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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 정치부 기자

[취재현장] 무사 귀환을 축하드리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지난달 말 대구시의회 의원 14명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에도 아랑곳 않고 해외 연수를 강행했다는 기사의 댓글이다. 시의회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 댓글을 거르고 또 거른 뒤 남은 그나마 점잖은 반응이다. 다행히 시의원들은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이달 초 무사 귀국했다.앞서 시의회는 해외 연수를 강행해야만 했던 이유로 '신뢰'를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한두 달 전부터 계획됐던 연수를 갑자기 취소하면 현지기관과의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코로나19 의심환자가 속출하면서 공포에 떨고 있던 대구 시민과의 신뢰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역만리 신뢰를 중시하던 시의원들은 현지에 도착해 정작 환대받지도 못했다.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 건설교통위원회는 코로나19의 확산을 우려한 현지기관으로부터 방문을 거절당했다.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의회를 찾은 기획행정위원회는 예정과 달리 의장을 비롯한 관계자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최근 일부 시의원이 보인 행보는 시의회를 향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A시의원은 지난 12일 올해 첫 임시회에서 해외 연수를 비판하는 기사를 두고 "출장 가는 거는 정해진 시나리오인데 (기사와 관련해) 대변인실은 뭐 좀 했습니까"라며 시의회 홍보담당관실이 아닌 애먼 대구시 대변인실을 질책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보다 하루 앞선 지난 11일 B시의원은 시의회 앞에서 해외 연수를 강행한 시의원들의 사퇴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던 장재형 전 전공노 대구지회장을 향해 "이미 한 달 전부터 계획된 일인데 어쩌냐"라며 역정을 냈다. 이에 장 전 지회장은 "그럼 코로나19도 한 달 전에 생길 거라고 알려져야 했냐"며 황당해 했다.시의회의 적반하장은 집행부인 대구시와의 대조로 더 두드러진다. 시의원들이 나란히 출장길에 올랐던 지난달 29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코로나19 유관기관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고 보름 후로 예정된 일본 도쿄 출장을 전격 취소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의회가 바닥까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기회는 하나 남았다. 고국이 코로나19로 떠들썩했던 일주일간 미주와 유럽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를 낱낱이 설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공무 국외출장에 관한 조례 11조에 따르면 시의원들은 귀국일 20일 내에 보고서를 작성해 의장에게 제출하고, 60일 내에 본회의에 보고토록 되어 있다.시의회는 올해 시의원 1인당 연간 해외 연수 예산을 265만원에서 340만원으로 75만원(28%) '셀프 증액'했다. 시의원들은 이렇게 오른 예산 덕분에 기존 중국과 동남아에 그치던 해외 연수를 미주와 유럽으로까지 떠날 수 있었다. 떠나기 전 제출한 출장계획서엔 반드시 '선진 OO체계'를 벤치마킹하고 오겠다는 다짐이 따라붙었다.그러니 이제는 연수(硏修)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뉴욕공립도서관, 하버드대학, 토론토주 의사당에서 누굴 만났고 9·11 메모리얼파크, 뉴욕소방박물관, 뉴욕시의회에서 뭘 배웠으며 융프라우철도, 프라하 대중교통공사, 파리도시개발공사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시민들에게 보고할 시간이다. 시의원들의 출장보고서가 궁금한 사람은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대구시의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공개 항목에서 해외교류 활동을 클릭하면 된다. 보고서 제출 마감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2020-02-18 16:00:40

경주엑스포공원의 경주타워. 연합뉴스

[취재현장] 엑스포의 뒤늦은 사과…아쉽지만 환영한다

경주엑스포공원엔 높이 82m 직육면체 유리벽에 신라 황룡사탑 실루엣을 음각한 상징 건축물이 있다. (재)문화엑스포가 2007년 세운 '경주타워'다.준공 직후 경주타워는 저작권 논란에 휘말렸다. 유동룡(1937~2011) 씨가 2004년 경주타워 설계공모에 낸 이미지를 꼭 빼닮았기 때문이다. 유 씨는 '이타미 준'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재일교포 2세 건축가다.당시 공모전에서 유 씨의 계획안은 설계권이 주어지지 않는 우수상을 받았다. 제자를 통해 본인의 공모전 출품작과 경주타워가 유사하다는 내용을 전해 들은 유 씨 측은 즉시 공모전 당선자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소송을 제기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났다. 이듬해엔 건축주인 문화엑스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심에선 패했으나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당선자와 건축주의 회의록에서 '유리 타워에 음각으로 황룡사탑 모양을 파내라'고 건축주 측이 제안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대법원도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그러나 그는 대법원 판결 1개월 전인 2011년 6월 74세로 세상을 떠났다.이듬해엔 유 씨의 장녀 유이화 ITM건축사무소 소장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건축물에 저작권자 성명을 표시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이에 따라 문화엑스포는 2012년 경주타워 왼편 바닥에 저작권자가 유동룡이라는 내용이 적힌 가로 세로 60㎝ 크기 표지석을 설치했다. 완공 5년 뒤에야 건물 설계자로 인정받은 셈이다.그러나 당초 표지석이 구석진 바닥에 설치돼 눈에 잘 띄지 않는 데다 최근엔 표시 문구의 도색까지 벗겨지자 유 소장은 지난해 9월 다시 소송을 내 현판을 새로 붙여줄 것을 요구했다. 이후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문화엑스포 이사장)가 저작권 인정과 수정 조치 등을 지시하면서 소송은 취하됐다.눈에 띄는 점은 이 도지사가 유족 측이 소송을 제기하기 이전인 지난해 8월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유 씨의 삶과 건축 철학을 담은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본 류희림 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의 보고가 시발점이 됐다. 엑스포는 최근 타워 앞에 새 안내판을 세우고 오는 17일 제막식을 갖는다. 12년간 이어졌던 긴 법적 공방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미다.새 안내판은 유족 측이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큰 가로 1.2m, 세로 2.4m 크기로 세워졌다. 당초 요구 사항에 없었던 유 씨의 설계안도 안내판에 담았다.이철우 도지사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며 "세계적인 건축 거장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명예를 실추시켰던 과오를 반성한다"고 했다.논어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란 말이 있다. '잘못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의미다. 이상적인 인물인 군자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그 잘못을 고치는 것을 꺼리지 않는,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점을 일깨운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뒤 그 결과에 대해 겸허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도지사의 용기 있는 사과는 돋보인다.다만 엑스포의 사과가 좀 더 빨랐더라면 어땠을까. 도쿄에서 태어나 평생 한국 국적과 한국 이름을 버리지 않았던 그가, 고국에서 비롯된 작품에 대한 상처를 안고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고.

