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동화'를 좋아한다. 다른 문학 장르를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지칠 때면 이런 장르의 책을 찾게 된다. 마음에 구멍이 나서 힘이 빠져버린 것 같을 때 동화를 읽게 되면 구멍 난 곳은 책 속의 단어와 문장으로 조금씩 메워진다.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도 얻게 된다.왜 동화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런 장르가 가진 어법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화에서는 그 어법이 매우 조심스럽다.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돌려 말하거나 비유를 들어 설명할 때가 많다. 두 번 째로, 순수한 감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에도 이러한 책을 읽는 것은 마음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좋지 않은 기분은 잊어버리게 되고 어느새 책이 주는 감동에 촉촉하게 젖어든다.필자가 근래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필자 역시 좋아하는 '어린 왕자'라는 책이다. 내년에 뮤지컬 작품으로 제작할 계획이 있어 오랜만에 다시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읽을 때 마다 새로움을 주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이번에 다시 꺼내 읽어보며 그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었다. 전에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느껴졌다.예전에는 책을 읽으며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지금은 책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현실에선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아 상자 속에 꽁꽁 감춰 두었던 내면의 감정들이 물 밀 듯 밀려와서 마음이 울렁거린다."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나'라는 인물이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꽃이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왕자가 장미꽃을 위해 정성을 쏟고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장미가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필자는 정성과 시간을 들여 길들인 것에는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마음은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곳'이란 단어가 쓰인다는 것은, 마음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모두들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이 필시 어딘가에는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감춰두었던 그 마음이 생각이 난 것이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 속에선 눈에 보이는 당장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현실로부터 멀어져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나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진짜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21 11:22:06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봉란이

마늘, 고추 농사가 대부분이었던 고향마을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농한기가 참으로 길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늘만 심어 놓으면 다음 해 봄까지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어른들은 땔감이나 준비해놓고 나머지 시간은 '먹기 내기' 등 여가를 즐겼다. 그 여가 선용에 술이 빠질 리가 없었다. 집집마다 노란 주전자 하나씩은 다 있었고, 신작로 막걸리 됫술집으로의 심부름은 우리 아이들 몫이었다. 그 시절, 술을 받아 오면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보지 않은 이 별로 없었으리라.봉란이네는 막걸리 됫술도 함께 파는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농사일이 바쁜 일철에는 봉란이 부모님은 예닐곱 살밖에 안 된 봉란이에게 점방을 맡기고 들에 가곤 했는데, 이 아이는 나이도 어린 것이 아주 맹랑하고 똘똘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름보다는 똘똘이로 불렀다. 그 만큼 가게 물건도 잘 팔고 계산도 정확했다. 그렇지만 완벽하기만 했던 똘똘이에게도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음주였다. 혼자 가게를 보면서 호기심에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나중에는 몽롱하게 취하는 맛까지 알아버린 것이다.해가 빠질 무렵, 부모님이 들에서 돌아오면 봉란이는 신작로를 걸어 마실을 나오는데 이때부터 자기와의 눈물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툭툭 털며 일어나는 등 홍수환의 4전5기나 벽에 걸어두던 7전8기(七顚八起)는 저리 가라다. 어떨 땐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면서 무슨 일로 동생까지 업고 나와 마구 뛰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봉란이가 술을 마셨다는 것을 몰랐다. 영양실조인 줄 알고 원기소나 좀 사주라고 했으니 말이다. 술이란 과하다 보면 실수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는 애, 어른을 따로 구분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술의 폐해를 온몸으로 보여주던 꼬마 술꾼 봉란이는 좀처럼 술을 끊지 못하다가 아이를 걱정하던 부모님의 용단으로 막걸리를 들여놓지 않으면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그 후로는 봉란이를 보지 못했다. 우리집이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인, 군대 첫 휴가 때 우연히 조우를 하게 된다. 귀대를 앞두고 고향마을을 들렀다가 봉란이를 만난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녀는 활짝 피어 있었다. 그녀가 정말 예쁜 것이었는지, 여자에 대한 눈높이가 형편없을 수밖에 없는 군인의 특수 신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예뻤다. 귀대 시간만 촉박하지 않았어도 그 전설적인 술꾼과 대작하는 영광을 누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내 여동생과는 동갑내기이기도 한 봉란이는 이젠 나이가 쉰도 훨씬 넘은 중년 부인이 되었겠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는 아직도 얼굴 빠알간 단발머리 소녀로 남아 있다. 유년시절의 재미있는 추억 한자락을 안겨준 봉란이는 지금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도 술을 마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술로 인한 좋지 않은 버릇은 없었으면 좋겠다. 주력(酒歷)으로만 본다면야 이미 주선(酒仙)의 경지에 올랐겠지만.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20 11:18:36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사랑이라는 밥의 은유

