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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영원회귀의 오솔길

더위를 밀치고 9월이 온다. 내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되곤 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긴 후 귀뚜라미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을보다 먼저 다가와, 문풍지를 흔들듯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던 그 소리가 몹시 그립다. 귀뚜라미 소리는 여리면서도 강하다. 기분 좋은 음악처럼 끼륵대던 그 소리는 창을 닫아도 용케 잠결을 비집고 들어 가을이 끝나도록 내 삶의 언저리를 지켰다. 젖먹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도록 주택에서 살았다. 온 세상이 재개발로 뒤집어지지 않았으면 아름드리 라일락나무가 있던 그 집에서 아직 살고 있을 것이다. 주택의 소멸과 함께 4월마다 골목어귀까지 향기를 날리던 보라색 라일락꽃을 잃었고, 가을 벌레소리를 잃었고, 마당에서 탁구를 치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잃었다. 주택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가을 전령사들의 우짖음과 함께 디테일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삶은 급격히 단순화되었다. 가을이 오는데, 벌레울음소리 대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더니 옆집에서 벽을 쿵쿵 두드렸다. 음악이 들릴 정도로 벽이 얇은가?32세의 슈트라우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연주 시간 33분의 교향시를 지었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그는 니체의 원작 서문을 교향시 서두의 표제로 사용했고, 에피소드를 가져와 제목도 붙이고 설명을 곁들여 아홉 개의 곡으로 나누었다. 슈트라우스는 인간의 기원이 담긴 니체의 사상을 극적으로 구성해내고, 1896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직접 초연을 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한 것이 1884년이고, 12년 후 곡이 발표되었다. 니체가 살아 있을 때였다. 당시 생존했던 두 사람이 직접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이 교감을 이루었으리란 연상은 충분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 생각해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일 것 같기도 하다.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찾았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서 자비로 출판했다. 그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고작 일곱 명에게 책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책의 맨 앞장에 씌어 있는 글귀가 책의 내용만큼이나 심오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아마도 니체는 이 책이 쉽게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니체는 살아서 그 책을 위한 교향시를 받았다. 작가에게 이보다 큰 선물이 또 있을까. 장정옥 소설가

2019-08-22 11:19:41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소극장은 문화운동이다!

대구를 공연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한다. 공연 유료관객과 공연 인프라가 지방도시 중 1위이며 풍부한 관련 학과의 인력배출 및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공연장 의 수가 서울을 제외한 전국 최다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문화예술인들은 이러한 상황들이 실감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유료관객들 중 90% 이상이 기획사와 방송사 공연장 등이 합심하여 서울공연이나 관 주도의 기획상품으로 만들어진 공연들 위주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대구예술인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자생력을 퇴보시키고 대구예술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초예술에 기반을 두고 산업으로 가야하는 정상구조의 현상을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근간을 흔들고 있을 때 대구 소극장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 그 나라의 민주화를 완성시켰듯이 풀뿌리 예술운동의 중심에 서서 기초예술의 기틀을 다시 한번 정립하고 대중과 상업성에 마비되어 버린 관객들에게 문화의 향수를 고취시켜 예술로서의 살아있는 도시, 창조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공연문화도시 대구를 만들어가는 근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대구의 소극장은 1980년대 이후 대구공연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으로 낙후된 극장문화를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양성과 전문성을 성취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문화운동의 장이 되어주었고 창작실험과 무대미학의 다변화, 무대와 객석 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 인재 양성, 관객의 저변확대와 연극의 대중화 등 대구연극의 형성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2019년 오늘도 소극장에서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상문화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형뮤지컬이나 상업공연이 관객몰이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것은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생동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소극장은 과거 소극장 운동의 본질적 의미를 구현하는 장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소극장은 동시대의 삶을 치열한 예술정신으로 담아내고 관객과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그것은 발전을 위한 고통이고 성숙의 과정이다. 소극장 운동은 대구공연예술의 기반이자 발전의 토대이다. 이것은 한국공연의 발전사와 세계공연사가 증명하는 사실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현재 대구의 소극장 운동은 대명공연거리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운동이 부흥 확대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호응이 있길 바란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22 11:18:13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청년의 춤