2020-02-11 15:21:18

박상구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대구 전기차생산, 좌절하긴 이르다

지난달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에서 전기 화물차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대차가 '포터2 일렉트릭'을 출시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6일 기아차도 '봉고3 EV'를 내놨다.작년 5월 대구 달성군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제인모터스가 1t 전기 화물차 '칼마토' 양산을 시작하며 국내 최초 전기 화물차 생산 도시라는 타이틀에 들떠 있던 대구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격, 최대 주행거리 등 비교 항목 상당 부문에서 칼마토가 포터2 일렉트릭, 봉고3 EV 등 경쟁 차량보다 열세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대구시와 제인모터스는 완성차 업체와의 정면 승부를 피하는 분위기다. 제인모터스는 특장차 분야와 전기 경운기 등 틈새시장 공략으로 방향을 틀었고, 대구시도 올해 들어 자율주행차산업 육성, 자동차 튜닝을 비롯한 대체부품산업 활성화 등 다른 분야 지원을 확대하는 모양새다.그럼에도 대구 자동차부품업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오히려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 화물차 양산으로 기존 협력업체였던 곳들은 수주 물량 증가를 예상하는 곳도 적잖다. 대기업에서 전기 화물차 생산에 뛰어든 것이 대구 경제 전반의 악재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전기차 시대에 대비해 품목 전환을 모색하던 업체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구시가 전기차 생산에 손을 놓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달성군 소재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대구에서 전기 화물차 생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업 규모가 크지 않고, 차체를 현대차 포터 그대로 쓰다 보니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오히려 전기차 저변이 넓어지면 대구 자동차부품업체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여전히 대구 주력 업종이 자동차부품인 만큼 전기차 생산에 대한 지원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실제로 완성차 생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구 주요 협력업체들은 전기차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삼보모터스는 전기차 시장이 막 생겨나던 2015년 감속기 사업부를 신설해 지금까지 양산하고 있다. 평화오일씰공업은 수소차 전기발생장치인 스택에 들어가는 부품 '가스켓'을 개발해 현대차에 단독 납품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업체들 얘기대로 여전히 대구 대표 산업은 자동차부품 업종이다. 전기차와 더불어 대구 미래차 육성 업종의 한 축인 자율주행차 부문에도 유망 기업이 많지만, 상당수가 IT기업으로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그런 의미에서 작년 대구시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경창산업과 업무협약을 맺어 원천특허기술인 차세대 전기모터기술을 이전키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내연차 시장 부진으로 지역 업계에서 '상장폐지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왔던 경창산업 입장에서도 오히려 전기차 시장 확대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됐다.전기차 생산에서도 선도 도시가 되겠다는 대구시의 목표는 아직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를 위해선 자체 연구역량을 갖춘 곳보다 당장 어려움을 겪는 2, 3차 협력업체들에 대한 지원이 급선무다. 전기차 경우 배터리·모터 등 핵심 부품을 제외하면 생산구조가 내연차에 비해 단순해 기술력이 떨어지는 업체들도 뛰어들 여지가 충분한 시장이다. 자율차 육성에 나서되 수천 곳에 달하는 대구 자동차부품업체들이 고사하지 않도록 기술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2020-01-28 16:01:16

윤영민 기자

[취재현장] '빙공영사' 유해조수 포수들?

'빙공영사'(憑公營私)는 '공적인 일을 빙자해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꾀한다'는 뜻이다. 최근 경북 예천군에서 일부 포수들이 유해조수 포획포상금을 부정하게 수령했다는 논란에 어울리는 사자성어다.공익과 사익, 무엇이 우선이고 중요한가에 대한 답은 없지만 유해조수 포획포상금 부정 수령 논란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는 그야말로 범죄다. 유해조수 포획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포획 수를 부풀리고 사익(포상금)을 챙긴 범죄, 공익을 가장해 사익을 챙긴 사기에 가깝다.현재 경찰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포수를 찾는 조사를 벌이는 등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경북도도 15일까지 울릉도를 제외한 22개 시·군에 대해 유해조수 포획포상금 지급 실태를 파악하는 전수조사에 나섰다.전수조사는 예천군에서 발생한 포획포상금 부정 수령 사례가 다른 시·군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시작됐다. 특히 이번 부정 수령 행위는 제도적 허점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커 전수조사가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다.매일신문 보도(1월 4일 자 6면 등) 이후 유해조수 포획포상금 지급 관련 문제는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는 말이 많았다. 포수의 비도덕적 양심도 문제지만 지방자치단체별 유해조수 포획포상금 지급 지침이 제각각이고 허술했기 때문이다.전국 각 지자체는 포수가 포획한 유해조수 사체 사진을 제출하거나, 사진과 함께 위치를 전송하는 등 증거 자료를 근거로 포상금을 지급한다. 문제는 사체 처리는 포획한 당사자가 주민과 협의해 알아서 소각하거나 매립하도록 규정해 사체 실물이 필요 없었던 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이를 악용한 사례도 물론 있었다. 2017년 부산시 기장군에서 다른 사람이 잡은 멧돼지를 본인이 잡은 것처럼 사진만 찍어 보내 포상금을 타낸 일이 발생했다. 준비된 멧돼지 사체 사진 한 장만으로 포상금을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유해조수를 1마리만 잡고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포획 인증사진만 찍으면 손쉽게 더 많은 포상금을 타낼 수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그나마 예천군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체 사진과 위치 전송은 물론 군이 지정한 냉동창고로 사체를 가져와 환경감시원의 감독하에 사체 숫자를 확인·기록한 후 입고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돼 포획 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환경부는 포수들에게 더 큰 복마전을 제공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예방 차원에서 멧돼지 1마리당 포획포상금을 기존 5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하고 포획 수 제한을 없앤 게 화근이었다.경북 지역에서 지난해 포획한 멧돼지는 울릉도를 제외한 22개 시·군에서만 무려 2만2천847마리에 달한다. 그중 멧돼지 포획포상금이 오른 지난 두 달간 1만186마리가 잡혔다. 10개월 동안 포획한 멧돼지 수와 맞먹는다.예천군과 부산시의 사례 등을 보면 이 수치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부 포수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포획 수를 부풀린 만큼 전국에서 얼마나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물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속이는 포수가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정직한 포수들은 구멍이 숭숭 난 현재 시스템이 모든 포수를 부정한 집단으로 만들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더 많은 비도덕적 포수가 양산되기 전에 정부는 구멍난 시스템을 개선해 의혹을 씻어야 한다.

2020-01-14 14:27:58

이주형 사회부 기자.

