚차에 운전병과 둘이 타고 19번 도로를 거슬러 부대로 귀대 중 깔딱 고개 오르막 중턱쯤에서 난데없이 민간인 차림의 서너 명이 도로를 막고 도와 달라는 시늉을 해서 차를 세웠다.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차에서 내리진 않고 상황 판단을 하는데 난데없이 숲속에서 대 여섯 명이 소총을 겨누며 나타나 총을 몇 발 쏘아대며 내리란다. 원래는 짚차에도 호위병 두 명이 좌우 경계를 하며 운행을 해야 하는데 가끔 다니던 길이라 방심을 한 거다. 운전병과 둘이는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이없어 하며 안 내릴 수 없었다. 서 중위 계급장을 보더니 인솔자인 듯 보이는 사내가 뭐라고 지시를 하는 것 같았다.우리를 무장해제 시킨 후 손을 묶고 차에 다시 타게 한 후 그들 중 한 명이 운전을 하고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작은 짚차에 7명이 탄 채 어디론가 도로를 이탈하여 한참 가더니 내리란다. 거기서부터는 우리 두 사람 눈을 천으로 가리게 한 후 또 한참을 걷게 한다. 한참 만에 어느 곳에 도착해 건물로 데려갔다.그때까지 눈은 가리 운 채다. 이곳이 이 지역 VC들의 임시 근거지인 곳으로 알게 됐다. 하늘이 잘 안 보이는 울창한 정글 속에 나무와 갈대로 지은 듯한 전통가옥 건물이 서너 채로 그리 많은 병력이 주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중에 한곳으로 데려간다. 덩그러니 나무 침대와 궤짝 같은 게 하나인 숙소 같다.두 사람을 같이 들어가게 한 후 엉성한 나무 침대에서 그날은 지새게 했다. 다음날 군복을 입은 나이 든 사람과 여군 장교인 듯한 사람이 들어온다."소속과 직책 이름을 대라?""백마부대 연대 민사과 중위 서 대규다.""언제부터 전투에, 아니 이곳에 왔는가?""71년 3월 18일 날 캄란 베이에 내렸고 쭉 연대 민사과에 있다.""월남 말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 배웠나?""잘 하는 건 아니고 사단 내 월남어 교육대에서 3개월 교육받았다.""우리가 누구인 줄은 아는가?""모른다. 월맹 정규군인가?""그렇다. 월남 인민 해방군 사령부 직할 부대다. 난 이곳 지역 부대 부 사령관이다. 포로인 너희는 조만간 본부로 이송될 것이며 앞으로 많이 협조하면 살려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오래 구금되어 있다가 죽을 수도 있다. 잘 판단하고 처신하기 바란다. "첫날은 이렇게 부사령관의 문초로 끝이 났고 다음 날부터는 여군 장교가 심문을 했다. 너희 군은 우리 양민과 군에 많은 피해와 손실을 안겨 왔다. 부대 규모와 병력을 물었고 계획된 작전 시기를 물었지만 아는 대로 적당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아는 것이라곤 연대나 군단 규모 작전이 장소와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기밀사항이라 잘 알 수가 없었고 분야가 다른 대민 사업 쪽이라 이해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나중엔 이들도 이해를 했는지 그렇게 험하게 다루진 않았다. 그래도 신분이 장교라 아무리 신빙이라도 포로 몸 가치가 있는 모양인지 본부 명령에 따라 이송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서 중위의 운전병이자 당번병인 박 상병은 다른 방에서 비슷한 심문과 대우를 받은 것 같았다.한낮의 태양이 화염방사기 불꽃처럼 뜨겁다. 저녁이면 달빛이 수풀 사이로 내려앉아 고향 생각에 멍해지고 앞으로 어떤 일이 두 사람에게 닥쳐올지 침울한 나날이 그냥 지나갔다.이때쯤 지역 신문과 연대 및 사단에서 한국군 두 사람이 납치되어 포로가 됐다고, 큰 뉴스가 되고 있었다. 연대에선 즉각 구출 작전 및 협상이 기획되고 있고, 린호아 군청에서도 실종 지역 인근 부대 참모진들이 연대에 들어가 작전을 세우고 군청 연락 사무실은 목격자 및 탐문수사로 비상이 내려져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2, 3일이 더 지났는데도, 모든 걸 포기하고 어디로 끌려가려니 생각만 하고 있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리곤 여자 장교가 나타나 나를 다시 심문하려는지 단둘이 앉게 되었다. 이제 보니 그 여군은 복장도 단정하고 몸매도 좋고 좀 합리적인 데도 있어 보이는 사람같다.포로면서도 남자라 그런지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게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군청 사무실 꼬딴과 얼굴 생김새도 비슷해 농담처럼 혹시 린호아성의 꼬딴과 형제는 아닌지 서 중위는 한번 물어본다."​린호아 성 군청에 꼬딴이라고 있는데 혹시 아는지?" 물었더니 눈을 크게 뜨고 얼굴 색깔이 좀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모른다고 딱 잡아 땐다. 그 직원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서 중위는 직감을 발휘하여 꼬딴이 언니가 있다면서 자신을 소개해 준다고 했었다고 말을 하니 그냥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그런 얘기는 더 이상 않고 지금 이 지역이 한국군 월남 군이 합동작전으로 당신을 찾고 있으며 우리 사정으론 본부로 당신 둘을 보내야 하는데 교통 편과 호송 인원이 마땅치 않아 고심 중에 있다는 걸 얘기하곤 나가 버린다.며칠 전에도 포로 심문을 받았다. 별로 영양가 없는 답변만 하고 있는 걸 아는지 큰 기대도 안 하는 것 같다."주로 하는 임무는?" "대민 사업과 민사 정보 관계 통역 일이다.""너희 군은 왜 이곳에 와서 우리의 통일 임무를 방해하고 있는가?""그것은 우리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우린 단지 국가의 부름과 명령으로 이곳에 와서 전투를 할 뿐이다."(7월1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3회가 게재됩니다)