필자에게 청년은 희망과 용기의 수식어가 떠오르지만 좌절과 포기의 수식어들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에게 청년은 오늘날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눈물이고 한숨이며 해탈이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청년의 주기에 대한 개념적 의미는 생애주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이행기'에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 엄마 세대의 이행기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육아를 스스로 해냈던 용감함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 고용 사정이 악화되면서 청년의 나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선 15~29세로 정해졌다. 우리나라는 높은 대학진학률과 군 복무 기간 등으로 2014년부터 15~29세 기준이었던 청년의 나이를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등 일부 정책에 의해 34세로 늘리기도 했다.'루마니아의 청년의 춤(Jocul Fecioresc din România, Lad's dances in Romania)'은 결혼식이나 축일과 같은 연주 축제 행사에서 공동체 활동 가운데 하나로 연행되었으며, 춤꾼들은 각자의 춤 기교와 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했다. 이 춤은 지방과 지역 차원에서 화려한 기교를 뽐낼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루마니아의 지역민들은 공연자로서든 관객으로든 춤판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지역적 결속력을 강화하기도 한다.우리 지역에서 청년들을 위한 창작 춤 발표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공동체 전체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안무중심 국제적 무용페스티벌인 대구세계안무축제의 청년작가전은 청년안무자들에게 작품제작비를 지원하여 그들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무용작품 발굴의 목표로 매년 6월에 그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일침, 그들의 철학적 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지역 전문 현대무용단체인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은 젊은 청년 안무가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성숙한 창작활동을 하기 전까지 청년 안무자들의 창작 의식 함양을 목표로 폭넓은 작품발표 기회를 통해 1994년부터 대구지역 최초 소극장 무용공연, 거리공연 등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문화적 패러다임에 따른 공연형태를 선보이기도 했다.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진 무용단체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공동기획으로 이끄는 창조와 융합시리즈는 2015년부터 청년 안무자들에게 풍부한 작품발표 경험을 통해 획득되어진 장르간의 협업 및 분리된 형태의 예술공연의 장·단점을 긴밀하게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오는 8월 31일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에서는 팝댄스컴퍼니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공동기획으로 꾸며진 청년들의 춤을 볼 수 있다. 스물여덟살의 가장으로, 스트릿댄스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현욱(팝댄스컴퍼니 대표) 청년의 춤, 그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21 11:15:44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시간적 예술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다. 그림의 경우에는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공간적, 시각적 예술인 반면에 음악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나타나는 예술, 즉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음악을 연주 또는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예술이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에 또 다른 하나의 시간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미 들어봤던 음악을 들으면 처음에 그 음악을 듣던 당시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마법의 힘이 있다.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인해 떠나는 시간여행을.나는 지금 이병기 작사 이수인 작곡을 한국가곡 '별'을 해금을 위한 곡으로 편곡 중이다. 이 곡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유명한 한국가곡이기에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모두가 한번쯤 들어보거나 노래를 불러보았을 것이다. 해금의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연주되는 '별'을 새롭게 만드는 중인데, 이 곡을 들으며 잠시 그때의 그 추억으로 빠져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모두에게 그리운 음악이 될 것이다.'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병기 시/이수인 곡 '별'나에게도 추억이 담긴 음악 몇몇 곡들이 있다. 그중 한 곡은 전통 정악합주 유초신지곡 중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이 그러하다. 유초신지곡은 향피리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으로 평조회상이라고도 한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유창한 멋이 돋보이는 곡인데, 이 곡을 대학교 1학년 입학하고 나서 한 달 뒤에 있을 신입생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한 달 동안 매일 모여 연습하였었다. 나는 작곡 전공이었지만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었던 까닭에 거문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고, 타악 인원이 부족할 때는 좌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그때 연습이 끝나고 음악대학에서 학교 밖까지 걸어 나가는 봄의 밤거리, 그때 불었던 바람,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생각난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가 버려서 아련하게 그 추억이 남아있지만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의 시원시원한 곡조가 들리면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여러분의 추억이 담긴 음악은 어떠한 곡인가? 각자마다 사연과 스토리가 있는 음악이 있을 것이니 그중에 한 곡을 찾아 들어보며 늦여름의 하루를 보내시길 바란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20 14:10:03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비켜주기

'보다'라는 책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소설만 읽고 살아 왔기에 영화 시나리오의 빈 곳을 영상이나 연기로 채워 넣으며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시나리오는 있어야 할 어떤 필수적인 요소들이 결여된 허술한 구조물처럼 보인다고 써 놓았다. 요컨대 좋은 시나리오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뮤지컬 대본을 읽을 때도 아마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뮤지컬 대본은 기본적으로 공연을 목적으로 쓰게 된다. 그래서 활자로 읽는 것 보다는 최종적으로 무대 위에서 구현될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집필하게 된다. 뮤지컬은 음악과 무용, 미술과 첨단 기술 등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어서 대본은 그 모든 요소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먹을 수 있는 진수성찬이 잘 담겨진 그릇이 아니라 '여기는 국, 여기는 나물무침을 담아야지' 생각하며 종이에 글자로 음식 이름을 적어 놓은 것 같은 상차림이다. 당연히 아직은 아무런 맛도 없고 보기에도 엉성하며 최종적인 음식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쉽지가 않다.이건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나 속이 상하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나의 대본 만으로도 충실하고 풍성해서 읽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을 것이다.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여기 저기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나중에 무대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 지금은 감을 못 잡겠어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을 억누르고 음악과 무용, 무대 장치와 연출 기법을 위해 많은 공간을 비워줘야지만 좋은 뮤지컬을 만들 수가 있다. 글로 너무 가득 채워 놓으면 다른 요소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진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엉성해 보이는 나쁜 대본이 사실은 좋은 뮤지컬 대본인 것이다.그런 이유로 좋은 뮤지컬 작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처음 대본은 상당히 허술했는데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사람들이 그 부족한 부분들을 잘 채워서 좋은 작품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럴 때 작가는 조금 속이 상한다. 그러므로 뮤지컬 작가에게는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이 존경할만한 사람인지가 무척 중요하다. 그런 관계일 때 모두가 빛나도록 비켜주고 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8-19 11:18:52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바닷가 작은 마을