[취재현장] 재윤이법(환자안전법 개정안) 국회 통과 기다리며

재윤이는 2017년 11월 고열 증세로 평소 다니던 대학병원을 찾았다. 생사의 촉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치료를 위해서였다.그러나 백혈병 재발을 의심한 의료진은 수면진정제와 진통제를 과다하게 투여했다. 무리한 골수검사에 호흡곤란 등 부작용이 잇따랐지만 응급처치 기구가 하나도 없는 일반 주사실이었다. 의료진의 환자 상태 확인마저 늦었다.재윤이는 그 후 24시간이 안 돼 사망하게 된다. 3년간 백혈병 치료를 씩씩하게 견디던 아이의 허망한 죽음이었다.재윤이 어머니 허희정(42) 씨는 병원 측에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했는지 물었고 병원은 "보고할 계획이 없으니 원하면 직접 하라"고 답했다. 환자안전사고 보고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보건복지부는 재윤이 사망 후 1년이 지나서야 가족이 직접 신고한 내용을 분석해 '진정약물 투여 후 환자 감시 미흡 관련 주의경보'를 내렸다.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를 골자로 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안이 '재윤이법'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개정안은 2018년 발의돼 그동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더디게나마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를 남겨뒀지만, 지난해 11월 여야 정쟁으로 본회의가 계속해서 취소돼 아직 계류 중이다. 재윤이 죽음의 진상 규명 도돌이표에 갇혀 수사만 번복되고 있다.2018년부터 2019년 또 2020년. 두 해가 지나도록 재윤이 가족과 함께 취재에 매달리고 있다. 병원 압수수색, 세 차례에 걸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의뢰 결과가 나오는 동안 재윤이의 의료사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나왔다.당시 의료진이 재윤이에게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과다 사용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약물 투여와 급격한 호흡곤란에는 연관성이 있었다. 시술자와는 별도로 책임 의료진이 감시·감독 의무도 수행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중재원의 더욱 자세한 답변도 나왔다. 사건은 돌고 돌아 검찰에서 다시 경찰로 내려와 현재 3개월째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여섯 살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이 어린 희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세 번의 겨울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재윤이의 부모를 처음 본 2018년 어느 여름날이 아직 생생하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너무나 서럽게 우는 이들을 보며 가슴속이 찜통이 된 것처럼 답답했다.옛말에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이들은 아직 재윤이를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은 아직 재윤이와 살고 있다. 엄마 허 씨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누워 있던 재윤이의 살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고 한다. 허 씨는 2년이 넘게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아빠는 어린이날마다 아들이 좋아하던 새 자동차 장난감을 재윤이 방에 슬며시 가져다 놓는다. 미세먼지를 처음 본 재윤이의 동생은 "하늘에 미세먼지가 많아서 하늘나라에 있는 오빠가 힘들겠다"며 걱정한다.여야는 지루한 싸움을 중단하고 9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민생법을 심의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의료사고는 쉬쉬하고 비밀리에 합의하는 것이 아니다. 알리고 드러내 재윤이 같은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 환자안전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재윤이 엄마의 외침이 이번에는 허공에 뿌려지지 않길 바란다.

2020-01-07 16:58:50

김윤기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격전지가 된 영남권 소주 시장

올해는 유난히 소주 신제품 출시 바람이 거셌다. 대구경북 소주업체인 금복주는 '뉴 맛있는 참' '맛있는 참 오리지널'을 지난 2, 7월에 연이어 출시했다.옛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뉴트로 열풍도 더해졌다. 4월 들어 하이트진로가 1970년대풍의 투명하고 곡선이 강조된 병에 담긴 '진로이즈백'을 내놓으면서 돌풍을 일으키자 경남의 무학도 비슷한 콘셉트의 '청춘 소주 무학'을 내놓았다. 부산 대선주조도 지난 6월 '고급 소주'에 이어 10월에는 1965년 라벨 디자인을 적용한 '대선'을 출시했다. 금복주도 이에 질세라 이달 들어 뉴트로 제품 '소주왕 금복주'를 내놓았다. 하지만 연이은 신제품 출시가 소주 시장의 호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소주 출고량은 91만8천㎘로 전년(94만6천㎘)보다 약 3% 역성장했다. 2013년 90만㎘ 이후 5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소주 판매가 약보합세를 보이는 가운데 각사마다 자신의 파이를 지키거나 키우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가깝다. 특히 하이트진로는 지역업체가 그나마 선전 중인 영남시장 공략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북, 부산경남에 소주 신제품 출시가 쏟아진 건 우연이 아닌 셈이다.시·도별로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고 이 가운데 50%를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자도주법'이 1996년 폐지되며 지역 소주업체들은 하이트진로나 롯데주류처럼 수도권 시장을 잡은 업체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유명 광고 모델을 기용한다. 하이트진로의 2018년 소주 매출액은 1조398억여원에 달했다. 전년(1조345억여원)에 비해 50억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지역 소주업체들이 반격할 수 있을까? 이들은 수도권 진출의 꿈은 접었다는 게 중론이다. 무학이 '좋은데이'로 2014년 수도권 진출을 시도했으나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였음에도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오히려 대선주조가 부산시장 점유율 1위를 가져가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니 지방 소주업체들이 수도권 시장을 바라보긴 어렵게 됐다"고 귀띔했다.이처럼 새롭게 진출할 시장은 없는데 대기업과 시장을 놓고 싸워야 하는 지역 업체들의 최근 매출과 영업이익은 신통치 않다. 금복주는 경북에서 여전히 80%대 점유율을 사수하고 있지만 대구에서는 '참이슬'을 내세운 하이트진로에 이미 역전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 정보에 따르면 금복주 매출은 2016년 1천391억원에서 2017년 1천305억원, 2018년 1천182억원으로 뚜렷한 하향세다. 영업이익도 2017년 331억원에서 2018년 246억원으로 25% 이상 줄었다. 무학의 매출은 2017년 2천505억원에서 2018년 1천937억원으로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2017년 287억원에서 2018년 10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충청, 호남 업체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역 소주업체들이 부진하면서 부산에서는 C1, 제주에서는 한라산, 호남에서는 잎새주와 같이 지역을 여행하는 소비자들이 해당 지방 소주를 마시며 기분을 내는 것도 언제까지 가능할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게 현실이다.지역 소비자들이 외면할 때 지역 소주업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도태되는 업체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지역 업체의 새로운 시도에 주목하고 격려하는 것도 우리 지역의 특색을 유지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2019-12-24 15:25:28

이통원 사회부 기자.

[취재현장] 독도 헬기 사고, 정부의 뒤늦은 대처

"우리 사랑하는 아들~!", "여보 빨리 돌아와~!"지난달 23일 독도 헬기 추락사고 피해자 가족들과 취재진이 독도 인근 해상을 방문했다. 당시 독도행 헬기에는 무거운 기운만이 맴돌았다. 가족들을 잃은 슬픔이 헬기 내부를 가득 채운 탓이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헬리콥터 소음에다 귀마개까지 하고 있어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가족들의 통곡은 가슴으로 전해졌다. 헬기가 바람에 휘청댔지만 이들의 슬픔에 가려져 두려움조차 느낄 새가 없었다.지난 10월 31일 밤 예고 없이 발생한 독도 소방헬기 추락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후 피해자 가족들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있다. 한 달여 동안 피해자 가족들을 취재하다 보니 함께 눈물을 글썽이게 되기도 하지만, 보다 정확한 취재를 위해 애써 감정을 숨기는 일이 가장 힘겨웠다.정부는 범정부현장수습지원단을 만들고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지만, 여전히 3명의 실종자는 찾지 못한 상태다. 특히 수색이 장기화하자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사고 발생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며 "좀 더 일찍 서둘렀다면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정부는 사고 발생 당일 함선 2척만을 투입해 수색작업에 나서는 등 말 그대로 부실한 초동 대처를 보였다. 수색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청해진함이 투입된 것은 지난달 2일부터였지만 잦은 고장에다 인양한 헬기 동체 이동 등으로 수색에 참여하지 못한 날도 여러 날이다. 사고 일주일째인 6일에서야 광양함이 추가 투입됐다. 수색 작업이 워낙 성과를 내지 못하자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수색에 대한 장비와 위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조언자 역할까지 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수색 당국의 수색 방식에 답답했던 피해자 가족들이 수색 장비 특성까지 공부해가며 수색을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고(故) 박단비 대원의 아버지는 지난달 9일 이낙연 총리와의 만남에서 "광양함이 사고 7일 차에 투입된 점은 너무 아쉽다. 추가 투입할 함정이 없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라며 "헬기 동체는 바지선으로 이동했어야 하는데 청해진함으로 포항까지 이동한 후 다시 수색에 투입했다"면서 정부 대응을 지적하기도 했다. 더구나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 신음하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수색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하다 사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소통창구를 만들었다. 애타게 수색 성과만을 기다리는 피해자 가족들의 질문에 사고 후 6일 동안 "모르겠다, 다른 곳에 물어봐 달라"며 해군과 해경, 소방이 서로 대답을 피하고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던 것.해상 사고의 경우 해양수산부 소속의 해경이 맡게 돼 있지만, 이번 사고의 경우 사고 당사자들은 행정안전부 산하 소방청 소속인 데다, 수색에는 국방부 소속 해군이 투입돼 있다 보니 서로 미루면서 가족들에게 수색 상황 등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달 5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구 강서소방서에 마련된 피해자 가족지원실을 방문하고 나서야 황급하게 범정부현장수습지원단을 꾸리는 뒤늦은 대처를 보였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5년 8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대형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은 여전히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듯한 느낌이다.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오는 8일로 수색 중단이라는 큰 결단을 내려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부디 하늘이 기적을 만들어 수색 종료 이전에 한 명의 실종자라도 더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한다.