명분을 가로질러 밥이 왔다. 천국에서 추방된 밥이, 추풍낙엽에도 나를 생각하며 왔다. 국도를 지나는 적막한 빈들, 서로를 간섭하며, 가끔씩 눈을 깜박거리며 왔다. 이렇게 왔는데 나는 밥이 보고 싶지 않았다. 밥상을 차리고 싶지도, 숟가락을 들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입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목구멍이 허락하지 않았다. 스물두 살 여학생이 털어놓은 말 감기처럼 목구멍에 걸려있었다.밥의 얼굴은 다양하다. '밥블레스 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화끈한 화법의 김수미와 충청도식 유머가 빛나는 '밥은 먹고 다니냐' 등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빵이나 고기에 밀려나도 밥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촌장님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을 잘 다스리는 영도력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잘 멕여야지." 결코 쉽지 않는 말인데 아주 쉬운 말로 들렸다.밥! 누군가에게는 슬픔이고 누군가에게는 배고픔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고개를 수그려야 입으로 들어가는, 밥 먹듯 부르는 말, 한 번쯤 건너뛰어도 되는데 밥풀처럼 악착같이 달라붙는 밥, 새벽에 일어나 밥솥을 열어 본다. 새하얀 밥알들이 식구처럼 꼭 껴안고 있다. 끓고 있는 밥솥만큼 뜨거운 언제 적 촛불인지 알 수 없으나 어머니는 여전히 시에서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시인의 시 일부를 가지고 오는 동안,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는 천국에서도 촛불로 밥을 지으실까?생활과 한 몸인 밥처럼 툭 하면 '너 밥 없을 줄 알아!' 이런 협박이 통하지 않는 시대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협박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 엄마들에게 '밥'은 큰 무기이자 사랑임에 틀림없다. '밥은 먹고 지내냐', '밥맛 떨어진다', '밥값은 해야지', '그게 밥 먹여 주냐?' 얼마나 정이 떨어지면 '밥맛 떨어진다'고 했을까? 밥 먹고 사는 것이 삶이라면 죽음은 영영 밥숟가락 놓는 것이고, 취직은 밥 먹을 자리 찾는 것이고, 실직은 밥줄 끊어지는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밥값 톡톡히 하는 사람이며, 일 못하는 사람은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밥 먹다가 싸우고, 밥 먹다가 정들고, 밥 먹다가 울고, 그래 놓고 또 밥 먹자, 밥은 먹었냐, 밥 챙겨 먹어라, 밥의 무한함은 결국 사랑의 무한이자 은유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1-19 11:44:43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안녕하세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으레 그렇듯이 버스 안은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진다. 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 다행히 빈자리는 많았다. 나의 운동신경을 너무 믿다가 빗물을 엉덩이로 방아 찧었던 기억이 있어 조심스럽게 손잡이에 의지해 빈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근데 왜 항상 버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마냥 빨리 출발할까? 비틀거리며 용케 자리에 앉아 내 종아리 근육을 긴장하게 만든 버스기사님 뒤통수를 향해 레이저를 쐈다. '그래, 배차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으시겠지' 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한 어르신이 버스에 올랐다. 그 어르신은 조금 낡아 보이지만 주름이 잘 잡혀있는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계셨다. 버스 요금을 내시더니 중절모를 살짝 들어 올리시며 버스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순간 버스 안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어르신께 집중되었고 다음은 당황하시는 버스기사님으로 옮겨갔다. 버스를 타며 기사님께 인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기사님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그 인사덕분인지 당황하느라 배차시간을 잊으신 건지 그 어르신이 느린 걸음으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의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셨다.우리는 인사에 야박하다.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라고 상대방의 안녕을 문안하는 것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먼저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후배가 선배에게,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하지만 문법상 문장 종류를 따지자면 '~하세요' 라고 끝나는 문장은 명령형이다. 어쩌면 인사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재미있는 억측을 해본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걱정과 아무 탈 없이 몸과 마음이 편안하시라' 는 뜻이다. 우리가 무심코 건네던 인사말이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니 이보다 좋은 명령이 있을까?대학생 시절 며칠 밤을 새우고 피곤의 극치에서 신발을 끌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과에 여자 친구가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빠' 라고 꽤 길고 큰소리로 불렀는데, 글자로 표현하자면 '빠' 자가 50자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순간 우리가 이렇게 친한 사이였나?' 의심이 들다가 그 친구의 밝은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그 인사 한 번에 사라졌다.반갑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웃음을 전염시키고 버스 출발을 늦추고 깊은 유대관계가 아니었단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유경아, 잘 지내고 있니?) 대우받기 위해 인사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눈을 마주하고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당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18 11:41:51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

'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한 방송국 주최로 최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열렸던 합창페스티벌의 공연명이다. 이틀간의 출연자 수가 600명이 훌쩍 넘는 큰 규모의 축제였다.피날레에 300여 명의 출연진들이 한 무대에 서는 것도 보기 쉽잖은 풍경일 것이다. 관객들의 함성이 곳곳에서 울려나왔다. 각 팀의 의상도 각양각색이라 무대는 형형색색 꽃밭이었다. 참여단체 중에는 어린이 합창단, 여성합창단, 남성합창단, 혼성합창단으로 음악 전공자, 예비 음악 전공자, 또는 오랜 시간 노래실력을 키워온 아마추어 등 단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단원들만의 축제로도 훌륭한 잔치였다. 피날레의 합창 제목이 'Why we sing' 이었다.우리가 노래하는 이유는 희망, 평화, 축복, 사랑의 소리로 노래할 때, 영혼을 달래주고, 다친 마음을 치유시켜주고, 기쁨을 발견하고, 친구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아름다운 소리를 더 크게 울리고 있다. 뮤직은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는 언어이고,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물고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노래 불렀다. 아이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남성의 저음, 여성의 청아한 고음들이 하나가 되어 하모니를 만들었던 무대였다. 관객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겠지만, 출연진들의 감동도 적지 않았다. 한 목소리를 내면 하모니가 이뤄져가는 합창의 묘미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이러한 음악계의 저변확대가 필자에게는 부러운 일이었다. 전공자들이 비전공자들의 실력을 키워가고, 그 공동체들을 공동의 장으로 묶어내는 기회를 확대하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그 예술분야의 힘도 당연히 강해진다.음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서 생활예술의 확장은 그 규모가 점점 확대되어 간다. 문화선진국일수록 스포츠와 예술분야에 관람자로서 보다는 직접 참여하는 자의 수가 점점 더 커져간다. 대리만족이 아니라 직접 즐길 때, 그 효과와 파장은 훨씬 긍정적이라고 본다. 좋아하면 관심을 갖기 마련이므로 해당 분야 전문 공연에 대한 관객의 수도 더불어 많아진다. 단언컨대 예술분야에 관심을 두고 정진하는 사회분위기가 된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었다. 자신에게 맞는 장르를 골라 누구는 노래를, 연주를, 춤을, 연극을, 그림을 매개로 삶을 표현하고 즐기는 예술세상이 우리사회에 더욱 만연해지길 기대해본다. 대구문화재단의 예술지원예산에서 생활예술 분야를 위한 것은 현재 5% 미만이라고 하니, 조화로운 예술세상을 위하여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1-17 05: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가을에 이별 노래가 많은 이유