2019-07-08 18:00:00

죽도록 먹고 마시는 심리학 /알렉산드라 w. 로그 지음/ 행복한숲 펴냄

우리는 고칼로리, 고지방, 고염분, 고당도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걸 안다. 그런데도 한밤에 치킨을 먹고,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고, 짬뽕 국물을 들이킨다. 달콤과 짭짤함이 만난 '단짠'은 거부하기 어려운 강력한 맛이다. 건강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닌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을 찾는 심리는 무엇일까?행동과학자 알렉산드라 w. 로그는 '죽도록 먹고 마시는 심리학'에서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어떻게 먹어야 할까뉴욕시립대학원 교수인 지은이는 과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연구로 명성을 쌓았다. 어린 시절 극도로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던 그는 맛을 매우 잘 느끼고, 특히 쓴맛에 유독 민감한 '초미각가'다.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에 대한 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뉴욕시립대에서 '먹고 마시는 심리학' 강의를 시작했고, 큰 인기를 끌면서 책으로 발간하게 됐다.이 책은 먹는 것과 관련된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다양한 실험 결과를 근거로 분석한 실험 심리서다. 먹는 것으로 체중 조절과 건강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책에서 분석된 행동 심리가 중요한 팁이 될 수 있다.다양한 음식이 넘쳐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동일하게 누리지는 못한다. 과거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과는 달리 먹거리에 대한 쉬운 접근성으로 오히려 과도하게 먹으며 비만과 질병을 낳고 있다. 먹을 것은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먹어야할지 고민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지은이는 '슈퍼테이스터'(초미각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바탕으로 먹는 것에 대한 행동 심리를 13가지 주제로 분석했다. 배고픔과 미각처럼 기본적인 먹고 마시는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이 폭식증, 거식증과 같은 섭식 장애, 비만, 과식, 알코올 중독, 당뇨병, 흡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장 최신의 과학적인 연구들을 책에 실었다. 또 까다로운 식성을 없앤다거나 체중 감량의 문제에 뻔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먹고 마시는 행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것을 먹고 마셔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음식 선호는 유전될까 지은이는 먹고 마시는 것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배고픔, 포만감, 갈증, 미각과 후각, 음식 선호와 음식 혐오, 충동과 자제력 등 다양한 요인이라 설명한다.배고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여러가지다.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갑자기 식욕이 발동하는 이유는 음식을 보면 침이 나오고,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인슐린은 혈당 수치를 낮추고 배고픔을 느끼게 한다. 배고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비단 인슐린뿐만 아니라 다양하다. 날씨가 추우면 체온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울수록 많이 먹는다. 당도 높은 음식을 먹으면 인슐린 분비가 왕성해져 혈당이 낮아지고 배고픔을 더 느끼게 된다. 반대로 껌을 씹거나 음식을 입에서 더 많이 씹으면 배고픔을 덜 느끼게 된다.맛과 냄새는 우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려낼 때 인체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생존과 직결돼있다고 분석한다. 우리의 미각과 후각은 감정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더 좋은 맛이 기억에 남고, 나이가 들수록 후각 민감도가 떨어진다.또 음식 선호와 혐오가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과거 생존에 유익했던 고당도,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을 선호했던 것을 들어 설명한다. 단맛이나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선호는 생존과 관련이 돼있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않았던 시절에는 칼로리를 마음껏 얻는 것이 불가능했던 만큼 태생적으로 단맛과 고칼로리를 선호했다. 짠맛도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던 염분 섭취가 자연환경에서는 소금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탓에 인간이 선호하는 맛이 됐다.책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다룬다. 폭식증, 거식증, 과식, 계절성 우울증, 야식증후군 같은 섭식 장애부터 비만, 당뇨, 심각한 알코올중독, 니코틴 중독, 그리고 여성의 생식과 섭식에 대해 다룬다. 372쪽. 1만8천원