2019-12-03 15:46:35

이상원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에 여야 한마음으로

중국 제나라 때 일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을 지나고 있는데 한 여인이 묘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궁금해진 공자가 제자에게 무슨 사연인지 알아보라고 시켰다.제자는 여인에게 다가가 "무슨 일로 슬피 울고 있냐"고 물었다.여인은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남편도 호랑이에게 물려죽었는데 이번에는 아들까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슬퍼했다.이를 들은 공자는 "시아버지와 남편, 자식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도 왜 이 곳을 떠나지 않냐"고 물었다.여인은 "가혹한 정치를 피해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라고 설명했다.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역설적인 고사다. 그 만큼 우리 삶에 있어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다는 반증이다.포항의 상황도 그렇다.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사상 최대 규모의 5.4 지진으로 인해 포항시민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시민을 안고 보듬어야 할 정치는 실종 상태다.지진피해를 입은 포항을 재건하기 위한 포항지진특별법이 지난 4월 발의됐지만 겨울로 접어든 지금까지 하세월이다. 중앙 정치에서 지역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다.여야 정치권은 서로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상처입은 포항시민이 치유될 수 있는 방안만 생각하면 된다.정부도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으로 드러난 만큼 보다 책임있는 자세로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태야 한다.아직도 수백 명의 이재민이 체육관 텐트와 컨테이너 시설에 살고 있으며, 지역경제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포항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한가닥 희망을 품었던 18일 열린 법안소위도 결국 '보상'이냐 '지원'이냐를 놓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임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다. 포항시민들은 21일 열리는 소위에 또 다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지진 이재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우리가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겁니까? 예전의 삶터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거 말고는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잃어 본 사람만이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던가. 포항시민들은 지진으로 잃어 보았으며 아파보았다. 소위 말하는 중앙이라는 서울(수도권 포함)은 얼마나 잃어 보았는가?원전만해도 그렇다. 서울특별시민들은 지역민들이 고통 속에 쏘아올린 원전의 전기를 받아 쓰고,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도 지역에서 처리해준다. 서울이 지진에 당했다면, 한강에 원전을 세운다면 서울특별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참으로 궁금해진다.포항시는 이처럼 포항의 아픔을 전하기 위해 서울에서 지진피해 사진전도 열고 포럼도 여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특별법 제정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겨울 찬바람처럼 냉랭하기만 하다.재난에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는 더 이상 직무유기를 하지 말고 즉답을 할 때다."포항시민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참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제 저희들이 해결하겠습니다"고 여야가 용서를 빌며 포항지진특별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그래야 구케의원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을 것이다.

2019-11-19 16:59:53

전병용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道公 사태 해결 수장(首長)으로서의 모습 보여라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근로자가 오늘은 불법 점거 농성자가 됐다.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김천 본사 점거 농성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도로공사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민주노총과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등 250여 명은 9일 '1천500명을 직접 고용하라'며 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를 점거하고 16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민주노총과 요금 수납원들은 대법원 판결이 난 근로자와 같이 1·2심 소송 중인 근로자들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렇지만 점거 농성이 길어지면서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요금 수납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소, 방역이 안 돼 공기가 탁해지면서 감기 환자와 피부병 등을 앓는 환자가 속출하는 등 몸이 아파도 제때 의약품 공급이 안 되고, 식사는 배달되는 도시락과 빵 등에 의존해야 한다.잠도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야 하고 씻는 것도 악취가 나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농성이 시작되자 도로공사는 전기를 차단해 노조원들은 무더위와 싸워야 하고, 화장실 및 로비 등의 청소가 안 돼 악취와 먼지투성이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게다가 밤이면 불이 꺼진 3·4층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여성 요금 수납원들은 안전에도 위협을 받고 있다.불편하기는 도로공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직원들은 야간근무는 물론 집에도 제때 가지 못하고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정상적인 업무는 아예 못 하고 있다.경찰도 민주노총과 요금 수납원들의 본사 건물 진입을 막기 위해 매일 800여 명의 경찰 인력을 동원하면서 피로감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이처럼 도로공사는 물론 치안에 힘을 쏟아야 할 경찰도 정상적인 업무가 되지 않아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그러나 도로공사 측은 이강래 사장이 발표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근로자(499명)와 달리 1·2심 소송이 진행 중인 1천47명은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도로공사 측은 "1·2심이 진행 중인 요금 수납원들은 소송의 개별적 특성이 다르고, 근로자 지위 확인 및 임금 청구 소송이 병합돼 있다"며 "자회사 전환 동의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볼 필요가 있어 확대 적용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또 도로공사는 "요금 수납원들이 진입 과정에서 시설물을 파손해 5천만원가량의 재산적 피해가 발생하고 직원들이 다쳤다"며 "국정감사 준비 등 현안 업무와 고속도로 유지관리 및 교통관리 업무 등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했다.따라서 도로공사는 요금 수납원들의 불법 행위와 업무 방해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간다고 밝혔다.이처럼 사태가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꼬여 가고 있는데 이 사장은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생각이 전혀 없다. 어찌 보면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이 지쳐 제 발로 본사 건물을 걸어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업 수장(首長)이 보일 모습은 아닌 것 같다.어제까지 매연을 마시며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받던 가족 같은 근로자들이었다. 이들의 이야기에 한 번쯤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본다.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본사 점거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9-09-25 06:30:00