가을날, 길을 걷다 들려오는 슬픈 발라드 음악이 마치 나를 위한 노래 같아 가던 길을 멈춰 선 적이 있는가? 혹은 무심코 흥얼거리거나 문득 생각나는 음악이 날씨별로, 시간대 별로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우리가 봄에 듣게 되는 노래들에는 설렘, 사랑, 꽃에 관한 가사가 많다. 특히 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벚꽃에 관한 노래가 많은데, 한 예로 '버스커 버스커'라는 가수의 '벚꽃엔딩' 이라는 곡은 봄만 되면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자리한다. 그 해의 인기곡들과 나란히 경쟁하다가 봄이 가고 여름이 와서야 차트의 상위권 자리를 내어준다. 매년 봄마다 이 노래가 차트에 오르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사람들은 '벚꽃엔딩'의 음악차트 진입으로 봄이 왔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 설렘 등의 조심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 아주 경쾌하고 활기찬 감정을 느끼게 하는 빠른 비트의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노래의 내용은 그에 어울리는 여행이야기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차분하고 슬픈 이별내용의 발라드가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한다.가을만 되면 모든 커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별을 다룬 발라드 음악이 인기를 누리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환경에 의한 호르몬의 변화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인간은 여러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환경은 바로 자연환경이다. 우리는 자연 없이는 생존이 불가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낮과 밤을 선사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4계절도 만들어 준다. 그러면서 따뜻하거나 추운 기온의 변화가 생기며 이 계절과 기온의 변화는 인간의 심리상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여러 가지 자연의 변화 중 햇볕의 양을 뜻하는 일조량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드러났다.일조량이 많을수록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는데 이는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뇌를 자극해 사람을 들뜨게 하며 긍정적이고 충동적으로도 만든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일조량이 점점 늘어나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그것이 극대화 된 여름은 당연히 봄 보다 더욱 더 활기찬 나날을 보낼 것이며, 다시금 해가 짧아져 일조량이 적어지는 가을에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 우울감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가을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겪게 되는 당연한 변화이다. 날씨가 바뀔 때마다 나오는 노래들이 다 비슷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가을 내내 우울한 이별 발라드 곡만 듣고 있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주말엔 밖으로 나와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쬐는 건 어떨까?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14 11:09:26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도박

나는 화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스톱을 안 한지는 아마 1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유는 칠 때마다 돈을 잃어서이고, 또 동료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잘 치는 사람은 몇 판만 돌아가면 상대방의 패를 읽는다던데 난 늘 어리벙벙하다. 되는대로 마구 치다가 민폐를 끼친다며 욕을 먹기 일쑤다. 점수 계산도 서툴러, 떠듬떠듬 세고 있을 때면 늘 상대방이 먼저 몇 점이라며 기를 죽인다. 돈 잃고, 욕먹고, 아둔한 머리까지 들통이 나니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복권은 당첨될까봐 안 산다" 라는 말을 해서 친구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다. 이 말은 농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복권은 거의 사 본 기억이 없다. 그 아득한 확률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당첨이 된다고 해도 적잖이 난감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칙으로 이긴 경기처럼, 컨닝을 해서 붙은 시험처럼 찜찜할 것만 같다. 사내답게 정정당당한 승부로 살아온 내게는 맞지를 않는다.남의 돈을 따겠다는 노름이나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라는 복권은 사지 않았지만 인생 도박판은 크게 벌인 적이 있다. 운수업에 뛰어든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당시에는 수원 영통 소재의 의약품 택배회사에서 수원~창원 간 편도 지입을 하고 있었다. 길이 멀기 때문에 하루는 상행, 하루는 하행으로 교행(交行)을 하고 있었는데,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대구 코스를 교행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가면 당일치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자리 값을 주고 두 자리를 합쳐 차 한 대로 '당일바리'에 도전을 하게 된다. 두 대 분을 혼자서 하니 돈은 되었지만 문제는 잠자는 시간이 4시간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어떤 계기를 만들지 않고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시작은 했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죽을 지경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깨우기 위해 벼라 별 짓을 다했다. 고행(苦行)도 그런 고행이 없었다. 살면서 그때만큼의 절체절명이 있었을까 싶었다. 정말이지 죽음의 밑바닥까지 보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석 달 가까이 하니까 어느 정도 적응을 해 갔다. 토, 일요일은 무한리필로 잠과 타협하면서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둔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명언은 그때 제대로 실감을 했다.운에 좌우되는 사업은 노름이나 복권처럼 그야말로 도박이니 신중하게 선택할 일이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다소 무리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한 번은 크게 승부를 걸어볼 일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만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다. 사업적 성공은 물론이고, 승리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무엇보다도 남자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짜릿한 성취감을 한 번 정도는 맛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13 11:14:57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멍때리기 대회

'왜 영혼 없는 말을 하느냐'는 말을 듣고 졸지에 영혼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눈으로 영혼 없는 밥을 먹고, 영혼 없는 커피를 마시고, 영혼 없는 책을 덮을 때까지도 집 나간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이라고 집 나가고 싶은 적 없었을까요? 영혼이라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싶었을까요? 영혼도 누군가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겠지요. 붉은 가을의 스위치를 끄고 골방에 처박히고 싶은 날도 있었겠지요. 부끄러움에, 안타까움에 말 보다 먼저 눈물 보일 때도 있었겠지요. 얼마 전, 영혼도 없이 영혼을 위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영혼 없는 절을 하고, 영혼 없는 제삿밥을 먹었습니다.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한다고 쉼보르스카는 말합니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따금씩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 몸속에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깃든다고 합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할 때, 운동화 끈을 조이고 둘레길을 걸을 때도 영혼은 우리에게 손 내밀지 않습니다. 늦은 밤까지 숙제를 하거나 김치를 담을 때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화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나마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워낙 과묵하고 점잖으니까요. 그러나 삭신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교대 근무를 자청하기도 한답니다.'기쁨과 슬픔'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 말없이 우리 곁에 머무는 영혼,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는, 영혼이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영혼은 어린이와 노인에게 가장 오래 깃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 청춘을 바쳐야 하는 시기에는 영혼을 반쯤 빼놓고 사는 게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영혼을 챙기는 것이 영혼을 귀찮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영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함일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니, 삶은 얼마나 고달파야 하는지요. 영혼 없이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서는 '멍때리기 대회'를 올해로 4회째 개최했다고 합니다. 대회의 목적은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멍때리기 대회는 이러한 통념을 꼬집고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이지요.그렇다고 영혼이 자발적으로 육체에서 나갈리 있겠습니까마는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주자는 의도겠지요. 하여 '영혼'이라는 말이 발화되기 전, 우리도 가끔씩 영혼의 외출을 적극적으로 도우는 건 어떨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1-12 11:10:39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현장리서치-창극 패왕별희

