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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매일춘추] 값진 선물 '추억'  

세상이 힘들어짐을 느낄 때 사람들은 추억을 회상한다. 사람이 그리워하는 이유는 '추억' 때문이고, 세상이 미워지는 이유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아픈 '추억' 때문이다.늘 해가 바뀌면 나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행복한 감성으로 세상에 나를 맡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과거 학창 시절 새 학기 노트에 첫 장을 펼치는 느낌으로 새해에는 '추억'과 '희망'에 대한 감사함에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이다.요즘은 트렌드라는 말로 '추억'을 재생산하고 이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얻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감을 주는 단어가 '추억'이 아닐까 한다.최근 TV를 보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자신의 '추억'을 얘기하시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새벽에 일찍 무거운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나름 경제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 택시 기사에 대한 내면적 우월감이 있었다고 했다.조용하고 상쾌한 새벽 공기와 그 분위기를 느끼며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그에게 택시기사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성의 없이 답변해야 하는 그 시간이 불편하게만 느껴진 것이다.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택시에서 내리며 택시비 6천900원을 결제하면서 7천원을 주고 내렸다. 그런데 그때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차에서 내려 그를 부르며 환한 웃음을 짓고 다가온 택시기사가 한 행동과 말이 그의 인생의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 된 것이다.그 택시기사는 따뜻한 온기가 있는 손으로 자신의 손을 잡으며 동전 200원을 환한 웃음과 함께 쥐어주며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잔 하시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라고 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느낌으로 한참 서있었다고 한다.자신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택시 기사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삶을 깨닫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값지고 소중한 '추억'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운 듯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 자판기 커피 가격이 300원이라서 100원 모자라 커피를 마실 수는 없었다고 자신의 값진 선물 '추억'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사람들은 이렇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미래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또한 사람들은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추억'은 인간의 지친 삶의 단비와 같은 귀한 '기억'이 된다.고단한 우리 세상살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밖에 없는데도 늘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추억에 대한 기억은 자신을 바꾸는 귀한 힘이 된다.

2020-01-10 06:30:00

박천 /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peel – 그 경계를 상상하다

"나는 선을 넘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데…."지난해 개봉한 영화 '기생충' 대사의 한 대목이다. 영화 '기생충'은 장면 장면마다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 가능한 메타포를 심어뒀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직접적인 답안은 배제하고, 다양한 여지를 넓게 두었던 영화였다. 때문에 한국을 배경으로 진행되지만, 세계적인 공감을 얻어내며 각종 권위 있는 국제적 영화제에서 우수한 상들을 수상하게 되었다.그런데 심사위원들은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본 것일까? 아니다. 그들의 상황과 개인적 지식을 통해 영화를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프로세스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인간은 일련의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대상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인종, 언어, 문화, 국가, 성별 등 다양한 요소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난해함 속에서도 인간은 늘 공통된 본질, 즉 진리를 찾고자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이러한 진리와 마주하여 늘 새로운 상상과 시도를 탐구하는 영역이 바로 예술이다.예술은 사냥이나 주술적 목적 등을 위한 삶의 방식으로 시작되어 비례와 형식을 통해 아름다움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고, 이러한 이성적 패러다임에 반하는 형식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이런 질문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전시가 있다. 수성구 범어역에 위치한 021갤러리에서 박동삼, 이병호, 이환희 작가의 작업들을 선보이는 'peel – 그 경계를 상상하다'라는 전시이다. 제목에서부터 내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는 '형(形)의 현상과 본질을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어떤 대상에서 껍데기를 벗겨내고 남은 알맹이는 구분되어 인식해야 하는지 혹은 구분된 두 요소가 어쩌면 같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봄에 있어 피상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 혹은 그 속에 숨겨진 맥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인간은 선을 긋고 나눔으로써 세계를 인식한다. 하나의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비교 대상을 둠으로써 비교적 쉽게 인식하지만, 비교 대상이 명확하지 않게 되는 지점에서 인식의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인간은 각자만의 가치관과 지식을 통해 대상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함에 있어 인상 깊을수록 바라보는 입장은 획일화되고, 평범하거나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해진다. 전시를 통해 드러내는 작가들의 본질에 대한 접근 방식이 모두 다르듯이, 우리 역시 각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시를 보며 자신의 시야를 객관적으로 구분지어보는 것은 어떨까.

2020-01-09 12:45:34

김득주 대구예술발전소 운영팀장

경자년에는 독수다서 어떠세요?