박상구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日 수출규제 마주한 대구 기계업종

지난달 일본이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비교적 잠잠하던 대구 제조업계가 뒤늦게 들끓고 있다. 오는 28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계업종을 필두로 한 대구 주력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일본 수출규제 취재차 대구 달성군에 있는 금속절삭가공기계 업체 대표를 만났다. 이 업체는 핵심 부품인 콘트롤러를 전량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콘트롤러는 완성된 기계 가격의 20%를 넘을 만큼 중요한 부품이다.위로의 인사로 건넨 "힘내십시오"라는 말에 그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차라리 잘됐다며 오히려 이런 일이 10년쯤 빨리 터졌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그러면서 그는 일본이 독점하던 기계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고도 시장에서 외면당한 일을 털어놨다. 현재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도 기술력 문제보다는 대기업 납품이 용이해서라는 얘기도 덧붙였다.그는 "오래전 일본이 독점하던 기계 부품을 6년 동안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한 뒤 평소 거래처였던 모 대기업에 가져갔지만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며 "당장 일본 부품이 익숙한 데다 부품을 바꾸면 납품처에도 일일이 부품 변경 사실을 알려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회고했다.이어 "품질 문제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귀찮아서'라는 뉘앙스에 허탈했다"며 "차라리 이번 일본 수출규제가 기술력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그동안 대구 기계업종에 일본은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한국기계연구원이 19일 발표한 '한‧중‧일 공작기계 및 기계요소 수출경쟁력 분석 및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공작기계 수입액은 6억1천770만달러인 반면 일본으로의 수출액은 1억8천110만달러에 불과했다.국내 대기업들은 기술력을 이유로 레이저, 초음파 등 핵심 부품을 전적으로 일본 수입에 의존했고, 대구 중소 협력사에 돌아온 것은 마진율이 낮은 단순 부품 정도였다. 야심 차게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이 외면당하는 사례가 늘면서 굳이 비용을 들여 위험을 감수하려는 대구 기업도 줄고 있다는 것이 현장 얘기다. 국산과 일본 제품에서 똑같은 불량이 나더라도 국산 제품이 기술력 부문에서 유독 가혹한 평가를 받는다며 '역차별'을 호소하는 기업인도 있었다.그래서 대구 기계업종에서 이번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미묘하다. 물론 수입 길이 좁아져 위기감을 호소하는 기업도 있지만 그동안 일본 기업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던 대구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지원을 위한 특별회계를 신설해 최소 5년 이상 연 2조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하기로 했다. 대구시도 국산화 기업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다.금전적 지원만큼 절실한 것이 이들 기업의 판로 확보다. 일본의 벽에 막혀 선뜻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곳에 예산 지원을 하는 한편 개발을 끝낸 기업에는 제품을 팔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기업 입장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중소기업 제품을 검토라도 해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줘야 한다.

2019-08-21 06:30:00

박기호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성범죄 2차 피해 '모르쇠'한 도교육청

최근 경북 울릉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성범죄와 관련한 2차 피해가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교육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학교 교장이었던 A씨(직위해제 상태)가 학교 공사 업체로부터 현금 50만원을 받은 뒤 피해 교직원에게 이를 학교 회식비로 집행하라고 했지만, 피해 교직원인 행정실장이 이를 거부하자 성희롱과 강제추행을 했다"는 게 경찰 수사로 밝혀진 1차 피해다. 현재 A씨는 '강제추행과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1차 피해에 대한 형사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또 다른 문제는 학교 안팎에서 가해진 2차 피해에 있다. 일부 학부모가 피해자인 교직원에게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 행위가 수차례 일어났다. 학부모 대표들은 '학교를 떠나달라'는 요구도 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진위를 묻거나 근무지를 옮겨라'고 하는 행위 모두 명백한 성범죄 2차 피해다. 해당 학교 학부모들은 피해자를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피해 교직원의 전보조치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학생들을 이틀간 등교 거부까지 시키는 일을 벌였다. 결국 학생들은 무단결석 처리됐다.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교장 A씨가 피해 교직원을 학교에서 쫓아낸 후, 자기의 잘못을 덮으려고 학부모와 교사를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학생들까지 동원된 등교 거부 사태의 전말이다. 학부모들의 주장과 집단행동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피해자인 교직원에게 성범죄 사건으로 학교가 시끄러워졌으니 학교에서 떠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뇌물수수와 강제추행을 일으킨 '교장 A씨가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어야 했다.그런데도 교육 당국은 실태조사조차 않고 있다. 피해자가 2차 피해 조사를 요청하지 않는다며, 2차 피해 조사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 교직원은 '2차 피해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직장 내 따돌림 등 지금껏 일어난 2차 피해보다도 더 큰 피해를 걱정하기 때문이다.학부모들의 집단행동도 문제였지만, 경북도교육청 등 교육 당국의 성범죄와 2차 피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대처가 문제를 더욱 키웠다.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건강한 근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교육 당국을 향한 지탄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인 교직원을 전보 조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한 교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도교육청 감사관실 직원이 해당 학교 교감에게 문제의 탄원서에 대해 물었지만, 교감은 알면서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알면서도 보고하지 않는 '학교', 보고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다고 조사할 수 없다는 '울릉교육지원청'과 '경북도교육청' 모두 2차 가해자다. 2차 피해 예방에 나서야 하는 교육 당국의 태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경북도교육청과 울릉교육지원청, 해당 학교 등 교육 당국은 성범죄 2차 피해 사건을 은폐·묵인할 의도인가.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성 관련 비위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불법행위를 할 경우 관련 직원에 대해 교육 당국은 최대 파면까지 할 수 있다.가해자인 교장 A씨는 피해자인 교직원에 대해 업무상 '갑'의 위치에 있다. 뇌물수수와 강제추행 그리고 2차 가해는 '갑'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가 범죄불법행위까지 용납할 것을 기대하며 행한 '갑'의 횡포다.'갑'의 횡포를 막지 않고, 방조한 교육청 또한 나쁜 '갑'이다.

2019-08-13 14:00:52

경북부 전병용 기자

[취재현장] 구미형 일자리에 거는 기대

장기적인 경기 불황으로 침체 길만 걷던 경북 구미에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구미형 일자리 만들기에 ㈜LG화학이 6천억원 규모의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 공장을 2021년 하반기까지 구미5국가산업단지(이하 구미5산단)에 건설할 예정이다. LG화학은 시장 수요·기술 경쟁력 유지를 고려했을 때 국내에선 완제품인 '배터리 셀'보다는 양극재 등 소재 공급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이에 경북도와 구미시는 LG화학의 투자 입맛에 맞는 유치 계획도 내놓았다. 11일부터 경북도와 구미시, LG화학 등은 구미5산단에 배터리 양극재 생산 공장 신설을 두고 실무 협상에 들어갔다.장세용 구미시장은 "광주형 일자리 때와는 달리 구미는 고임금 문제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특히 외국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던 공장 건설 사업을 국내 투자로 돌렸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고무됐다. LG화학의 구미 투자는 구미형 일자리를 놓고 여야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 얻어낸 산물이다.구미는 올해 초 120조원 규모의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유치 실패의 쓴잔을 맛봤다.그만큼 구미 경제 부활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상실감과 허탈감이 컸다. 비록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유치는 실패했지만, 구미형 일자리 사업에 LG화학이 투자하기로 결정한 만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먼저 구미형 일자리 사업 성공을 위해서 시민의 환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들불처럼 일어났던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유치 운동처럼 시민이 합심해야 한다.또 구미시는 구미형 일자리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친화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김현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5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구미형 일자리 사업과 관련해 LG와 논의를 시작할 때 LG 측이 과거 구미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적이 있다"며 "고압적이고 관료적인 데다 마치 '갈 테면 가라'는 식의 행정이었다. 어떠한 요구를 해도 수용해 주지 않고 무관심했다"며 구미시에 일침을 놨다.또한 김 의원은 "LG가 정주 여건 개선에 관한 투자와 지원을 구미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가 LG화학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선 구미를 기업친화적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구미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를 추진해 왔지만, 김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기업체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LG화학이 구미5산단에 유치되기 위해서는 폐수처리장, 전력 공급, 부지 제공, 정주 여건 및 교육 환경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이제는 구미 경제 부활이 절박한 시점에 다다랐다. 이러한 시민들의 절박함에 구미시가 답해야 한다.구미시는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원스톱으로 가장 먼저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어렵게 구미 투자를 확정한 LG화학이 구미 경제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도록 구미시는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지원 사격에 나서야 한다.