'덜컹' 손잡이에 문제가 있었던지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마다 철문이 문틀에 부딪히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주목된 시선이 무안했던지 괜히 문에다가 한마디씩 하며 시선을 회피한다. '패왕별희' 공연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국립극장을 찾았다. 여유 있게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 과해서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셈으로 주변을 꽤 돌아다녔는데 카페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내소에 물어 찾아간 곳은 들어오는 손님마다 문소리 때문에 주목을 할 수 있는 연극적인 카페였다. '국립극장 근처 카페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혼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국립극장은 지하철을 타고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오르막을 한참 올라야하는 산중턱에 위치해있다. 그 길은 계절을 잘 맞춰서 가면 꽤 멋진 전경을 누릴 수 있어 참 좋아하는 길이다. 긴 오르막에도 힘들지 않고 콧노래가 나왔던 것은 아마 창극 '패왕별희'에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패왕별희' 라고 하면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를 먼저 떠올릴 텐데, 이 영화 제목은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전쟁이야기인 중국 경극에서 따온 것이다. 이 경극을 한국의 창극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어떤 협업에 의한 시너지 냈을지 궁금했다. 대만 배우출신 우싱궈가 연출을 맡았고 작창 및 음악감독은 이자람이 맡았으니 기대는 한층 더 올라갔다.객석은 거의 만석이었고 인터미션 포함, 세 시간이 넘는 공연시간동안 관객들은 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나는 꽤 실망스러웠다. 창극과 경극의 장점이 부각되기보다 적당히 서로 양보한 느낌이었다. 경극의 고난의도 동작들은 국립창극단원들의 단기간 연습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것을 기대하고 간 것이 아닌데 따라하려고만 노력한 것 같았다. 또 창의 매력적인 가락은 익숙하지 않은 중국의 대서사에 갇혀 헤매고 있었다. 왜 국립창극단이 딱딱한 경극을 창으로 엮을 생각을 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나를 제외한 관객들의 표정은 밝았던 것 같다. 어떤 장면에는 배우가 창을 끝낼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나와서 관객수준이 확실히 지방에 비해 높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수준은 공연을 즐기는 주체의 적극성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최소 수억 원대의 제작비를 써가며 유명 연출가와 유명안무가를 데리고 왔어야했을까? 난 초나라 한나라 이야기보다 차라리 해님 달님 이야기가 더 좋고 요란한 의상과 분장, 동작의 경극보다 차라리 단백한 판소리가 좋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11 11:10:05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청년예술가에게 배우자!

몇 주 전 대구의 한 거리에서 열린 '거리춤 페스타'에서 젊은 친구들의 춤 경연 방식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청년들이 이미 예전부터 해오던 거리춤 축전이 어른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축제 주최 단체에 인사차 들른 중장년들이 젊은이들의 춤 경연방식에 감동 받아,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즉석 찬조를 하기도 했다.무엇이 이들의 발목을 잡고, 앉는 자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불편한 춤판을 지키게 했을까? 대부분 관객들의 공통된 감정이 공유되었다. 첫째, 청년 심사원들은 공정했다. 예선전에선 빠른 진행을 위해 오픈되지 않았지만, 참가자 중 반을 뽑은 후, 본선 16강 선출부터는 모든 심사결과가 관객 앞에서 바로 3초 만에 결론이 났다. 관객의 반응도 심사에 고려되는 듯이 보였다. 스트릿 댄서들이 뛰어난 즉흥적 춤 솜씨를 보일 때, 관객들은 함께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기본 방식은 1대 1 배틀이었다. 모든 순서와 대결자 선택은 그 자리서 추첨으로 이루어졌고, 1분간씩 자신의 춤 기술을 즉석에서 주어진 음악에 맞춰 선보였다. 어떤 음악에 어떤 대결자들이 붙는가도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의상을 유난하게 갖춰 입은 춤꾼들, 추리닝 입은 이들, 뚱뚱한 친구, 몸매가 좋은 친구 등 그러한 부대적인 조건이 심사에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오로지 춤 실력이었다.둘째, 춤꾼들은 자유로움 속에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 승복했다. 그들은 춤추는 동안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서로 약간의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세 명 심사원들이 손을 들어 위너를 가려내면, 춤꾼들은 쿨하게 예의를 다해 서로 격려한 뒤 물러났다. 그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심사원들은 경연이 끝난 후 초청공연자로서 바로 무대에 올라, 신화적 존재감으로 참가자와 관객들에게 감동의 피날레를 선사했다.현실 사회도 이리 공정할 수는 없는 걸까? 뒤에서 어른들이 경연을 좌지우지 하여 젊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를 입었던가? 아직도 예술경연장에서 어른들의 입김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공정한 심사는 경연이 끝난 후 그 자리서 오픈되는 방식이 되어야함을 청년예술가들로부터 배운다.행사 후 감동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이 자신의 노하우로 더 좋은 방안을 가르쳐 보겠다고 젊은 친구들을 붙잡고 열심히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뒤에서 또 다른 어른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저러면 안 되지, 젊은 세대들에게 배울 생각을 해야지, 저러니 구리다는 소릴 듣지." 기성세대는 아직도 젊은이들을 염려한다. 자, 이제 꼰대들은 입을 닫고 청년 세대를 위하여 주머니를 풀 때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1-10 06: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주관식