영상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영상을 통한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영상 미디어에 익숙해져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뒷전에 밀린지 오래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는 푸념이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평소 영상매체 보다는 책을 즐겨보는 필자에게 눈과 귀를 사로잡는 흥미로운 TV 프로그램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스테디셀러 책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잔잔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그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책은 쉽게! 두꺼운 책은 가볍게! 지루한 책은 재미있게!'를 모토로 다양한 분야의 독서가들과 함께 수다로 독서를 풀어낸다.책이라는 아날로그 콘텐츠와 영상이라는 디지털 매체와의 만남이 매력적이다. 징비록, 군주론, 백범일지, 넛지, 총균쇠, 사피엔스, 신곡, 이기적 유전자 등 제목만으로는 너무나 친숙한 책이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도서를 다룬다. 이 프로그램이 매력적인 이유는 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함께 여러 사람의 다양한 경험과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인문고전 독서토론회 '리케이온'과 유사한 점이 많아 더 큰 관심이 간다. 금융, IT산업, 의료, 컨설팅,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리케이온' 독서토론회에서는 하나의 주제에도 각 분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족, 직장동료 등 주변 사람들에서부터 다양한 계층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들과의 대화 주제, 소재, 내용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에 속내를 보여줄 수 있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독서토론에서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평상시 좀처럼 꺼낼 수 없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서 상대방과 진정으로 소통했음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나를 스스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상대방을 통해 투영된 내 삶의 방향을 읽기도 한다. 물론 상대방과의 친밀도가 훨씬 깊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책은 그저 매개일 뿐이고 궁극에는 우리 삶이 대화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서토론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경자년 새해를 맞아 올해의 버킷리스트에 독서토론을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 토론이 여의치 않다면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벼운 독서수다로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2020-01-06 13:45:27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매일춘추] 다양한 문화 경험의 힘

최근 들어 부쩍 '문화'라는 단어를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문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매년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이 '문화'가 뭐라고 생각하냐?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 없다는 눈빛으로 나에게 대답을 대신한다.많은 사회학자, 인류학자, 철학자들이 '문화'를 정의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적인 '문화'에 대한 정의는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문화'라고 했다. 그러면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것이 '문화'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제대로 문화를 즐길 수 있을까?얼마 전 수업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적어서 발표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과는 1위가 장기간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였다. 다양한 국가들의 '문화'를 체험하면서 여유롭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왜 그럼 실천하지 못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답은 '돈'이 없어서거나 '용기'가 나지 않아서라는 대답이 많았다. 결론은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예전에 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에 대해서 발표한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우리의 중산층 기준은 빚없이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급은 500만원 이상, 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소유하고 1억 이상의 현금과 연 1회 이상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물질적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에 비해 프랑스의 경우 퐁피두 대통령이 '삶의 질'에서 중산층이란 외국어를 하나 이상 할 줄 알며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루며 약자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은 자신의 주장이 떳떳한 사람,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줄 아는 사람,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영국은 페어플레이를 하며,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지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줄 아는 사람,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했다.우리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문화 선진국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물질적 '부'의 축척이 목적이 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꿈꾸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발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2020년이 되기를 소망한다.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2020-01-06 06:30:00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from A to B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며 하는 일반적인 행동은 어떤 것들을 정리하고, 올 한 해 좋은 일들이 생기기를 소망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즉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올 한 해를 계획한다. 이렇게 한 해를 계획할 수 있는 이유는 '작년'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도 이러한 기준이 되는 대상이 있는데, 작가가 작업을 할 때, 어떤 것을 보고 느꼈는지가 그 대상이 되어 작업에 투영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예술'이라는 매체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이러한 작업들의 기준은 예술의 본질적 탐구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일련의 경험들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혹은 당시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의심하고, 심지어 아무 의미 없음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이렇게 놓고 보니, 단어로만 '예술'이라고 포괄하지, 결국 제각각이다. 우리가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해 못 할 것들 투성이로 가득 찬 이유가 이렇듯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있는 예술의 개념과 실제로 마주한 예술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 보니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전시장의 난해한 작업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한다. 그 작업이 예술적 가치가 어떠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예술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의 작업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예술로 도달했는지 추적하여 들어간다면,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영천의 시안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from A to B'라는 전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고찰하는 전시이다. 'From A to B'는 말 그대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을 뜻하지만, 전시에서는 장소에서 장소로의 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아닌 'A(대상)'가 작가를 통해 'B(예술)'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전시는 시안미술관의 전관에서 진행되는데, 1관에는 이우수, 백지훈 작가의 작업이, 3관에는 이소진, 심윤 작가의 작업이 있다. 1, 3관에서는 네 작가들의 완성된 작업들을 볼 수 있으며, 2관에서는 작가들의 작업적 원형이 어디에서 왔는지, 혹은 어디로 가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결국 2관을 통해 전시는 끝을 맺음과 동시에 'A'가 되고, 다시 관객에게 'B'로의 이동을 제안한다.관객에게 'A(예술)'를 통해 'B(불특정 대상)'로의 사고적 이동을 제안하는 이유는 우리가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함에 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의 이동은 그저 하루가 지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작년과 올해를 구분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전시를 관람하더라도 앞서 언급된 '난해함'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예술이 어떤 경로로 우리와 마주하는지, 그리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각자 고민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박천 독립큐레이터