2019-07-04 11:13:51

[반갑다 새책]그리고 나는 걸었다/조성순 지음/행복한책읽기 펴냄

'한 걸음/두 걸음/마음 낮추고/야고보께 나아갑니다(중략)고요하던 항아리에/물결이 소용돌이칩니다/흙탕물이 끓어오릅니다(중략)한 걸음/두 걸음/하루/또 하루/정화되기를 기원합니다'책은 시인 조성순의 산티아고 순례에 따른 세 번째 시집으로 2016년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메고 지구촌의 여러 오지와 고산을 다녀온 지은이의 경험이 녹아 있다. 프랑스에서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를 거쳐 대서양 북단 묵시아까지 920km남짓 걸었던 지은이의 경험은 길이 시인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와 시가 되고, 힘들게 옮겼던 걸음걸음들이 시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그렇게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 자연과 생각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집에는 시뿐 아니라 시인이 직접 찍은 산티아고 순례 길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지은이의 시작노트도 함께 있어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들을 풍성하게 해준다.사실 길 위에서, 길을 걷다가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행운이 행복과 직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은총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서서히, 점진적으로 구도자를 닮은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저나 나나/알고 보면/집 나온 달팽이인데/뿔 내리고 조심조심/야고보께 나아가야했는데/뿔 두 개로 뻗대느라/마음의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구도자는 결코 타자의 도움조차 거부하는 그런 고집불통의 냉혈인간이 아니다. '작은 샘물'에도 만족하고 감사 드릴 줄 아는, 그리하여 타자를 만나면 그 타자가 곧 지인이 되고 은인이 되는 것을, 그래서 지은이는 지친 순례 길에서도 결코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더더욱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135쪽, 1만2천원