해마다 이 날이 되면 대한민국은 마치 종말이라도 온 듯 조용해진다. 북적대던 출근길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비행기들도 한동안 상공을 맴돌다 무전을 받은 뒤에야 대한민국 땅에 착륙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이 희한한 광경이 일어나는 날은 바로 1년 중 딱 하루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선 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며 이 수능을 위해 학생들은 10년을 공부한다. 그리고 이날 수험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온 나라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수능의 시험 문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객관식과 주관식이 그것인데 객관식은 주어진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주관식은 빈칸에 알맞은 답을 적어 넣는 것이다. 학생들은 난이도가 높은 객관식 문제도 어려워하지만 보기가 없는 주관식 문제를 더욱 어렵게 느끼곤 한다. 객관식 문제는 어쨌거나 보기 중 하나는 답이기에 답을 모르는 경우라도 5분의 1 확률로 정답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주관식 문제는 그 문제에 관한 나만의 생각과 해답을 적는 것이기에 알지 못하면 답을 적을 수 없다. 또한 단답이 아닌 경우에는 답을 대강 알고 있어도 그 내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주어진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문체로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비단 시험 문제를 풀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다 큰 성인이 된 후에도 나만의 답을 나만의 생각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쉽다.필자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당시 HOT와 젝스키스가 아이돌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유행할 때였다. 어느 날 친구들이 어느 가수를 좋아하느냐 물었고 필자는 외국 아이돌 밴드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필자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아이돌 그룹 중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고 보기에도 없는 외국 아이돌 그룹을 말하는 필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 마음에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싫었던 필자는 그 이후부터는 당시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를 골라 그 가수를 좋아 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내 마음에 드는 답이 없어도 그저 주어진 보기 중 선택하는 쪽을 택하며 그렇게 성장해 온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나만이 주관적인 답을 찾으려 더 노력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항상 주관적 판단만이 가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로 내가 선호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회와 타인이 제시하는 객관식의 문항들 외에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주관적인 해답들을 찾아보는 일은 나라는 사람을 완성하는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07 11:41:23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헬리콥터 맘과 캥거루족

봉준호 감독이 2009년에 만든 김혜자, 원빈 주연의 '마더'는 모성애의 극한을 보여주는 영화다. 아이가 5살 때, 너무나 살기가 힘들어 동반자살을 하려고 음료수에 농약을 타서 먹였으나 미수에 그친다. 그 아이가 28살의 청년이 되었지만 지능은 어린이 수준이다. '바보'란 소리만 들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들이 어떤 연유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자 엄마는 지능이 떨어지는 순수한 자신의 아들이 그랬을 리가 없다면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접 나선다.영화는 여성의 극단적 모성애를 보여주는데, 첫째는 동반자살 시도다. 엄격하게 말하면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반자살이란 말은 맞지가 않다. 아이를 소유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는 오류일 뿐인 것이다.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엄마가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모정의 결핍은 어쩔 수 없겠지만. 두 번째는 자식을 해코지 하려는 대상에게 가하는 공격성이다. 이는 새끼에게 위해를 가하면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어미와 같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에 처참하게 살인을 하고는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말을 한다. 의지였다기보다는 반사적 행동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단순한 모성애에만 끌려 아이를 키우는 다소 푼수기의 홀어머니를 보면서, 아이는 농약사건이 아니었어도 마마보이로 밖에 자랄 수 없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육아와 양육을 구별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다. '헬리콥터 맘'이니 '캥거루족' 같은 말도 모두 극성스런 엄마들 때문에 생긴 신조어 아니겠는가. 지나치게 간섭하며 과잉보호를 하는 엄마를 헬리콥터 맘이라고 한단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말이 바로 캥거루족이다.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자녀를 일컫는다.필자는 첫돌 사진은 고사하고 어릴 때의 사진이라곤 없다. 아래 여동생도 마찬가지다. 사진이 없는 이유가 너무 시골이어서거나 가난해서가 아니다. 누나나 형은 어릴 때 사진이 꽤 있다. 부모님께서 두 서넛 키우시다보니 넷째부터는 심드렁해진 것이다. 아무래도 손길이 덜 미쳤다는 이야기인데, 역설적이게도 나와 여동생이 형제 중 생활력이 강하다.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스스로 길을 모색하게 되어 있다. 그게 성장하면서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키우기란 쉽지가 않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을 생각하면 애처로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정말로 꽃길을 걷게 하고 싶다면 눈보라 치는 거리로도 내몰 줄 알아야 한다. 자녀에게는 춘풍과 같은 사랑도 중요하지만 추상같은 엄격함도 필요하다. 부모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적응하게 훈육시킬 의무가 있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06 11:16:54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국화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던가요?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던가요? 소쩍새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과 간밤 무서리 안부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을은 왔고 국화꽃은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공원에서 혹은 수목원에서 국화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가을햇볕에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가을의 소유권을 가지고도 가을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을을 세공하고 있었습니다.서정주 시인은 왜, 국화 앞에서가 아니고 국화 옆에서 라고 했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대구수목원의 국화축제장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있는 국화코끼리, 국화기린, 국화곰돌이…. 살아있는 동물 보다 피어있는 동물을 보는 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화는 국화 '위'나 '아래'에서 피지 않고 오직 '옆'에서 피어나고 있었지요.마더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해 C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스튜디오를 찾은 마더 테레사에게 앵커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테레사 수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답했지요. "나는 듣습니다." 예상 밖의 대답을 들은 앵커는 당황해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시 생각하다 다시 "그분도 듣지요" 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앞에 있는 눈, 코, 입에 비해 옆에 있는 귀가 좀 더 큰 이유는 왠지, 앞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옆에 있는 것 잘 들으라는 당부나 계시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만 보고 가다 놓친 것들 귀담아 들으라고요. 그런데 옆을 강조하거나 사족 같은 귀 없이도 국화는 잘 듣고 있었습니다. 잘 듣는 다는 것은 잘 보는 것이겠지요. 상대방 소매 끝에 달랑거리는 실밥을 떼어 준다거나 입가에 묻은 국물 보고 휴지를 슬쩍 건네는 일처럼요. 휴지를 건네 듯 국화는 여린 날개의 벌들에게 한 모금의 달콤한 가을을 선사하였습니다.잠깐 동안 국화는 피어나지 않고 새어 나기도 했습니다. 국화의 속도로 힐끗힐끗 새어 가을을 누설하느라 바빴습니다. 꽃잎에서 꽃잎은 새어나고, 벌들도 새어나고, 가을도 새어났습니다. 국화의 몸은 더욱 부풀어 지고 벌들도 더 분주했습니다. 가을의 얼굴은 또 얼마나 빨개지는 지. 옆에서의 일들은 앞에서의 일보다 대체로 자잘한 대신 즐거움은 오래갑니다. 오래가는 것은 훨씬 더 큰 일입니다. 국화 옆에서도 국화는 온통 가을의 귀를 곤두세웁니다.예컨대 옆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옆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옆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겠지요. 옆은 나란한 것이며 닮아가는 것이며 손잡는 것입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 함께 가을을 맞는 국화처럼. 임창아 시인·아동문학가