2020-01-02 11:35:39

이지영 배우·연출가

[매일춘추] 소통의 블로킹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배우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작품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그것을 블로킹(Blocking)이라고 한다. 스포츠 용어로 잘 알고 있는 블로킹이 연극에서는 무대 위 '동선'을 의미하는 말이다.독일출신의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블로킹에 대해 "무대와 객석이 두꺼운 유리벽으로 막혀 있어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관객은 등장인물의 움직임만을 보고서 스토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블로킹이다" 라고 정의한 바 있다.블로킹은 연출자와 배우가 함께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장면을 만들며 의견대립으로 다투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그 움직임에 연출자는 아이디어를 더하고, 더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우들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블로킹을 완성시켜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교감하며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관객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기도 하는 연출자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배우 사이에는 상호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10년 전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연출자가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연기 왜 그렇게 편하게 하려고 하냐. 그게 그렇게 힘들어? 하라면 좀 해!'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그저 낯설었고 그 움직임이 너무 어색했다. 배우가 불편하면 관객들도 불편할 것 이라는 생각에 연출자에 대한 부정과 야속한 마음이 컸다.연출자가 되어보니 블로킹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배우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소통하고 배려하며 장면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심한 연출자와 총명한 배우의 소통이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만들어 낸다 할 수 있다.연극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만나 작품을 완성 시키는 공동체작업이기도 하며, '협력'으로 만들어내는 '소통과 공감'의 예술이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진 공연을 본 관객들은 가족과 친구 나아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나누며 소통 할 것이다.누군가와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한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연극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2020년 경자년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소통의 블로킹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지영 배우·연출가

2020-01-01 14:37:31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대중은 멍청하다

2007년 미술 작품 경매에서 '작가의 똥'이란 작품이 한 캔에 1억원에 거래되었다. 이 작품은 1961년 이탈리아 미술가인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가 발표했는데 90개의 깡통 겉면에 '작가의 똥(Merda),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제작'이라고 쓰여 있다. 밀봉된 이 깡통 윗면엔 작가의 서명이 있다. 당시 예술계의 작가 네임밸류를 풍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씁쓸함에 생각을 곱씹으니 똥내가 나는 듯하다. 도대체 그 작품을 1억원에 구매한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만한 돈을 낸 것일까?최근 A 배우가 주연을 맡은 어떤 뮤지컬이 티켓 오픈을 하자마자 매진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똑같은 공연이라도 그 배우가 라인업 된 회 차에만 매진되었으니 배우의 네임밸류는 이제 제작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캐스팅 요인이 되었다. 수천만원의 개런티를 감당하면서도 어떤 배우를 쓸 수밖에 없는 제작자의 입장은 그 배우가 공연 중에 애드리브로 러닝 타임을 늘려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연출가의 입장으로 전가시켰다. 왜냐하면 관객이 티켓을 구매한 목적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배우를 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관객을 관객이라 할 수 있는가? 문화향유 시민 집계에 포함되어도 되는가? 뮤지컬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한지 벌떼는 알고 있을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무대조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듬이 등을 켜고 눈에 불을 밝히는 1번 바이올린 주자의 이름은 알고 있을까? 아니 최소한 작곡가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연출가의 이름은? 물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그 사람들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뮤지컬에 대한, 공연 예술의 특징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질문하고 싶다.대중은 멍청하다. 몇 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을 기억할 것이다. SNS를 통해 시식 후기가 공유되었고 사람들은 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 마트를 뒤지고 다녔다. 어떤 마트에서는 시간을 정해 판매하기도 했고 인터넷 중고장터에서는 낱개로 과자를 팔고 사기도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뜨거웠던 대중은 지금 어디 있는가?나는 연극 연출가이다. 벌떼 같은 대중을 원하지 않는다. 연극 한편이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하는 관객, 기대에 못 미쳤다면 화를 내며 나와 싸울 수 있는 관객, 그래서 1시간이 넘는 당신의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해 내가 사과할 수 있는 관객을 원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으며 화가 난 대중이 있다면 한 연극인의 기우로 토해낸 글에 대해 안도의 사과드린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30 11:28:55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구의원이 알게 해준 일

가까이 지내는 후배 한 명이 정치를 하겠다며, 구의원 선거에 나간다고 했다. 걱정이 돼서 주변 지인들에게 후배가 선거에 나가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적지 않은 지인들이 구의원은 하는 일도 없는데, 재정이나 축을 내는 불필요한 제도가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 필자도 당시에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의원, 시의원이 하는 일과 무관하게 지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국회의원은 돼야 나랏일을 할 수 있지, 지역의 구와 시의 일은 공무원들이 알아서 한다고 생각을 한다.후배가 의원이 되고 나서야 구의원이 얼마나 많은 일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뛰고 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구민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많았고,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일반사람들이 그렇게 구의원을 통해서 민원을 많이 넣는지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민원의 구체적인 불편을 파악해서, 직접적으로 뛰지 못하는 공무원을 통해 그 일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그리고 선거 때 지역구에 필요한 공약을 내세웠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국회의원들도 지역의 민원과 공약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걸까 둘러보게 되었다.지역의 한 아파트 건설업체로 인해,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작은 종교단체가 많은 피해를 보았다. 아파트 완공될 때까지 근 3년 동안 입은 피해는 참으로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해당 건설회사 법무이사는 우리의 하소연 정도는 가볍게 취급을 했다. 결국 그들과 대응을 하다, 건강까지 다쳐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 때서야 후배가 하던 민원해결이 생각났다. 구의원을 찾아 어려움을 호소하자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참으로 완강했던 그 기업은 구의원이 나서도 계속 시간을 끌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나서 뒤늦게 자기들 뜻대로 일을 해결했다.이런 일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힘 있는 기업의 폭주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 TV방송에서도 현장을 찾아와서 취재했지만, 그 기업은 그 정도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며 무시하니, 대화가 되지 않았다. 공무원은 민원을 해결하는 시늉만 하고, 의원들은 시민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는 듯 했다. 어려운 일의 해결이 필요할 때, 구의원에게 손을 내밀어라, 대구 시 일이라면 시의원에게 도움 받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뛸 때, 국민들은 그들의 힘으로 나라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방송을 타고 연일 보도되는 국회의원들의 투쟁도 당파 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게 되길 바란다.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요구에 귀 기울일 때, 존재의 의미도 커지는 것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29 05: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내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