연육교를 지나면 하조도다. 새가 무리 지은 모양새라고 '조도'로 불리는, 조도군도의 어미 섬에 해당하는 섬이다. 갯벌에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잔물결을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긴 드레스 자락을 끌고 오는 귀부인 같았다. 물결이 잔잔해서 바닷물이 실어 나르는 퇴적물로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고, 여러 개의 만이 모여 천연양식장을 형성하는 바다의 귀한 텃밭이라던가. 맑은 갯내와 신선한 파래향기가 바람에 실려 다녔다.굴 양식장 가까운 해변에서 두 사람이 패각을 깨고 있었다. 끝이 뾰족한 괭이로 맞붙어 있는 패각을 분리했다. 꽃 핑크색 바람막이를 입은 아주머니에게 패각을 어디에 쓰느냐고 물으니 씨를 심어서 바다로 보낸다고 했다. 씨를 담은 패각이 일 년 후에 석화가 되어 돌아온다며, 멀쩡한 것은 씨를 심는데 쓰고 부서진 것은 잘게 다져서 거름으로 쓴다고 했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요란하게 엔진소리를 내며 다가온 경운기가 멈추었다. 경운기에 그물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 사람은?' 물음에 그의 어머니는 며느리가 자는 것을 보고 살짝 나왔다 했다.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모든 나날을 축제로 체험한다.'고 한 사람이 롤랑 바르트였던가. 나날을 선택받은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이 기쁘고말고. 아내가 오수를 즐기는 게 그리도 좋은지,행복에 부풀은 청년이 바다를 가리키며 두 물이 들어온다고 딴청을 부렸다. 바닷바람에 그은 투박하고 순박한 부끄러움이 예뻤다. 경운기의 그물을 만지며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바다로 간다고 했다. 굴 양식만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물을 갖고 바다로 간다고. 외지고 척박한 바닷가의 삶은 한 가지 직업으로 살 수 없게 한다. '엄니, 나 갈라네.' 하고 청년은 경운기 시동을 건다. '그려. 열심히 해야 각시 멕이살리쟈잉.'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아들의 경운기가 저만치 멀어지도록 쳐다보았다. 아들이 올해 장가를 들었다면서 며느리가 빨리 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랑에게 말을 배우는 중이라며,잠깐 눈 붙이는 것을 보고 몰래 나왔다고 했다. '새 사람이 들와서 좋쥬이.' 굴 양식장의 설치물 아래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저것이 우덜 밭이랑게요. 저기서 굴을 키워 애들 공부시켰어라.' 감태가 파랗게 덮인 그 녹색 바다가 섬사람들의 기름진 밭이었다. 갈매기가 끼륵대며 날고, 바다에 감태가 자라고, 산밭에 시퍼렇게 콩대가 자라는 거기, 바닷가 아낙네의 가슴에 숭고한 사랑이 자란다. 장정옥 소설가

2019-08-15 14:35:33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대명공연거리, 네트워크로 돌파구 찾자

예술인들이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기가 쉽다. 작품에 대한 열정보다는 서로 시기하고 탐내는 순간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자기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 자기 지역을 등져 버리고 '우리 지역의 예술은 죽었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느 지역이든 어느 예술 분야이든 마찬가지이며 나 역시 그러함을 인정한다. 그런데 다른 지역을 찾아가 공연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애적 사람을 많이 만날 수가 있다. 가끔씩 만나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품으로 대화하고 예술만이 가지는 힘을 공유하려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지역의 예술을 돌이켜보고 대한민국의 예술세계를 생각할 것이다.이 두 가지 측면은 예술의 생태계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존심과 시기와 질투는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나쁜 자아이며 존경심과 공유와 소통은 그러한 자아를 극복하려는 또 하나의 모습인데, 이러한 형태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명공연거리야말로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공연 집적촌으로서 '공유와 소통'이라는 예술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요인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향후 대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연 거점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대명공연거리의 전국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대명공연거리의 현실을 보면 지역 예술 단체에만 의존해 발전을 기대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예술 단체들도 지원에만 너무 의존해 미래에 대한 준비를 스스로가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모두들 말한다. '대명공연 거리는 서울 대학로 다음으로 한국에서 손 꼽히는 공연 거리라고'.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기대만을 하고 있다. 이제 하나씩 준비를 해야 만 한다. 이에 대명공연거리의 나아갈 바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형성에 있다고 본다. 이 지역에만 머물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를 두고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 가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우수한 공연들은 계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명공연거리에서 공유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서울 작품만이 아닌 지역의 작품들도 생존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고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관객을 몰리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본질의 연극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 한가운데 대명공연거리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주었지만 향후 30년은 대한민국의 네트워크 및 세계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이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한국판 에든버러나 아비뇽축제를 만들자!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15 14:29:53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팬을 위하여