2019-11-05 11:05:54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이 편한 세상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 우연히 스텝회의가 약속되었다. 이동 경로와 위치를 고려하다보니 반가운 우연과 마주하게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시간이 남아 30년 가까이 된 기억을 더듬어 살던 곳을 찾았다. 나지막한 2층 주택을 개조해서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부엌과 욕실은 신발을 신고 가야하는 불편한 구조였다. 하지만 기억 속의 2층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외벽이 대리석으로 된 높은 빌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전 몇 개를 손에 꼭 쥐고 달려가 불량식품을 사먹던 구멍가게도, 늘 기름 냄새를 풍기던 인쇄소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작은 양말 공장도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엔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사각형의 빌라가 들어섰다. 축구공을 옆에 메고 벽돌담 위로 고개를 쭈욱 뺀 채 "누구야 놀자" 라고 외치던 그 시절 친구 집도 사라졌다. 네모난 인도블록으로 좁고 울퉁불퉁했던 골목길은 빌라의 그림자 때문인지, 매끈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때문인지 더 어두워 보였다. 바닥에 선을 그어 땅따먹기를 하던 공터는 이편한세상 아파트 단지의 입구가 되었다. 차량 몇 대가 입구에 있는 바리게이트 앞에 서자 차단기가 열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유를 설명하긴 힘든 서글픔이 몰려왔다.우리는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을 몇 번 두드리면 친구를 불러낼 수 있고 전화번호도 외울 필요가 없다. 비밀번호 몇 자리를 누르면 투명한 자동문이 열리는 대문, 등록된 차량번호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차단기를 열어 반겨주는 아파트 입구, 지인의 생일선물은 기프티콘으로 보내고 내비게이션 하나면 지도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다. 친구를 불러내기 위해 목청을 높이다가 친구 부모님과 인사할 일도 없을 것이고 유선전화로 친구 집에 전화할 일도 없을 테니 전화예절도 필요 없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힘들게 맞춰 넣을 필요도 없고 삐걱거리는 대문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 지인의 생일선물을 포장할 일도 없고 차를 타고가다 길을 잃어 지나는 행인에게 머쓱한 인사를 건넬 필요도 없다. 우리는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편한 세상이 될수록 사람의 능력은 저하되고 사람간의 교감은 기계가 대신 한다. 눈빛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높낮이가 있는 음성은 텍스트가 대신한다. 그 시절 대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나눠먹던 이웃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만큼 이 편한 세상이 좋은 세상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깊어진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04 11:19:54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발레의 다른 얼굴