누구나 어린 시절 일기를 쓴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 숙제란 의무감으로 혹은 본인이 원해서 매일 매일을 기록하는 글을 쓰며 학창시절을 지내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일기 쓰는 것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일이 되었고, 필자 역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그렇게 글쓰기와 한참을 멀어져 지내다가 지난 3개월간 꾸준히 글을 쓸 일이 생겼다. 일주일에 1번이지만 매일춘추에 글을 싣게 된 것이다. 글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떻게 보면 설레는 일이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이 기록되어 남겨지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그 글을 다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은 글쓰기가 주는 독특하고 큰 기쁨이다.하지만, 처음 원고를 의뢰받고 글쓰기를 준비할 때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내가 과연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준히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주변의 고마운 분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필자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이번 글쓰기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3개월간 글을 쓰며 달라진 점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나에게 글이라는 자유로운 또 다른 표현 수단이 생긴 것이다. 이제까지 필자는 감정이나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했었고, 그것이 익숙하고 편했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고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 역시 그러하다. 말 한마디 보다 하나의 선율이 효과적일 때가 있지만 반대로 음악보다 한 줄의 글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이라는 것을 통해 나의 생각을 음악 외에 다른 표현 수단으로써 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글은 기록으로 남겨진다. 내 글이 어딘가에 남아 있고 시간이 지난 후 그 글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기록되어진 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주는 소통창구이다. 과거의 생각을 읽고 지금은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어 글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성질이 있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생각을 공유한다.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일상들을 기록하게 된다면 그것은 과거를 현재와 비교하며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이 글은 매일춘추의 마지막 원고이지만 필자는 이번 경험을 계기로 계속 글쓰기를 이어 나갈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더 많은 나를 표현하며 살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글쓰기 역시 기록 되어져 과거의 나 자신과 소통하며 방향을 잃지 않는 한명의 예술가로 성장하려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고생해주신 주변의 분들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26 11:11:49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지난주 매일춘추에서 예술의 가치에 대해 개인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가치'의 사전적 뜻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즉 개인에 따라 쓸모, 중요성, 관심, 진, 선, 미는 다르기 때문에 가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만 원짜리가 천 원짜리보다 가치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적 가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날 똑같은 공연을 보고도 관객에 따라 공연에 대해 느끼는 가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지인의 소개로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예술의 가치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 큐레이터는 예술의 가치는 돈과 비례한다고 했다. 큐레이터 다운 말이었지만 나로서는 불쾌한 언사였다. "피카소의 작품이 천억이 넘는 금액에 거래되기 전까지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나요?" "그럼, 피카소의 작품이 큰 금액에 거래되기 전에 당신은 피카소를 알고 있었나요? 더 좋은 판단 기준이 있다면 제시해주세요." 더 좋은 판단 기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어떠한 답을 하게 되더라도 그건 또 다른 개인의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 나를 발견하고 얼른 입을 닫았다.예술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피카소의 그림이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보다 비싸므로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초등학생이 시력을 되찾고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 부모에게는 피카소의 그림보다 더 가치 있는 그림이 될 것이다. 즉 경험하는 개인에 따라 그 가치는 상대적일 수 있으나 일반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그 부모의 가치판단이 있듯이 '나만의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일 뿐이다.그렇다면 예술가는? 일반화될 수 없는 대중의 가치기준을 쫓아야 하는 것일까? 뒤샹이 소변기를 뒤집을 때 예술은 더 이상 의미를 담는 그릇이 아닌 의미 그자체가 되었다. 대중이 소변기를 보고 무엇을 느끼든 상관하지 않았다. 뒤샹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 이 있듯이 나와 동시대에 사는 예술가들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어야 한다. 대중은 없다. 허니버터칩을 찾아 벌떼처럼 쫓아다니는 대중은 지금 어디 있는가? 더 이상 대중의 눈치만 보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할 말이 많다. 나만의 언어로, 진정성 있는 나만의 의미로 무대를 만나길 기대한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25 13:18:03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성탄절