2019-06-11 11:10:40

박기호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경북 울릉군, 공무원이 변해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기에 업무 처리에 있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그 처신 또한 올곧아야 한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시점에 울릉군 공무원들은 여전히 1970년대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울릉군의 한 건설폐기물처리업체가 수년 동안 갖가지 불법을 저질렀고, 울릉군 공무원들은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업체 대표의 불법행위를 돕기까지 했다.업체 대표가 건설폐기물을 일주도로변에 수년간 불법 야적해도 공무원들은 단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무원이 나서 불법 야적장을 임야에서 잡종지로 지목변경까지 해준 것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15년 전 울릉군 내부 서류가 유출돼 지목변경 근거 서류로 사용됐으니 말이다.또 허가와 달리 사업장에 인접한 타인 소유 토지에 방진벽을 두르고 건설폐기물과 순환 골재를 불법 야적해도 울릉군 공무원들은 '몰랐다'고 한다. 건설폐기물처리업체 실소유주의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불법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결국 이들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지난 몇 달간, 울릉군 행정의 또 다른 문제가 잇따라 드러났다. 취재현장에서 드러난 사건들 행태는 비슷했다. 울릉군 행정은 힘 있고 빽(?)있는 자들과 공무원 스스로 매우 관대했다.수년째 농지를 불법으로 개발해도 울릉군은 어떠한 행정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병원 건물인 행정재산을 마을회에 임의로 위탁해줘 주민들이 주택으로 사용했고, 그들은 병원 건물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마을권역별사업으로 십수억원을 들여 지은 자치센터는 건축물이 도로를 침범해 건축 승인을 못 받아 수년째 방치돼 있다. 또 다른 행정재산은 옥상을 개인에게 임의로 임대한 후, 불법 건축물을 짓도록 허가까지 해줬다.울릉군 행정, 이번 기회에 바꾸자. 원칙이 무너진 행정에 더 이상 울릉군민들이 따르지 않는다.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모두가 한목소리다. 대다수의 사건은 지역민들 입에 먼저 올랐던 것이다. 유독 공무원들만 듣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지난 잘못을 왜 자꾸 들추느냐' '공무원들이 의기소침해 일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지난 잘못에 대한 반성과 마침이 없다면, 새로운 시작도 힘들다. 대충 지나가면 누구에게는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 대다수에게는 큰 손해다. 이런 행정의 폐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다.'법을 어겨도 시간만 지나면 그만이다'는 생각과 관행을 바꾸는 변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준을 바로잡아 누구에게나 공평한 행정을 펼친다면, 신뢰받는 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공무원의 행정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언론이나 수사기관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공무원 스스로 변해야 한다. 공무원은 특정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군수나 상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당당한 공무원 자신과 울릉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울릉군민 모두는 공적인 일을 하는 공무원을 기대한다.

2019-05-14 11:30:44

강은경 서울정경부 기자

[취재현장] 물산업클러스터 순항을 위한 돛

'물기술인증원이 물산업클러스터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수많은 얘기 중 한국물기술인증원의 가치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던 말이다. 물기술인증원의 향방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이토록 쏠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그만큼 물기술인증원이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있는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 이로 인한 된서리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으로 치면 '몸통'(물산업클러스터)만 대구에 남고 '뇌'(물기술인증원)는 다른 곳에 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물기술인증원 없는 물산업클러스터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대구시와 인천시, 광주시가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물기술인증원은 지난해 6월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기술인증원은 윤재옥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대구 달서을)이 발의한 '물관리 기술 발전 및 물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품질과 성능을 보장하는 인검증 업무를 맡게 될 물기술인증원은 물기술산업법에서도 핵심이다.대구시는 가장 물망에 올랐지만 법에 설립 지역이 명시되지 않아 처음부터 험로가 예고됐다. 물기술인증원을 중심으로 관련 공공기관 추가 이전 가능성과 기업 투자 등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인천시와 광주시를 비롯해 대전시, 경기도까지 경쟁에 뛰어들어 한동안 안갯속이었다.결정적으로는 지난해 말 대구가 후보지 가운데 가장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는 환경부 자체 용역 결과가 나온 이후 대구 유치 당위성은 점차 무르익었다. 대구가 물산업에만 최적화된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추고 있고 관련 기관이 집중돼 업무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쉽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 해외 진출까지 모두 한곳에서 가능한 것이다.또 지난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를 찾아 "연구개발, 기술 성능 확인과 인증, 사업화, 해외시장 진출까지 물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지원하겠다"고 언급했고, 지난 4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도 대구를 찾아 물기술인증원 유치 지원을 약속하면서 분위기는 고조됐다.하지만 환경부가 지난 1월 물기술인증원 설립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늦어도 4월 초까지는 입지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선정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오는 6월 준공이 임박한 물산업클러스터 핵심인 물기술인증원 설립 지역이 확정되지 않아 기업들이 입주와 투자를 꺼리는 등 자칫 클러스터 운영 채비가 늦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소재지 발표가 10일쯤으로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열린 설립추진위원회 4차 회의에서는 물기술인증원 소재지 논의 결과, 대구에 설립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물기술인증원이 물산업클러스터에 설치돼 국가 물산업 허브 조성과 수출 도약의 계기가 되고, 대구가 글로벌 물산업 중심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돛을 비로소 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9-05-07 17:07:50