2019-07-04 11:09:15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서평]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 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지음/ 이원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여성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중요한 결정에서는 늘 배제되었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오직 자손을 낳아 기르는 것만이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길이 막혀 있었던 때, 지성과 천재성, 대담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여성들도 많다.이 책은 우리가 기억해야할 당당한 여성 100인에 대한 헌정서다. 프랑스의 예술사학자인 지은이 나탈린 코프만 켈리파는 최초의 여성 '루시'가 존재했던 320만년 전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간을 살펴 유명 인물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빛난 삶을 산 여성 100인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신분의 장벽 넘어 자기 실현아그노디케는 역사상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라 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오로지 남성만이 산부인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아그노디케는 남장을 하고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의술을 익혔다. 아그노디케는 의료행위를 하다 법을 어긴 죄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여성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법원은 여성에게도 의술의 문을 열도록 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여성 최초의 자연과학자다. 1699년 남성만이 예술과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때다. 그녀는 유충과 성충 사이의 발육단계인 님프라고 불리우는 번데기를 관찰하는데 온통 관심이 많았다.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과 생활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곤충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픽션 영화 '양배추 요정'을 찍은 알리스 기는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천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고 제7 예술의 세계를 열었지만 영화계에서 잊혔다. 해변에서 몸에 붙이는 수영복을 입은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아네트 켈러먼 덕분에 여성들은 코르셋과 모직 드레스, 모자가 없이도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남성과 동등한 여성 위해 투쟁"가장 억압받는 남성도 아내라는 존재를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아내는 프롤레타리아 중의 프롤레타리아다." 1830년 플로라 트리스탕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리보장이 대두되던 때, 여성 노동자는 '노동자'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가 연합할 것을 강조했던 플로라는 집회를 여는 등 활동하다 열병으로 사망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89년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여성이다. 과격한 방식으로 불을 지르고 건물을 박살내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남편과 딸 둘도 모두 여성참정권 운동에 동참했던 대단한 가족이었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수품 공장에서 여성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보수 정치권의 여성참정권을 얻어냈다. 1921년, 마거릿 생어는 피임에 대해 알리며 여성의 신체 자유를 외쳤다. 여성의 몸이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때, 피임 클리닉을 열고 산아제한 연맹을 창설해 여성의 몸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왔다. ◆비웃음 견디며 불태운 학구열계몽주의 과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는 1724년 웃음거리가 되면서도 뉴튼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시대의 요구에 맞춰 19세 나이로 결혼해 아이 셋을 낳은 뒤 의무를 다했다며 이혼했고, 이후 철학자 볼테르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지적 탐구에 매진했다. 여성이 지성을 지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같은 여성도 비웃던 때, 그녀는 과학 논문을 쓰고 이태리 볼로냐 대학 교수가 됐다. 1832년, 오로르 뒤팽은 소설을 쓰기 위해 남성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해야 했다. 문학계에 들어가기 위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려야만 했던 때다. '앵디아나' '발랑틴' '렐리아' 등 명작을 남겼다. 1933년, 섹스 심벌 헤디 라마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수식어로 유명했던 그녀는 오늘날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발명했으나 세상이 그녀에게 기대한 것은 아름다운 외모였고, 기술 발명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1953년 남성 연구원들과 함께 DNA 구조를 알아냈다. 남성 연구원들이 훗날 노벨의학상을 받게 될 논문을 발표할 때, 그녀는 연구에서 손을 떼라는 편지를 받고 떠나야했다. ◆아름다운 세상 연 선한 마음들이레나 센들레로바는 전쟁 중인 1939년 바르샤바 게토에서 유대인 어린이 2천500명을 목숨 걸고 구해냈다. 이레나는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들어주거나 안전한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 보호했다. 구출한 아이들의 신원을 기록해두었다가 전후에 아이들이 실제 신원과 가족을 찾을 수 있게 있도록 했다. 로자 파크스는 'NO'라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인권운동을 일으켰다. '흑인 인종분리법'과 'KKK단이 활개치던 1955년, 로자는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 버스 운전사에게 "싫어요"라는 한마디를 한 것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가 던진 거부 한마디에 미국에서는 모든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1967년, 캐서린 스위처는 마라톤에 참가해 여성도 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성은 800m 이상 달릴 수 없다고 당연히 여기지던 때, 캐서린은 'K.V. 스위처'라는 이니셜로 참가해 주변의 쏟아지는 욕설을 참고 완주에 성공했다. 2009년 열한 살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레반 지하의 인권실태를 고발했다. 부르카 속에 갇혀 학교에 갈 권리도, 공부할 권리도 빼앗긴 현실을 옮긴 말랄라의 글이 주목받아 17세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344쪽 3만3천원.