군고구마와 붕어빵과 눈사람이 있어도 어디 크리스마스만 하겠어요. 예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낸 지도, 받은 지도 오래 되었네요. 누구에게나 성탄절에 얽힌 추억은 있겠지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렸던 기억도 있겠지요? 볼이 어는 줄도 모르는 연인들이 거닐던 어느 거리, 거리를 지날 때 마다 땡땡땡 울리던 자선냄비 종소리와 수많은 캐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느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었을까요?'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서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개비처럼'(김종삼, '북치는 소년' 전문) 진눈개비를 따라 하늘로 떠난 시인이 있지요. 눈은 오지 않는데 눈만 퉁퉁 부은 시인의 딸은 몹시 아팠죠. 고독한 향내가 열이 나는 이마를 짚어 주었어요. 차가운 시래기국을 벌컥벌컥 마시던 먼 친척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장례식장 조화가 몇 개인지 세어 봐요. 조화하나의 추억과 조화하나의 인연과 조화하나의 시간들, 먼저 도착한 조화가 조문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눈은 오지 않고 눈만 멀뚱멀뚱 하구요.'가난한 아희'를 위한 자선냄비는 1891년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세프 맥피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요. 구세군의 냄비도 처음엔 솥 모양이었다가 냄비 모양이 되고, 뚜껑이 생기기도 하며 세월에 따라 계속 변하게 되었죠.지난해 성탄절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노해의 '그 겨울의 시' 일부를 올렸어요.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춥고 힘든 가난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은 설레임의 연속이에요. 저물어 가는 한 해의 충만함, 이즈음의 충만은 소멸해 가는 것의 위로에서 오는 것 같아요.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기다리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면 없는 추억도 되살아나죠. 소소한 약속과 사소한 선물도 기다려요. 아, 사랑하는 사람들(아이/부모님/ 친구/이웃)이 함께 꺼내 볼 수 있도록, 기다림으로 목이 더 늘어난 양말 속에 새로운 추억 하나 넣어 보면 어떨까요?연인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라는 단어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동원해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쪼록 글이 되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던 저의 '춘추'를 읽느라 수고로우셨던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매일춘추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어 매일매일 행복하였어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24 11:23:49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아모르 파티

트로트 곡으로 만들어져 불리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노래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 중 하나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자'라는 뜻이다. 신세타령 하지 말고 타고난 운명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개척해 나가자는 말이다. 젊은 날, 한낱 '신은 죽었다(니체). 너도 죽었다(신). 너들 둘 다 죽었다(청소아줌마)'라는 화장실 낙서 유머에 등장하던 니체가 그렇게 심오하고도 난해한 철학자인 줄은 인문학에 본격적인 눈을 뜨고 부터이다.지난 40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소 판돈 훔쳐 무작정 상경해 성공을 했다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를 벤치마킹 한답시고 대학도 진학 않고 뛰어든 사회생활, 참 만만찮았다. 시련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맨몸뚱이 하나로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반복한 오뚝이 같은 삶이었다. 시골에서는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지만 도시에 나오니 그저 흙수저 일 뿐이었다. 그러나 많은 좌절 속에서도 절망을 하지 않았던 것은, 긍정적인 성격으로 마음은 늘 부자였기 때문이다.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중앙계단 1층과 2층 사이 큰 게시판에는 울산조선소에서 만들었다는 26만 톤 대형 유조선 사진이 붙어 있었다. 공대 출신의 기술 선생님을 통해서 '현대'라는 회사와 '정주영'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정주영이 되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전설로 다가오는 진정한 영웅으로, 지금도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분이 세운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운송하는 물류 운수업을 영위하고 있으니 꿈은 제대로 이룬 셈이다.영화 '사관과 신사'를 보면 혹독하게 교육시키던 흑인 교관이 마침내 장교로 임관한 주인공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 교관은 부사관이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 인생에도 나를 조련했던 교관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바로 '운명'이라는 교관이다. 운명은 정말 힘들게 했지만 나를 높은 곳에 세우려고 했던 과정이었다 생각을 하니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혹하였으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줬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우리네 인생에서 삶의 무게라는 부하가 걸리면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의지력의 차이로 나타나는 결과다. 그 의지력은 긍정의 힘에서 비롯된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고 어떻게 키웠는데, 그걸 알면 절대 못난 자식이 될 수는 없다. 금수저 타령은 못난이나 하는 짓이다. 진짜 자존심 강한 사람은 공짜는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벌어야 내 돈인 것이다. 세상에 돈은 널려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잘 나도 내 인생, 못 나도 내 인생 아니겠는가. 누가 내 인생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는 나,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자. 아모르 파티!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23 13:02:36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예술인을 위한 복지