지난 9일 한여름밤의 음악회가 칠곡군 북삼읍에 위치한 인평체육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개최됐다. 장구의 신 박서진 가수가 온다는 소식에 엄마의 설렘에 보탬이 되고자 어린딸인 마냥 쫄래쫄래 따라갔다. 많은 인파가 이미 빼곡히 무대 앞을 가득 채웠고 병아리같은 노란 팬클럽 군단의 신명나는 열띤 응원이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노란 티셔츠, 노란 풍선, 노란 머리띠, 노란 전등 등 응원도구를 흔들며 여러 가수들의 노래에 맞춰 박자감 있는 어깨와 무릎 움직임의 단결함이 팬클럽의 위상인 듯했다.국악 가수, 성악가, 트로트 가수들의 공연들로 음악회가 물이 익었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장구의 신이라 불리는 박서진 가수의 순서였는데, 그의 팬클럽 응원 에너지가 폭발적이였다. 팬클럽 구성원들은 대부분 중년여성들이었다. 어림짐작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아주머니도 계셨다. 음악회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노란셔츠의 아주머니께 "응원 잘봤습니다" 했더니 "저희는 버스 대절해서 다른 지역에서 왔어요.(웃음) 박서진이 공연하는 곳이라면 저희는 어디든 갑니다" 하시며 늦은 밤 시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히 떠나시는 중년의 젊음이 대단하면서도 팬으로 구성된 집단의 위력이 강력하게 전해왔다.팬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특정한 스포츠나 연예인, 음악이나 배우, 영화, 소설, 만화 등에 열광적으로 사랑하면서 자신의 노력·시간·돈을 소비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노력에 의한 시간과 돈의 소비로 팬의 대상들은 장기적 발전을 얻게 된다. 필자가 공연기획 역할을 맡을 땐 안무자와 작품에 대한 시나리오를 구성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연구하기도 하지만 극장 측과 무용단의 공동으로 기획될 수 있는 공연의 제안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기도 한다. 안무자나 기획자는 작품의 질 높은 완성도를 위한 노력을 첫 번째라면 무용공연에서 무용관객의 성향과 관심도에 대한 연구가 두 번째 일 것이다.필자의 지난 문화예술 분야 관람률 증가세에 대한 글에서 문화예술 전 분야별 관람률은 상승했지만 무용은 매년 가장 느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을 다시 한번 빌린다. 무용의 대중화는 많은 무용인들과 학자들이 연구해 온 주제이며 현재는 다양한 대안들로 관객의 성향과 관심도를 고려한 작품을 창작하기도 한다. 어느 극장의 공연기획 담당자가 공동기획 제안을 수렴하면서 '웃기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래야 관객들이 많이 보러오거든요' 한다. 무용으로 관객을 웃기기는 개그맨보다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웃기고 유쾌한 작품들도 물론 안무자의 의도로 풀어내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창작될 수 있지만, 무용의 추상적 움직임에 대한 탐색과 안무자의 작품 주제와 내용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는 무용 팬을 위해 오늘도 많은 무용인들은 창작의 고통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웃김'의 범주를 넘어선 안무자들의 추상적 미학이 때론 가슴 먹먹함과 고뇌, 때론 의도된 답답함과 불편함에 대한 의문이 진정한 무용 팬의 자격이 아닐까 한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14 11:13:28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골목, 멈춰진 시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직선거리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일제저항 민족시인이며 자주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 시인이 1920년부터 한동안 살았던 집 터가 있다. 그 작은 골목 곳곳을 거닐고 있으면 마치 그 시절 멈춰진 시간 속에 있는 듯한데, 좁은 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고 오래된 주택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오목조목 붙어 있으니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정이 가득한 곳, 따뜻한 골목을 걸으며 이육사의 숨결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도 잠시, 곧 주택 곳곳에 빨간 페인트로 철거라고 적혀 있는 길이 나왔다.최근 이 주변이 아파트재개발지역으로 설정되어 곧 철거될 예정이라 그러한 것인데, 어느덧 사람도 다 떠나고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 더욱 그러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이육사 생가터도 재개발계획에 따라 같이 철거된다고 하니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면 그 부지 안에 이육사기념관이 건립될 예정이라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내준 덕분인데, 다만 공유지에 따로 새워지지 못해 대구시 차원에서 기념관을 관리할 수 없고 아파트 사유지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도 많다. 앞으로도 논의가 계속 진행될 것이니 여러 의견수렴 및 구상을 통해 대구시에서 최선의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이육사기념관이 건립되어 대구시민들에게 이육사의 저항정신을 알리고 그 얼을 기린다는 것이 반갑고, 또 근처에 있는 근대골목과도 연계되어 대구를 대표하는 좋은 명소가 되리라는 기대도 된다.이육사는 40년 일생 중 청년기 이후부터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대구에 살면서 한때 약령시 약전골목에 일하기도 하였고, 후에 기자생활도 8년 동안 하면서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기사와 평론을 수차례 발표했다. 또한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도 가입해 무장독립투쟁에도 헌신하였는데,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것을 시작으로 대구 격문사건 등 여러 항일운동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지만, 그 가운데 시를 발표하며 문인으로서도 민족의 얼을 지켰다. 1944년 베이징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끝까지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다.나의 곡 합창을 위한 국악관현악 '초인'이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지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초연되었다. (연주:대구시립국악단, 지휘:이현창, 합창:메트로합창단) 합창가사는 이육사의 '광야(曠野)', '교목(喬木)', '절정(絶頂)' 이 3개의 시에 선율을 입혔다. 광야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이 곡은 올 연말에 대구시립국악단 송년음악회에 다시 한번 연주될 예정이다.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13 11:20:03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여성 등장인물에 관하여

필자는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이자 독립 운동가이신 권기옥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비 갠 하늘'에 각색과 조연출로 참여하였다. 이 작품은 2016년 3월에 대구시립극단 정기공연으로 초연되었고 그 후로 매년 작품을 보완하여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올해 대구시 8·15 기념식에서도 짧은 버전으로 축하 공연이 이루어진다. 한 여성이 주변의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이루어가는 이야기. 한국의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 작품들이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이 작품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필자는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다행스러웠다.영화나 뮤지컬에서 여성의 배역이 많지 않고 남성 등장인물의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무른다는 문제 제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최근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들이 가시화 되고 있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 알라딘에서도 쟈스민 공주가 알라딘의 도움을 받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여성이지만 술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술탄의 자리를 이어 받는 당당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꼭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필자는 여성이 주인공인 공연에 자주 참여했던 것 같다. 올해 초 시립극단에서 연출했던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도 노라라는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이고, 지난달 공연한 뮤지컬도 안이수라는 여중생이 주인공인 작품이었다. 내년에는 우리가 잘 아는 판소리 심청가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각색한 작품을 선보이려 한다.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심청이가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강단 있는 여성으로 심청이를 그려낼 예정이다.좋은 예술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가치관을 정립하기도 한다. 그들이 만나는 이야기 속 여성 등장인물들이 남성을 보조하고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무르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잘못된 의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 멋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더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더 많은 당당한 여성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8-12 11:12:16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아름다운 건축