2019-07-03 16:55:22

소설가 조정래. 매일신문 DB

조정래 '천년의 질문' 발표…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5위

소설가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이 화제다.2일 오전 조정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이날 그는 '천년의 질문,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다.한편 조정래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대표작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이 있다. 신작 '천년의 질문'은 시사주간지 기자를 중심으로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되묻는 소설이다.'천년의 질문'은 지난달 21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2019-07-02 09:24:36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⑥]박영귀 작

"아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이것을 씹어 먹어"하며 나 보고 멸치를 집게로 집어 소포에 넣어 줄 수 없느냐고 집게를 나한테 내민다. 나는 화를 버럭 내며 "아니야! 이것은 내 일이 아니야!" 하며 거절했다. 급기야 완전무장(?)을 한 청소부가 그 소포를 처리했다.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여름에 수취인이 없어 우체부가 보관하고 있던 소포 하나가 터져 바닥에 흥건히 액체가 고여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우체국 전체가 난리가 났다. 한국 시골에서 김치를 비닐봉지에 넣어 소포로 보냈는데 높은 온도로 발효가 되어 비닐봉지가 터진 것이다.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한 번도 이런 냄새가 없던 곳이었기에 더 했다. 한국에서 온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왔다. 괜스레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이게 뭐냐고 직원들이 물었다. 한국에 갔다 온 직원은 독가스를 만드는 핵폭탄이라고 킬킬거린다.그들이 킬킬대는 것은 아무런 마음 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나와 집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였다.내 앞에서는 말은 안 하지만 그들이 꾹 참고 있는 게 있다. 멸치 사건 때, 누가 뒤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격지심인가 하고 그냥 흘려버린 게 있다. 보신탕 이야기다.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과 TV 방송에서는 연일 톱기사로 떠들어 댔다. 동남 아시아 사람들이 옥수수 밭에서 개를 잡아먹은 사건이다. 이곳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있는데 개를 죽이고 먹기까지 했으니 살인사건보다 더 크게 취급했다. 그 불똥이 중국과 한국 사람에게 튀고, 조그마한 나라, 만만한 한국이 제물이 되었다. 개 목을 밧줄로 묶어 나무에 달고 몽둥이로 때려잡는 사진을 나한테 보여 주었다. 나도 개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한국 전쟁 때 먹을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먹었다고 했다.너의 들은 먹을 것이 풍부한데도 다람쥐도 잡아먹고, 말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지 않느냐 먹는 것 가지고 더 이야기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나와 집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들을 한 두 사람씩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도 같이하고 수시로 있는 파티에는 김치와 멸치조림를 달곰하게 요리해서 항상 맛을 보였다.처음에는 사람들이 겁을 내어 김치 조각을 칼로 썰어 한 조각 먹고 콜라 한 모금 마시던 백인들이 지금은 나보다 더 잘 먹는다. 그런데 멸치는 죽었다 깨어나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백인들처럼 신사는 없다.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남을 존중해 준다. 다만 소수의 성질 나쁜 자들이 문제다. 어디 가나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나쁜 사람 때문에 우체국과 백인을 상대로, 인종 차별로 E E O(균등한 고용기회 위원회)에 제소를 했다.수개월의 심의 끝에 나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영어문제로, 하고 싶은 표현을 제대로 못 해서다. 그러나 여러 백인이 도움으로서 이겼다.우체국은 철저한 군대식이다. 모든 게 선임 순이였다. 수습 기간을 지나 정식 직원이 되는 것도, 휴가도, 선임 순이였다. 다음에 정식 직원이 되는 것은 내 차례였지만 엉뚱한 백인이 먼저 되었다. 우체국장, 상급 기관에 건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권리를 위해 싸워야만 했다. 그동안 미국 생활에서 익힌 경험에서다. 여기서는 울지 않으면 젖을 안 준다.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요트공장에 다닐 때, 수습 기간이 끝내면 진급하기로 했지만, 진급이 안 되어 물어보니 담당자가 "너는 진급을 안 해줘도 만족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진급해 주기를 원하느냐?"