엄재진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경쟁자들의 의미있는 '포옹'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말한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주인 되는 축제라고도 말한다.하지만 선거판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연·학연·혈연에 얽매이고, 세균처럼 솟아나는 각종 선거 브로커들에 의해 민심이 갈라진다. 네 편, 내 편이 명확해지고, 이웃 간에도 내 편이 아니면 원수처럼 으르렁대고 할퀴어댄다.그러니 선거가 끝나면 승자도, 패자도 결국엔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파인 깊은 생채기를 안고 어떻게 건전한 정책을 만들고, 건강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는가?인구 1만7천 명. 대도시 아파트 한 개 단지에 불과한 전국 최소 규모 영양군은 그동안 선거로 인한 편 가르기가 심각했다. 인구가 많은 지역보다 주민들끼리 갈등하고 반목하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컸다.선거 결과, 승자는 공직사회와 지역사회의 각종 공공단체를 점령군처럼 자기 사람들로 장악했고, 이는 패자들을 곧바로 지역 개발의 반대편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니 지역이 사그라들고 지역 소멸 위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15일 영양군청 대회의실에서는 이런 영양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의미 있는 '포옹'이 있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맞붙어 경쟁했던 오도창 영양군수와 박홍열 영천시장애인복지관장이 지역 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고 포옹한 것이다.선거가 끝난 지 300여 일 만이다. 두 사람은 50여 명의 기자와 20여 명의 지역 어르신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갈등을 조장하거나 화합을 저해하는 어떤 말이나 행위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이날의 '포옹'은 선거 역사상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뒷거래'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석' '오 군수 딸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한 뒷돈 거래' 등 억측들이 난무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맞잡은 손 어디에도 그런 구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어려워지는 지역 현실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향했던 것이다. 오 군수는 선거로 인해 상처를 준 선배인 박 관장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고, 박 관장은 모든 것을 털고 오 군수의 손을 잡은 것이다.이들이 3년여 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다시 경쟁자로 맞붙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이날의 '포옹'은 지역 발전이나 개인의 정치적 행보로나 단연 필요했고,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박 관장은 이날을 위해 일주일여를 영양으로 퇴근해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오 군수 딸의 연설과 동영상 배포가 59표 차 석패의 이유라 믿고 있는 지지자들을 지역 발전 동반자로 돌려세우기란 힘들었을 것이다.이제, 공은 오 군수에게 넘어갔다. 군정을 책임진 사람으로 이날 '포옹'의 의미를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약속대로 공직사회나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행위도 경계해야 한다.특히 오 군수 주변에서 논공행상으로 호가호위하면서 '인의 장벽'을 치고 있는 몇몇 인사들부터 스스로 지역과 오 군수의 성공을 위해 물러서야 한다.

2019-04-16 11:09:58

김윤기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우리나라 로봇산업이 성장하려면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지역 로봇기업인들에게 며칠째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로봇산업 집중 육성 의지를 밝히면서 추후 국가 차원의 지원책 마련에 대해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161개 로봇기업이 연간 7천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약 3천 명이 로봇산업에 종사하는 대구시 역시 2024년까지 3천억원을 투입해 로봇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로봇산업은 자동차 등 전통적 주력 산업이 주춤한 우리나라로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분야다. 2011년부터 연평균 13.4% 성장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고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에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로봇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수요처 확보를 꼽았다. 로봇을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면 안정적인 수요처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거대 내수 시장을 앞세워 2017년 기준 세계 로봇 판매량의 3분의 1을 가져가는 중국이 제조업 로봇시장의 26.9%를 차지하고 있는 것, 현대자동차란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한 현대로보틱스가 세계 5위 수준의 로봇기업으로 자리한 것 모두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다.하지만 막상 로봇산업 종사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로봇 수요처 확보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큐라코의 배설케어로봇은 이 같은 문제점을 겪은 대표 사례다. 이 업체의 이훈상 대표는 2012년 외상 환자였던 아버지를 모신 경험에서 환자의 대소변을 자동으로 흡입해 처리해 주는 배설케어로봇을 개발했다.하지만 국내에서는 좀처럼 수요처를 찾지 못했다.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됐지만 '복지용구 렌털 비용'으로 연간 160만원을 지원할 뿐이었고 그나마 배설케어로봇은 항목에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그렇다고 대당 1천만원 정도의 제품을 선뜻 구매할 사람도 드물었다.같은 시기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2012년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 격인 '개호보험'을 통해 배설케어로봇 제품 구매 비용의 90%를 지원받을 수 있게 돼 시장이 열리고 다수의 기업이 자리 잡았다.내수 시장이 사실상 없어 어려움을 겪던 큐라코는 다행히 기체와 액체, 고체를 동시에 흡입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일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외산 제품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0억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는 등 선전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는 국내에서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사회적 약자 편익 지원사업'에 선정돼 광양시에서 배변케어로봇 64대를 도입해 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한 큐라코는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성장하는 로봇시장에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지원사업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제2의 큐라코가 탄생할 수 있을까?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대당 1억원을 호가하는 각종 재활치료로봇 개발업체도 큐라코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직까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탓에 이용 단가가 높아지면서 환자가 외면하고, 결국 수요처를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로봇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규제 개혁 등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2019-03-26 15:53:25

[취재현장]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일자리 감소와 임금체불 등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 우리 주변에서 현실화하고 있다.대학생인 기자의 동생은 지난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시급이 1만원을 넘자 호주머니가 두툼해질 생각에 동생은 고된 하루를 마치고 계산기를 두드렸다.첫 월급을 받으면 기자에게도 선물을 해주겠노라고 호기롭게 약속했지만 3월이 된 지금도 기자는 그 선물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임금을 받지 못해서다.기자 역시 화나고 속상한 마음에 임금체불 신고를 하려는데 동생이 그동안 사장에게 받았던 문자를 보내줬다. 다 읽고 나니 망설여졌다."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노동부에 현 상황을 전달하고 자금계획 방법들을 전달하겠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피로감을 제공해 너무 미안합니다."줄어든 매출에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사업 장비들을 모두 매각하는 방법으로 전국 업체들을 접촉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알바생의 경쟁자는 사업자가 아니라 같은 알바생이었고 그마저도 근무시간이 줄어 월급이 쪼그라들었으며, 고용주도 줄어든 매출에 결국 모두의 벌이가 열악해진 상황이었다.2년 새 30% 가까이 급등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이미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한국은행이 최저임금과 고용구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오히려 근로 시간과 급여가 줄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6천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임금을 받지 못한 사람은 35만여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여러 사정으로 물질적 어려움과 정신적 불안함, 사업주에 대한 원망을 겪는 근로자들이 주변에 적지 않음을 말해준다.대구경북 등 지방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도권보다 영세업체들이 많고 지역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지난주에는 기자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복도 집집마다 종이가 붙어있길래 전단인가 봤더니 현관 앞에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입주자님들, 저희 관리사무소 직원 16명이 모두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로서 관리단과 용역회사의 '을 중의 을'이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모 또는 남편들입니다."수백 장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을 심정을 떠올려봤다. 피부에 닿는 현실은 정책에 쓰여 있지 않는다는 생각에 답답했다.2020년 적용할 최저임금도 심의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급속히 올린 최저임금 이후 오히려 일자리 감소와 소득분배 격차는 최대치로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선의에 기반한 정책이라도 현실과 괴리를 좁히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해법이 시급하다.사람 뽑기는 어렵고 자르기는 쉬운 세상이 된 가운데 최하층 임금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최저임금의 역설이자 현실이다.