요즘 예술계 화두 중 하나는 '예술인 복지'이다. 대구에서도 예술인 복지에 대한 논의를 꺼내고, 복지센터를 만들기 위한 그간의 과정을 최근 한 포럼에서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예술인들은 복지에 대해 개념이 부족하고, 특히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더욱 관심이 적은 듯하다.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자료에 의하면, 그간 예술가로 등록한 예술인 수가 서울은 약 3만 명, 부산은 4천 명 정도인데, 대구는 1천 5백 명 내외라고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하면 대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대학의 예술관련 학과도 많은 편인데, 상대적으로 예술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의 예술가들은 부유해서 복지에는 관심이 낮은 것일까?아마도 사는 일로 바빠서 변화의 대처에 관심이 부족한 것이 더 큰 요인으로 여겨진다. 복지재단이 내게 무슨 덕이 되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과 어떤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부터 드러내는 대구지역의 정서도 한 몫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결론부터 얘기하면 복지재단에 등록한다고 해서, 해가 되는 일은 없다. 예술인으로 인정되어 등록 되면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고, 소속이 없는 자립형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인 증명을 받을 수 있고, 적은 돈이지만 창작준비지원금 같은 제도도 있다. 구체적으로, 아이를 밤 늦게까지 맡길 특별한 어린이집을 이용하려면, 재직증명서가 필요한데 그런 것도 가능하게 해준다.예술가들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학교에 재직하거나 예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상위권의 소수를 제외하면, 전업예술가들은 늘 배가 고프다. 자기 예술에 대한 자존감이 없으면, 예술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예술가의 특성상 창의력은 남다른 생활방식에서 출발되기도 하여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예술가를 두고서 '과도한 낭만성과 비대한 자의식'의 존재라는 표현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그러한 예술가들의 다소 비현실적인 생활태도가 그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근자에 서울의 유수한 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도가 양양한 한 젊은 예술가가 지병을 앓고 있었지만, 사인은 굶주림이었다는 신문기사로 세간이 술렁거렸던 적이 있었다.복지재단의 여러 일들을 여기서 다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문 두드릴 곳이 없는 예술가들에게 친구가 되어줄 것으로 본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모토가 '예술인의 꿈과 열망을 응원합니다'인 것처럼, 예술가들의 권익보호와 어려운 삶을 돌아봐주는 기관이 되리라 기대하며, 대구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예술인복지지원센터가 예술인들의 열망을 담아가길 기대한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22 06: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새로운 꿈

학창시절부터 나의 꿈은 작곡가였다. 음악은 늘 곁에 있었고, 그 음악들은 나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장르나 아티스트의 음악을 접하면서 새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같은 음악을 들어도 다른 감정으로 듣게 되면 새로운 음악이 되어 다가왔다. 나에게 음악은 끝이 안보일 만큼의 거대한 놀이터 같은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놀고 싶었고, 작곡가의 삶을 살게 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매순간이 행복할 것이라 기대했던 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꿈을 이룬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닌가보다. 나는 매일 음악을 접하고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필자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음악은 나에게는 기쁜 놀이, 신나는 창작이 아니라 그저 일이였다. 내가 꿈꾸던 작곡가는 일을 하는 작곡가가 아니였다. 행복한 순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순간은 잠시였고 대부분의 작업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동기를 잃어가던 나는 '작곡가는 내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했었다.하지만 올 해는 다른 해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행복하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순간 행복을 느꼈고, 일하던 작곡가가 아니라 거대한 음악 놀이터에서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있는 작곡가가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원하는 방향의 작업을 해도 되는 자유가 생기자 창작 욕구는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로 느껴지던 종류의 작업들도 더 이상 지겹거나 질리지 않았다. 내 안의 동기가 살아나자 어쩔 수 없이 하던 일들도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경험과 순간들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도움이 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믿음과 기대도 생겼다.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올 해를 보내며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올해처럼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매번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것이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창작의 동기를 잃지 않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자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거대한 음악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 말이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19 10:27:06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글루미 선데이

우리말로는 '우울한 일요일'로 번역되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는 1999년 '롤프 슈벨'이라는 감독이 만든 독일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프닝 크레디트와 함께 유람선이 떠다니는 다뉴브강 양안(兩岸)으로 부다페스트 시가지가 펼쳐진다.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와 곳곳의 오래된 건물은 부다페스트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도시임을 알려 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다소 살벌한 도시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교과서에도 실렸던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가 강렬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1940년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주인 겸 지배인인 '자보'는 연인인 아름다운 '일로나'와 함께 낮이면 일하고 밤이면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둘은 피아노를 들여놓으면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모집해 오디션을 보지만 마뜩찮다. 그런데 음울한 분위기의 한 청년이 찾아와 자신이 작곡을 했다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모두들 넋이 나간다. 한 때 가수를 꿈꿨던 일로나는 그 남자에게 푹 빠지게 되고 안드라스 역시 한눈에 반해 버린다.이 영화는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일로나에게 나이가 많고 자상한 자보는 곁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열정적인 청년 안드라스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다. 둘 다 필요한 남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관객의 눈에 여주인공이 부정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 같기도 하고 막무가내 투정을 부리는 막내딸 같아, 난처하지만 얄밉지는 않아 보인다.상대적으로 나이가 든 편인 자보의 '그녀를 완전히 잃느니 일부분이라도 가지겠다' 라고 하는 결정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라도 강구하는 게 맞다. 그러나 우리는 유독 남녀관계에서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체면이나 명분 혹은 사회적 통념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던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지구상 곳곳에는 아직 일처다부제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문화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영화를 본 후 리뷰를 살펴보던 중,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사랑이 하나의 대상에 대해 일편단심 종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세상에 사랑의 위선을 퍼뜨린다' 고 주장하는 분이 있었다. 여자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어느 정도 엿 볼 수 있는 말이었다. '사랑은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혹은, 더 사랑하느냐 덜 사랑하느냐'의 문제라는 어느 분의 지적은 수긍이 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여주인공 일로나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지만 둘 다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했던 사랑이었다. 괜찮은 영화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18 11:17:25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두통삼매경

