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마도 정벌의 교훈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이종무가 다시 대마도로 향해 진군하다.' '이종무 등이 수군을 이끌고 돌아와 거제도에 머물다.'

600년 전 여름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1419년 6월 19일과 7월 3일(음력) 기록이다. 거제도를 오전 9~11시에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이종무 장군이 이끈 일본 대마도 정벌이다. 이기고 왔으니 고려·조선 조의 3차례 대마도 정벌의 끝인 기해동정(己亥東征)은 우리 군대의 마지막 일본 진출 기록인 셈이다.

비록 100명 넘는 전사자가 나왔지만 조선은 승리로 얻은 게 있었다. 먼저 대마도의 항복으로 골칫거리인 왜구의 침탈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을 마련했다. 또 왜구를 달래고 살기 척박한 대마도 사람을 돕느라 그들의 물건을 사고 팔아주는데 든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도 어느 정도 덜었다. 물론 수시로 보냈던 곡식과 토산품 등 양국 간 불균형 무역도 어느 정도 바로잡게 됐다.

당시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리던 명나라의 일본 정벌 계획도 미리 막아 다행이었다. 만약 명이 일본과 싸울 경우, 원나라 지배 때 고려가 원의 일본 원정군 지원을 위해 겪었던 인적 물적 동원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던 일을 조선이 다시 각오해야 하는 탓이다. 아울러 조선은 무기 제조에 필요하지만 조선에 없거나 구하기 힘든 유황과 구리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600년 뒤 기해(己亥) 여름, 길어질 한·일 경제 전쟁에서 이기려면 할 일이 있다. 우선 만성적 무역적자 구조의 불균형을 바뤄야 한다.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처럼, 기껏 일본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의 체질과 틀을 바꿀 계기를 이번 기회에 갖춰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기술과 경제 독립을 위한 지속적 지원과 투자를 말만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다.

또 핵심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 길도 찾아야 한다. 유황과 구리 수입을 일본에 기댄 600년 전과 달라야 하고, 되레 일본 밖에서의 안정적 부품 공급이나 국산화로 살길을 내야 한다. 이리만 되면 이번 한·일 경제 전쟁과 미·중 환율 전쟁, 중·러의 하늘 침범, 북한 도발 등 한국의 궁박한 입장을 기다린 듯 큰 폭의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미국의 평지풍파가 속 쓰리지만 600년 전 여름의 승리 꿈은 꿀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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