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포스코와 박태준 정신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1970년 포항1기 건설 때 고가 설비 구입 과정에서 보험회사 리베이트 6천만원을 받았다. 박 전 회장은 임원들과 상의한 뒤 박정희 대통령에게 통치 자금으로 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은 "포철은 절대 정치 자금 안 낸다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하며 돈을 돌려주었다.

박 전 회장은 청와대를 나서면서 '장학재단'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포항으로 돌아온 즉시 임원회의를 소집, 6천만원을 종잣돈 삼아 '재단법인 제철장학회'를 설립했다. 이를 모태로 1971년 포항주택단지 안에 유치원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초·중·고교와 포항공대(포스텍)를 차례차례 설립했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사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포스코의 학교들에 '교육보국'(敎育報國)을 건학 이념으로 내걸었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의 혼이 서린 포스코교육재단(이하 재단) 소속 학교 공립화 추진을 두고 포항 사회가 시끌벅적하다. 재단이 지원하는 학교는 포항과 광양의 유치원, 초·중·고 등 14개 학교다.

포스코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재단은 최근 자사고인 포항제철고의 일반고 전환과 인력 구조 조정, 야구부·체조부를 비롯한 운동부 폐지 등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이를 수용할 경우 재단은 소속 학교의 공립화를 위한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는 해마다 재단 출연금을 줄여가고 있고, 2021년엔 '0'으로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포항시와 시의회는 물론 시민사회 단체와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포스코가 이런 움직임을 보인 데는 일부 재단 이사진의 "왜 포스코 돈으로 포스코 가족이 아닌 일반 시민의 자녀를 교육시키느냐?"는 비판적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포스코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재무통으로 알려진 최정우 회장 등 포스코 수뇌부가 경비 절감만을 앞세워 '포항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포철고 등의 공립화를 추진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최정우 회장이 자사고 폐지를 지향하는 현 정부에 발을 맞추기 위해 공립화를 추진한다는 의구심마저 보내고 있다.

포철고 등 재단 소속 학교는 포스텍, 방사광가속기 등 대학과 연구시설에서 일하는 교수, 연구진,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고급 인력들이 그들의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학교가 없다면 과연 포항에 정주하려 하겠는가.

이런 이유로 재단 소속 학교는 포스코와 포항 경쟁력의 원천인 것이다. 또 포스코가 포항 경제의 근간으로 기여하고 있지만 환경오염 등 온갖 고충을 견뎌 온 포항 시민에 대한 사회 공헌 측면에서도 재고되어야 한다.

작년 기준 200억원이 넘었던 포스코의 재단 출연금이 중지되고, 소속 학교가 공립화된다면 기존 공립학교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들 수도 있어 현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역(逆) 사회 공헌 의미도 있다.

포스코는 그동안 강원도 고성 산불 등 큰 재해나 사고 땐 100억원, 150억원씩 큰돈을 성금으로 내놨다. 하물며 인재 양성과 교육 백년대계를 위한 투자에는 무엇이 아까우랴.

최정우 회장은 '박태준 정신'에 입각한 포스코 리더십을 곧추 세워야 한다. 작년 8월 대비 1년 만에 시가총액이 10조원 줄어든 포스코의 위기도 근본에 충실하지 않은 무소신과 눈치 보기 리더십에 기인한다면 기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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