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달성공원, 웬 성지!

사단법인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와 광복회 대구지부가 지난 25일 오전 11시 대구 중구 달성동에 위치한 달성공원에서 '대한 광복회 결성 105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대한 광복회 대구지부 제공. 사단법인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와 광복회 대구지부가 지난 25일 오전 11시 대구 중구 달성동에 위치한 달성공원에서 '대한 광복회 결성 105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대한 광복회 대구지부 제공.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아아, 슬프다. 우리 동포여! 우리 동포는… 방조를 주고 천직을 다하기 바란다.'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회는 이런 포고문을 뿌리며 국내외 조직망을 갖춰 자금을 마련, 만주지부장 김좌진 장군 같은 해외 독립운동가를 돕고 무장투쟁도 펼쳤다. 여기에는 박상진 총사령, 우재룡 지휘장 등 전국의 의인(義人)이 힘을 뭉쳤다.

이어 1928년 5월 20일, 같은 달성공원 숲속에서는 또 다른 독립운동 비밀결사 'ㄱ당(黨)'이 결성됐다. 독립 자금을 모아, 젊은이를 나라 밖 중국의 군사교육학교로 유학을 보내고 만주에 땅을 개척해 조국의 독립 기지 터로 삼는 등의 목적을 위해서였다. 저항시인 이상화 등 대구의 젊은이를 비롯한 여럿이 참여했다.

이들 단체 결성 외에 달성공원은 독립운동가들 모임의 비밀 장소였다. 사실 달성공원에서의 이런 비밀결사 결성과 독립운동 모의는 일제의 허를 찌르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이미 달성공원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10년 경술국치를 거치며 일본인의 성지로 변했다. 대구 일본군 주둔지로, 대구 일본인 피난처로, 이후 일본인을 위한 제단 마련에, 그들 제사(신사) 공간까지 갖춘 그들만의 신성한 장소였다. 일제 앞잡이와 밀정이 불을 켠 시절, 바로 그런 달성공원에서 독립을 위해 젊은이들이 모였다.

이런 사연의 공원이니 광복 뒤 대구 사람들로선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1946년 공원 신사 내부 철거에 이어 1966년 신사 건물도 없애 흔적을 지웠다. 대신 1948년 이상화 시인을 기리는 시비를 세웠다. 하지만 두 독립운동을 위한 기억은 없었다.

이런 까닭에 지난 2018년부터 대한광복회 결성 날이면 대구의 뜻있는 시민들이 하나둘 모였다. 올해 세 번째로 지난 25일, 달성공원에 (사)독립정신계승사업회와 만민공동회 회원 50여 명이 무더위에 굳이 모인 뜻도 같다. 이들의 바람은 달성공원 독립운동을 잊지 말자였다.

올해는 소망이 하나 더 늘었다. 달성공원을 대구 독립운동 성지로 만들고자 대한광복회 결성 기념비라도 세우자는 염원이다. 이왕이면 'ㄱ당' 조직 기념까지 하면 어떨까 싶다. 내년 8월 25일, 달라진 달성공원이 될지 어떨지 그려 보느라 더위와 코로나를 잠시나마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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