비가 오는데, 잘 지은 건축물 하나 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간 곳은 하양의 작은 교회였다. 고속도로를 30분쯤 달려 시골마당에 차를 댔다. 텃밭에 보라색 도라지꽃이 지천이었다.소박한 느낌의 건물 입구에, 사각형 수반이 물을 담고 있었다. 수반에 자갈이 깔려 있고 한 뼘 높이의 물이 찰랑거렸다. 위에서 넘친 물이 아래로 흐르는 수반이 언뜻 성수를 연상시켰다. 물은 죄의 씻음을 상징하는 것. 때맞춰 내리는 비가 물 위에 동그란 파문을 그렸다. 좁은 통로로 들어가자 성전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좌측에 가파른 계단이 있고 우측에 방금 지나온 마당이 긴 사각형의 프레임에 담겨 있었다. 좁은 길은 곧 넓은 길로 나아가는 근원이니.불과 오십 명이나 앉을까 싶은 장의자가 욕심 없는 모습으로 두 줄 놓여 있었다. 엷은 브라운색의 벽에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없는 듯 십자가가 있었다. 가난한 삶을 죽음과 부활로 보여주신 침묵의 현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욕심 없이 살다 가신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했다. 설교대 옆에 반원형의 기둥이 서 있었다. '야곱의 사다리'라는 성서의 의미대로 지어진 반원형의 기둥을 쳐다보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으며 천국으로 가듯이, 가파른 계단이 곧 하늘로 가는 길 같았다. 구름 덮인 하늘이 성큼 다가오고 벽돌의자가 놓인 묵상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백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에게로 침잠하는 고요와 맞닥뜨린다. 벽에 막대 모양의 홈이 길게 파져 있는데, 그 십자가 형상이 묵상의 의미를 더욱 공교히 해주었다. 비어 있어서 아름다운 곳.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비어 있을 것 같은 그곳, 작은 토굴을 떠오르게 하는 거기 세상의 모든 신이 한데 모여 있다. 머리와 어깨에 하얗게 눈을 인 채로 등신불처럼 굽은 등을 하고서.옥상 아래로 시골집의 위채 아래채 같은 사무실이 보였다. 예전 건물을 싹 밀어버리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살려놓아 시골교회의 정감을 더한 것이 괜히 고맙다. 최대한 비우되 살릴 건 살리고. 건축가 승효상의 철학을 살짝 엿본 듯도 하다. 마당의 쉼터에 앉아 건물을 돌아보니 미술관에서 명화 한 점을 보고 온 느낌이었다. 삶이 고단한 어느 순간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누군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줄 것 같기도 하고. 고흐든 예수님이든 누구면 어떠랴. 장정옥 소설가

2019-08-08 11:10:58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예술가에게 비움의 미학이란?

어느 술자리에서 왜 예술을 하는가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 삶에 보람과 성취를 이야기 하는 이도 있고, 사회에 대한 반응과 변화의 요구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 하는 이도 있고, 암울했던 시대처럼 '요즘 예술은 죽었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면서 각자 타인에게 '내려놔야 한다'를 반복하며 자기의 뜻은 굽히지 않는다. 예술행위를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왜 자꾸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일까?나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현장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 현장이라 함은 예술이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진행형인 환경, 즉 직접적인 예술 행위자의 시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에서 끈임 없는 자기의 성찰과 고민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일반 대중들과 소통하고 어느 순간 성취하기도 하고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긴 여정이나 순간을 통해 현장 예술가는 탄생되고 지속된다.고로 나는 생각한다. 예술에 있어서 내려놓는다는 것은 예술의 형태를 취하면서 정치를 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개념과 '무'라는 예술의 철학적 개념을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갈구하는 무언가를 향해 항상 비워두어야 채울 수 있다'로 귀결 시킬 수 있겠다.최근에 들어 현장 예술가에서 예술행정가나 예술경영가로 변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술가의 삶보다는 예술행정가의 삶이 우대되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너도 나도 어떠한 자리를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로 인한 시기와 질투가 반복된다. 현장예술가의 사회에 대한 시선과 비판이 중요시되기 보다는 예술행정가의 시선과 안목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가치의 삶 보다는 명예와 권력에 대한 줄서기가 우선시 되는 (이는 여느 시대나 똑같지만) 침묵 아닌 침묵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라도 할 텐데 괜히 나서서 낙인찍히는 것, 그것이 두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그래서 모두들 가만히 있다. 모두들 기다리고만 있다.예술은 움직임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향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향함에 있어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움직임과 자기의 명예와 권력에 대한 움직임 그래서 내려놓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명히 구 분해야 할 것이다. 예술로 정치를 하려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몇 년 전 한 단원이 나에게 말했다 "대표님! 내려놓으세요. 괜히 나서봤자 누가 알아 주겠어요?" 그때 난 "야! 내가 내려놓을게 있어야 내려놓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난 이 말을 실감한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08 11:03:38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지역문화의 공공성