지역대학에서는 발레를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 대학 외에는 발레전공 교수 채용도 하지 않고 있다. 발레 교육이 무너져 가고 있어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반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요즘 여성들 건강관리에 요가를 젖히고 발레가 1위가 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은 욕구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말라깽이 몸매를 선호했다면, 21세기 들어오면서 균형 잡히고 섹시한 몸매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한 기관에서 올 새해 결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드시 이루고 싶은 새해 목표 1순위로 '건강과 균형 있는 몸매를 위한 운동'이 꼽혔다. 응답자 중 '건강을 위한 운동'이 34%로 가장 많았고, 외국어 공부, 자격증 등 자기계발은 23%, 다이어트(22%), 저축(16%), 금연(5%) 등이 뒤를 이었다. 매년 새해 단골 결심으로 꼽히던 다이어트 대신 운동을 선택했다는 것은, 마른 몸매보다는 건강과 균형 잡힌 몸매를 선호하는 바람직한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이다.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초창기에는 에어로빅이나 수영, 달리기, 등산 등에 집중했다면, 요가, 웨이트 트레이닝, 필라테스, 암벽등반, 무용 등으로 종목이 점점 다양해졌다. 특정 운동보다는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면, 자세도 잡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필자가 30여 년 전 유럽에 살던 당시 그 나라의 사회체육에 감동받아 수영과 발레 클래스에 참가한 적이 있다. 출산 후라 레오타드 입는 일이 부끄러워 쭈삣거리는데, 나보다 배가 더 나온 한 여성이 당당하게 발레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녀에 비하면 좀 낫다는 생각으로 레슨을 받는데, 그녀가 임신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됐다. 점프만 조심하면 임산부가 발레를 할 정도로 보편적 이용이 놀라웠다.이와 같은 일이 이제 대구에도 일어나고 있다. 환갑이 넘은 여고동창들이 모여 발레에 도전하고, 동창회모임이지만 작은 무대에서 발레공연도 한단다. 한 발레학원장의 말을 빌면, 자신이 수업하는 성인 발레 클래스가 7, 8개가 되고, 임산부도 수업 받고 있다고 한다. 발레의 확산이 눈에 보인다. 발레로 몸을 가꾸고 건강도 챙기겠다는 여성이 많아진 것이다.이제 대학 무용학과에서도 전문적인 발레리나, 발레리노 양성에만 초점이 맞춰질 것이 아니라, 균형 있는 몸매와 운동으로서의 발레 요구에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발레로 몸을 가꾼다는 이야기 때문에 미를 추구하는 여인들의 발길이 발레 쪽으로 잦아졌다. 발레의 다양한 얼굴을 활용하는 무용계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1-03 06: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특별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 가족에게는 매년 11월 1일이 무척이나 중요하고 특별한 날이었다. 그 날은 엄마의 생신이면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심지어 살고 있는 집의 호수도 1101호여서 이 날은 부모님만의 기념일이 아닌 우리 가족 모두의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이 집에서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매년 이 날이 되면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라고 말이다.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부모님은 엄마의 생신날에 맞춰서 결혼식을 올리셨을까? 결혼식은 주로 주말에 올리니까 그 해 11월 1일이 주말이라야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그날 예식장을 대관할 수 있어야 식을 올릴 수 있으니 그날 대관이 가능한 예식장이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우연성을 더해 준다. 아파트의 호수는 또 어떻게 1101호로 맞춰졌을까? 기필코 1101호에 살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며 집을 구하러 다니신 것도 아닐 터인데 신기하게도 구하게 된 집의 호수가 1101호였다니 정말 놀라운 우연이 아닌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날들과 아파트의 호수가 같은 숫자로 겹쳐지며 특별한 무언가가 되었다.사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일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생일이고 어느 부부에게나 있는 결혼기념일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고 그래서 11월 1일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날이 되었다.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일을 축하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혹시나 이 날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우연이 발견된다면 우리 가족은 호들갑을 떨며 이 날을 더욱 특별한 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뭐 어떤가? 그래서 이 날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우리는 매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지 않다.어쩌면 우연의 일치라는 것은 우연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모든 것들에 의미를 담아 특별한 일로 만드는 일.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그 날과 관련된 것들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일.특별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말로 어떤 특별한 부분이 있어서 다른 것들과는 차별되는 가치를 가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스스로 부여한 의미 때문에 특별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특별함이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유별나게 남들보다 잘해주신 것도 아니다. 하고픈 것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이기에, 나의 부모님이기에 필자는 온갖 말도 안 되는 의미를 다 갖다 붙여서라도 오늘을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 특별함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0-31 11:07:05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선택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란 말이 있다. 즉,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가 있다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사르트르의 이 명제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하던, 강요를 받던 선택을 피할 수가 없다. 필자도 40년이라는 사회생활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그 중에는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나봐야만 알 수가 있다.30대 중반에 어떤 제안을 받는다. 한 때 직장이기도 했던 회사에서 "이제 나이도 있고 물려줄 자식도 없으니 자네가 들어와 일을 하다가 회사를 물려받으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하고 있던 일도 그리 잘 되는 편이 아니었고 오너의 나이도 예순이 다 되어, 오래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승낙을 하였다. 직책은 상무였지만 경리업무 외에는 영업, 제작, 시공 등 제반업무 총괄책임자로서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쇠락해 가던 회사는 빠르게 체계가 잡히고 활기를 찾았다. 매출이 증가하고 직원 수도 늘었다. 거래하던 기업체의 CI(기업이미지 통합) 교체 작업으로 대형오더까지 받는다.죽어가던 회사가 커지니 오너는 욕심이 생겼다. 오히려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척인 사람을 데려와 앉히기도 했다. 뒤늦게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오너와 나는 애시 당초 모순적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 고약한 이율배반적 구조를 알았다면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떠밀리듯 퇴사를 하고 생소한 분야의 일을 하다가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는다. 나락이었다. 나이 마흔에 슬럼프를 맞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무엇보다도 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회의와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감이 가장 큰 상처였다.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과연 요즘 내가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상상을 해 본다. 누구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란 건 다시 벌 수 있지만 사람은 잃으면 끝이다. 실제로 그 일이 있고부터는 소원해지고 말았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함께 하며 한때는 부자간처럼 친밀하게 지냈었는데 말이다.세월은 많이 흘렀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 때의 좌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러나 제안을 받아들였던 그 선택은 아직도 많이 후회하고 있다. 법적 구속력도 없는 구두약속을 믿고 덥석 뛰어든, 불찰의 어리석음이 결국 상대방에게 그런 마음을 먹도록 한 것이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나 자신이었으니 어찌 보면 귀책사유도 나에게 있다고 봐야한다. 비즈니스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고 철저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0-30 11:02:44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생각에 관한 생각

'밤새도록 당신을 들락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생각들/ 당신의 천장을 쿵쿵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미치게 하는 생각들/ 미쳐가는 당신을 조롱하는 생각들/ 당신을 침대에서 벌떡 일으키는 생각들 /당신을 고무(鼓舞)시키는 생각들 순식간에/ 당신의 고무를 무화시키는 생각들(…)백 년 이백 년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생각들/ 당신의 텅 빈 해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가차 없는 생각들'위 시는 황병승 시인의 '생각들' 부분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의 세계는 무수한 고리들로 이어져 있지요. 생각이 낳은 생각의 연쇄적인 고리로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진다면, 시는 수많은 생각들을 먹고 자라는 또 다른 '생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돌려 말하면 토씨 하나가 일으키는 생각처럼 시 또한 '불멸하다' 라는 생각.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아시나요?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서사시 '신곡'의 지옥 편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시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지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는데도 도무지 놓아줄 생각이 없는 생각, 혹은 놓아 준 생각이 어디만큼 갔다가 다시 돌아와 지난밤을 간섭하기도 하는 생각.우리가 믿지만 않으면 생각은 해롭지 않다고 해요. 고통스러운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에 관한 집착이니까요. 바이런 게이티는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 생각을 그대로 믿고 알아보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했죠.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도 믿을 게 못 되어서 생각은 허공에서 나와 허공으로 돌아가지요. 생각은 머물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흰 구름처럼 지나가기 위해 오는 것, 이런 생각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보도블록에 떨어진 은행잎이나 가을바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까요?'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데에도 충분한 형이상학이 있다.' 이것이 생각의 생존 방식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연구에 의하면 부정적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지만, 말하기나 글쓰기와 달리 생각하기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하네요. 자신의 경험을 글로 표현한 사람들은 우울감이 낮아졌지만, 자신의 경험을 생각한 사람들의 우울감은 높아졌다고 합니다. 예컨대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거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일처리에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겠지요.그렇습니다. 인류는 생각에 대해 생각해 왔는데 지금도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을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이 생각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29 11:13:48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흰둥이의 목줄