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그래서 수없이 싸웠다. 싸워서 이길 때마다 나는 집사람을 부둥켜안았다. 집사람은 울었다. 타국에서 사람도, 언어도, 풍습이 다른 이곳에서는부둥켜안을 것은 집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은 그들이 잘못과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포용하는 신사도에 있었다. 그 후로 백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틀려졌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유학생들과 교민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태극기를 보며 목사님의 피아노 반주로 애국가를 불렀다.그리고 추석에는 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목사님이 주도하여 종교 구분 없이 참가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카고에서 한국무용단을, 미시간주에서 태권도 시범단을 초빙해, 이곳 백인들을 위시한 타민족에게 한국을 보여 주었다. '나에게 준비된 미래는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해 보았더니 무언가 되더라' 얼마 전에 우리 부부는 은퇴했다.긴 우체국 근무였다. 막내가 미 육군 장교로 한국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하다 제대했다. 내가 사는 집에는 에이커 땅에 한국 대추나무, 나주 배나무, 감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가 뿌리를 박고 살고 있고, 딸 하나와 아들 둘도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여기를 떠날 수 없다.해마다 채송화, 분꽃, 봉숭아, 활련화, 석류꽃, 벚꽃, 백일홍, 나팔꽃, 과꽃, 할미꽃이 피며, 상추, 한국애호박, 한국 찰옥수수, 배추, 무, 쑥갓, 푸추, 고추, 마늘, 한국오이, 들깨, 대파를 매년 재배한다.겨울에는 건강 때문에 구매한 콘도가 하와이주 와이키키에 있어서 거기서 지낸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다.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살다가 가족에게 부담 안 되게 멋있게 잠자는 훈련을 며칠 한 다음 죽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유언서를 변호사 앞에서 작성했다.첫째로, 생명 보조 장치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죽은 다음 우리의 몸을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 (이 사항은 운전 면허증에도 명시되어 있다. 운전 면허증 사본 첨부) 한다는 내용이다. 마음이 가볍다. 이것을 우리 부부는 행복이라 말한다.여기에는 고국에 없는 동물이 있다. 주머니쥐다. 재미나는 동물이다. 행동이 느리고 고양이 크기 정도며 새끼들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어릴 적, 우리 가족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보다 큰 동물이나 움직이는 물체 앞에서는 처음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공격할 것처럼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피하거나 죽은 시늉을 한다. 그래서 도로에 많이 죽어 있다. 자동차가 오면 적으로 생각하고 차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죽은 척해서 라고 한다.집사람은 나와 달리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자랐지만 부족한 먹이를 위해 발 버둥댄, 나를 위해 한마디 군소리 없이 따라 준 노고에 더욱 사랑을 느낀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듣다가 짜증 나니 입을 벌리고 공격할 것 같은 주머니쥐를 보고무심코 "너 디아벨리 변주곡을 먹을 줄 아느냐" 고 했다(나는 종교가 없어 스테인드글라스에 여과되지 않은 서울이 불면증이다)지난날을 잊지 못해 벌린 입에 쌀알을 퍼부어도 다물지 못하고 죽어있는 모습의 거북스럽고 답답한 표현은 빙판길, 연탄재를 아무리 뿌려도 내려가기 어려운 산동네 엥겔계수였다장떡과 사카린을 넣은 밀기울 빵을 신기하게 여긴 문학소녀 애인의 언어는 '시'였다애인의 언어에는 그런 떡과 빵은 없었다 별과 달, 꽃과 나비, 사랑과 그리움, 바다와 등대 따위의 환상뿐이었다사랑은 영원하다 했고 사랑만 있으면 어떠한 부족함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애인은 식도가 긴 달동네 목구멍까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다가 도중에 주저앉아 버렸다산동네 정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젊은 관악산 바람들은 같은 시간대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움직였다 후진 골목길을 휘돌아 설레발쳤다. 굼뜬 쥐는 없었다.애인들의 변주는 쉽게 아물었다.지금도 달동네 가로등은 헛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가?'먹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서울'안녕하십니까〈끝〉

2019-07-01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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