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프레임 싸움

윤석열 검찰총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이창환 기획탐사팀장 이창환 기획탐사팀장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8년(1559~1567년)간 벌인 '사단·칠정 논쟁'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학문적 깊이에서 근대 이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적인 학술 토론이었지만 의견의 불일치를 극복하지 못했다.

의견의 불일치는 훗날 조선의 먹물들이 400여 년 동안 '이(理)가 먼저냐? 기(氣)가 우선이냐?'를 두고 싸우고 또 싸우는 출발이 됐다. 이 논쟁은 조선 성리학이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갈라지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심지어 같은 학파 안에서도 논쟁을 벌였고, 불화를 겪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도 이 논쟁으로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 논쟁은 애초부터 합의가 될 수 없었다. 주자는 '이, 기'를 두 개념으로 설명했다. 첫째, '이=도덕 성향=사단, 기=욕구 성향=칠정'이다. 퇴계는 이 주장을 발전시켜 도덕심리학적으로 '이'에 비중을 뒀다. 둘째, '기'는 '이'(도덕 성향)를 싣거나 태워주는 존재로도 설명했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만 현실에서 선인과 악인으로 나뉘는 것은 '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고봉은 이를 받아들여 '이, 기'를 분리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관점을 주장한다. 논쟁은 남명 조식이 끼어들면서 중단된다.

논쟁이 합의를 이룰 수 없었던 이유는 서로 프레임이 달랐기 때문이다. 퇴계는 도덕심리학적 관점에서, 고봉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와 기'를 논하면서 출발부터 달랐다. 퇴계는 고봉의 주장이 수수께끼 같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 '기'의 개념도 서로 다르면서 소통이 쉽지 않았다.

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면 교역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가 같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기 어렵다.(이승환, '횡설과 수설')

460여 년 전 대학자와 젊은 유학자 간 신중한 학술 논쟁도 결국 프레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프레임이 세상을 보는 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부 여당과 야당 간 상호 공격,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쟁,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벌어지는 싸움, '구적폐'·'신적폐'로 서로 손가락질하는 정치권 공방도 결국 프레임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다. 정치권이 견해가 다르고, 정책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프레임을 공유해야 하는 게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건국됐다. 자유민주주의에서 3권 분립이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주권이 있고, 모든 권력이 나오는 국민을 우선해야 한다. 공산주의를 채택한 북한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다.

지금의 정부 여당을 보면 국민보다 팬덤에 휘둘린다. 더불어민주당이 금태섭 전 국회의원을 포용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팬덤은 '이성적 지지'보다 '정서적 유착'에 기반한다. 이성적 지지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정서적 유착은 '좋고, 싫음'을 우선한다. 팬덤이 정부 여당의 정치 구호와 정책에 '좋다'는 신호를 보내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열성적 지지자들 외에는 별로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이렇게 해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정부 여당이 팬덤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았지만 이제는 팬덤에 빨려들어가 버린 형국이다.

팬덤 정치와 여의도 정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 여의도 정치가 팬덤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후퇴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민중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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