두통의 진원지를 찾아 병원을 다녔습니다.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진행되는 중일까? 삶은 몰라도 되는 일에 애써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도 합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매번 괴롭고 힘들어 합니다. 두통의 원인과 두통의 근원을 모른 채, 두통의 진행에 복무하며 혹은 대립하며 자신만의 퍼즐을 맞추어 나갑니다. 복무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아도 삶은 짓궂게 답 없는 질문을 자꾸 던지겠지만요.답을 쉽게 찾을 수 없을 땐 눈을 감습니다. 잠을 청합니다. 두통이 꿈속에 흰 길을 내는 듯,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잠이 올 리 만무합니다. 잠을 다독여줄 '다정한 것'은 잠자리 어디에도 없습니다. 불면의 불편을 관찰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잠을 침잠시키는 두통, 고통의 모험이 시작되면서 잠의 도착을, 잠의 귀가를, 잠의 푸른 신호를 기다립니다.기다림이 길어지니까 쇠구슬이 왼쪽머리에서 굴러다니는 것 같습니다. 헬멧을 쓴 듯 머리전체가 압박(협박)에 시달립니다. 이 고통이 진짜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가 싶다가도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갚아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찰나에도 회로 선택을 잘못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엉뚱한 맥을 짚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두통의 진원이 아니라 기원을 찾는 게 먼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체에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정신을 의심해 봐야 할 일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대체로 육체보다 정신이듯, 만병의 통치도 몸 치료보다는 마음 치료가 더 먼저이니까요. 감기처럼 흔하게 오고, 쉽게 찾아옵니다. 약을 먹어도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데 자꾸만 괴롭습니다.우리에게 닥친 일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고 류시화 시인은 말합니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도 합니다. 실패와 고통 속에는 삶의 깨달음과 사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실패라고 하지만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더 나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하듯 깨달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침표를 찍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처럼 두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할까요? 두통(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처럼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이 틀리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잘 놀고, 보다 열심히 살며, 전에 없는 다정함을 발휘해야 할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17 11:13:29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예술경영은 필요한가?

매일춘추를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3개월에 접어들었다. 대부분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고민거리를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마지막 3회 차를 나의 오랜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는데 할애하려고 한다. 긴 이야기가 될 것이고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진정성을 의심받는 일은 없으면 한다. 대구는 공연을 제작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극장과 기술스테프, 또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대명공연거리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제작을 해보면 공연을 찾는 관객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단순히 마케팅의 문제일까?예술은 뭘까? 예술경영은 필요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효과적인 관계를 위해 마케팅은 발전해왔고 이제 예술경영, 문화경영 등의 이름으로 예술생산물에 깊이 관여하는 문화산업시대를 맞이했다. 경영의 목적은 이윤추구에 있으며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많은 소비자가 찾는 생산물을 만들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립 코틀러, 조앤 셰프의 저서 '전석매진'에서는 마케팅 지향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20세기 무렵 상품의 질과 쓰임의 가치를 갖는다면 충분하다고 여긴 상품 지향적 마케팅에서 공격적인 광고, 대인판매, 판촉활동 등 수요를 자극하는 판매 지향적 마케팅을 거쳐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과 요구, 선호와 만족을 연구하여 고객에서부터 시작하는 고객 지향적 마케팅으로 변화되었다. 결국 예술도 이윤의 도구가 되어 관객들의 기호와 취향을 쫓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그렇다면 예술가는 관객을 위한 예술을 해야 하는가? 관객을 위한 예술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럼 반대로 관객이 찾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는가? 연극 연출가인 나는 이러한 질문 앞에 딜레마가 생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객의 수가 예술의 가치와 비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파크티켓 판매 1순위의 공연이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예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느냐' 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패러디와 혼성모방(pastiche), 임의성과 우연성, 무질서에 대한 강조, 다양한 의미의 추구, 탈장르화, 자기반영성, 해체주의, 데카르트의 절대자아는 라캉에 의해 해체되었고 모나리자의 미소는 팝아트에 의해 변형, 재현되었다. 이제 예술비평은 이론자들의 유물이 되었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었다.만약 예술은 가치를 매길 수 없으며 그 대상이 될 수 없다면 가치를 판매해야하는 마케팅은 예술과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과연 예술 안에 경영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16 11:32:14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누구를 위한 리허설 무대?