하와이의 5월 1일은 'Lei Day'라 말한다. 레이데이는 하와이 문화 또는 알로하 정신을 축하하는 날이며, 1929년부터 정식 휴일로 지정되어 노동절을 기념하며 남녀노소 즐기는 지역의 축제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레이(꽃으로 엮은 목걸이) 선물을 주고받고, 하와이 지역의 초·중·고등학교는 다양한 공연예술의 장을 펼치는데 특히 전교생이 다양한 종류의 훌라댄스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 가장 큰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 형태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지만 전교생이 하와이 전통 춤을 공연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레이데이의 전통이다. 각 학교의 레이데이 훌라댄스 공연 날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될 만큼 특별한 날이며, 학생들과 학부모 및 지역민들은 학교를 방문하거나 지정 공연되는 장소를 찾아가 훌라댄스 공연을 감상하는 축제의 장이다.하와이 지역민들은 영어와 하와이 언어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특히 하와이 대표적인 인사로 '알로하'는 단순히 오고 가며 인사에 그치지 않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서로 화합하는 상호간의 존중을 의미하며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랑, 애정, 감사, 친절, 연민, 슬픔, 회의 등의 요소와 상징을 나타내는 화합의 정신을 추구한다. 이처럼 인사말에 담겨진 정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 훌라댄스라고 할 수 있는데, 훌라댄스는 하와이의 전통 춤이지만 춤이 아닌 인간의 삶이라고 상징한다.글자가 없었던 고대 하와이에서 '훌라'와 '챈트'는 하와이의 역사, 계보, 신화와 문화를 이어온 중요한 매개체였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훌라를 통해 대지 그리고 신과 교감했고 손동작, 스텝, 골반 흔들기 등 각 동작마다 이야기가 있다.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훌라 춤은 소통의 수단이자 사회적 유희였으며 훌라의 노래와 챈트에는 하와이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훌라댄스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전통적 상징이며 공동체 인식과 예술적 발현을 모색하는 지역과 공존할 수 있는 공공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춤을 통한 지역의 이해, 공동체 회복, 역사의식 함양, 지역 문화 계승 및 발전이 동시적으로 가능해진다. 이상적 가치 추구와 목표 설정으로 혁명적 태도와 실천보다는 지역 구성원들 간의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재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지자체 및 문화예술 공공기관에서는 지역문화를 활성화 하고 지역을 소재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공연예술 창작품이 창조 할 문화예술단체를 원하고 있다. 필자가 밝히는 지역문화의 공공성은 지역 문화에 대해 인식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이끌어내는 학습적인 효과의 교육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적 유대감을 모두 강화함으로써 공동체의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 또한 미시적인 사회관계 안에서 공공적인 사회적 이상주의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07 11:13:19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밀양아리랑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개기월식 때, 달이 붉게 보이는 현상을 적월(赤月) 또는 블러드 문(Blood moon)이라고 한다. 이때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서 태양빛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하지만 빛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태양빛 중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은 대부분 지구를 통과하면서 대기 속에 흩어지지만, 파장이 긴 붉은 빛만이 지구의 대기권을 지나 달까지 다다르게 되어 달이 붉게 보여진다.어떠한 그림자에 가려져 고통으로 사라져버린 의지보다는 더욱 깊이 있는 마음의 힘으로 그 꿈에 닿기를 바라며 적월을 생각한다. 열정의 붉은 빛, 붉은 빛이 되어 달에 닿기를, 이 몸 안의 뜨거운 피로 모두의 마음을 녹일 수 있기를!나의 곡 '밀양아리랑 주제에 의한 국악관현악, 적월(赤月)'의 곡해설이다. 이 곡의 주제가 된 밀양아리랑은 밀양의 명소와 설화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우리 민요로서 세마치장단의 흥겨운 장단과 누구나 알고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선율로 인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얼마전에 머리도 식힐 겸 밀양을 다녀왔다. 그 곳에서 본 위양지라는 연못은 새로운 영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하늘과 나무와 연못과 그 한가운데에 있는 완재정이라는 정자는 한 폭의 그림처럼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또한 밀양에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 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칭송받는 영남루가 있다.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멋지게 보여주는 이 영남루는 강물 위 절벽에 위치하여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밀양아리랑은 이 영남루의 비화(悲話)에서 발생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깃든 아랑의 전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아랑은 밀양부사의 딸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랐는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용모 또한 아름다워서 명성이 자자했다. 어느 날 밤 관아의 심부름꾼인 주기라는 남자가 신분도 잊은 채 그녀를 흠모하다가 결국 유모를 꾀어내어 달구경 나온 아랑을 욕 보이려하였고, 그녀는 결사코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대나무 숲속에 버려진다. 이에 밀양부사는 딸을 찾다가 결국 마음의 병으로 죽었는데, 그 뒤로 밀양에 오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하는 첫날밤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어 모두 그 자리를 꺼리게 되었다. 이는 죽은 아랑이 원귀가 되어 새로 부임하는 부사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나타났고, 그때마다 처녀귀신에 놀라 그 자리에서 죽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사(李上舍)라는 담이 큰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하여 왔고 부임 첫날밤에 나타난 아랑은 원한을 풀어달라 간청하였다. 그는 곧 주기를 잡아 자백을 받아내 처형하고 아랑의 주검 또한 찾아내어 장사 지내니 그 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영남루 밑에는 아랑의 혼백에게 제사 지낸 아랑각(阿娘閣)이 있고, 밀양아리랑 가사로도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오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06 11:12:24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신뢰라는 자산

아직 대단한 공연 제작의 경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연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가끔 공연 제작에 대해 후배들이 문의를 해 오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연 제작 스태프 아카데미를 열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도 7명의 신청자와 함께 아카데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때 필자가 가장 강조하는 두 가지는 요소는 시간과 돈이다.공연 제작에서 전체적인 일정을 세우고 그 일정대로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은 완성이라는 것이 없기에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마감을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행되는 작업에서 일정이 늦어지면 후반부 작업을 하는 동료들은 부족한 시간 때문에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각 작업의 마감시일을 정해 놓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서로 시간을 지키는 것은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중요하다. 제작팀은 연습 시간을 정하고 시작하기로 한 시간에 시작하고 마치기로 한 시간에는 마쳐야 한다.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정해진 연습 시간에는 늦거나 빠지지 않아야 한다. 서로의 시간을 지켜주고 낭비하는 일 없도록 배려해 주는 일이 공연 제작의 기본이라고 필자는 늘 생각하고 있다.공연 제작에서도 돈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많은 예산을 확보하여 제작하면 좋겠지만 그런 행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늘 부족한 예산으로 원활한 제작을 하려면 명확함이 필요한 것 같다. 출연진이나 스태프를 섭외할 때 제작팀에서 먼저 책정된 섭외비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섭외 받는 분들이 자신이 받게 될 금액을 알고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급할 날짜를 약속하고 약속대로 지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계약서를 작성하면 이러한 사항들이 명확해지니 섭외가 결정되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작의 과정이 어떠한지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좋은 제작 과정은 제작사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다. 신뢰는 참으로 얻기 힘든 소중한 자산이다. 시간과 돈을 잘 관리하면 그 자산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8-05 11:10:26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부끄러운 등