2019-03-12 17:26:55

이통원 기자

[취재현장] 작은 불씨가 대형화재로 '예방은 없나'

"작은 구멍이 큰 배를 가라앉힌다."작은 문제가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뜻의 영국 속담이다.최근 대구에서는 작은 분진으로 인해 시작된 화재로 92명의 시민이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3명은 목숨을 잃었고, 4명은 중상을 입어 치료 중이다. 바로 지난달 19일 발생한 대보사우나 화재 사건이다.이날 화재는 목욕탕 구둣방 내부에 있던 콘센트에서 불이 시작됐다. 경찰은 2차례에 걸친 정밀 감식 결과 콘센트에 꽂힌 플러그에서 발화가 시작됐다고 결론을 내렸다.화재 당일 대보사우나 인근은 아수라장이었다. 구도심 지역에 위치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오거나 고정적으로 목욕탕을 들르던 고객이 많았던 만큼 피해자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혹시나 지인이 피해를 입진 않았는지 물어보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주민들을 통제하는 경찰과 불을 끄는 소방관 등이 뒤섞이면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이른 아침부터 비까지 내려 스산한 가운데 연기는 불이 꺼진 뒤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건물 위로 뿌옇게 치솟았다.기자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잔불 정리 작업을 하고 있던 내부에 들어가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재와 검게 그을린 벽만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된 천장은 모두 타버린 상태였다.노후된 플러그에서 트래킹(tracking) 현상으로 시작된 불꽃이 대형 화재로 번진 것은 내부 인테리어가 불에 잘 타는 가연물이 많았던 데다, 스프링클러가 없어 초기 진화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대보사우나 건물 위층의 아파트 주민들은 한동안 전기와 수도 등이 끊어지며 여기저기서 이재민 생활을 하다 주말을 기점으로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시름은 여전하다. TV도 안 나오는 등 생활의 불편이야 조만간 해결되겠지만 가장 큰 고민은 언제 또다시 불이 날지 모르는 노후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이다.이번 화재 피해는 단 19분 만에 발생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이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12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지만 3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나마 신속한 출동과 진압으로 손을 썼지만 인명 피해는 컸다. 만약 이용객이 더 많고 차량 통행이 많은 낮시간대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아찔할 정도다.경찰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전기적 요인으로 봤다. 이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선 각 가정마다 사용하는 각종 전기 장치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관리가 절실하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 전기 플러그를 뽑아 두고 노후된 설비는 제때 교체해야 한다. 특히 콘센트 등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꼼꼼히 관리해야 한다. 이곳은 플러그를 꽂고 빼는 과정에서 스파크가 튀며 먼지에 옮겨붙어 화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법적으로 설치 의무가 있는 화재 장비들은 화재 발생 시 각종 감지기와 스프링클러, 소화기 등이 작동하며 발생 후 피해를 줄이기 위하는 데만 맞춰져 있다.불이 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화재 발생 소지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소방활동의 시작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2019-03-06 06:30:00

박상구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최고의 자영업자 대책은 양질의 일자리 발굴

지난달 매일신문 지면에 '자영업자 희망프로젝트' 연재를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경북 자영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취지다.취재차 만난 자영업자들에게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 외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된 상권에 자리 잡았다는 점과 혼자 일한다는 점이었다. 지역 자영업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이었다. 또 다른 특징은 처음부터 자영업을 생각한 경우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대부분은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거나 취업난에 창업을 택했다. 남다른 아이템으로 성공을 거둔 그들에게도 자영업은 '차선책'이었다.수년째 취업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카페를 차렸다는 한 자영업자는 "대구는 경쟁이 치열해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 일반 직장인 월급과 큰 차이가 없다"며 "어느 정도 매출이 확보된 지금도 그냥 취업하고 회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다 안 되면 카페나 차려야지'라는 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정말 위험한 얘기"라고 했다.지역 자영업자들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자영업자가 대다수인 도·소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경기 부진 영향으로 전년 대비 3천 명 줄었다. 빚을 내가며 버티는 자영업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자영업자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자영업자의 대출액은 432조2천억원에 달했다. 일반 가계대출까지 합하면 자영업자 빚 규모는 7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 카드 수수료, 비싼 임대료 탓도 물론 있겠지만 핵심은 아니다. 자영업자 인건비 지원, 임대료 인상 폭 제한 등 정부 지원책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이유다.지역 자영업자 어려움의 근본적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수는 564만 명에 이른다. 전체 취업자의 25%를 넘는 수치로 일본의 2배 수준이다. 한정된 시장에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기 힘든 구조다.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 확보다.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골목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 같은 자영업자 대책도 중요하지만 기존 고용시장에서 밀려나 불가피하게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그런 면에서 대구의 최근 고용지표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지난달 대구 취업자 수가 120만 명으로 전년 대비 6천 명 늘어나는 동안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도·소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3천 명 줄었다. 자영업자 비중이 조금이나마 줄어든 셈이다.취재를 위해 자영업자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자리의 중요성이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자영업자마저 여전히 취업해서 월급 받는 것이 낫다고 얘기할 만큼 지역 자영업자들이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면 최소한 인건비나 임대료 부담에서라도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자영업자는 극소수다. 최고의 자영업자 지원책은 결국 '경쟁자 제거'(?)다. 양질의 일자리를 발굴해야 지역 청년들도, 자영업자도 웃을 수 있다.

2019-02-19 10:20:24

신동우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탈원전을 바라보는 울진 군민의 애증

"원자력발전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죠.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밥그릇마저 뺏으려는 방식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울진은 원전도 돈도 아닌 시간이 필요합니다."장시원 울진군의회 의장과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장 의장은 국내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울진에서도 대표적인 반원전 인사로 꼽힌다. 그는 신한울원전 건설 계획이 발표됐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갑상선암에 걸린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피해 보상을 위한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그이기에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는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장 의장의 말에서 지금의 탈원전 사태를 바라보는 울진 군민들의 평론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울진 군민에게 원전은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짐 덩어리'이다. 이 나라가 선진화될수록 사양화돼야 할 사업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지금의 탈원전 정책은 울진을 포함해 원전 지역사회의 특수성이 빠져 있다.울진에 원전 건립 계획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80년 군부 정권 시절. 이후 1988년 9월 한울원전 1호기가 건립되고, 2005년 6호기까지 우후죽순처럼 원전이 늘어섰다.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국내 원전 초기에는 국가 정책에 감히 일개 국민이 토를 달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당연히 피해 보상이 없었고, 탈핵 논리는 국가반역죄처럼 다뤄졌다. 원전 건립을 앞두고 지역민들과 국가가 처음으로 머리를 맞댄 것은 2010년쯤으로 봐야 한다. 기존 6기에 더해 추가로 4기를 짓기로 한, 신한울원전 건립 계획이 발표된 시기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30년이나 흐르고, 지역민들의 선택은 공존이 전부였다.원자력학회에 따르면, 울진의 산업구조는 원전 의존도가 상당해 원전의 직접적인 비용으로만 35%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간접적 영향까지 합하면 최소 60% 이상은 원전산업에서 파생하는 비용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공존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탈원전은 생활 터전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금강소나무와 온천을 비롯해 대게, 송이 등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원전 보유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광, 교통, 특산물 홍보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지을 때도 그렇지만, 철수할 때도 지역사회의 목소리는 전혀 없다. 무조건 일방적인 지시에 군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울진에서도 신규 원전 건립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위험시설의 추가 건립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하지만, 양측 모두 갑작스러운 탈원전으로 인해 지역이 떠안게 될 피해를 우려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다행히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참여해 청와대, 한국수력원자력, 산업통상자원부, 지역민이 참여하는 소통 협의체를 구성키로 협의해 지역에 작은 희망을 주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청와대가 협의체의 직접 참여를 거부하고, 단순히 컨트롤타워의 역할만을 자처한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스스로의 책임을 버리고 단순히 시간끌기를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지역민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아무쪼록 청와대가 지역에서 더 이상 불안과 불만의 덩어리가 커지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2019-02-12 1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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