최근 한 무용가 공연의 공연비평문을 쓰기 위해 일찍 공연장을 찾았다. 이번 공연이 1회 공연이라 한 회 공연을 보고 글을 쓸 때 아쉬운 점이 있어서, 리허설 할 때 미리 한 번 더 보려고 일찍 간 것이다.깜깜한 객석을 더듬어 한 쪽에 앉으니, 피날레 장면을 체크 중 이었다. 주제 속에 꽃이 나오니 무대 상부에서 거대한 화관(가랜드)이 내려오고 있고, 무용수들이 꽃비를 받듯이 조용히 팔 벌려 화관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웠다.최종 리허설이 시작되고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데, 공연 도중 안무자의 무대, 조명, 위치 등을 수정하는 마이크 소리로 어수선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대장치는 자리를 정하지 못해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조명은 주인공과 바뀌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해 산만하게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소도구들은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나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조력자들은 아직 정리 중이었다. 최종 리허설인데 이렇게 산만할까 맘이 불평으로 불편했다. 필자도 마음을 바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찾아보기로 했다.본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의 숨소리와 시선, 호기심 등이 올라가는 무대 막과 더불어 공연에 합세하게 된다. 관객은 공연의 또 다른 출연자이다. 관객이 있기 때문에 무대는 빛이 나고, 응원의 에너지로 공연자들은 힘을 받고 혼신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리허설과 전혀 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소재는 같을지라도 분위기와 흐름이 다른 새로운 공연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됐다. 조명은 고즈넉하게, 때로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강렬한 빛으로 무대를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었다. 장치는 제 자리를 찾아 조용히 역할을 감당하고, 눈치 못 채게 아름답게 장치들이 변화되어 나갔다. 무대 소품들이 조명의 힘으로 무대 밖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여줘야 할 것은 훤히 드러냈다.리허설은 본 무대를 위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무대이다. 사전의 뜻에 의하면 '실제 공연 전의 연습'에 불과하고, 막이 올라가기 전, 무대에서 해보는 마지막 연습인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지인들이 공연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개인사정으로 리허설을 보러오기도 하고, 공연을 본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리허설을 보고 싶다면, 본 공연을 본다는 전제 하에 봐야 한다. 전혀 다른 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안무자나 공연관계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극장 문 닫고 리허설을 하세요." 특히 공연문화를 아는 예술가들이 리허설 때 잠시 들렀다 가는 태도는 관계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가야한다. 리허설은 본 공연 관객을 위하여 준비하는 연습 무대이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13 10:28:28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상상의 자유, 감상

우리는 '감상'이라는 행위를 떠올릴 때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 감상이라는 행위를 위해 풍경이 아름다운 자연을 찾기도 하고,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보기도 한다. 수많은 미술관 중, 어느 미술관을 방문하여 감상을 할 것인가?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이 감상이란 행위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게 되었다.사진기가 발명되고 산업혁명 등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개성과 주관을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미술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세계에서 우리가 감상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 보다는 어떠한 개념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고, 감상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마르쉘 뒤샹의 '샘'이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남성 소변기에 R.MUTT 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한 뒤 미술전에 출품하였다. 당시 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이게 무슨 예술이야'라는 평을 하여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샹은 본인 작품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이것도 예술이라는 싸움을 하였고, 이후 '샘'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레디메이드 개념을 최초로 예술에 도입한 사례인 것이다.미술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필자의 감상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에 담겨 있는 개념을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미술이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때론 영감을 주는 장르가 분명했다. 그러다 현대미술을 소재로 쓴 연극 대본을 만나게 되었고 연말에 드디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 공연은 현대미술의 개념과 미술 시장 등 미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한국이 낳은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작을 적확하게 해석하는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해석을 하는 세 자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작품을 해석해 나간다. 주어진 기회는 단 두 번이다.이 작품은 장황하게 미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현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만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른 다양한 해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만나고 친숙해지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발상들이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는 체험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연극이 그러한 경험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12 10:31:03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눈물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 본다는 말이 맞겠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단절은 요즘 젊은 연예인이 누가 누군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연예계 깜깜이가 되고 말았다. 간혹 식당에 켜놓은 화면에서 어딘가 본 듯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부자연스런 얼굴에서 세월 따라 마음대로 늙을 수도 없는 여자 연예인들의 직업적 고충을 읽을 수가 있다. 성형수술로 인해 주름과 함께 표정도 없어져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예전에는 '환갑노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60대는 노인 취급을 받았다. 막상 그 나이가 되었지만 청춘으로 착각을 하다가 거울을 보고서야 깨어나기도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되어 여성화 된다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눈물을 잘 흘린다는 점이다. TV를 접하지 않으니 내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게 노화 탓인지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감정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지난 주 토요일은 전주를 다녀왔다. 고교 동기 자녀의 혼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북 전주 출신이면서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교편생활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처가가 전주에 있는 전형적인 영호남 커플이었다. 큰 아이도 외가가 전주에 있어서인지 대구에서 고교까지 다녔지만 전북대학교로 진학을 했고 학교를 같이 다니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오명의 88고속도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원하게 확장개통 되어있었다.식이 진행되고 아이들 성장 과정의 영상이 화면에 비춰지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의 부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아이가 고교 1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떴다. 터울이 많이 진 동생이 형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고, 뒤로는 아이들과 같이 찍은 생전의 엄마 모습이 화면으로 떴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사연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 늦둥이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고인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부터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 곁에 못 오게 했다고 한다. 정을 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까.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만난 작은 아들은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엄마의 배려가 담긴 천진난만한 그 모습이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했었다. 예식장에서는 엄마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울었지만 축가를 부르는 작은 아들만은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객관화된 슬픔이 더 서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결손에도 잘 자란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배로 행복하기를 빈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11 11: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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