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대 유벤투스 FC 친선경기가 치러졌다. 상암경기장을 가득 채운 축구팬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유벤투스는 한 시간이나 늦게 경기장에 나타났다. 마음 상한 팬들은 안중에도 없이 시합을 치렀지만 유벤투스 감독은 6만3천명의 축구팬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호날두를 끝내 시합에 뛰게 하지 않았다. 시합이 끝나도록 팬들이 '호날두' 라고 연호를 외쳤지만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끝내 라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이 유벤투스를, 호날두를 그리도 도도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호날두가 K리그에서 뛰는 게 아까우면 처음부터 장삿속을 접고 초청경기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의 어처구니없는 횡포가 유벤투스 감독에게서 시작되었든, 호날두에게서 시작되었든, 유벤투스는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들은 전혀 프로답지 못했고 스포츠인답지 못했다. 우리가 입은 상처도 적잖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보이고 간 부끄러운 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적어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운동선수라면, 그렇게 치욕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그들의 부끄러운 등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일본은 수출규제로 그들 자신의 죄를 덮으려 갖은 수단을 다 쓰고, 북한은 형제의 따뜻한 손을 뿌리치는 것으로 우리의 부아를 돋우고 있다. 어릴 때 형제들이 싸우면 엄마가 우리 등을 후려치며 '너희들이라도 말을 좀 들어줘야 엄마가 덜 힘들지'하며 화를 내셨다. 지금 엄마의 그 매운 손맛이 간절하다. 한때 많이 아팠던 적이 있다. 남편이 눕혀주고 일으켜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꾸만 의지가 꺾이는 자신에게 해준 위로의 말이 있다.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오른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처럼 힘이 났다. 세상에 나를 구할 사람은 나뿐이다. 내가 나를 일으킬 생각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나를 일으키지 못한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생각지도 않게 유벤투스까지 더하여 한국을 능멸하는 이상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다행히 우리 국민들이 힘을 모아서 외세에 맞서고 있으니 이 또한 별고 없이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 역사 대대로 수많은 외세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당당하게 이겨냈다.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 독립운동은 못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하며 응원은 해줄 수 있다. 힘들 때마다 나는 들판으로 가서 풀을 본다. 비바람이 모질게 흔들고 쓰러뜨리지만 풀은 매번 씩씩하게 일어선다. 비바람은 지나가는 손님에 불과하지만, 풀은 가장 여리고 힘없는 모습으로 굳건하게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토착식물이다. 어느 누가 풀의 강한 근성을 이길 수 있으랴. 장정옥 소설가

2019-08-01 11:17:14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나에게 스스로 묻는다

지금 춘천으로 가는 길이다. 2019년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이 춘천에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은 전국 7개의 도시, 즉 대구 부산 춘천 광주 대전 전주 구미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소극장들이 모여 진행하는 네트워크 연극 운동이며 페스티발이다. 2012년에 첫 시작을 하였고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다.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은 나에겐 매우 중요한 연극 작업이며 연극 동지를 만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을 교류 할 수 있기에 춘천가는 길, 너무도 아름답게 드리워진 강원도의 산안개를 바라보며 그 안개 너머로 지난날들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같은 지역 같은 장르의 예술가들 사이에 오가는 시기와 질투, 서로 반목하며 인정하지 않는 기류 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색깔을 강조하며 스스로가 만든 우물 안에 고립 되어가고 있는 지역 예술계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구 밖, 똑같이 숨이 막히는 지역 예술계의 고립된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각 도시의 연극인들이 부산에서 모이게 되었고, 이 만남 속에서 지역과 지역 순수 연극인들의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다섯 개 지역 극단들이 모여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을 탄생하게 했다.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이르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무엇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무엇이, 나를 그 길로 접어들게 했을까? 그것은 결국 자극이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소극장열전은 서로 다른 색깔에 대한 반목이 아닌 서로의 작품을 통해 창작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동행의 길…….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채찍이 되어 주는 동행의 길…….연극예술이라는 게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상호간의 신뢰를 우선하는 예술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 준 그 동행의 길……. 나는 물었다. 너는 지금 대구와 동행하고 있는가? 너는 지금 네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가? 너는 혹시 우리네 삶에 대한, 우리네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그 애정과 따뜻한 시선을 잃어버린 채 질투와 시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네 자신의 그릇된 고정관념과 작업방식, 비툴어진 가치관이 또 다른 작업자들에게 갈증을 안겨다 주고 있지는 않는가? "대구 예술은 안 돼! 아직 멀었어!" 라고 내 스스로 비아냥거리지는 않는가?동행의 길 위에서 엄연히 대구연극인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나에게 스스로 묻는다. 너의 연극, 겸허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변명처럼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지는 않는가? 너는 대구 예술을 사랑하는가?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01 11:08:49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춤추는 글 

