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이순신, 회초리 들다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이순신 장군을 뵐 면목이 없어지고 말았다. '열두 척의 배'를 들먹이고 '거북선횟집'에서 오찬을 하며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큰소리가 빈말이 됐다. 나라를 뒤흔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소동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본엔 타격도 못 줬고 한·미 동맹만 균열이 갔다. 국론 분열에다 국민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바둑·장기에서도 몇 수 앞을 내다봐야 승산이 있다. 하물며 국가 간 분쟁에서는 몇십 수 앞을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전략이 있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에 대한 보복 카드로 지소미아 파기를 들고나왔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는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애초부터 '다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지소미아를 한·일 간 단순한 협정 정도로 오판(誤判)한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 잘못이 크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동맹을 지탱하는 축이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틀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도 지소미아 파기가 3국 동맹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를 한 일본에 대한 맞불 조치로 지소미아 종료를 꺼내 들었던 문재인 정권은 지소미아 의미를 잘 몰랐거나 알고도 무시했을 것이다. "지소미아는 한·미 동맹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청와대는 참으로 무지했다. '죽창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파기 이후 몰려올 후폭풍이 보일 리 만무했다.

'손자병법'에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말이 있다. 미리 이겨 놓고 싸운다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2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전과를 올린 핵심 전략이 선승구전이다. 이미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만들어 놓고 전투에 나선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지소미아 종료가 유예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나라를 이리저리 끌고 가는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 탓에 국민은 불안하다. 지소미아 파기 소동과 같은 오판과 전략 부재, 그로 말미암은 실패, 구차한 변명이 나라 곳곳에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열두 척의 배와 같은 이순신 장군의 겉만 봤을 뿐 선승구전의 지혜와 전략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이순신 장군이 회초리를 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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