몇 년 전 TV동물농장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시골 한적한 공용주차장에서 털이 덥수룩한 강아지 한 마리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항상 도망가기 바쁘지만 특정모양과 색깔의 차량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다. 하지만 운전자를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도망가기 일쑤이다. 아마 자신을 그곳에 버린 주인의 차량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흰색 털이 까맣게 될 정도로 꽤 긴 시간을 떠돌이 생활을 한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 목 주변 털에는 빨간 피고름이 맺혀있다. 이를 안타깝게 본 동네주민들이 제보를 했고 제작진과 구조대는 이 강아지를 돕기 위해 먹이를 두고 유인하여 그물로 구조했다. 몇 차례 발버둥 치던 강아지는 지쳤는지 이내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꼬리가 말려 두려운 눈으로 몸을 떠는 강아지에게 사람들은 널 도와주려는 것이니 겁먹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동물병원으로 이송되어 자신의 살을 파고들었던 목줄이 끊어졌다. 그 순간, 강아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클로즈업 된 TV화면에는 자막이 나왔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흰둥이'(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이 왠지 슬퍼보였다. 어쩌면 흰둥이에게 그 목줄은 주인의 마지막 흔적이자 자신을 알아 볼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지 않을까? 흰둥이는 이제 더 이상 주차장에서 기다려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한 생명을 구한 사람들의 노고와 따뜻한 마음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덕분에 흰둥이는 새로운 곳에 입양되어 사랑받으며 살게 되었으니까. 순전히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를 즐겨하는 꼴사나운 연극인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다만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하는 행동이 정말 그들을 위하는 일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행할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시작될까. 동정심? 우월감? 과시욕? 자기만족? 아마 대부분 동정심에서 비롯되는 행동일 것이다.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에서 김씨는 자살하기 위해 한강에 뛰어내리지만 실패하고 밤섬에서 깨어난다. 우연히 짜장라면 스프를 발견하고 면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이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여자 김씨는 그곳으로 자장면을 배달시켜주지만 김씨는 짜장면은 자신에게 희망이라며 이를 거절한다.나의 도움이 타인의 희망을 저버리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에 돕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로 엮여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덕목이다. 다만 나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기준의 잣대질로 존중받아야할 개개인의 삶의 가치를 흰둥이의 목걸이처럼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0-28 11:09:38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무용계 폐쇄성과 춤의 확산?

서너 달 전 화합되지 않은 대구무용협회의 민낯이 언론을 타고 보도되기도 하고, 일간지의 논설로 비판을 받기도 한 적이 있었다. 10월 초에 마무리된 '전국무용제'를 앞두고, 대구무용계의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무용계 저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필자도 그 회오리의 중심에 있었다. 무용계를 위한 협회의 공정함을 되찾자는 것이고, 협회운영은 대구시의 공적 재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그 후의 문화계 뒷얘기들은 협회에서 10년간이나 제외되어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돈 욕심이나 부리는 반란으로 치부되었고,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몫을 나누지 않으려 했다. 그 작은 권력도 나누지 않는 냉정한 세상 논리에 대한 확인이었다. 오히려 공허하게 몇 달이나 애걸과 겁박의 목소리를 높인 측이 오히려 협조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협회의 요구로 2명이 집행위원회에 들어갔지만 회의 한 번으로 끝났다.'전국무용제' 행사를 하면서 진행과정이나 회의 등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고 이뤄졌어야 했다. 자주 회의를 거쳐, 과정에 대한 체크나 불편함 등이 집행위원회 20명 위원의 의견과 안목으로 개선되었더라면 더 훌륭한 무용제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그렇지만 온실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무용가들은 나름의 살 길을 찾는다. 소박하게 또는 자신의 역량대로 자신의 그룹을 만들어 자기만의 색깔로 춤 행사를 가진다. 필자는 2010년부터 「한국춤축제위원회」를 만들어 3회에 걸쳐 춤 축제를 열었다. 포부도 크게 모토가 '춤의 바람 불어라'였고, 비전공자 춤꾼들을 무대에 세운다고 언론에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벌인 행사는 소박했지만, 즐거운 무대였다. 이제 그 힘을 키워 어제 10월 27일 '거리춤페스타'로 다시 축제를 열었다. '한국민족춤협회 대구지회'의 이름으로 대중과의 춤 소통을 위한 거리 춤판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춤 무대였다.지난 주 월요일 21일에는 '대구무용비엔날레'의 발족 기념공연이 동성로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독일 유학파 유연아의 '(사)춤추는 박물관'이 주관하는 무대였다. 첫 걸음에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만의 특색 있는 춤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본다.전국과 세계의 젊은 안무가들을 위한 '세계안무축제'(조직위원장 박현옥)도 초여름이면 어김없이 판을 열어 6회째로 이어가고 있다.이와 같이 춤은 한 목소리가 아니고 다양한 색깔을 뽐낼 때, 관객들과의 소통은 이뤄지게 된다. 각자 춤꾼 자신만의 고유한 춤 가치관으로 다양한 춤은 확산된다. 무용계 폐쇄성이라는 문제의 답은 결국 소통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0-2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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