필자의 보물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쓴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대청소를 하며 일부 버려졌지만 지금 남아있는 공책의 수는 100여 권 정도이다. 보물을 펼쳐보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선사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시절 일기는 나의 마음정화의 수단이었던 것 같다.일기 내용에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내 모든 경험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엄마의 혹독한 교육안에서 외로움과 고독에 울부짖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쓴 해방, 친구와의 다툼에서 어떤 화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숨막힘이, 내가 좋아했던 가수의 노랫말에 열광했던 사춘기 소녀의 간절한 소망은 모든 내 경험의 생각과 느낌이었다.나를 드러내기보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해야만 했던, 때 이른 성숙함의 필자의 어린시절에 일기는 아주 특별했다. 모든 것을 토해낼 수 있는 자유와 위로였다. 때 이른 성숙함을 위로한 자유와 위로는 자신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립심이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가장 쉬운 글쓰기인 일기를 권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무용을 전공한 필자에게 글쓰기는 창작의 방법으로 때론 교육의 소재로 사용해 왔다. 무용은 사실 단순히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안무의 과정에서 살펴본다면 움직임으로 표현되어질 주제를 설정하기 위해 안무자 경험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몸과 마음(정신) 그리고 감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통합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다음단계이다.이러한 글쓰기와 춤의 경험은 개인의 감정을 정리하고 조절 할 수 있는 능력을 명료화하게 된다.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게 되면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감정이입으로 소통의 경험도 가능하게 한다. 필자가 제시한 글쓰기는 무용교육에서 창작무용으로 발현되는 과정의 첫 단계로 학습자의 일기와 같은 경험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한 뒤 그 글을 무용의 요소를 사용하여 움직임으로 구성하게 된다.특히 이러한 과정은 특수 목적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교육적 혜택으로 다가가는 접근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는 무용이 과거 전문성을 가진 기능 교육에서 교양과 문화·체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문득 떠오른 지금 이 순간의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움직이는 내 몸을 상상해본다면, 또는 직접 내 몸을 움직여 본다면, 우리는 지금 자유의 춤을 추고 있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7-31 11:15:54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이연(離緣)

나의 대학생 제자가 레슨을 받으러 와서 책상 앞에 앉자마자 대뜸 나의 곡 소아쟁독주곡 '이연(離緣)'이라는 곡에 대해 묻는다. 어떠한 느낌과 영감으로 곡을 썼는지, 과연 이 곡은 누구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그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때 사랑하던 사람이었는지를 숨도 쉬지 않고 물어보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무언가를 기대하며 나를 바라본다.그래서 나는 이어질 수 없는 인연에 대하여 썼다고 그냥 가볍게 대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곡은 내가 그 제자와 비슷한 나이였던 대학생 때 썼는데, 그 당시의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남 뒤의 이별에 대해 썼고, 그래서 딱히 언급할 누군가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를 생각하며 곡을 썼다고 하기엔 뭔가 여러 가지로 쑥스러웠다.하지만 이내 그 제자는 스스로의 해석으로 '고백할 수 없었던 슬픈 사랑이야기'일 것 같다며 자기가 '이연'속의 여자의 입장을 상상하며 '비연(悲緣)'이라는 곡을 써보았다고 하였다. 순간 웃고야 말았다. 근데 기분이 좋았다. 나의 곡으로 인해 영감을 얻어서 제자 스스로가 또 하나의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곧 그 곡 악보를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가사가 또 한 번 나를 웃게 만들었다. 가사 속 내용이 손발 오그라드는 민망함이 있어서 그랬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직관적이고 진실된 글이 사랑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어서 흐뭇하였다.사랑은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어떤 시절을 지나며 마음속에 추억으로 간직된 세월이 지나버린 풋풋했던 사랑,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되고 있는 성숙하고 뜨거운 사랑 등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가지는데, 아래 글은 소아쟁독주곡 '이연'에 쓰인 곡 해설이다.떠날 이(離), 인연 연(緣)을 조합하여 만든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인연에 대해서 노래 한 것인데 그런 안타까운 사랑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인연이란 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즉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으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리 다시 되돌려 보려고 해도 시간은 계속 흐르기에, 세상 만물의 이치 속에 인간의 힘은 한없이 미약하기에 안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연은 더 아픈 것이다.그 아프고 애절한 마음을 아쟁의 구슬픈 선율로 옮겨보았다. 이 이연을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그 슬픈 마음으로 이 곡을 완성하였지만 모순적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직까지도 나의 이연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해석으로 음악과 문화를 이해해보자.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7-30 11:11:09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벌써 올해도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로구나.' 생각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월도 막바지다. 지난 5월 올해 하반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예정된 공연들도 무사히 잘 진행해야 하고, 책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마련하고, 새로운 충전을 위해 여행도 좀 다녀오고. 전시도 챙겨 보고, 현대 무용이나 음악회 같은 공연들도 관람을 하고.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적고 나니 한 달이 60일쯤 되거나 하루가 50시간쯤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자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잠을 줄여볼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지이다. 일단 잠이 줄여지지 않는다. 12시만 넘으면 아무 것도 재미가 없고 오로지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잠을 줄여서 무언가를 해도 전혀 즐겁지 않고 신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잠을 줄이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방법은 탈락이다.시간을 쪼갠 뒤 집중력을 발휘하여 밀도 있게 시간을 쓰는 것은 어떨까?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인들은 이러한 기술을 연마하고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더욱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이 일을 왜 하는지는 잊은 채 그저 일을 처리하는 것 자체에 함몰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분명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일을 한다는 기쁨은 사라지고 해내야 한다는 의무만이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건 싫다.그래서 필자는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민한다. 모든 걸 다 해내는 것이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되면 동시에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삶의 우선순위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 하반기에는, 내년에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7-29 11: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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